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48
48화
EPISODE.24
팟-.
우뚝 솟아난 암벽의 그림자 아래에 내려서자, 모래 알갱이 몇 개가 튀어 오른다.
한숨 돌렸나?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보존식 몇 조각을 꺼내 입에 물었다.
이어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주변을 응시했다.
‘대충 사흘 정도 된 것 같은데.’
사흘.
제국의 번견들이 그를 습격해오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아마도 사교도 놈들, ‘어보미네이션’과의 싸움이 그들의 주의를 끌었기 때문일 테지.
다만 조금 거슬리는 것은, 놈들이 무작정 습격을 가해왔다는 점이다.
그가 누구인지를 묻지도 않고, 먼저 공격부터 가해온다는 건…….
‘단편적이나마 내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거야.’
적어도 제국 소속의 마법사가 아니라는 것쯤은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엔디미온 소속의 마법사라는 것 역시 알고 있을 가능성도 꽤 높았고.
‘그 외에 얼마나 더 알고 있을까.’
경계의 기색을 거두지 않으며, 러셀은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번견 놈들을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놈들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덕지게 들러붙다니.
뭔가 꿍꿍이속이 있는 게 분명했다.
‘대충 짐작은 가는데…….’
같은 방향으로 자신을 계속 몰아가려는 것으로 보아, 함정을 준비해두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기에 러셀은 놈들이 원하는 대로 어울려주지 않았다.
놈들이 몰아가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 같으면서도, 각도를 바꿔 튀어 올랐던 것이다.
덕분에 조금씩이지만 제국과의 거리는 멀어지는 와중이었고.
‘귀찮아.’
완전히 뿌리치고 갈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허나 아쉽게도, 그건 불가능할 듯했다.
‘사막이라는 환경상, 어쩔 수 없어.’
엄폐물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개활지에 준하는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는 곳이 바로 사막이었다.
그나마 있는 엄폐물이라고 해봐야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작은 언덕과, 지금처럼 삐죽하게 솟아 나온 거대 암석 정도가 전부.
망원경 하나만 있어도 자신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겠지.
그때였다.
-캬륵.
하늘을 선회하던 페퍼가 신호를 보내온 것은.
‘하나, 둘, 셋, 넷…….’
이루어진 제국의 추적조였다.
도합이 스물.
북쪽을 깎아 돌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으니, 그 방향을 계산해서 회피하면…….
-캬륵.
페퍼가 다시 한번 신호를 보내왔다. 이번에는 남동쪽.
‘양동작전이라고?’
-캬르륵.
양동이 아니었다.
두 곳이 아닌, 무려 세 방위를 점한 채 좁히고 들어오는 포위망에 러셀이 가볍게 인상을 찌푸렸다.
‘읽혔군.’
무엇인가 러셀에게, 자신들이 형성한 포위망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한 제국의 배치.
‘아직 그게 페퍼라는 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듯했지만.’
어쩔 수 없지.
‘돌아가도록 해. 페퍼.’
고마웠어.
짧은 인사말과 함께 러셀은 페퍼를 역소환시켰다.
바로 걸음을 옮겼다.
다시금 기척을 죽이는 마법을 사용했다.
‘카모플라쥬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카모플라쥬(Camouflage).
주변과 자신을 완전히 동화시키는 이 고등 위장마법은, 무려 6써클에 속하는 마법이었다.
무리를 한다고 해도 지금은 펼칠 수 없다.
설령 가능하다고 해도 펼쳐서는 안 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써클을 혹사시키는 건 그리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으므로.
‘앞으로 사흘 정도만 어떻게 잘 빠져나가면 될 것 같은데.’
그쯤 되면 제국의 손이 닿는 곳은 얼추 벗어났다고 해도 좋았으니까.
그곳만 넘어서면 제국보다는 엔디미온과 가까워지게 될 테니까.
문제는 그 남은 사흘가량이었다.
‘세 방향, 그 이상을 포위하며 좁혀 들어온다는 건…….’
저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몰아넣기 위함일 가능성이 컸다.
아마도 그 방향에는 뭔가 다른 것이 준비되어 있을 터.
‘쯧.’
러셀이 짜증 섞인 기색으로 혀를 찼다.
순식간에 임전 태세에 돌입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도록, 마력을 휘돌렸으며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미션]고국으로.
점점 좁혀오는 제국의 포위망을 벗어나, 안전하게 엔디미온 안으로 들어가세요.
[보상]하급 마석(식용)x5
.
.
쐐애애액-!
수십 발의 화살이 뜨거운 사막의 공기를 갈랐다.
포물선을 그리며 머리 위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점에서 시작한 화살의 위치가 점점 가까워지고, 러셀이 준비했던 마법을 발동했다.
‘게일 포스(Gale Force)-!’
강력한 돌풍이 일어나며, 사막의 모래가 위로 치솟는다.
그와 함께 뭔가에 걸리기라도 한 듯 날아오던 화살들이 허공에 정지했다.
단순히 쉴드로 막아낸다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는 위력을 가진 화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게일 포스를 사용한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앞을 막고 있는 제국의 놈들을 뚫어야 하니까.’
펼쳐지는 것은 인비져블 핸드.
고작 1써클에 불과한 마법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한 번에 수십 개, 그 이상을 운용한다고 해도 별 무리가 없었다.
화악!
보이지 않는 손 수십 개가 허공에 멈춰선 화살을 그대로 움켜쥐었다.
연이어 그대로 돌팔매질……아니, 화살 팔매질을 하며 날아오던 화살들을 놈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커억!”
“끄어억!”
그 화살에 적중한 제국의 병사 몇이 그 자리에서 꼬꾸라졌다.
이어서 불꽃의 소나기가 사막의 화살을 뒤덮었다.
화살 팔매질로 눈속임을 한 후 캐스팅한 파이어 볼트가 직선으로 쏘아졌다.
쐐애액, 화르르르륵!
수십 개에 달하는 불화살이 직선으로 올곧게 짓쳐드는 모습은, 가히 광선이라고 불러도 될 수준이었다.
“부, 불이다!”
“으아아악! 물, 물을 줘!”
불화살에 꿰뚫린 병사,
그 불길이 옮겨붙은 십인장(十人將) 등.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펼쳐졌다.
그 사이를 러셀이 신속하게 가로질렀다.
지난 이틀.
이런 식으로 발목을 붙잡는 적들을 수도 없이 상대했던 그다.
이제는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A부터 Z까지 메커니즘이 딱딱 생겨나지 않았나 싶었다.
단숨에 수백 미터를 주파한 러셀이 그대로 흘깃, 고개를 돌렸다.
여기저기 불이 옮겨붙은 채로 아수라장을 벌이고 있는 제국군의 상황을 빠르게 일견했다.
‘남은 건 고작 하루뿐.’
하루만 더 내달린다면, 그때부턴 상대적으로 제국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곳이었다.
타클 사막이 중립지대인 만큼 추적이 완전히 그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는 줄어들게 될 터였다.
거기다.
‘그때부턴 우리 쪽 병사를 마주칠 확률이 더 높아.’
왕국과 마법의 정보망이 잘못된 게 아니라면, 지금쯤 사막에서 일어난 이변을 그들 역시 눈치챘을 것이므로.
낙관적인 추측과 함께 러셀이 다시 움직임을 개시했다.
발을 내뻗었…….
-!!!!!!!!!!!!!!!!!!!!!!!
감각이 비명을 질렀다.
한 걸음, 본능적으로 한 걸음을 옆으로 물러섰다.
그 판단이 러셀의 목숨을 구했다.
서거걱-!
날카로운 기세에 모래가 반듯하게 잘려 나갔다.
방금 전까지 러셀이 발 딛고 서 있던 바로 그 장소였다.
잘려나간 모래의 길이가 일 미터.
지금 이 참격은 그보다 더 먼 거리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얼추 잡아도 삼십 미터 이상이었다.
피하지 않았다면 허리가 쩍하고 갈라졌을 테지.
그 검격 보다 두려운 것.
그것은 놈이 그 정도 간격까지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놈의 기척을 잡아내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강자.’
최소한으로 잡아도 자신과 동급,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고개를 드는 것보다 먼저, 미션의 내용이 바뀌었다.
[미션]만나본 적 없는 강적.
지금껏 단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수준의 적을 마주했습니다.
적의 손아귀에서 무사히 벗어나세요.
조건 : 도주(혹은 승리).
[보상]중급 마석(식용)x4
무려 네 개나 되는 중급 마석을 보상으로 지급하는 미션이었다.
보상의 수준과 미션의 난이도가 꼭 비례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위험한 난이도라는 거겠지.
‘완료 조건도 도주가 먼저 나와 있어.’
승리를 하는 것보다는 도주에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라.
비상한 판단력과 냉철한 이성.
찰나의 시간에 상황을 파악한 러셀이 고개를 들었다.
감각의 밖에서 날아든 공격이었으니, 첫 일격이야 위험했다 해도 지금부터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러셀이 전신에 두른 마력의 밀도를 드높였다.
기습을 가해온 적을 응시했다.
“어쭈, 그걸 피해? 마법사치고는 움직임이 제법이잖아?”
뱀눈에 자유분방해 보이는 복장.
건들거리는 말투와 걸음걸이와는 달리 어쩐지 피 냄새가 짙게 풍기는 자였다.
러셀 역시도, 과거 저런 냄새를 풍기는 이들을 몇몇 만나 본 적이 있었다.
강함의 수준을 떠나서 전장을 오래 구른 것이 아닌, 순수하게 살인을 즐기는 이들에게서나 느껴지는 악취.
사교도들의 흑마력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기척.
“살인귀인가?”
잔뜩 긴장한 마력을 손끝에 집중시키며 내뱉었다.
놈과 자신 사이의 거리는 수십 미터, 그 이상.
하지만 놈 정도의 실력자라면 이 정도 소리를 문제없이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맞아.”
아니나 다를까, 대답이 돌아왔다.
“맞다고. 살인귀.”
미치광이 스팬덤, 혹시 들어본 적 없어?
스스로를 미치광이라고 소개하다니.
해맑게 물어보는 것 치고는 보통 미친놈이 아닌 대사라.
참 직관적이면서 잘 어울리는 별명이라는 생각과 함께 러셀이 어깨를 으쓱였다.
“들어본 적 없어.”
거짓말이다.
회귀 전의 미래에서도 유명한 살인귀의 이름이었다.
들어보지 못했을 리가.
제국이 자랑하는 대검호(大劍湖)의 막내 제자이며 그의 검술인 볼라레 상궤(Volare Sangue, 날아드는 핏물)를 이어 받은 실력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 한 것은, 녀석의 같잖은 자의식 과잉에 어울려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몰라? 정말? 미치광이 스팬덤? 들어본 적 없어?”
“같은 대답을 여러 번 시키는 건 그리 좋지 않은 버릇인데.”
러셀이 빈정거렸고, 잠시 고민하던 그가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야. 좋은 습관이 아니긴 해.”
해맑게 웃으며-.
“그래도 이번에는 반드시 기억해두도록 해. 미치광이 스팬덤. 그래야…….”
검을 치켜들었다.
“-누구에게 죽었는지, 묘비명이라도 남길 수 있을 테니 말이야.”
번쩍!
처음과 똑같은 검격!
검광이 번뜩이며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공간을 쥐어짜 압축시키기라도 하는 것만 같은 속도!
순식간에 줄어드는 간격에 러셀이 이를 악물었다.
‘최우선적인 목표는 도주!’
일격을 성공시켜 틈을 벌고, 그 사이에 거리를 벌리는 편이 좋겠지.
판단만큼이나 빠르게 마법이 완성되었다.
블링크(Blink).
마법사와 검사.
둘 간의 싸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간격을 잡는 것이라는 것쯤은, 아카데미는 물론 실전에서도 질리도록 배워온 그였다.
잡히면 마법사의 패배, 반대로 거리를 벌릴 수만 있다면-!
‘화력을 때려 박을 수 있는 마법사 쪽이 더 유리해!’
번쩍!
쌓아 올린 마법이 폭발하며 빛이 번쩍였다.
러셀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파밧-.
그의 신형이 다시 나타난 곳은 스팬덤의 뒤쪽, 이미 백 미터 이상을 이동한 후라.
삼십 미터, 그 이상을 날아드는 검격이라 할지라도 여기까지는 제대로 닿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럼 지금부터 마법을-.’
그것이 오판이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