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56
56화
EPISODE.28
음습하면서도 퀴퀴한 냄새.
음지 특유의 어둠이 도사리고만 있을 것 같은 뒷골목이었다.
좁은 골목길을 가로지르며 러셀은 조금 전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
‘으, 으. 채, 채권은 우리에게 없소. 그건 우리 보스가 가지고 있…….’
보스를 만나지 않으면 마쉐린 상단의 채권 기록을 확인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기다렸다는 듯 러셀이 그들에게 명령했다.
‘그럼 데려와. 그게 아니면 보스라는 작자에게 안내해도 좋고.’
.
러셀이 뒷골목을 걷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단상을 마치고 고개를 들자, 자신보다 앞서 걸어가고 있는 덩어리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중 한 놈의 어깨에는 러셀이 남긴 화상 자국이 손바닥 모양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바로 그때.
―.
러셀의 감각에 뭔가가 걸려들었다.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골목, 그 골목을 따라 꽁무니에 따라붙는 무엇인가.
‘하나, 둘, 셋, 넷…….’
걸음을 내딛는 것에 맞춰 숫자가 점점 늘어난다.
수가 어느 정도 늘어난 순간부터 놈들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지도 않았다.
대놓고 위협이라도 하듯, 골목골목을 꽉 채우며 러셀의 뒤를 따라붙었다.
그리 대단한 기운이 느껴지는 자들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앞서가고 있는 녀석들과 비슷한 수준.
저 정도 강함이라면, 백 단위가 몰려든다고 해도 러셀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놈들도 그걸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앞서가던 놈들이 멈춰 선 것은 그로부터 잠시 후의 일이었다.
“여, 여기요.”
자신을 미디엄 레어 흑우……아니, 엘라도의 검은 소라 소개한 사내.
바테르가 처음보다 많이 움츠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몸뚱이 너머로 아주 낡은 술집의 입구가 보였다.
“드, 들어가면 보스가 기다리고 있을 거요.”
러셀이 대충 고개를 끄덕이자, 바테르와 그 수하들이 우물쭈물하며 물러났다.
삐걱-.
오래된 경첩 소리가 짧게 울려 퍼지고.
낡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제법 그럴듯한 모습을 하고 있는 술집의 내부가 모습을 드러낸다.
수하로 보이는 이가 몇, 그 가운데 앉아 있는 덩치가 장대한 남자.
‘저자가 이 자들의 보스, 다기르인가.’
그 외에 안쪽에 있는 이들 중 이목을 끄는 이는-.
‘칼을 든 사내 둘.’
형제처럼 꼭 닮은 외모를 가진 사내들이었다.
그중 하나는 남는 테이블 위에 불량스럽게 앉아 있었고, 다른 하나는 등을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날카롭게 자신을 살펴보는 것이 호의적인 감정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고……오러를 익혔군.’
희미하게나마 오러의 잔향이 느껴진다.
다기르라는 놈이 왜 저 둘을 이곳에 대기시켰는지를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협박, 무력시위. 그것도 아니라면…….’
그 이상의 뭔가를 준비했다는 뜻일 터.
허나 러셀은 겁먹지 않았다.
겁먹는 대신 조용히 입가를 말아 올리며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둘을 합쳐도, 전날 해적선에서 만난 부선장보다 못한 실력을 가진 놈들이다.
그 정도 수준의 놈들이 위협이 될 리가 있나.
속으로 가볍게 실소하며 러셀이 다기르의 테이블을 향해 다가갔다.
“그쪽이 다기르인가?”
그의 맞은편에 다리를 꼬며 앉았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늘어져 있던 술병 중 하나를 집었다.
“……!”
꼴꼴꼴-.
빈 술잔에 술을 채웠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반 정도를 비워냈다.
“허.”
그 거침없는 모습에 다기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어쭈? 이 꼬마 녀석이? 등.
생각이 얼굴 위로 드러나는 것만 같다.
“그래. 내가 다기르다.”
그것도 잠시, 다기르가 평정을 되찾았다.
비록 뒷골목 패거리에 불과하다지만, 우두머리 자리를 도박으로 딴 게 아니라는 듯, 입을 열었다.
의연하게, 또 대범하게. 그리고-.
“그쪽이 마쉐린 상단의 투자자를 자처한다는 바로 그 마법사로군.”
영역과 무리를 소유한 수사자처럼 야성미 있게.
“그래, 우리가 가진 채권 문서를 보자고 했다지?”
“정확한 원금과 이자율을 좀 알고 싶어서 말이야.”
“음.”
침음을 흘리길 일순, 다기르가 턱 끝을 까닥였다.
“가져와.”
수하를 시켜 채권 문서를 가져오게 한 후, 러셀의 앞에 내려놓았다.
“뭐, 얼마든지 살펴보도록 하라고. 마법사님.”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냐는 듯, 음충맞은 웃음을 흘리며 병나발을 불어댄다.
도수 높은 술이 그의 목구멍을 타고 꿀떡꿀떡 넘어갈 때마다, 다기르의 근육이 위협적으로 꿈틀거렸다.
그러건 말건.
“여기-.”
문서의 내용을 읽어가던 러셀이 손끝으로 계약서 내용 중 한 구절을 짚었다.
다기르의 손에 들린 술병이 거의 바닥을 드러낼 때쯤이었다.
“수치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으음?”
“엔디미온에서 정한 법정 이자율은 일 할 사 푼(14%)이 최고인 걸로 알고 있는데, 여기는 이자가 일 할 육 푼(16%)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고작 이 푼 정도의 차이였지만, 복리이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 차이는 어마어마했다.
“하!”
러셀의 지적에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숨을 토했다.
손에 들고 있던 병이 깨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강하게 테이블을 내려쳤다.
쾅!
위협적인 표정으로 러셀을 노려보며 비아냥거렸다.
“우리 마법사님이 뒷골목의 생계에 대해 잘 모르시나 본데 말이야.”
원래 이런 쪽의 이자는 법정 이자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는 둥.
이걸 가지고 시청이나 영주를 찾아가 이야기한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냐-는 등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하나같이 되지도 않는 개똥 논리.
하지만 이곳에서라면 마냥 말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뒷골목이니까.’
시장이나 영주를 찾아가 탄원하면, 이율을 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
규모가 있는 거대 상단이라면 또 모를까.
마쉐린 같이 작은 규모의 상단 입장에서 지역 뒷골목 놈들과 척을 져서 좋을 것이 없었다.
커스버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자율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참고 있는 것일 터.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뒷배가 없었을 때나 해당되는 말일 뿐.
“그래서.”
더 이상 못 들어주겠다는 듯, 러셀이 그의 말을 잘랐다.
“……!?”
칼같이 단호한 음성이었다.
하지만 그건 도리어 다기르를 자극할 뿐인 말이었으니.
“이봐. 마법사님.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뭐로 들은 거야. 이자율이 법정 최고치보다 조금 높긴 하지만……!”
“그래서?”
러셀이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흔들었다.
“채무 권한 자체는 합법. 하지만 너희들이 지금까지 받아온 이자는 불법. 이 이상 더 설명이 필요한가?”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 음성이다.
바보가 아니라면 러셀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읽을 수 있었을 터.
“아무래도, 말로 해결하기는 이미 글러 먹은 것 같군.”
그게 신호였다.
슥-.
다기르의 말에 갈릭, 겔릭 형제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켰다.
찰칵-.
허리춤에 패용하고 있던 검을 뽑아 들려는 찰나!
그보다 빠르게, 러셀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지금 그걸 뽑으면, 너희는 진짜 죽어.”
화악-.
전신을 따라 흘러나온 마력이 거미줄처럼 장내를 촘촘히 옭아맨다.
다른 마법사들보다 훨씬 뛰어난 순도의 마나와, 4써클 중반에 다다르며 폭발적으로 늘어난 마력 양.
그 위로 러셀의 기세가 덧씌워졌다.
물먹은 솜마냥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가 술집 전체를 무겁게 찍어 누른다.
“큭-.”
“거, 검을 뽑을 수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중압감 속에서 두 형제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두 형제보다 더 죽을 맛인 듯한 사람이 하나 있었다.
“끄으.”
바로 다기르였다.
그럴 만도 했다.
누구보다 러셀과 가까운 곳에서, 정면으로 중압감을 받아내고 있었으니까.
아마도 죽을 맛일 테지.
온몸의 근육이 쥐어짜이는 압박감이 느껴질 테고.
남들보다 더 큰 덩치가 거대한 중력에 짓눌리는 것 같은 고통도 느껴질 테지.
“끄으…….”
충분히 협박이 되었다고 생각한 러셀이 그를 둘러싼 기세를 슬쩍 거두어들였다.
탁-.
자신이 염탑 소속임을 증명하는 신분패를 올려놓았다.
“여, 염탑의 워 메이지!”
러셀의 신분패를 알아본 다기르의 눈이 튀어나올 듯 크게 떠진다.
‘빌어먹을, 어쩐지 나이도 어린데 당당하더라니.’
후회는 아무리 늦어봤자 빠른 법.
그가 후회를 하건 말건 러셀이 놈에게 새로운 이율을 제안했다.
“일 할.”
“그, 그렇게 하면 우리에게 남는 것이 없소.”
다기르가 저도 모르게 어투를 바꾸었다.
반 존대나마 말을 높였다.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감각이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지금까지 받은 불법 이자를 생각하면 이걸로도 충분한 수치라고 생각하는데?”
“하, 하지만…….”
놈이 뭔가를 말하려 했지만, 러셀은 들을 생각이 없었다.
변명을 듣는 대신, 흘깃.
“자신을 검은 소라고 소개한 어떤 놈이, 당당하게 딸을 팔라는 이야기를 하던데.”
술집의 바깥을 짧게 응시했다.
그를 협박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수단을 꺼내 놓았다.
“증인은 상단에 있었던 사람들로 충분할 것 같고,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염탑에 보고를 해 한번 조사해보면 알 수 있겠지.”
인신매매.
물론 이 작은 조직이 진짜로 그런 범죄에까지 손을 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염탑에서 조사가 나온다면 여러모로 불리해지는 것은 그들이었지 러셀이나 마쉐린 상단이 아니었다.
그러니까 러셀의 제안은-.
“일 할.”
-애초에 거부하는 것이 불가능한 제안이었던 것이다.
* * *
‘현재로선 이 정도가 최선인가.’
채권 문서 자체를 태워 버릴 수 있다면, 그게 더 좋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채무를 받아낼 수 있는 권한 자체는 합법이었다.
거기까지 손을 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러셀은 아쉬움을 뒤로 하며 걸음을 옮겼다.
삐걱, 삐걱-.
다기르의 술집을 빠져나왔다.
마쉐린 상단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낡은 2층 건물로 돌아가자, 기다렸다는 듯 커스버트가 뛰쳐나온다.
“마, 마법사 님!”
러셀의 손을 꽉 잡으며 그의 몸을 이리저리 살폈다.
염탑의 워 메이지임을 증명하는 신분패를 가지고 있는 이였다.
그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람인 이상 걱정이 되었던 탓이라.
“저는 괜찮습니다.”
러셀이 슬그머니 손을 빼며 답했다.
이어 품속에서 문서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이게……?”
“법정 이자율 안쪽으로 수정된 새로운 채권 문서입니다. 제가 돌아간 후에 놈들이 말을 바꾸지 않도록 일 처리를 해두었으니, 그 부분도 걱정할 필요는 없으실 겁니다.”
법정 이자율 안쪽으로 수정되었다는 말에 그가 눈을 화등잔만 하게 떴다.
침을 꿀꺽 삼키며 변경된 수정사항을 확인했다.
“이, 이자가 무려 육푼이나!”
그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3년간, 이자가 제대로 납부된다면 원금에 대한 부분은 더 이상 독촉하지 않는다-?’
비록 3년이라는 제한이 있었지만, 놈들의 협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조항 역시 포함되어 있었던 것.
“설마 이런 일까지 해주셨을 줄이야.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말을 하는 커스버트의 목소리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투자를 하게 되었으니, 이제 동업자 아닙니까. 동업자로서 약간의 도움을 드렸을 뿐입니다.”
“그래도…….”
이대로 내버려 두었다간, 같은 말을 세 번이고 네 번이고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러셀이 채권 문서를 곱게 접어 그의 웃옷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아까 못했던 계약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겠군요.”
.
.
“수치가 조금 바뀌지 않았습니까?”
커스버트가 새롭게 작성해 가져온 계약서를 응시하던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당초 예정이었던 일 할 팔 리(10.8%)와는 달리, 계약서에는 러셀의 지분이 일 할 이 푼(12%)으로 적혀 있었던 것이다.
굳이 따지고 보자면 1푼 하고 얼마 가량이 오른 셈이다.
그 물음에 커스버트가 허헛 웃었다.
설명을 하는 대신 도리어 반문했다.
“마법사님. 아니, 러셀 님.”
“……?”
“저희 가문과 상단의 신조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달라진 비율에 대해 물었는데 도리어 가문과 상단의 신조를 물어오다니.
조용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자, 그가 자신의 가슴을 팍팍 두드렸다.
“이익을 좇는 상인일지 언즉, 은혜를 잊는 짐승은 되지 말자. 그것이 저희 가문과 상단에 전해져온 선대의 신조입니다.”
그리고.
“이 커스버트는, 그 신조를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자신이 도와준 만큼 비율을 올렸다는 말이라.
“음…….”
러셀이 짧게 침음했다.
‘이런 상황을 바라고 움직인 게 아니긴 한데.’
뭐 어떠랴.
지분이 올라가는 것이 나쁜 일도 아니고.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해야겠지.’
결정을 내린 러셀이 적당히 예의를 차려 감사를 표했다.
“상단주님의 호의. 감사히 받도록 하겠습니다.”
계약서의 하단에 자신의 서명을 새겼다.
마쉐린 상단과의 계약은 그것으로 끝.
‘이제 남은 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알을 잉태하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반년이 흘렀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