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57
57화
EPISODE.29
쿵-.
켜켜이 쌓인 종이 뭉치, 그 위로 또 다른 종이 뭉치가 올라가며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쿵, 쿵.
연이어 몇 개나 되는 종이 뭉치를 더 올려놓은 러셀이 작게 침음했다.
“음.”
침음하며 체크리스트를 확인했다.
“챙기긴 대충 전부 챙긴 것 같은데.”
러셀이 올려놓은 수백 장의 종이 뭉치.
그것들은 모두 다리아에게서 받은 숙제의 결과물이었다.
그것도 한 달 전이 아닌, 불과 열흘 전에 받은 숙제의 결과물.
‘확실히, 스승님의 수업이 좀 빡빡하기는 하지.’
고작 열흘이라는 기간 동안, 무려 일곱 권에 달하는 마법서를 읽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문을 작성해오라니.
다리아가 내주었던 숙제를 떠올리며 슬쩍 한숨을 내쉬던 러셀이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지난 반년 동안의 일이 저도 모르게 떠올라서였다.
‘참 바쁘게도 살았어.’
이 정도 되는 양의 숙제가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나왔다.
그렇다고 다리아의 교육이 이론적인 부분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었다.
‘실전…….’
장작의 난쟁이들을 비롯해.
여러 마법들을 이용한 실전을 쉬지 않고 이어가기도 했으니.
그것으로도 모자라 몇 개나 되는 임무를 나갔다 오기도 했다.
변화된 숲의 생태계 조사나 마물 군락의 소탕 등.
‘다만 그중 4개의 과제 중 하나로 인정받은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지만.’
계산해보면 아직도 두 개나 되는 과제가 남은 셈.
아쉬움에 러셀이 가볍게 입맛을 다셨다.
혀끝을 차며 자신의 가슴어림을 확인했다.
‘물론 바쁘게 산만큼 소득은 확실해.’
지난 반년.
임무를 나가지 않을 때마다 다리아에게 직접 교육을 받아온 그였다.
마법에 대한 이해도나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계속 미션이 쏟아져 나온 덕분에 마력 양 역시 상당히 늘었고.’
순수하게 마력양만 놓고 보자면, 이제 4써클을 완성했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아니, 실제로 이와 같은 경지에 접어든 것이 약 한 달 전이었으니.
‘거의 5써클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어.’
[미션]5써클 달성하기.
지금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5개의 써클,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여 5써클을 완성하세요.
[보상]상급 마석(식용), 중급 마석(식용)x3, 하급 마석(식용)x5
???(5써클 달성 보상품)
미션 역시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문제는 바로 이 ‘5써클’이라는 경지가, 마력양만 가지고 올라설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앞을 가로막고 있는 첫 번째 벽을 부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듯.
5써클의 경지는 깨달음을 통해 벽을 부순 후에야 올라갈 수 있는 경지였다.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마법사는 극히 소수.’
그렇기에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이 5써클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일평생을 허비하기도 한다.
‘용인화를 사용하면 일시적으로 5써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긴 하지만.’
사실상 편법에 가까운 수단이었다.
비장의 한 수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걸 실력이라 착각하는 일이 있어선 곤란했다.
그렇기에 러셀이 가볍게 입술을 짓씹었다.
고개를 흔들었다.
‘결국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겠지.’
깨달음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찾아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두는 것.
‘즉, 쉬지 않고 노력하는 것뿐.’
다시 한번 자신의 상황을 되돌아본 러셀이 가볍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는 사이, 어느새 염탑의 앞에 도착한 러셀이 걸음을 멈췄다.
탑의 1층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자, 여러 마법사들이 러셀을 알아보고는 인사를 건네 온다.
“오. 러셀이로군.”
“왔는가?”
“탑주님이라면 꼭대기 층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네.”
벌써 염탑에 입탑한지 반년이 넘은 시점이라, 알은체를 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선배님’이라는 말을 붙여가며 인사를 마친 러셀이 탑의 위층으로 향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러셀의 눈에 어떤 인영 하나가 들어왔다.
염탑과는 다른 형식의 복장과 잿빛의 머리, 그리고 실처럼 가는 두 눈까지.
“앨런 페이지 경.”
그는 바로 창탑주의 제자인 앨런 페이지였다.
눈이 마주친 그가 부드럽게 웃는다.
직후 러셀의 앞에 다가와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러셀 경. 반년 만에 뵙게 되는군요.”
“네. 그런데 설마하니 앨런 경을 염탑에서 뵙게 될 줄이야.”
러셀의 물음에 그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던 편지 겉봉을 손끝으로 툭툭 두드렸다.
“스승님께서 염탑주님께 전해드리라는 편지가 있어서 잠시 들렸습니다.”
“아, 그거라면 제가…….”
“아닙니다.”
그가 고개를 흔들며 손사래를 쳤다.
“이미 염탑주님께는 전해드렸고, 이건 다른 분들의 것입니다.”
“다른 분들?”
“예. 황탑주와 백탑주님……, 왕도 사대 마탑의 다른 탑주분들께도 전달 드려야 하는 서신이거든요.”
왕도 사대 마탑의 탑주 모두에게 전달해야 할 서신이라는 게 뭘까?
고개를 갸웃하던 러셀이 문득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앨런을 바라보며 이 위화감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길 잠시.
“설마……?”
눈동자 위로 경악이 파문처럼 뻗어나간다.
그런 러셀의 시선과 놀람에 그가 빙긋 웃었다.
쑥스럽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거대한 빙산을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과는 달리, 현재 지금의 앨런 페이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고요함이었다.
그것도 아주 차갑고 시린 북해의 바닷물을 마주한 것만 같은 깊은 고요함.
자신의 성취가 전보다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5써클…….’
앨런 페이지가 벽을 넘었다는 것.
머릿속으로 다섯 개의 원을 떠올리던 러셀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했다.
예상치 못했던 물음표 하나가 머리를 들어서였다.
‘앨런 페이지가 5써클에 올라섰던 것이 이맘때였나?’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대로라면, 앨런이 5써클에 올라서는 것은 올해 겨울 무렵의 일이다.
그보다 조금 지난 봄 무렵 소식을 들었으니 아마 틀리지는 않았을 터.
하지만 가장 가까운 겨울까지 아직도 반년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앨런이 5써클에 도달했다니. 게다가 그의 경지는 초입 정도가 아니었다.
이미 초입을 벗어나, 완숙이라고도 불리는 중반에 거의 다다른 듯한 느낌.
굳이 수치화하자면 5써클의 1/3 정도라고 해야 할까.
‘소문이 잘못되었던가, 그게 아니라면-.’
미래보다 빠르게 벽을 부쉈다는 이야기.
꿀꺽, 러셀이 침을 삼켰다.
전자라면 모르겠지만, 후자의 경우라면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곤 분명…….
‘나겠지.’
자신과 마주했다는 것.
지나친 자의식 과잉이 아니었다. 앨런 페이지에게 있어 미래와 달라진 것이라곤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달리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다.
그 생각에 러셀은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내게서 경쟁심을 느끼고, 그 경쟁심을 장작 삼아 더욱 빠르게 성장했다는 말이지.’
과거에선 동경의 대상일 뿐이던 그가, 자신을 경쟁상대로 봐주고 있다는 확실한 이유였으므로.
러셀이 입술을 달싹였다.
“축하……드립니다.”
쿵쿵 뛰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던 지라, 절로 말문이 흐려졌다.
러셀의 칭찬에 앨런이 말갛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어 떴는지 감았는지 구별도 어려운 실눈으로 러셀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마 오래지 않아, 경께서도 벽을 넘을 수 있을 겁니다.”
거기다-.
“경께선 이미 벽을 넘어선 적을 쓰러트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러셀이 스팬덤을 이겼다는 소문은 이미 엔디미온 왕국 내에 퍼진지 오래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제 스승님이신 창탑주께선 그러시더군요.”
“……?”
“운도 실력이 있는 자에게나 따라주는 것이다-라고요.”
그렇게 답변한 앨런이 돌연 고개를 움직였다.
엽탑의 1층 로비, 그 벽면에 붙은 시계를 확인했다.
“이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군요. 바쁘신 분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던 건 아닐지.”
앨런과의 대화는 거기서 끝.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예. 그럼 다음에-.”
각자 인사를 마친 후, 저마다 갈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앨런은 편지를 전해주기 위해, 그리고 러셀은 다리아가 기다리고 있는 탑의 최상층을 향해서.
* * *
러셀이 제출한 논문을 확인하며 와작, 다리아가 옆에 놓인 과자를 씹었다.
“음 좋구나.”
논문의 내용을 향한 말인지, 입안의 과자에 달달함을 향한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한마디 흘린 후, 손가락으로 논문의 몇 곳을 짚었다.
“내용 자체는 튼실하고 이해 역시 깊다만, 부분적으로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 이를테면 여기, 여기, 여기 말이야.”
-물은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로 흘러가는가.
-대지와 진동의 공명 관계 등.
“내가 지금 짚은 부분은 다시 한번 복습하며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려무나. 막내야.”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승님.”
러셀이 답변하기 무섭게 예의 알림이 들려왔다.
[미션을 완료하였습니다.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의 평가도에 따라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무감각한 소리들.
그것을 끝으로 논문을 내려놓은 다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다란 로브를 펄럭이며 재기발랄한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숙제 검사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고, 오늘은 실전 위주로 해보자꾸나.”
다리아가 이야기하는 실전 위주의 의미는 간단했다.
‘장작의 난쟁이와, 그 변형마법인 장작의 거인을 이용한 전투 상황의 재현.’
지난 반년 동안 지독하게 겪어온 시간의 반복이었다.
.
.
쐐애애액, 퍼엉-!
러셀의 마법이 폭죽처럼 폭발하며 거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마나와 함께 대기가 거세게 요동쳤다.
화르어어어어어-!
그 충격에 거인의 형상을 한 불꽃이 비명을 내지른다.
물론 생명이 없는 것인 만큼 진짜 비명은 아닐 테지만, 마치 그렇게 들렸다.
그와 함께 불꽃의 거구가 천천히 허물어져 내린다.
호흡이 조금 흐트러졌을 뿐인, 작은 상처조차 입지 않은 완벽한 승리.
“제법이구나.”
그 광경에 다리아가 짝짝, 박수를 쳤다.
불꽃 거인의 잔해와 러셀을 번갈아 바라보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젠 장작 거인 한 마리로는 상대도 되지 않는구나. 내일부턴 두 마리로 늘려도 되겠지?”
다리아의 제안 아닌 제안에 러셀이 말했다.
“두 마리는 조금 힘들지 않겠습니까?”
러셀의 답변에 다리아가 낄낄거리며 웃는다. 직후 입꼬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 자신만만한 입 모양이나 어떻게 하고 거짓말을 하려무나.”
그녀의 말대로, 두 마리까지라면 상대할만할 것 같았다.
아니, 제대로 된 훈련을 위해서 그 이상까지 늘려도 될지도.
그렇게 한동안 낄낄거리던 다리아가 러셀을 쓸어보며 물어온 것은 조금 후의 일이었다.
“그보다, 내가 시킨 일은 잘하고 있느냐?”
“오리지널리티 마법을 만들어 보라는 것 말씀이십니까?”
[미션]다리아 스노우화이트의 제안.
자신만의 새로운 오리지널리티 마법을 개발해 볼 것.
[보상]…….
“노력은 하고 있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서.”
러셀이 쓰게 웃었고, 다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르륵-.
허공중에 불꽃의 창, 블레이즈 랜스를 소환하며 말을 이었다.
“그래. 막내, 네가 어떻게 이 마법을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다만.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 마법을 개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
마법을 펼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벌써 몇 번이나 본데다, 수식 역시 러셀이 이미 알려줬으니까.
“그렇기에 네게 그 과제를 낸 것이란다.”
자신만의 오리지널리티 마법을 만드는 것으로, 그간 쌓아 올린 마법관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새로운 마법관을 구축하여 벽을 넘을 수 있도록.”
“그래.”
다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지만.
‘일단 오늘 수업은 이걸로 끝.’
짧게 한숨을 내쉰 러셀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래층에서 앨런 페이지 경을 만났습니다. 어떤 편지를 왕도의 탑주님들께 돌리는 중이라고 하던데…….”
호기심 반, 무슨 일이 있는 건가 하는 걱정 반으로 물은 질문에 다리아가 낄낄 웃었다.
“이것 말이냐?”
자신의 품속에서 앨런이 들고 있던 것과 똑같은 겉봉을 가진 편지 하나를 꺼내 흔들어댔다.
“별것 아니란다.”
그녀가 별것 아니라고 말한 편지의 겉봉, 그 겉봉에 쓰여 있는 글씨는 바로-.
‘마도총탑회 초청장…….’
콧잔등 위로 잔주름이 번졌다.
‘그게 왜 별 게 아닙니까. 스승님.’
라는 말이 목구멍 바로 아래까지 튀어나오다 들어갔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