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52
52화
EPISODE.26
“이거, 더 이상 마차를 이용해 이동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호위대 중 하나가 한쪽이 내려앉은 마차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쪽 바퀴가 박살 난 상황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럼 지금부터는 걸어서 이동해야겠군요.”
수드라까지는 길어야 반나절 정도 남은 참이었으니,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다.
“괜찮으시겠습니까?”
호위대가 그의 몸을 살피며 물었고,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걷거나 이동을 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정도로 상처가 아물었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반신반의하기는 했지만 러셀이 그렇다고 하니 일단 고개를 끄덕이는 모양새.
그렇게 부서진 마차를 버리고 이동할 준비를 마치며 흘깃.
러셀의 시선이 움직였다.
바퀴가 박살 나 널브러진 마차를 다시 한번 응시했다.
‘흠.’
마차나 수레 따위를 대량으로, 자주 이용하는- 이를테면 상단과 같은 곳이었다면 조금 나았을 것이다.
그런 곳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몇 개나 되는 바퀴를 구비 해두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지금 당장 바퀴를 짜 넣을 수도 없고-.’
사막이라는 지형 특성상 알맞은 나무를 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을 일일 것이다.
‘그걸 알맞은 크기로 손질해 바퀴로 바꾸는 건 또 다른 문제고.’
원형, 같은 크기로의 손질 등.
아무래도 나무로 만들어진 바퀴라는 건 이래저래 손이 갈 구석이 많은 물건이었-그 순간.
어떤 생각 하나가 번개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나무 바퀴?’
가문을 부흥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들 중 하나, 재력(財力).
어쩌면 꽤 큰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두 눈을 반짝이길 잠시, 이내 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을 찾았으면 뭘 하나, 당장 투자할 만한 자본이 없는데.’
그나마 기대볼 만한 것은, 이번 임무를 끝내고 받는 성과급이었다.
‘워 메이지의 성과급은 과거부터 엄청나다고 소문이 자자했었지?’
하물며 평범한 지방의 마탑도 아니고, 염탐임에야.
소문만큼 대단한지, 그건 직접 받아 보면 알 수 있을 터.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조용히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입가에 호선을 그린 러셀의 발걸음에는 힘이 넘쳐 흘렀다.
.
.
제자의 부고,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전령이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눈앞에 있는 남자는 마스터(Master) 급의 오러 수련자인 동시에 제국을 대표하는 초인(超人)중 한 사람이었으므로.
사내에게 가까워질수록 날카로운 예기가 더 강해지고 있었다.
사내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고작해야 나이프.
막 고기를 썰던 참이었는지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나이프가 이름난 명검과 다를 바 없이 느껴졌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나 검의 모습으로 자라난 무언가.
그것이 바로 전령이 알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었다.
다만 몇 년 전에 마주쳤을 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 사내의 모습은 검이되 검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부러져 토막이 난 검…….’
어둠 속에 묻혀 잘 드러나 보이지 않는 몸에서는 어쩐지 칙칙한 기운마저 흘러나오는 듯 보였다.
게다가 언 듯 드러난 얼굴의 절반가량, 왼편은 가면에 가리어져 있기까지.
얼굴과 가면의 연결부에 이지러지는 듯한 자국이 보이는 것이, 지난날 엔디미온과의 전투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는 소문이 맞는 듯했다.
“……전할 소식은 그게 전부인가?”
그때였다.
잠자코 보고를 받던 초인, 맥라이 휴스가 입을 연 것은.
전쟁 때 입은 상처가 성대에까지 미치기라도 한 것인지.
유리 조각으로 철판을 긁는 듯한 쇳소리가 무겁게 깔린다.
그 음성에 흠칫 몸을 떤 전령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보, 보고드려야 할 내용은 이걸로 끝입니다.”
재능 하나만을 보고, 그 미치광이 스팬덤을 제자로 받아들인 자였다.
살인마에게 더 살인을 잘하라고 날카로운 보검을 쥐여준 자라는 이야기다.
그런 자의 정신 상태 역시 그리 온전하지는 않을 터.
그에 대한 두려움이 목소리에 드러났다.
“그렇군.”
하지만 다행히도, 맥라이는 전령을 해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시 어둠 속 깊숙이 몸을 묻으며 그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이만 나가보도록.”
축객령을 내렸다.
그렇게 전령을 내보내고 난 후.
“흐-.”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그의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흘러나온 소리의 절반가량이 가면에 막혀 턱 하고 흩어졌다.
“흐흐흐-.”
그러건 말건 흘러나오는 소리는 점점 그 크기를 불려갔다.
마침내 그 기괴한 소리가 정점에 달한 순간.
화악-!
진득한 살기가 장내를 뒤덮었다.
쨍그랑, 창, 쨍, 차자장!
그 살기를 이기지 못한 샹들리에나 유리잔, 창문 따위가 마구잡이로 터지며 깨져 나갔다!
쩡-!
이윽고 마지막 남은 하나의 유리창마저도 박살 난 후에야, 사내는 웃음을 멈췄다.
여전히 살기를 거두어들이지 않은 채로 손을 움직여 자신의 가면을 벗었다.
딸깍-.
손끝으로 드러난 맨살을 훑었다.
일그러졌으며, 짓무르고 이지러진 화상 자국의 촉감이 느껴진다.
그와 함께 이 화상 자국을 얻은 순간의 기억이 다시 한번 선명하게 살아났다.
빠드득-.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강하게 이를 갈았다.
치솟아 오르는 마그마와, 온 세상이 불길에 휘감긴 지옥도.
한쪽 얼굴을 감싸 쥔 채 그곳에서 도주하는 한 남자의 실루엣까지.
어느 것 하나 치욕적이지 않은 게 없는 기억이었으므로.
그런데 뭐?
이번에는 제자로 받아들였던 막내 놈이 원수의 막내 제자에게 목숨을 잃어?
마음 같아서는 당장 뛰쳐나가 그 빌어먹을 년의 제자라는 놈을 난도질하고 싶었다.
허나 일을 치르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던바.
맥라이는 뛰쳐나가는 대신, 팔걸이가 으스러질 때까지 움켜쥐었다.
콰드득.
입을 열어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될.
“다리아-.”
자신에게 수치와 모멸감을 안겨준 사제의 이름을 씹어 뱉었다.
“-스.노우.화이.트.”
그리고.
“러.셀 레이먼.드.”
흘러나온 쇳소리가 분노와 어우러지며 짐승의 그것과도 같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이글거리는 귀화와 함께 흘러나온 살심이, 그의 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화아악.
* * *
사막의 무법 도시 수드라에 도착하고 또 며칠.
인근에 있는 가장 가까운 마탑에 당도한 러셀은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 비로소 염탑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우우웅-.
출렁이던 마나가 천천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진다.
“우욱.”
직후 이어진 것은 폭풍 속을 항해하는 배 위에라도 올라탄 듯한 지독한 어지럼증이라.
‘이놈의 멀미는,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단 말이지.’
출발할 적에도 이용했었던 것인데, 쯧.
마음에 들지 않는 감각에 혀를 찬 러셀이 서둘러 마나를 운용했다.
써클에서 끌어 올린 마력이 전신을 따라 뻗어나가자, 온몸을 장악했던 어지럼증이 빠른 속도로 물러나는 것이 느껴진다.
“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 러셀이 문을 열었다.
워프 게이트가 설치된 방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였다.
밖으로 나가자 보이는 것은, 게이트를 타고 들어오는 자를 맞이하기 위한 대기실.
그 안쪽에서 익숙한 얼굴이 하나, 있었다.
“사제!”
휴버트였다.
러셀을 발견한 그가 걱정스러운 음성을 숨기지 못하며 소리쳤다.
“돌아왔군. 사제.”
초조한 눈빛으로 러셀의 전신을 살피더니, 이내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걱정을 시켰던 모양입니다. 사형.”
“이를 말인가? 스팬덤, 그 미치광이 같은 작자와 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얼마나 놀랐었는지.”
휴버트의 말에 러셀이 짧게 고소했다. 하긴, 걱정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겠지.
이겨보겠다고 이를 악물고 판을 짜긴 했지만, 자신 역시도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벌인 싸움은 아니었으니까.
그런 러셀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휴버트가 러셀을 잡아끌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올라가서 하도록 하세. 사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간단했다.
아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염탑 내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인물이야 뻔하지 않은가.
‘스승님.’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휴버트와 함께 탑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자,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양손으로 꽉, 러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전신을 꼼꼼하게 살피더니 짧게 중얼거렸다.
“다행이로구나. 굳이 내가 제국의 변방을 불지옥으로 만들러 가야 할 이유는 없어졌으니 말이야.”
농담처럼 낄낄거리며 내뱉은 한마디였건만, 왜 이렇게 소름이 돋는 건지.
‘스승님이라면 충분히 가능하실지도 몰라.’
정치적인 문제는 생각하지 않고 기습을 가한다. 가정했을 때.
‘사막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제국의 도시 몇 개가 초열지옥으로 화(化)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해야 며칠 남짓이겠지.
“일단 잘 돌아왔으니 다행이로구나. 막내야.”
그 말을 남기며 물러나는 다리아와 러셀의 사이로, 곰처럼 거대한 손이 쑥 끼어들었다.
“흠흠. 무탈한 걸 보아하니 다행이군. 사제.”
마법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구의 근육질.
다리아의 첫 번째 제자인 버밀리온이었다.
기다리는 이가 있다고 해서 다리아까지는 예상했건만, 설마하니 버밀리온도 와있을 줄이야.
사실상 세 명의 사형제들은 물론, 스승까지.
사제지간이 모두 모인 셈이다.
러셀의 전신을 살피던 버밀리온이 고개를 삐딱하게 꼬았다.
“몸에 난 상처는 거의 다 나은 듯 보이지만…….”
러셀의 어깨나 대흉근 따위를 매만지며 말했다.
“어쩐지 체구는 전에 봤을 때보다 작아 보이는군. 내 착각인가?”
전에 봤을 때라면 아카데미에서를 말하는 것이라.
그때 이후로도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니 오히려 단단해졌으면 몰라도 체구가 작아졌을 리는 없다.
그렇기에- 예, 착각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보다 빠르게, 그가 러셀의 손을 잡아챘다.
“아무래도 사제에게는 특별 교육이 필요할 것 같군. 시간 날 때마다 나와 같이 쇠질을 하러 가야겠네.”
첫째 사형이라는 사람은 왜 볼 때마다 쇠질을 못 시켜서 안달인 것인지.
러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결국 나선 것은 다리아였다.
“실없는 소리 하지 말거라. 네 막내 사제도 너처럼 곰 같은 덩치로 만들어 놓을 셈이냐?”
그녀가 손바닥으로 버밀리온의 등판을 철썩 때렸다.
‘어이쿠. 스승님. 힘이 많이 약해지신 걸 보니 단백질을 조금 보충하셔야겠습니다.’라고 외치며 버밀리온이 너스레를 떨어댔다.
“끌끌. 너는 꼭 매를 한 대 더 버는구나.”
결국 다리아는 다시 한번 손바닥으로 버밀리온의 등판을 후려쳤다.
이어.
“자, 그럼 사담은 여기까지 하고…….”
풀썩.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몸을 묻었다.
러셀과 휴버트, 버밀리온에게 비치된 자리를 각기 하나씩 권하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는, 우리 막내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도록 하자꾸나.”
창탑주, 그 영감에게 어떻게 자랑을 해야 잘 자랑을 했다고 소문이 날까?
생각이 훤하게 드러나 보이는 얼굴이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