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47
47화
EPISODE.24
“허억. 허억. 허억.”
한껏 거칠어진 숨소리로 어깨를 들썩인 러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퐁-.
수통 하나를 열어 반절을 입안에 쏟아부었으며, 다른 반절을 머리 위로 끼얹었다.
촤악!
차가운 물기가 전신을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지고, 호흡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전방을 주시했다.
벼락이 떨어진 자리에서는 모래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 모래 구름 주변에 늘어져 있는 것은,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무엇인가의 파편.
그것은 유리였다.
『Mjöllnir of Thunder Giant.』
우레 거인의 망치가 발산한 초고온의 열로 인해, 모래 속에 섞여 있던 석영이 녹아내리며 유리화(琉璃化)된 것이다.
그만한 일격을 직격으로, 정확하게 본체의 가슴팍에 때려 박았다.
살아 있다면 이미 인간이 아니겠지.
천천히 먼지가 걷히고, 더욱 심하게 유리화가 일어난 사막의 한 중심에 거대한 뼈 무더기가 스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압도적인 화력에 거의 대부분이 검은 탄소 쪼가리로 변해버린 뼈들.
그 가장 위쪽에 놓여 있는 것.
그것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검게 타버린 사람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한 광경에 러셀이 미간을 찌푸렸다.
[미션을 완료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알림이 들려오며 아공간 안쪽에 식용 마석이 보관된 것은 그 직후였다.
‘일단 끝난 건가.’
세 명의 적을 마주하는 것까지는 예상했지만, 설마 셋의 목숨을 다 바쳐 어보미네이션을 소환할 줄이야.
전투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것뿐, 사령술 자체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났던 것일 터.
어쩌면 이런 오합지졸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소재를 이용해 만든 언데드들을 소유하고 있었더라면, 조금 더 성가셨을지도 몰라.’
딱 그뿐.
조금 더 최악의 상황을 가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자신의 패배를 생각지 않았다.
그에게도 아직 사용하지 않은 패가 조금 더 있는 까닭이었다.
“돌아갈까?”
하지만 그 전에-.
‘일단 이 상황을 이미지화시켜야겠지.’
그래야 과제를 완수했다는 증거물로써 제출할 수 있을 테니.
살려 돌아가는 것이 가능했다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눈에 비친 광경을 그림처럼 찍어내어 저장하는 3써클 마법.
‘이미지 프레임.’
러셀이 마법을 사용하려는 순간, 달싹.
검게 탄 숯덩이, 소사체가 몸을 꿈틀거렸다.
“……?!”
아무리 사령술이라지만, 이미 죽은 술자의 시체까지 살려낼 수 있을 리가!
경악한 러셀이 다시금 임전 태세에 돌입했고 뒤이어, 움찔움찔.
숯덩이가 꿈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머리가 떨어지며 러셀을 향해 굴러온다.
데굴데굴.
마치 검은 공이 굴러오는 것 같았지만, 러셀은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머리가 다가올 때마다, 거대한 존재감 역시 점점 가까워졌기 때문.
그리고 마침내 러셀의 발치까지 굴러온 머리통이 천천히 턱을 달싹였다.
‘턱이었던 것’을 움직이며 ‘눈이 있었던 자리’에서 흉흉한 안광을 토해냈다.
【다리아. 그 태워죽일 년이 말년에 썩 괜찮은 놈을 거뒀구나.】
“……!!”
지네나 개미, 혹은 독을 품고 있는 거미 등.
온몸이 벌레 때에 뒤덮이기라도 한 듯 소름이 돋는 음성이다.
【러셀 레이먼드. 레이먼드. 레이먼드.】
무언가를 떠올리기라도 하듯, 음성의 주인은 시체의 입을 빌려 ‘레이먼드’라는 성을 몇 번이나 곱씹었다.
그것도 잠시.
이내 타버린 머리통의 입꼬리 부분이 부들부들 떨렸다.
완전히 근육이 맛이 가버려 알아보기 어려운 표정이었지만, 러셀은 생각했다.
【그렇군. 어쩌면 나는…….】
음성의 주인은 지금 웃음을 흘리고 있노라고.
【아비와 아들, 레이먼드를 두 번이나 죽인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어.】
희열을 느끼기라도 하듯, 영역대가 조금 올라간 음성이었다.
!!!
.
.
지금 이게 무슨 소리지?
레이먼드를 두 번이나 죽인 사람?
아버지는 제국과의 전쟁에서 돌아가신 게 아니었나?
그런데 왜,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교도 놈의 입에서 아버지의 죽음이 언급되는 거지?
풀리지 않는 매듭이 몇 개나 생겨난 것처럼, 머릿속이 복잡했다.
“방금 그게 무슨 말…….”
주먹을 꽉 말아 쥐고, 땀으로 축축하게 젖은 손아귀를 감추며 반문했다.
그보다 한 박자 빠르게
【이런, 여기까지로군.】
놈이 선수를 쳤다.
【아무래도 장거리 통신이다 보니 걸리는 게 많아. 그럼…….】
남은 이야기는 언제고 재회의 즐거움으로 미뤄두기로 하지. 레이먼드의 아들아.
코웃음과 함께 소름 돋던 음성이 멀어진다.
머릿속에 생겨난 매듭 중, 어느 하나도 풀지 못한 상태.
으득.
러셀이 입술을 짓씹었다.
비릿한 피 맛이 혓바닥 안쪽을 적셨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이 머리통을 박살내버리고 싶었다.
허나 해야 할 일이 있었기에,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러셀은 충동을 억눌렀다.
“크, 후.”
신음인지 한숨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먼저 상황을 기록했다.
‘이미지 프레임.’
기다렸다는 듯 불덩이를 내던졌다.
화르르륵!
이미 숯덩이가 되어버린 흑마법사의 사체와, 뼈로 이루어진 언덕을 불살랐으며 발길질을 했다.
콱!
불길의 한복판을 향해 굴러온 머리통을 차 넣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일단의 무리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땅이 갈라지며,
모래가 튀어 오르고,
벼락이 떨어지는 소란에 몰려든 이들.
제국의 번견들이 냄새를 맡았다.
* * *
제국군 12사막 제2 대대.
어느 장교 하나가 앓는 소리를 냈다.
“끙.”
허리를 비틀며 퀭해진 눈을 가볍게 비볐다.
자신의 앞에 잔뜩 쌓인, 서류 뭉치를 바라봤다.
‘으…….’
그렇게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남은 서류는 약 열 장가량.
이 모두가 근 한 시간 내에 올라온 보고들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의 부대가 주둔지를 둔 곳은, 타클 사막과 제국령의 경계였으므로.
주된 임무는 정찰병과 척후병을 운용하여 사막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과, 타국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
때문일까.
2대대의 주둔지에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전서구들이 착륙했다 날아오르기를 반복하며 드나들었다.
그 수가 적은 날에도 백에 준할 정도였고, 많은 날에는 거의 천에 근접할 때도 있었다.
덕분에 이제는 비둘기 날아오르는 소리만 들어도 몸이 흠칫 떨릴 정도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교의 상황은 개중에 나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2급 이상의 첩보만 나에게 전해지니 다행이지. 그 아래의 정보들까지 분류하는 일반병들을 생각하면…….’
앞에 쌓인 서류가 족히 몇 배는 늘어난다는 생각에 장교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꼬우면 승진하라지.’
질린 표정으로 또 다른 보고서를 집어 들었고, 나른한 얼굴로 첫 장을 넘겼다.
‘음음. 어디 보자-.’
2급 이상의 보고라고는 하지만, 아직 특별히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없었다.
주제도 모르고 까불어 대는 엔디미온 왕국 놈들도, 요 며칠 동안에는 잠잠했었고.
그러니까, 이번 보고도 별문제 없겠지.
그리 생각하며 보고서를 펼친 지 불과 몇 분.
“대, 대대장님!”
보고서를 채 다 읽기도 전에, 장교가 자신의 막사를 박차고 뛰어나갔다.
한 손으론 보고서를 꽉 움켜쥐며, 대대장의 막사를 향해 질주했다.
.
.
“이게 정말인가?”
정보 장교가 건넨 첩보를 읽으며 대대장은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었다.
“척후조의 첨언대로라면, 가능성은 육 할 내지 칠 할 정도라고 합니다.”
육 할과, 칠 할.
어느 쪽이든 절반은 넘는 수치였다. 그렇다면 무시할 순 없겠지.
그리 판단한 대대장이 지친 기색으로 손을 흔들었다.
“알겠네. 이만 돌아가 보게.”
정보 장교를 향해 축객령을 내렸다. 막사의 천막이 펄럭이고, 정보 장교가 나간 후.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부관이 그를 향해 물어온다.
“무슨 일입니까. 대대장님.”
그의 물음에 12사단 2대대의 장(將), 몽메르트 자작이 손에 들린 첩보를 그에게 건넸다.
“멀지 않은 곳에서 전투가 있었다더군. 전투를 벌인 이들은, 사교도로 보이는 인물과 마법사.”
“사교도라면…….”
근래 제국령 내에서 흑마법사가 소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던가?
빠르게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딱히 떠오르는 소문은 없었다.
사교도를 추살하기 위해 마법사를 파견한다는 자국 마탑에서의 연락 역시 없었고.
“그렇겠지. 아무래도 추살대를 보낸 건 다른 쪽인 것 같으니 말일세.”
“다른 쪽이라면…….”
“엔디미온의 마탑. 정확하게는 염탑이라고 해야겠지.”
“염탑!”
염탑이라는 말에 부관이 발작이라도 하듯 소리쳤다.
몇 년 전 전쟁에서, 그가 속한 부대를 통째로 태워 버린 것이 염탑 소속의 마법사들이었다.
그러건 말건 대대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보고서의 내용대로라면, 염탑주가 이번에 새로 거둔 제자로 추측된다고 하더군.”
부관이 황급히 시선을 보고서에 묻었다. 염탑주의 새 제자에 관한 인적 사항을 확인했다.
‘수준은……고작해야 4써클.’
무시할 정도로 낮은 써클은 아니다.
허나. 염탑주의 제자라고 보기에는 애매했다.
아직 벽도 넘지 못한 수준이 아닌가.
다만, 신경 쓰이는 것은 그 써클을 달성한 나이였다.
‘열아홉.’
당장에 큰 문제가 될 수준은 아니겠지만, 염탑주. 그 괴물 같은 년이 인정하고 매료된 재능이었다.
재능만 놓고 보자면 어쩌면 창탑주의 막내 제자라는 놈보다도 윗줄일지도.
이대로 눈다면 향후 제국의 앞길을 가로막는 엔디미온의 거목(巨木)으로 성장할 것이다.
지금 싹을 잘라둘 수 있다면 그편이 최선이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문제는 이 부대가 전투에 특화된 부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정찰과 첩보에 특화된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닌 이의 숫자는 적었다.
그렇다고 4써클 마법사 하나를 잡자고 부대를 통째로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 물음에 몽메르트 자작이 언짢은 기색으로 내뱉었다.
“그 미치광이를 부르게.”
“미치광이라면…….”
살인광(殺人狂).
대담하게도 황도의 한복판에서, 수명의 신민(臣民)을 살해한 범죄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과 뒷배로 인해 사형에 처해지지 않고 변경으로 유배되었을 뿐인 괴물.
“그치도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나. 내가 자기 뒷구멍을 닦아주는 걸레 쪼가리도 아니고 말이야.”
유배를 온 지 고착 며칠.
그 며칠 동안에도 살인을 놓지 못하고 아군 병사의 목을 베어내던 놈이었다.
몇 번이고 그 뒷수습을 해준 것이 바로 대대장, 몽메르트 자작이었음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염탑주의 제자라고 한다면, 그자도 눈이 돌아가겠지.”
잡기만 한다면, 지루한 유배 생활을 끝내고 황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므로.
‘확실히.’
제정신이 아닌 작자였지만 그 실력만큼은 발군. 작은 벽 하나를 넘어섰다고 할 수 있는 놈이었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부관이 살인광의 모습을 떠올렸다.
정확하게는 그 살인광의 뒷배로 존재하는 거물의 모습을.
어쩐지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삭막한 인상에, 닿으면 베여 나갈 것만 같은 기세라.
그보다 더욱 꺼림칙한 것은, 항상 그의 뒤를 따르는 흉흉한 소문과 불길한 피 냄새였으니.
미치광이 스팬덤.
그는 제국을 대표하는 초인(超人).
마스터(Master) 급 대검호(大劍湖) 중 일인의 제자였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