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59
59화
EPISODE.30
조금씩 시간이 흐름에 따라.
탑주회에 참석한 탑주들이 하나둘 모습을 내비쳤다.
“누겔레온 청탑의…….”
“아케오스 황탑의…….”
그들이 소속된 마탑의 이름이 장내 가득 울려 퍼진다.
이어 장내로 들어선 마탑주들이 먼저 들어와 있던 선객들을 발견하곤 알은체를 해왔다.
왕도 사대 마탑의 탑주.
그중 셋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허허. 이렇게 또 뵙는군요. 오랜만입니다. 선배님.”
“창탑주님, 염탑주님, 황탑주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백탑주님께서 보이질 않는데, 아무래도 뭔가 일이 있으신 모양이로군요.”
그중 몇몇은 다리아의 옆에 앉은 러셀을 발견하곤 눈에 이채를 띄기도 했다.
“오, 이 청년이 바로 소문의…….”
“영민하게 생긴 청년이로군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이나 실력 역시 걸출할 테지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칭찬들.
단어나 미사여구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대체로 비슷한 의미를 내포한 칭찬들이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여러 번 먹으면 질리는 법인데.’
하물며 칭찬이라고 다를까.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본 것과 달리, 다리아의 입꼬리는 귓불에 닿아, 내려올 줄 모르고 있었다.
‘아닌가 보네.’
질리긴커녕, 아주 만족스럽고 즐거워 보이는 얼굴이다.
하기야, 팔불출 끼가 상당한 분이시질 않는가.
‘애당초 탑주회에 참석하신 이유부터가 그거였으니까.’
정작 문제는 러셀, 바로 본인이었다.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칭찬을 듣고 있노라니, 절로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제 얼굴에 금칠하는 기분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건가 싶었다.
‘조금 다르긴 하지만, 대충 비슷하니까. 어쨌건.’
그렇게 한동안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고, 얼마 후.
“앤티골 적탑의 마탑주-.”
그 분위기를 깨뜨리는 음성이 울려 퍼졌다.
“-블레인 트릴로지님과…….”
새로운 인물의 등장을 알리는 외침.
장내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
.
“그리고…….”
이후로도 제법 긴 소개가 이어졌다.
아무래도 여러 사람이 함께 입장하기 때문인 듯했다.
허나, 그 소개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장내에 있는 이들의 이목은 이미 처음 호명된 이름에 집중된 지 오래였기에.
블레인 트릴로지.
“우스운 일이로군.”
“…….”
“탑주회 최대의 곤욕이, 그 너구리같은 영감의 얼굴을 또 봐야 한다는 것이라니. 마음에 들지 않아.”
쯧.
창탑주, 헤밍웨이 멜빌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다리아가 그 말을 받았다.
입 안에 든 사탕을 와작와작 깨 삼키며, 대꾸했다.
“오랜만에 영감과 마음이 통하는 일이 다 있구먼그려.”
낄낄거리는, 예의 웃음소리를 더하긴 했으나 어쩐지 사나운 눈빛.
그 눈빛에 러셀의 머릿속으로, 오래전 들었던 정보 몇 가지가 빠르게 떠올랐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 아직은 닥쳐오지 않은 미래에서 들었던 정보들.
‘블레인 트릴로지.’
러셀이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유추하기에는 충분했다.
‘아케인 마탑의 탑주임과 동시에, 7써클의 대마법사.’
아흔 살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실력자.
그리고-.
‘계보가 달라 왕도 사대 마탑의 탑주가 되지 못했을 뿐.’
그 실력만큼은 왕도 백탑주를 넘어 황탑주인 니콜로 마키아벨리에 비견 될지도 모른다고 평가받는 괴물.
물론 장내의 분위기가 바뀌게 된 것은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가장 주효한 원인은-.
‘그가 대공파의 거두라는 점 때문이겠지.’
현왕의 숙부인 비스마르크 대공.
대놓고 드러내지만 않았을 뿐, 분명 그는 왕좌에 대한 야욕을 가지고 있는 이였다.
그런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바로 대공파.
블레인은 바로 그 대공파의 거두였다.
친왕파(親王派)에 속한 헤밍웨이나 다리아, 니콜로와는 서로 불편한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쿠그그그긍.
문이 열리며 묵직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너머에서 블레인 트릴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이 바로, 블레인 트릴로지.’
뒤로 단정하게 빗어 넘긴 백발과 염소수염이 인상적인 노인이었다.
기다란 스태프를 지팡이처럼 짚기는 했으나, 아흔 살이 넘었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정한 모습이다.
“흠.”
침음과 함께 안쪽을 한차례 둘러본 그가 천천히 장내로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쫓아, 몇몇의 마탑주들이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블레인과 같은 파벌에 속한 마탑주들과, 그들의 제자들이었다.
먼저 인사를 해온 것은 블레인이었다.
“오랜만이로구나. 헤밍웨이. 그리고…….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여타의 탑주들과는 달리 두 사람을 향해 하대를 하는 모습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연공 서열상으론 그가 십 년쯤 더 위이긴 했으므로.
“오랜만이오. 선배.”
표정을 추스르며 그 인사를 받은 헤밍웨이와는 달리, 다리아는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죽지도 않고 또 왔구려. 선배.”
고깝다는 감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음성.
“!!!”
그 음성에 블레인을 따르던 이들의 얼굴이 사납게 구겨진다.
써클에서 밀렸다 하지만, 블레인은 선배였다.
아무리 다리아라 하더라도 저리 대하는 것을 옳지 않다.
“……허!”
“염탑주라는 자리에 앉아있다 하지만…….”
그리 생각한 이들 몇이 소리치며 나서려는 찰나.
“그만.”
탁-.
블레인이 나섰다.
스태프 끝자락으로 바닥을 툭, 짚었다.
가벼운 한 수로 그들을 침묵시키며 다리아의 말에 응수했다.
“허허.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을 어찌하겠나.”
“흥. 그놈의 때는.”
다리아는 입술을 삐죽 내밀며 투덜거렸지만, 그 후로 더 말을 늘어놓지는 않았다.
결국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나선 것은 창탑주였다.
그 역시 블레인이 불편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자리를 주최한 것 역시 일단은 그였으므로.
“자, 그럼. 올 사람도 거의 다 왔고, 시간도 얼추 되었으니-.”
비어 있는 것은 사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한 몇 자리가 전부.
대부분의 자리에 주인이 있는 것을 확인하며-.
“이제 슬슬 탑주회를 시작해도 되겠구려.”
-마도총탑회(魔道總塔會)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어쩐지 파란의 전조가 느껴지는 시작이었다.
* * *
시작이 조금 요란하기는 했지만, 탑주회는 생각했던 것보다 매끄럽게 흘러갔다.
마도총탑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시작은 각기 마탑주들이 연구하고 있는 주제나 마법의 성과에 관한 담론이었다.
이야기가 시작된 순간.
러셀은 탑주들이 왜 한 번은 꼭 자신의 제자와 동행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수준이 깊을 뿐 아니라 폭까지 넓어.’
과연, 이것이 탑주의 자리에 앉은 이들의 대화구나 싶었다.
러셀은 그 담론 내용 모두를 귀 기울여 듣기 위해 노력했다.
사소한 내용 하나라도 놓치지 않도록 정신을 집중했다.
러셀의 두 눈이 반짝이며 이채를 발하고, 마도학(魔道學)에 대한 욕구가 샘물처럼 솟아오른다.
그 모습에 빙긋, 다리아가 소리죽여 웃었다.
‘막내를 데려오길 잘했구먼. 낄낄.’
오늘 이 자리에서 얻은 지식을 당장 사용하거나 응용할 순 없을 것이다.
설혹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지금 러셀의 수준에선 체득하기 어려운 것들이 대부분.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곡차곡 쌓아둔다면, 언제고 다가올 순간 큰 도움이 되어줄 테지.’
설혹 재주가 모자라 편린 몇 개를 움켜쥐는 선에서 그친다 하여도, 그 역시 충분한 소득이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런 러셀을 묘한 눈길로 바라보는 시선 하나가 있었다.
카르고 적탑의 마탑주, 아카이럼.
블레인의 제자인 그가 바로 그 시선의 주인이었다.
.
.
아무리 깊은 우물이라 해도, 계속해서 퍼내다 보면 결국 바닥이 드러나는 법이다.
연구 주제와 마법에 관한 담론 역시 그러했다.
벌써 네 시간 가까이 담론이 이어져서였을까.
어느새 탑주들의 말수는 상당히 줄어들어 있었다.
조금씩 소리 죽여, 일상이나 근황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들의 모습 역시 일부 보였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슬슬 시들해지는 분위기를 느끼며 러셀이 입맛을 다셨다.
마음 같아서는 이런 시간이 몇 시간 정도 더 이어졌으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겠지.
‘지금까지 얻은 소득도 적지 않으니 말이야.’
노트까지 펴두고 필기까지 했으니.
돌아가면 해야 할 일이 벌써부터 잔뜩 생긴 셈이다.
그때였다.
“흠흠. 그보다…….”
탑주 중 한 사람이, 러셀을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가 보란 듯, 헛기침으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새로 들이셨다는 제자 분은 언제쯤 소개해주시겠습니까. 염탑주님.”
탑주회가 막 시작될 무렵.
블레인의 뒤를 쫓아 들어온 마탑주 중 일인.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내의 모든 시선이 러셀에게 집중되고.
다리아가 대꾸했다.
“흥. 알아볼 것들은 모두 알아보고 왔으면서, 소개는 무슨.”
불퉁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 음성.
그 목소리에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탑주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러셀을 향한 관심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그 미치광이 스팬덤을 추락시킨 소문의 청년 아닙니까. 신성(新星)이지요.”
“벽을 깨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익스퍼드급 강자를 쓰러뜨리다니.”
익스퍼드급 오러 수련자.
달리 달인(達人)급이라고도 불리는 강자.
“처음 그 소문을 들었을 때, 과장된 것은 아닌가 싶어 얼마나 놀랐는지.”
“아무렴요. 오래된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들의 어린 시절이 비춰 보이는 소문이었지요.”
소문, 소문, 소문.
계속해서 같은 단어가 반복되었다.
어쩐지 불편함이 느껴졌기에, 러셀이 책상 아래로 주먹을 말아 쥐었다.
제 얼굴에 금칠하는 건 취향이 아니었지만, 이건 이것대로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그 속에서 러셀이 느낀 것은 묘한 위화감이었다.
칭찬인 듯 칭찬이 아닌…….
‘바람잡이.’
러셀도 알아차린 위화감이다.
다리아라고 해서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리아가 손바닥으로 가볍게 원탁을 두드렸다.
짝-.
손바닥에서 시작된 마력의 파동이 원탁 전체로 퍼져나간다.
우우우웅.
“자꾸 빙빙 돌리지들 마시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당장 꺼내놓으시지.”
격식이나 예의 따위는 개나 주라는 듯한, 화끈하면서도 직설적인 화법과 눈빛.
파벌이 다르긴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젊은 시절 다리아의 성격을 모르지 않았다.
처음 말을 꺼냈던 이들의 몸이 움찔 떨렸다.
아마도-.
‘바람잡이의 역할은 여기까지겠지.’
러셀의 예상대로, 바람잡이의 기세가 사그라든 후. 앞으로 나서는 이가 있었다.
블레인의 제자이며 동시에 카르고 마탑의 주인, 아카이럼.
바로 그였다.
“하하. 저분들은 단순히, 제자분의 실력을 눈으로 보고 싶었을 뿐일 겁니다.”
“눈으로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 말에 다리아가 피식 웃었다. 대공파에 속한 탑주들과, 그들의 제자를 돌아보며 읊조렸다.
“그래서, 자네의 제자들 중 누가 우리 막내의 상대가 되어주겠는가?”
우습지도 않다는 눈빛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였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러셀의 실력은 4써클 중반.
그에 비해 그들의 제자 대부분은 3써클 후반이거나 4써클 초입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본신의 실력 역시 한 수 이상 앞서는 것은 물론, 다리아에게 사사(師事)하기까지 했으니.
“커흠.”
“흠흠.”
슬그머니 시선을 피한 그들이 헛기침 소릴 냈다.
그 말에 답한 것 역시, 아카이럼이었다.
“제 막내 사제는 어떻습니까?”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블레인의 옆자리에 앉은 사내를 응시하며 말을 잇는다.
“마침 제 사제, 제론이 몇 주 전 벽을 마주했습니다.”
“오오, 그 말씀은……?”
벽을 마주했다는 말에 대공파 탑주들 몇몇이 호들갑을 떨어댔다.
원하는 반응이었던 것인지.
아카이럼이 흐뭇한 표정으로 제 사제의 어깨를 짚었다.
“미치광이 스팬덤에 비교하면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어떻습니까. 마침 나이도 비슷하거니와-.”
나이가 비슷하다는 말에, 황탑주.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혀를 내둘렀다.
“비슷하기는 무슨, 액면가만 따져도 족히 두 배는 차이가 날 것인데.”
작게 중얼거린 음성.
허나 자리에 앉은 이들 중, 어느 하나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이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애초에 들으라고 한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카이럼은 얼굴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뻔뻔함은 물론 일견 집요함까지 느껴지는 얼굴이라.
이왕 뻔뻔하게 나오기 시작한 거-.
‘끝날 때까지 철면피를 깔 셈이겠지.’
러셀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다리아가 그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막내야.”
녹색의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미션]…….
특별히 눈에 띄는 보상은 없지만, 마석을 얻어 마력을 늘일 기회.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