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58
58화
EPISODE.29
마도총탑회(魔道總塔會).
달리 탑주회라고도 줄여 불리는 이것은, 특이하게도 오로지 마탑주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마법학회였다.
엔디미온 내에 존재하는 스무 개 남짓한 마탑의 주인들이 한곳에 모여 학회를 치르는 것이다.
사실 말이 좋아 학회지, 친분을 나누는 사교의 장이라고 봐도 무방한 자리였다.
그렇다고 해서 학회의 성격을 전혀 띠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학회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은 마탑주와, 그와 함께 하는 동행인 한 명이 전부.
일반적으로 마탑주들은 자신의 제자를 그 동행인으로 두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자들의 견문을 넓히고 더욱 넓은 세계를 보여줄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게다가 운이 좋아 자신보다 격이 높은 마탑주가 자신의 제자에게 가르침을 주기라도 한다면, 그건 횡재한 것이나 다름없기도 했었고.
여하간 그런 이유로, 대부분의 탑주들은 마도총탑회에 참석하는 편이었다.
마탑회를 주최하는 왕도 사대 마탑의 탑주들 또한 어지간해서는 얼굴을 비추는 쪽이었고.
다만, 한 사람.
왕도 사대 마탑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탑주회에는 그리 자주 얼굴을 보이지 않는 이가 하나 있었다.
바로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스승님이시지.’
전생에 들었던 소문을 떠올리며 러셀이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스승님께선 탑주회에 잘 참석하지 않으신다고 들었는데,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응?”
러셀의 물음에 그녀가 자신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변했다.
“암. 그런 이유가 있다마다. 아주 중요한 이유란다.”
러셀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녀의 얼굴 위로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실은 말이다…….”
“……?”
“사대 마탑의 주인이라는 것들이 골라온 다과들은 하나같이 맛이 없단다.”
“예?”
순간 잘못 들었나 싶어 러셀이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이 영감들이 다 늙어서 미각이 약해진 것인지, 항상 맛이 없는 과자와 차만을 준비해두더구나. 그래서 대부분 참석하지 않았지. 물론 내가 주최할 때에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낄낄.”
자신의 입맛에 맞는 다과를 쏙쏙 배치했다는 이야기에, 러셀은 말문이 막혔다.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 같았다.
탑주회에 참석하는 것이 필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참석하지 않다니.
도리어 그렇기에 그녀답다는 생각도 든다.
“아, 물론 이번에는 참석할 거란다.”
그때 다리아가 손가락을 뻗어 러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것도 너와 같이 말이야. 과자가 맛이 없는 것쯤이야, 조금 참아줘야겠지만.”
“저와 같이요?”
자신을 데리고 탑주회에 참석하겠다니.
감히 청하지는 못했을 지언즉, 원하고 있던 일이긴 했다.
허나 한편으론, 내가 가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형도 두 분이나 계신데.’
그런 걱정을 날려버리듯 다리아가 손을 흔들었다.
“다른 녀석들은 모두 한 번씩 데리고 참석했단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탑주회에서의 주인공은 막내, 네가 될 것이란다.”
같은 4써클 마법사들 셋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을 뿐만 아니라, 어보미네이션에게 승리를 거둔 마법사.
제국의 추적을 뿌리쳤을 뿐만 아니라, 제국 초인의 제자인 스팬덤을 쓰러뜨리고 그 수급을 베어 돌아온 초신성(超新星).
“낄낄. 탑주라고 거들먹거리던 녀석들의 표정이 벌써부터 볼만하구나.”
대충 짐작이 가는 다리아의 계획에,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건만.
어쩐지 벌써부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만 같았다.
.
.
저녁 무렵.
해가 지는 시기에 맞춰, 서쪽 하늘이 타오르는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고.
붉게 달아오르는 하늘을 뒤로하며 염탑을 빠져나온 러셀이 걸음을 옮겼다.
‘오늘치 일정은 대충 다 끝났으니.’
남은 것은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는 것뿐, 다른 이들이었다면 분명 그리했을 것이다.
하루를 충실히 보내고, 남는 시간에 쉬는 것이 그리 잘못된 일은 아니었으니까.
허나, 러셀은 달랐다.
염탑을 나온 그의 걸음은 어느새 왕도 내에 위치하고 있는 도서관 중 하나를 찾아가고 있었다.
‘왕립 마법 도서관.’
루브리엄 박물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도서관이었다.
오로지 마탑에 속한 마법사들만이 입장할 수 있는, 조금 특별한 도서관이기도 했다.
그리고 러셀이 이 도서관을 찾은 이유는 분명했다.
‘용과 얽힌 서적이나 논문을 살펴보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이 능력이 용과 관련되어있는 것은 분명했던바.
그렇기에 실마리나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조금이라도 찾고 싶었다.
‘물론 알아낼 수 있었던 건 사실상 없지만.’
서적이나 논문을 통해, 근 몇천 년간 등장한 용의 모습을 모조리 확인해봤지만.
자신이 흡수한 것과 똑같은 형태를 가진 뿔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는 건, 기록된 적이 없는 용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몇천 년 더 전의 기록을 살펴봐야 한다는 건데…….’
문제는 몇천 년 전.
신화시대와 그 직후의 기록이 그리 흔치 않다는 점이다.
‘신화시대와 그 직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의 문명은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그 기록은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것도 대륙 전역에 걸쳐서.
‘보통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둘 중 하나의 경우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기록을 말소했거나, 그게 아니라면-.
‘큰 전쟁이 일어났거나.’
사실 어느 쪽이건 쉽게 말이 되는 일은 아니다.
그래도 굳이 가능성을 논해보자면, 후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부분도 아니고, 대륙 전체에 퍼진 역사를 의도적으로 말소하다니.
한두 사람의 힘으로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었다.
필요한 시간 역시 족히 천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터.
‘이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이야기지.’
그렇다면 남은 건 후자인데.
대륙 전체를 뒤덮는 규모로 전화(戰火)가 발생하기라도 한 것일까?
‘후.’
잠시 고민하던 러셀이 이내 고개를 털었다.
찾아볼 수 없는 당시의 기록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러셀은 결국 도서관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것이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에.
마도총탑회가 개최되기까지, 불과 일주일 정도 남았을 무렵의 일이었다.
* * *
이번에 개최된 탑주회를 주관하는 것은 바로 창탑.
창탑주가 직접 선별한 사교장의 입구에서, 한 마법사가 소리 높여 외쳤다.
“염탑주, 다리아 스노우화이트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마력이 담긴 음성.
외침과 함께 사교장 바깥쪽에서 시작된 음파가 사교장 안쪽까지 균등하게 퍼져나갔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기묘한 파동을 만들어내며 메아리처럼 굽이쳐 퍼지기까지.
이런 방식이라면, 사교장 어디에 있건 간에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특별한 마법을 사용한 것이 아닌, 마력의 성질을 이용한 뛰어난 한 수.
하지만 그 한 수보다 놀라운 것이 있었다.
바로 입구에 선 마법사의 실력이었다.
‘5써클 마법사가, 고작 입구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고?’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혀를 내두르길 잠시, 이내 러셀은 납득했다.
과연, 탑주들이 참석하는 모임이라는 거겠지.
마탑의 탑주가 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은 6써클을 이루는 것.
그 말을 달리 설명하면,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는 탑주들 중 6써클에 오르지 못한 이는 없다는 말이었다.
물론 모든 6써클 마법사가 탑을 세우는 것은 아니었다.
‘탑주가 되어 이래저래 신경 써야 할 것이 늘어난 만큼, 스스로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단 거니까.’
그걸 원치 않는 마법사들은 구태여 탑을 설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써클 마법사의 절반가량이 자신만의 탑을 세운 것이 현 실정이니.
그 나름의 메리트 역시 있을 것이 분명했다.
메아리가 몇 번 굽이치기 무섭게, 구그그그긍.
묵직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내부의 모습이 드러났다.
탑주들 모두가 앉을 수 있도록 비치된 둥그런 원탁.
그 원탁의 테두리를 사 등분 하듯 놓여 있는 적, 청, 백, 황의 색을 가진 네 개의 의자들.
‘아마도 저곳이 왕도 사대 마탑의 탑주님들이 앉는 자리겠지.’
그중 두 자리에 선객이 앉아 있었다.
각기 황과 청의 자리에 앉은 마탑주들이었다.
홀로 앉아 있는 것이, 둘 모두 이번에는 제자를 동반하지 않은 모습.
“그래. 이번에는 올 줄 알았지.”
고목처럼 빼빼 마른 체구의 노인, 창탑주가 다리아와 러셀을 번갈아 보며 입을 연다.
“올 이유가 있으니 와야겠지.”
그 말에 응수하듯, 다리아가 러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낄낄거렸다.
황색 의자에 앉아 있던 노인이 일어난 것은 그 직후였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선배님.”
안대에 덮인 한쪽 눈이 인상적인, 동방의 수도승을 연상시키는 외견.
황탑주, 니콜로 마키아벨리였다.
그를 향해 다리아가 질색하며 혀를 찼다.
“그 얼굴로 선배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허허. 어쩌겠습니까. 선배님을 선배님이라고 불러야지요.”
그 말대로, 겉으로 보기에는 중년의 외모를 하고 있는 다리아가 한참 어려 보였지만.
실제 나이는 다리아가 그보다 일곱 살 많은 연상이었으므로.
“쯧.”
마뜩잖다는 듯 혀를 찬 다리아가 아직 채워지지 않은 다른 자리들을 휘휘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다들 일찍 왔구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우리 왕도 마탑에서 돌아가며 개최하는 자리가 아니던가. 손님을 맞기 위해 일찍 나온 것뿐이네. 굳이 중앙의 마탑주랍시고 거들먹거릴 필요도 없고.”
“그런 것 치곤 하양이가 안 보이는데?”
답변이 나온 것은 황탑주에게서였다.
“백탑주라면 서부 쪽에 큰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하여,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왕실의 협조 요청을 받아 어제 출발했습니다.”
사대속성 중, 백탑의 상징은 바람.
그리고 바람마법은 기상학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하긴 곧 여름이니, 하양이가 아주 바빠질 시기야.”
황탑주의 설명에 다리아가 납득하며 웃었다.
자신의 자리에 앉으며, 러셀에게 황탑주를 소개했다.
“그러고 보니 이쪽은 처음이지? 인사하거라. 저 머리카락 없는 녀석이 바로 황탑주. 니콜로 마키아벨리란다.”
“허. 선배님. 아무리 제 스스로 머리를 밀었다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도 상처받습니다.”
서운하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과는 달리, 전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후배, 러셀 레이먼드가 황탑주님을 뵙습니다.”
러셀의 인사에 그가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자네가 소문의 그 친구로군. 맥라이 휴스. 그 작자의 제자인 스팬덤의 목을 베어 돌아왔다지?”
제국의 초인 ‘맥라이 휴스’의 이름이 언급되던 순간.
평온하기만 하던 목소리에서 파란이 느껴진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노기(怒氣)가 섞여 있는 음성.
다리아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 녀석은 맥라이 휴스, 놈에게 빚이 있단다. 내가 도와주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모르지. 낄낄.”
일견 자존심을 자극할 수도 있었던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콜로는 웃었다.
전날의 패배를 상기하듯, 날이 서 있는 웃음.
그가 한쪽 눈을 가리고 있던 안대를 벗었다.
그 안쪽에 자리한 기다란 검상과 의안을 내보이며 말했다.
“허허. 한 번 당했으니, 두 번은 당하지 않을 겁니다. 선배님.”
쿠르릉.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대지가 잘게 떨린다.
마치 그의 감정에 호응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 사람이 황탑주…….’
왕국 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마법사.
초인(超人)이라 불리는 7써클의 벽을 넘어, 현재는 8써클에 육박했을지도 모른다고 평가받는 대지의 현자.
“여하간, 자네 덕분에 모처럼 기분이 통쾌했네.”
모쪼록, 앞으로도 종종 통쾌한 소식 전해주게나.
그렇게 말을 마친 황탑주가 껄껄 웃었다.
디라아와 창탑주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슬슬 오나보군.”
“그러게 말이야.”
문 바깥쪽에서 거대한 기척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하나가 아닌 다수, 그 기척들을 느끼며 창탑주는 손님 맞을 준비를 했다.
“로엔 청탑의…….”
“칼리번 황탑의 마탑주…….”
마도총탑회(魔道總塔會)에 참석한 마탑주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제자들.
과거의 러셀이 참석은커녕, 생각조차 못 했던 별들의 모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