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60
60화
EPISODE.30
친선경기.
말이 좋아 친선(親善)이지, 실상 친밀함(親)이나 선함(善) 따위는 찾을 수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경기가 당장에 진행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인지.
그럴듯한 이유를 대며 아카이럼 측에서 친선경기의 일정을 며칠 연기했던 것이다.
이유라고 해봐야 그리 대단할 것은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실력을 궁금해하는 만큼, 조금 더 넓고 좋은 자리에서 경기를 벌였으면 좋겠다고?’
회장을 빠져나오며 러셀이 아카이럼의 말을 속으로 곱씹었다.
‘경기를 벌이는 것은 앞으로 사흘 후.’
장소는 저쪽에서 좋은 곳을 물색한 후 통보하기로 했다.
그때, 다리아가 입을 열었다.
“아마 장소로 선정될 곳은 대(大) 연무장, 콜로세움(Colosseum)이 될 게야.”
러셀의 속내를 짐작하기라도 한 것만 같은 타이밍이었다.
조금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다리아가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그 일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것이 아니더냐?”
“그렇긴 합니다만…….”
“이 녀석아. 내가 키워낸 제자가 몇인데, 척하면 척이거늘.”
그렇게 낄낄거리길 잠시.
러셀과 발을 맞춰 걸으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아마도 저들의 목적은 너를 쓰러뜨림으로 나에게 망신살을 주는 것이겠지.”
“저를 통해서 스승님께 망신살을요?”
친왕파와 대공파라는.
단순히 서로 다른 파벌의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허나, 어쩐지 이유나 명분 따위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변이 흘러나온 것은, 다리아가 아닌 다른 이의 입에서였다.
“블레인, 그 너구리 같은 영감은 다리아. 자네에게 제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야.”
고목처럼 빼빼 마른 외견에, 거대한 수분감이 느껴지는 노인.
창탑주, 헤밍웨이 멜빌이었다.
조금 늦게 회장을 빠져나온 그가 러셀과 다리아의 뒤로 따라붙은 것이다.
“제 자리를 뺏기는 무슨, 애당초 스스로의 능력이 부족했던 것을.”
다리아가 그렇게 말하며 코웃음을 쳤고,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창탑주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리를 빼앗겼다니?
그게 무슨 말일까?
둘 사이에 끼인 채, 명확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러셀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이번엔 황탑주,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허. 그러고 보니 요즘 세대의 어린 마법사들은 그 이야기를 잘 모르겠군요.”
“그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탑주님?”
러셀의 질문에 니콜로가 다리아의 눈치를 슬쩍 봤다.
그녀의 과거사가 일부 엮인 이야기였으므로.
“뭐 대단한 이야기라고 그리 눈치를 보느냐. 어느 책에도 실리지 않은 이야기지만, 그 시절을 겪은 마법사들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 것을.”
“허허. 그렇지요 선배님. 그렇다면 감히 선배님의 이야기를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블레인과 다리아에 얽힌 간단한 과거사가 흘러나왔다.
“자네 세대의 젊은 마법사들은 잘 모르고 있겠지만, 블레인 트릴로지는 소싯적 염탑주 후보로 유력시되던 마법사네.”
유력시되던 마법사.
굉장하긴 했지만, 결국 그 자리에 오르지 못한 이들에게나 붙을 법한 수식어다.
실제로 염탑주에 올라 있는 건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이기도 했고.
“그 말씀은…….”
“자네가 추측하는 게 맞네. 다리아님이 나타나며 그는 자연스럽게 염탑주 후보에서 물러나게 되었지.”
자신보다 열 살이나 어린 다리아에게 염탑주라는 자리를 뺏기게 된 셈이라.
‘물론 그렇게 되면 염탑이 아니라 왕도 적탑이라고 불렸겠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그 일에 앙심을 품고, 스승님께 망신을 주고 싶어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네. 분명 남을 깎아내린다고 하여 자신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알 만한 나이건만…….”
잠시 말꼬리를 흐린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흥. 분명 그렇게 흠집을 내다보면, 언젠가 나를 염탑주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게야. 가능했다면, 그보다 더한 방법도 쓸 수 있는 작자지 않은가.”
[막내야.]담담하게 내뱉는 다리아의 음성 사이로, 메시지 마법이 전해져왔다.
[저 작자들은 지금부터 이 친선경기를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이다.]목적은 더욱 많은 이들이 경기를 보기 위해 콜로세움에 몰려오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다리아에게 더욱 큰 망신을 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일 터.
[게다가, 무슨 근거인진 모르겠다만 스팬덤을 쓰러뜨린 것 역시, 온전히 네 실력이 아니라고 판단했겠지.]그게 아니라면 이런 자리를 만들었을 리가 없다. 허나-.
[생각해보면 저들의 판단은 그렇게 틀리지 않았단다.]그렇게 말한 다리아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첨언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스팬덤을 쓰러뜨릴 때 사용했던, 네가 숨기고 있는 비장의 한 수를 공개하는 것이 어려울 테니 말이야.]다리아의 말에 러셀의 어깨가 저도 모르게 움찔 떨렸다.
하지만 다리아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숨기고 있는 비장의 한 수를 캐묻거나, 추궁하기 위함은 더더욱 아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내야. 이길 수 있겠느냐?]이길 수 있겠느냐고?
스승의 물음에 러셀이 냉정히 머리를 굴렸다.
회장에서 보았던 상대의 역량을 가늠해보며, 자신의 힘을 견주어봤다.
상대는 자신과 같은 4써클의 끝자락에 도달한 마법사.
‘게다가 스승님만큼은 아니라지만-.’
-마법에서만큼은 왕국 내에서 한 손안에 꼽힐 만한 실력자가 키워낸 이였다.
나이가 많은 만큼 전투 경험 역시 풍부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뿐만 아니라 이쪽에는 페널티 아닌 페널티까지 있었다.
‘용인화는 물론 클라우디 링……. 가능하면 정령마법까지 사용하지 않고 승리해야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확신하고 있었다.
‘내가 이긴다.’
이 친선대결에서 승리하는 것은 바로 자신일 것이라고.
단순한 예감이나 근거 없는 허세 따위가 아니다.
무엇보다 그에게선, 전날 앨런 페이지를 만났을 때와 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
지금 제론이라는 자와, 당시의 앨런 페이지가 같은 경지임에도 말이다.
‘단순히 내가 강해졌기 때문만이 아니야.’
제론은 마법사의 격에 있어서 앨런 페이지에 미치지 못한다.
물론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페널티를 안고 있는 데다, 친선경기였으니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제압해야 하는 상황상, 수단이 제한될 수밖에 없어.’
접전……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싸움.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보아도, 자신이 패배하는 결과가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러셀이 확신을 담아 답변했다.
“예. 이길 수 있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그 대답에, 다리아의 입꼬리가 다시 한번 귓불까지 치솟았다.
헤밍웨이와 니콜로.
두 사람을 향해 깔깔거리며 보란 듯 소리쳤다.
“어이구. 우리 막내 대답하는 것 좀 보시게나. 아주 똑 부러지는구먼. 누구 제자기에 이렇게……!”
러셀과 제논.
다리아의 제자와 블레인의 제자.
두 사람의 친선경기가 있기, 불과 사흘 전의 일이었다.
.
.
그날 밤.
왕도에 위치한 한 고급 숙소.
블레인과 그의 파벌이 전세 내다시피 한 이곳에서, 두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블레인의 첫째 제자인 아카이럼과, 막내 제자인 제론의 만남이었다.
“그래, 소문의 상대를 직접 본 감상이 어떤가. 사제?”
아카이럼의 물음에 제론이 답변했다.
“본 그대로 말씀드립니까?”
“물론.”
“솔직히 말해, 4써클이 맞는지조차 의심이 가더군요. 마나를 쌓은 것은 분명 맞는 듯한데, 그 실체가 눈에 보일 정도로 분명하지는 않았으니까요.”
러셀이 가진 마나의 성질 때문에 생겨난 착각.
지금까지 러셀의 마력을 읽어 들인 것은, 단 두 사람뿐.
초인(超人)들 중에서도 또 하나의 벽을 넘어섰다는 다리아와 헤밍웨이 밖에 없었기에.
하지만 두 사람이 거기까지 알 일은 없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하네. 허나 소문이 허황된 것은 아닐 테니, 실제로 4써클 초입 정도의 실력은 갖췄다고 생각해야겠지. 아니. 자신 있게 경기를 수락한 것을 보면, 어쩌면 4써클 중반을 조금 넘어섰을지도 모르겠어.”
가능성의 영역에서 따져봤을 때, 그 정도는 되어야 어느 정도 승산이 있었으므로.
열아홉 살의 나이에 4써클 중반.
그것만 하더라도 충분히 괴물 같은 수준의 재능이다.
하지만.
“허. 그 실력으로 미치광이 스팬덤을 이겼다니, 솔직히 믿어지질 않습니다.”
“아마도…….”
말꼬리를 흐린 아카이럼이 손끝을 가볍게 비볐다.
“자신의 제자에게 공을 몰아주기 위해, 다리아. 그 노파가 진실의 일부를 숨긴 것일 테지.”
“진실의 일부라면-?”
“이를테면, 당시 러셀 레이먼드는 다리아에게서 받은 아주 뛰어난 아티펙트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스팬덤을 쓰러뜨린 것은, 그 아티펙트의 힘이다……라던가?”
물론 스팬덤을 쓰러뜨릴 정도의 아티펙트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는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무려 염탑주씩이나 되는 인물이 아닌가.
“그런 물건을 몇 개 가지고 있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은 없겠지.”
“확실히. 그런 맥락으로 추측해보면 말이 되기는 하는군요.”
“걱정하지 말게 사제. 그렇기에 일부러 친선경기를 요청한 것이 아닌가.”
순수하게 실력을 겨루는 친선경기인 이상, 아티펙트를 사용할 수는 없을 거라는 말.
말을 이어가며 아카이럼이 음충맞게 웃었다.
“사제가 해야 할 일은, 러셀. 그 애송이를 이기고, 녀석이 세운 모든 공을 자네가 가져오는 것일세.”
아종의 어보미네이션과, 스팬덤을 쓰러뜨리고 얻은 공과 유명세.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그 둘 모두가 자신을 향하게 될 것인즉.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사형.”
그 장면을 상상하며 제론이 히죽,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자신의 패배 따위는 조금도 염두에 두지 않은 모습이었다.
* * *
예상했던 대로.
러셀과 제론의 친선경기.
그와 관련된 소문은 빠른 속도로 왕도 전체에 퍼져나갔다.
문자 그대로 들불이 번져나가는 것만 같은 속도.
“그러고 보니 그 소문, 다들 들었나요?”
“그 소문이라면…….”
작게는 귀족 가 부인들의 티타임 장소에서부터 시작하여.
“요즘 저자에 재밌는 소문이 파다하더군.”
“아, 친선경기에 관한 소문이라면 나도 들었네. 그렇지 않아도 좋은 표를 예약하기 위해 콜로세움에 연락을 해봤던 참이지.”
크게는 왕도 귀족들의 커다란 사교계에 이르기까지.
화제가 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마법사계에 있어서 러셀의 존재는, 그만큼이나 많은 화제를 몰고 다니는 초신성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마법사들은 물론 유흥거리가 필요했던 귀족들의 시선까지도 친선경기를 향해 쏠리게 되고.
마침내, 왕궁에까지 그 소문이 흘러들었다.
.
왕궁의 깊은 곳.
심처에 앉아 소문을 들은 이 하나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렸다.
“다리아 경의 제자, 러셀 레이먼드 자작이라.”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보랏빛 눈을 빛내며, 그것과 꼭 닮은 색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