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55
55화
EPISODE.28
이어진 러셀의 말에 커스버트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초기투자금이라는 말씀은…….”
이후의 투자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기대감을 품은 커스버트가 물었고, 러셀이 손을 움직였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펜을 집어 숫자 하나를 적었다.
사각, 사각-.
“매달 이 정도의 금액을 1년간 투자하겠습니다.”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다고는 할 수 없는 자본이다.
하지만 단기성이 아니라 1년간 매달 지급된다면?
“으음.”
커스버트가 빠르게 계산에 들어갔다.
러셀은 그사이 자신이 적은 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 정도면 되겠지.’
자신이 염탑에서 받는 월급의 팔 할이라고 할 수 있는 돈이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빼놓은 2할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셈.
과감한 투자였다.
만약 마쉐린 상단이 성공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면, 절대로 하지 못했을 투자이기도 했다.
“그러면-.”
커스버트가 다시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몇 분 정도가 지난 후였다.
상인답게 머릿속으로 빠르게 주판을 튕긴 그는 빙빙 돌리지 않고 러셀이 가장 원하던 대답을 꺼냈다.
“지분은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러셀의 손에 들려 있던 펜을 받아 들었다.
마찬가지로 숫자 하나를 적어 내놓았다.
일 할 하고도 팔 리(10.8%).
러셀이 이곳에 오기 전 계산해봤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치였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자면 커스버트가 제안한 수치가 조금 더 높았다.
‘뒷자리를 반올림해야 나올 만한 수치야.’
수치가 높으면 그에겐 이득이었지 손해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충분합니다.”
러셀이 만족스럽게 웃었고, 커스버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지금 당장 계약서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커스버트가 돌아간 후.
혼자 응접실에 남은 러셀은 시간도 죽일 겸, 인벤토리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벌써 몇 번이나 읽어온 탓인지, 손때 묻은 책의 페이지가 전체적으로 반질거렸다.
‘이번이 벌써 몇 번째 반복해서 보고 있는 거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단순히 아는 것을 넘어.
완전히 이해하고 숙련하여 체득하기 위해서는 같은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 보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래도 몇 번이나 반복해 본 덕인지, 빠른 속도로 페이지가 넘어간다.
그에 따라 조금씩 전격 속성 관련 이해도가 올라가는 것이 느껴졌다.
[‘중급 전격(뇌) 속성 이해도가 상승합니다.]오랜만에 상태창을 활성화 시켜 보니, 전격 속성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져 있는 것이 보였다.
‘분명 처음에는 초급에다가 수치도 가장 낮았는데…….’
어느새 중급으로 변해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화염 속성을 제외한 다른 세 개의 사대속성을 뛰어넘는 수치로 올라서기까지.
‘아마도 불꽃 다음으로 나와 상성이 잘 맞는 속성이라는 거겠지.’
다른 속성의 마법 서적을 읽는 것에 비해 성장이 빠른 것이 그 증거였다.
어쩌면 불과 벼락의 상관관계 때문일지도 몰랐다.
‘방전이 일어나 탄생하는 불꽃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연관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니까.’
이대로라면 5써클에 올라서는 것보다 ‘상급 전격 속성 이해도’를 달성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러셀이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와장창-!
‘와장창?’
전혀 예상치 못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뒤이어 몇몇 이들이 당황해하며 우왕좌왕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뭔가 일이 터진 게 분명했기에 러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응접실의 아래, 소란이 일어난 걸로 보이는 1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니, 그러니까 제때제때 돈을 갚으면 얼마나 좋아-!”
그 이유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몇 걸음, 계단을 얼마 내려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납게 윽박지르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아래로 내려서자, 한 무리의 사내들이 상단 건물의 입구에 선 채 행패를 부리고 있었다.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에 저마다 날 병기를 손에 든 채, 제 몸을 캔버스 마냥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 된 외견.
“어서 돈 가지고 오지 않고 뭐해?”
“우리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들로 보여?”
그런 그들의 주변으로 마쉐린 상단의 사람들로 보이는 인물들이 우왕좌왕하며 늘어서 있었고, 한 사람.
커스버트가 쩔쩔매며 그들의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이번 달 치의 이자라면 분명…….”
“아니, 이자가 아니라 원금을 갚아야 할 거 아냐. 원금을!”
물론 상단에도 힘을 쓸 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쉐린 상단에서 고용한 것으로 보이는 용병 몇이 있긴 했다.
다만, 그들은 감히 개입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단순히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저 덩어리들의 우두머리가 가지고 있을 채권 때문이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채권문서는 법적 효력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마쉐린 상단의 채권이 뒷골목으로 넘어갔다더니, 아무래도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일 년. 일 년만 기다려 주시면 반드시 원금도 상환을…….”
커스버트가 뭐라고 말하려 했지만 그보다 빨리, 어떤 사내 하나가 커스버트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몰려와 행패를 부리는 이들 중 가장 덩치가 큰 이였다.
퍽-.
“억!”
충격을 이기지 못한 커스버트가 휘청하더니 몇 걸음 뒤로 밀려나고, 붉은 머리의 소녀.
앤이 뛰어나갔다.
휘청거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부축했다.
“아버지!”
“이, 이런!”
“아가씨!”
상단의 인원 중 몇이 뒤늦게 소리쳐봤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원금을 갚겠다는 소리만 벌써 2년째 늘어놓고 있는데, 우리가 그렇게 띄엄띄엄 보였나 봐?”
그러건 말건 커스버트의 가슴팍을 후려쳤던 사내가 성큼 한 걸음 다가오며 부녀를 압박한다.
이어 제 아비를 부축하고 있는 앤을 내려 보며 이죽거렸다.
“그러니까 원금을 갚을 자신이 없으면 딸이라도 팔라고. 그럼 절반 정도는 갚을 수 있을 테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당당하게 인신매매를 지껄이다니.
‘간덩이가 부었어.’
하물며, 모르고 지껄인 말이겠지만 염탑의 워 메이지가 있는 자리에서.
협박성 멘트라고 해도 명분이 되기에는 충분하다.
놈들의 모습을 보며 러셀이 커스버트 상단에 관해 들었던 과거사 몇 개를 더 떠올렸다.
‘처음부터 이쪽 문제도 해결하려고 온 거긴 하다만.’
마침 명분도, 기회도 생겼으니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결정을 내린 러셀이 말문을 열었다.
“원금과 이자에 관한 채권 기록, 내가 좀 봤으면 좋겠는데?”
마력이 깃든 음성이 사람들 사이로 흘러든다.
마치 귓가에 대고 중얼거린 것만 같은 또렷함.
부녀를 협박하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눈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누구야. 어떤 새끼가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지껄여대는…….”
목소리에 깃든 위화감과 마력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긴, 뒷골목 출신 놈들이 그러면 그렇지.
“나야.”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오는 러셀의 모습에 앤과 커스버트가 눈을 치켜떴다.
염탑의 워 메이지.
그 존재로 인해 어쩐지 희망을 느낀 듯했다.
다만, 러셀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사내에게는 불행의 시작이었지만.
“이 새끼가, 진짜 미쳤나.”
자신보다 한참은 어려 보이는 러셀의 등장에 그가 콧김을 내뿜었다.
“요즘 골목 수질 관리 똑바로 안 하냐?”
뒤쪽에 서 있는 자신의 수하들을 향해 뭔가를 소리치려는 찰나-.
척-.
러셀의 손이 그의 어깨를 짚었다.
“어떻게 되어 먹은 게 이런 꼬맹이 새끼가 나. 엘라도의 검은 소, 바테르님을 못 알아 보……끄아아아악!”
치이이익!
말이 채 끝나기도 열기가 엄습했다.
손바닥과 맞닿은 어깨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끄에에에!”
1써클 마법 버닝 핸즈를 약하게 이용해 녀석의 어깨를 구워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살결이 익어버리는 충격에 그의 몸이 허물어져 내렸다.
“이런, 엘라도의 검은 소라더니. 이제는 잘 구워진 흑우(黑牛)가 되어버렸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녀석의 몸을 밀치며 러셀이 혀를 찼다.
이그나이트(Ignite).
점화, 활짝 펼쳐진 손가락을 따라 다섯 개의 불덩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화르륵-.
“마, 마법사!”
“마법사가 왜 여기에-?”
한껏 창백해진 덩어리들의 얼굴 위로 불그림자가 일렁였다.
“다시 한번 정확하게 말하지.”
그런 그들의 앞에 러셀이 싸늘하게 일갈했다.
“마쉐린 상단의 투자자 자격으로 요청한다. 원금과 이자에 관한 채권 기록.”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했다.
“내 앞으로 가져와.”
* * *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고, 양지가 있으면 음지 역시 존재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다.
그게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아무리 번듯하게 잘 정도 된 도시라 할지라도, 뒷골목과 음지는 존재하는 법.
엘라도 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중 하나,
현지인들에겐 쥐의 시궁창이라고 불리는 골목 안으로 사내 하나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미로처럼 이리저리 이어지는 골목을 굽어 들어가길 몇 번.
마침내 작은 술집의 입구 하나를 발견한 그가 신호를 보내듯 노크했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들어선 문 안쪽에서, 사내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또 다른 사내였다.
평범한 장정들보다 머리통 두 개는 더 커다란 덩치.
술에 불콰하게 취한 것인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
사내의 정체는 다기르, 쥐의 시궁창이라고 불리는 뒷골목 음지의 왕이자 동시에 엘라도를 사분하고 있는 패거리의 우두머리였다.
“급보입니다. 보스.”
그런 그를 향해 목문으로 들어온 사내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급보? 또 무슨 일이야? 옆 동네 난쟁이의 쇠도끼 녀석들이 공격이라도 해 온 건가?”
“그게 아니라…….”
우두머리의 물음에, 수하 사내가 차근차근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마쉐린 상단에 돈을 받기 위해 보낸 수하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그들이 마법사를 맞닥뜨린 것.
그 마법사가 마쉐린 상단의 투자자로서 채권문서의 확인을 요구한 것까지.
“하. 씨벌. 갑자기 마법사가 얽히고 지랄이야.”
술기운이 가시는 것을 느끼며 다기르가 머리통을 벅벅 긁었다.
음지에선 왕처럼 군림하고 있는 그라고 하여도 마법사라는 존재는 마냥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탑에 속하지 않은, 저 써클의 마법사 정도야 그 역시도 몇몇 파묻어 봤지만 혹시 모를 일 아닌가.
상대가 꽤 고써클 마법사일지도.
“수준은? 실력을 얼마나 되어 보였지?”
“모르겠습니다. 손가락에서 불을 피워내고, 손바닥으로 바테르 녀석 어깨를 구워버렸다고 하던데-.”
“끙.”
그것만 가지고 추측할 수 있을 리가 있나.
다기르가 짧게 투덜거렸다.
이어 책상 위에 가득 쌓여 있던 술병들을 한쪽으로 치우며 공간을 확보했다.
“일단 데려와.”
만나는 보겠지만, 어중간한 수준의 마법사가 돈 몇 푼 들고 투자자 행세를 하는 거라면-.
음지의 무서움도 알려줄 겸, 전처럼 파묻어 버리는 편이 나을 터.
그리 생각하며 다기르가 덧붙였다.
“아, 그리고 갈릭, 겔릭 형제도 좀 불러오도록.”
갈릭, 겔릭 형제.
다기르가 큰돈을 주고 고용하고 있는 칼잡이임과 동시에, 한때는 기사를 지망했다는 오러 수련자들.
어쩐지 피 냄새가 풍기는 것이, 그냥 넘어갈 것 같지만은 않았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