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61
61화
EPISODE.31
대(大) 연무장.
콜로세움(Colosseum).
과거, 콜로세움은 많은 기사와 마법사들이 저마다의 영광을 위해 결투를 벌였던 명예의 전당이었다.
뿐만 아니라 왕도 내에 존재하는 모든 결투장 중. 가장 많은 수의 관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때문일까.
귀족, 평민, 마법사 등.
계층에 상관없이, 친선 대결을 관람하기 위해 몰려든 이들로 콜로세움의 입구는 아침부터 북적거렸다.
그럴 수밖에.
그동안 소문만 왕성하던 염탑주의 막내 제자, 러셀 레이먼드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리였으니까.
게다가, 상대는 그 ‘블레인’의 막내 제자이지 않던가.
제론인가 제논인가, 그 이름까지 제대로 기억하는 이들은 몇 없었지만.
어쨌건 간에, 대 연무장이라 이름 붙은 곳인 만큼.
콜로세움에는 몰려든 관객들을 보호할 수 있는 마법적 장치 역시 마련되어 있었다.
우우우웅-.
기능이 가동되기 무섭게, 그 마법적 장치가 모습을 드러낸다.
반투명한 벽이 솟아오르며 결투장과 관객석을 분리한 것이다.
우우웅-.
이어 생겨난 벽이 반구(半球)의 형태를 이루며 결투장을 뒤덮어가기 시작한다.
‘이게 바로 그 소문의 벽이구나.’
그 광경을 바라보던 러셀의 두 눈에 이채가 어렸다.
‘6써클 마법은 물론 익스퍼드 급 오러 수련자의 검기(劍氣)까지 견뎌 낼 수 있는 마법 방호벽.’
이 벽을 치기 위해선 최소 두 명 이상의 6써클 마법사가 필요로 하다고 하던가?
그 수고로운 역할 중 하나를, 첫째 사형인 버밀리온이 해주고 있었다.
-!
짧은 소성이 울리며 반구의 벽이 완성되고, 안쪽과 바깥쪽의 경계가 나누어졌다.
그와 동시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바깥쪽에서 흘러들던 모든 소음이 일제히 차단되었다.
물론 관객석에 앉은 이들은 내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지만.
‘안쪽에 선 사람들이 대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 거겠지.’
내심 그 속내를 짐작하며 러셀이 시선을 옮겼다.
콜로세움의 맞은편 통로.
그 근처에 선 사십 대 마법사의 얼굴을 확인했다.
‘제론 디아만테.’
블레인 트릴로지의 제자, 그리고-.
‘나와 같은 4써클의 마법사.’
그에게 특별히 사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 결투에서 당해줄 생각은 없었다.
단순히 미션이 걸려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버렸으니, 절대로 질 수 없지.’
이 대결에 스승인 다리아의 명예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렸으니까.
물론 다리아가 그런 걸 신경 쓸 성격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만에 하나 자신이 패배한다고 해도 명예에 흠집이 갔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터.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겨야지.’
스승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주는 것 또한, 제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으므로.
또한 스승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은 자신의 마음이었으므로.
각오와 함께 러셀이 천천히 몸을 긴장시켰다.
네 개의 써클을 천천히 회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마나를 전신으로 흘려보냈다.
화악, 우우웅-.
그에 호응하는 것이 있었다.
위저드 바디와 오버로드, 두 마법의 심상이 머릿속으로 선명하게 떠오르고.
이윽고 심판 역을 담당하게 된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왕도 사대 마탑의 일각인 왕도 황탑의 탑주임과 동시에, 7써클의 경지에 오른 대마법사.
백탑주가 자리를 비운 지금, 그만큼 심판의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은 또 없을 터였다.
척-.
심판용 통로에서 나와, 콜로세움의 정중앙에 선 그가 양측을 돌아봤다.
두 사람의 몸을 휘감고 흐르는 마력의 기류를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러셀 레이먼드, 그리고 제론 디아만테.”
“예.”
“예.”
대답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비록 대결이라곤 하나, 오늘 이 자리가 친선을 다지는 자리임을 잊지 않을 것을, 두 사람은 맹세하는가?”
한쪽이 다른 한쪽을 크게 상하게 하거나, 목숨을 잃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
“예.”
답변이 떨어지자 니콜로가 말을 이었다.
“또한 명예로운 결투를 벌인 것을 맹세하는가?”
“예.”
이번에도 대답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대결의 시작은 내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으로 하겠네. 한쪽이 패배를 인정한다면 그걸로 끝.”
물러나며 설명했다.
“설혹 패배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내 판단하에 더 이상 대결이 지속되기 어렵다고 보일 경우, 내 재량껏 결투를 중지시키겠네.”
러셀과 제론.
두 사람이 서로를 응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니콜로의 걸음은 관객석 앞의 벽과 가까워져 있었다.
신호인 니콜로의 발걸음 소리가 멈추는 순간!
척-.
기다렸다는 듯.
러셀의 마나가 존재감을 발산했다.
극에 달해 폭발할 것만 같은 힘을 품은 네 개의 원(Circle).
써클이 회전하며, 용종(龍種)의 그것처럼 포효했다.
콰우우우우-.
* * *
강렬한 마력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무색의 벽으로 뒤덮여 있다곤 하지만,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이들 중, 그것을 느끼지 못할 이는 없었다.
“허, 저 나이에 벌써 4써클을 완성했는가?”
“말도 안 되는 속도로군, 천재라고는 들었지만 과연…….”
연륜 있는 마법사 몇이 경악을 터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로 인한 소란이 관객석 전체로 퍼져나가고, 평민들은 물론이거니와 귀족들 사이에서 역시 술렁거림이 일었다.
“워커힐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다고 하더니.”
러셀의 성(姓)을 곱씹는 귀족들 역시 몇 있었다.
“러셀……레이먼드.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로군.”
깜짝 놀란 것은 아카이럼을 포함한 대공파의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러셀의 마력을 마주한 순간, 그들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4써클 중반이 아니었다고?’
‘어찌 이렇게 정순한 마력이, 저 나이에 정말로 저게 가능하다는 말인가?’
경악, 불신으로 시작된 감정은 이내 짜증으로까지 치닫는다.
아카이럼이 눈살을 찌푸렸다.
콧잔등을 씰룩이며 건너편 관객석에 앉아 있는 백발의 여인을 노려봤다.
‘영악한 노파 같으니라고.’
그는 이 모든 것이 다리아의 계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벽을 마주한 실력자가, 4써클 중반이라고 알려졌을 리가 없잖은가.
물론 실상은 그게 아니라, 단순히 실력을 드러낼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지만.
으득. 입술을 짓씹은 그가 자신의 스승, 블레인을 일견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담담한 얼굴이다.
하지만, 지금껏 아카이럼이 봐온 블레인의 성격은 상당히 냉정하면서도 칼 같았다.
‘만약 이번 친선 대결에서 패하게 된다면-.’
자신에게까지 그 여파가 미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제인 제론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내치지는 않을 것이다.
‘허나, 그와 다를 바 없는 취급을 당하겠지.’
희망이 있다면 아직 패배가 확정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일까?
실력은 동수, 마력의 질에서 우위를 점한 것은 저쪽이었다.
‘그렇지만 이쪽엔 경륜이 있다.’
경험이란, 세월이 쌓아 올린 힘이었다. 나이가 어린 이상 경험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인즉.
‘지금은 거기에 걸어보는 수밖에.’
그렇게 생각하며 아카이럼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끙.”
허나 그는 알지 못했다.
같은 4써클 마스터라고는 하나, 러셀과 제논 간의 실력 차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깊다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
.
건너편 객석에서, 블레인이 있는 쪽을 바라보며 다리아가 낄낄거렸다.
“저 늙은이, 담담한 척하고 있지만 분명 배알이 뒤틀리고 있을 게야.”
헤밍웨이 역시 같은 생각이라는 듯,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어렵지 않게 제론의 마법을 맞받아치고, 흘려내는 러셀을 바라보며 읊조렸다.
“그보다, 놀라운 성장 속도로군.”
자신이 처음 러셀을 봤던 것이 올해 초 무렵이었나?
그때부터 흐른 시간이라곤 고작해야 여섯 달하고 조금 더.
“고작 반년 남짓한 시간 만에 저 정도의 성장이라, 단순히 천재라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야.”
그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놀람이 깃들어 있었다.
그렇기에 다리아가 씩 웃었다. 팔꿈치로 그의 허리를 툭 찌르며 말했다.
“왜 그러시는가? 설마하니 이제와서 내기를 한 게 후회가 된다거나, 그러시는 건 아니겠지?”
천하의 창탑주가 말이야.
장난기 가득한 다리아의 음성에 헤밍웨이가 코웃음을 쳤다.
“흥.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로군.”
시답지도 않다는 듯, 다리아를 향해 한 손을 쫙 펼쳤다.
“앨런은 벌써 5써클일세. 저 아해의 성장이 아무리 빠르다 할지라도, 벽을 넘는 건 쉽지 않을 테지.”
“보채지 말라고, 이 영감아. 아직 기한은 5년이 넘게 남았으니 말이야.”
“그동안 앨런은 뭐 제자리에 멈춰 있을 거라던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두 노마법사가 서로를 향해 장난스럽게 으르렁거렸다.
그때, 그들 사이로 끼어드는 음성이 하나 있었다.
“경들도 참, 여전하시구려.”
오연하면서도 당당한 음성이었다.
자신들을 지칭하는 것이 분명한 그 음성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오. 경들.”
탄탄한 체구와 장신의 키, 그리고 얼굴을 가릴 만큼 챙이 넓은 모자.
그곳에서 두 사람이 마주한 것은 한 여인이었다.
모자의 챙을 들어 올리자, 머리칼과 눈이 살짝 드러났다.
뒤로 단정하게 묶어 숨긴 보라색 머리칼과, 이지적으로 반짝이는 자색의 눈동자.
그녀와 눈이 마주친 다리아가 환하게 웃었다.
“왕녀 전…….”
그보다 먼저, 왕녀가 검지로 입술을 눌렀다.
“쉿.”
엔디미온 왕국의 제1 왕위 계승권자이며 국왕, 라트모스 3세의 하나뿐인 여식.
헤카테 라트모스.
그녀가 재기 가득한 눈으로 웃음을 흘렸다.
“소란을 일으키고 싶진 않소.”
이어 품속에서, 콜로세움의 티켓을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다리아나 헤밍웨이와 같은 특급 좌석의 티켓이라.
“이리 와서 앉으시구려.”
다리아가 낄낄거리며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이 나라 지배자의 혈손에게 보이기에는 무례함이 없잖아 있는 말투.
하지만 헤카테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 부분을 지적하는 대신, 빙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워낙 어렸던 시절부터 서로를 봐온 두 사람이었던 지라, 피가 섞이지만 않았을 뿐.
조손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관계였으니까.
그녀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다리아 경이 막내 제자를 받았는데, 그 나이가 마침 나와 동년배라 해서 구경하러 왔다오.”
엄밀하게 말해 헤카테가 두 살 연상이긴 했지만, 동년배라고 부르기에는 큰 차이가 없었으므로.
“그런데…….”
기다란 다리를 서로 꼬며 턱 끝을 치켜들었다.
폭음과 폭연이 가득한 콜로세움의 한복판에서, 흑발을 휘날리는 머리칼을 내려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생겼군.”
음?
이게 무슨 소리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가만히 듣고 있던, 두 대마법사들을 벙찌게 만들기에 충분한 음성.
그런 와중에 연무장 속 흑발의 청년이, 거대한 불꽃의 창을 그러쥐었다.
화르륵.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