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63
63화
EPISODE.32
콰과과과과-!
폭음과 함께 제론의 몸이 실 끊어진 추처럼 날아갔다.
쿵!
콜로세움의 벽면에 처박히며 아래로 미끄러졌다.
형편없는 꼴로 바닥을 굴렀다. 눈을 까뒤집고 게거품을 문 것이 영락없이 기절한 모양새.
물론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뻗었던 창을 회수하는 것으로 폭발력을 줄이긴 했으니까.
그렇다 해도 써클이 흔들리고 내장이 진탕되는 충격을 피할 수는 없었을 터.
‘포션을 먹더라도, 적어도 한 달가량은 요양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러셀이 일순, 인상을 찡그렸다.
‘윽.’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손목을 응시했다.
욱신거리고 시큰거리는 통증.
이리저리 마법을 개량하는 동안 누적된 피로가 긴장이 풀리며 반 박자 늦게 밀려온 것이다.
‘조금 인대가 늘어났을지도.’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통증을 덜기 위해 손목을 부드럽게 주물렀다.
‘그래도, 예상했던 것보다 전투가 빨리 끝나긴 했어.’
개량형 블레이즈 랜스의 효과가 그만큼 좋았다는 의미겠지.
‘화력 자체는 본래의 버전이 위, 하지만 꿰뚫고 부수며 폭발하는데 있어서는 개량형 쪽이 위인가.’
둘의 장점 모두를 취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블레이즈 랜스의 완성형일지도.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이번엔 편두통이었다.
‘하긴, 당연한 일인가.’
전투의 와중에 몇 번이나 수식을 조정하고 변환했으니.
러셀이 쓰게 웃었다.
직후 니콜로가 입을 열었다.
“허허. 써클이 조금 진탕되고 내부가 상하긴 했지만 문제가 있을 정도는 아니군. 의식을 잃은 건 단순히 기절했을 뿐이야.”
쓰러진 제론의 상태를 확인하며 그렇게 말했다.
러셀을 향해 다가왔다.
“결판이 났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마법을 이용해 음성을 증폭시켰다.
“오늘 친선 대결의 승자는 러셀 레이먼드, 자네일세.”
승리를 선언하는 니콜로의 음성과, 알림을 들으며 러셀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그리 바쁜 것인지.
블레인과 아카이럼의 무리가, 서둘러 콜로세움을 빠져나가고 있는 게 보였다.
자신을 이용해 스승을 물 먹이려 했던 이들이 도망치듯 앞다투어 빠져나가는 꼴이라니.
생각했던 것 보다-.
‘퍽 보기 좋은 광경이야.’
한때 왕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야깃거리, 러셀과 제론의 친선 대결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러셀의 승.
남은 것은 대결의 과정과 그 결과가 새로운 이야깃거리로써 왕도를 다시 한번 달구는 일이었다.
* * *
결투장을 빠져나온 러셀은, 곧장 선수용 대기실로 향했다.
미리 준비해둔 새 옷으로 갈아입기 위함이었다.
특별히 다친 곳은 없다지만, 불똥이나 마법의 여파가 튄 탓에 옷차림이 엉망이었다.
“음.”
그렇게 새 옷을 입고 나서는 그를, 다리아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왔느냐.”
자랑스러움과 대견함이 묻어나는 눈빛.
그런 다리아의 옆에 첫째 사형인 버밀리온이 서 있었다.
“수고했네. 사제.”
그가 무쇠 팬처럼 커다란 손으로 러셀의 등을 퍽퍽 두드렸다.
이게 칭찬을 해 주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고통을 가하는 건지.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간 쉬지 않고 육체를 단련한 덕에 처음 당했을 때만큼 아프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감사합니다. 사형.”
두 걸음.
슬그머니 버밀리온의 근처를 벗어나며 러셀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휴버트 사형께선……. 오지 못하신 모양이야.’
가능하다면 마차를 타고 늦게라도 올라와 보겠다고 했지만, 일이 바쁘다면 어쩔 수 없지.
지금은 기말고사 기간이었으니까.
아카데미 교수의 입장에선 한창 바쁠 때였다.
이후 다리아가 입을 열었다.
러셀의 전신을 구석구석 쓸어본 후, 말했다.
“다행히도, 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구나.”
일말의 안도감까지 깃들어 있는 목소리였다.
그럴 수밖에, 그녀는 러셀의 스승이었으니까.
관객석에 앉아,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곤 하나 걱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초인 급 강자의 눈을 피해갈 만한 상처가 생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놓은 기분이 드는 것만큼은 그녀로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이게 부모의 마음이라는 거겠지.’
자식이 없는 그녀에게는 세 명의 제자 모두가 친자식 같았으므로.
일부나마 그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러셀이 다부진 목소리로 답변했다.
“저를 가르쳐주신 분이, 고작 이 정도 일로 부상을 당할 만큼 나약하게 단련시키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다리아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한 말이기도 했다.
“너스레 떨기는.”
다행히도 그 말은 효과가 있었다.
다리아가 피식하며 웃었다.
손끝을 뻗어 러셀의 머리칼 인근을 부드럽게 가볍게 매만졌다.
쉬이익.
손길을 따라 날카로운 바람이 흘러든다.
사각, 사각-.
흘러든 바람에 머리칼의 끝부분, 그 일부가 말끔하게 잘려 나갔다.
불길에 그을려 메케한 냄새를 풍기던 부분들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칼들을 바라보며 그녀가 낄낄거렸다.
“아무래도 단련의 수준을 더 높여야겠구나.”
분명 농담이겠지만, 왜 이리 오한이 드는 건지.
다리아의 훈련 강도를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오싹함을 느낀 러셀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이 퍽 흥미롭다는 듯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던 다리아가 곧 손뼉을 쳤다.
짝-.
“하지만, 그 전에. 일단 오늘은 승리를 축하하도록 하자꾸나.”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
염탑에 연락해 파티를 준비하라 일러둔 후였다.
자신들이 도착할 무렵에는 얼추 준비가 끝났을 터.
블레인.
그 영감의 배알이 뒤틀리고 있을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오늘은 소 한 마리쯤은 잡아야 할 것 같았다.
* * *
조촐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처음과는 달리, 축하 파티의 규모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설마 염탑의 인원 대부분이 축하 파티에 참석할 줄이야.’
1위와 2위.
블레인이 다리아를 숙적, 혹은 라이벌로 생각하는 만큼 그가 이끄는 앤티골 적탑과 염탑의 관계 역시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노골적으로 서로를 적대하는 앙숙까지는 아니었지만, 서로가 서로를 불편하게 여기고 경쟁하는 관계.
때문일까.
러셀이 제론에게 승리했다는 소식에, 염탑의 인원 대부분이 몰려와 함께 축하를 해주었다.
‘덕분에 받아 마신 술이 오십 잔은 될 것 같은데…….’
마력을 이용해 술기운을 배출하지 않았다면, 분명 인사불성이 되었을 테지.
‘술이 강하다는 것도 한몫했을 거고.’
스스로의 주량에 감사하며 집으로 돌아온 러셀이 풀썩,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후우-.”
길게 숨을 뱉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런저런 피곤한 일이 있었던 하루다. 평소라면 그대로 늘어져 잠을 잤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오늘은 그럴 수 없지.’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다.
똑똑-.
잠시 후,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저택의 고용인이 러셀이 부탁했던 것을 가지고 들어왔다.
“부탁하신 꿀물입니다. 마법사님.”
“-감사합니다.”
꿀물을 반쯤 들이키자, 따스한 온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가고.
정신이 한결 말끔해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품속에서 곱게 적힌 종이 한 장을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그건 임무 지령서였다.
염탑의 인장이 찍혀 있는 임무 지령서.
지령서를 건네받은 것은 파티가 마무리되어갈 무렵, 다리아에게서였다.
‘마지막 과제라.’
러셀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당시 다리아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다시 한번 회상했다.
.
.
“이것이, 마지막 과제란다.”
지령서를 건네며 하는 말에, 러셀이 멈칫했다.
“예?”
마지막이라니.
약속했던 네 개의 과제들 중, 이제 둘이 해결되었을 뿐이었다.
아직 두 개나 되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이라니.
의문 가득한 러셀의 표정을 다리아가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봤다.
“두 개의 과제를 해결했을 뿐인데, 어째서 마지막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기울이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스팬덤을 쓰러뜨린 것이 기특해서, 또한…….”
익스퍼드 급 오러 수련자, 그중에서도 어중이떠중이도 아닌 스팬덤을 쓰러뜨린 것은 충분히 공이 될 수 있었기에.
“내 명예를 지켜주고자 노력한 네가 기특해서 그런단다.”
명예니 이름값이니 하는 것들을 그리 중하게 여기는 편은 아니다.
허나, 그 알량한 것을 지켜주기 위해 나이 어린 막내 제자가 노력하는 모습은 또 별개의 문제.
-예. 이길 수 있습니다.
단호하기까지 하던 러셀의 대답을 떠올리며, 다리아가 칭찬했다.
“오늘 막내가 수고 많았구나.”
.
.
다리아의 칭찬을 뒤로하며.
다시 본래의 시간대로 돌아온 러셀이 찬찬히 눈을 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임무 지령서를 집어 들었다.
이미 설명을 들어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봐둔다고 해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사박-.
지령서를 펼치자, 그 안에 빼곡하게 쓰인 임무의 내용이 보였다.
‘왕국의 남쪽, 칼베인 산에서 발견된 유적의 탐사와 그에 대한 보고서의 작성이라…….’
칼베인, 왕도에서 일주일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산의 이름이었다.
깎아지는 듯 가파른 절벽과, 기암괴석들이 많아 숙련된 약초꾼들이 아니면 거의 발을 들이지 않는 산.
이 산에서 유적이 발견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보름 정도 전이었다.
큰비가 오며 일어난 산사태에 그 아래 깔려 있던 유적의 일부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유적?’
이맘때쯤 발견된 유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자신의 기억을 되짚었다.
‘없어.’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유적이 발견될 만한 일에 자신이 관여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적어도 내가 관여해서 생긴 일은 아니라는 건데. 그렇다면 추측할 수 있는 건 하나인가?’
회귀하기 전 과거에서도 이 유적은 발견되었으나, 어떤 이유로 세간에 알려지지는 않았다는 것.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허나 그거야 직접 가서 확인해보면 될 것인즉.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지령서의 내용에 집중했다.
‘유적이 지어진 것으로 추측되는 시대는 신화시대의 말엽, 혹은 그 직후…….’
러셀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신화의 시대, 그리고 그 직후.
둘 모두 이상하리만큼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시대였다.
대 전쟁이 일어났건, 혹은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 시절의 기록을 삭제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연원을 알 수 없는 자신의 능력이, 그 시대와 관련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미션]유적의 탐사.
새롭게 발견된 유적의 내부를 탐사할 것.
[보상]???
‘이렇게 미션이 나올 리가 없지.’
보상으로 나오는 것은 전에도 몇 번 본 적 있는 ‘???’.
러셀이 손바닥을 들어 심장 어림을 쓸어내렸다.
유적과 미션.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써클에 담긴 마력 역시 활발하게 생동하고 있었다.
마치 저 두 가지에 호응이라도 하는 것처럼.
우우웅-.
[미션]염탑주의 제안.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의 과제 4개 해결하기.
[보상]왕궁 비고의 물품 중 하나.
(다리아 스노우화이트의 권한을 넘지 않는 물건으로 제한).
중급 마석x1
[진행도]3/4
남은 과제는 단 하나.
이 유적 탐사마저 잘 해결한다면, 전날 박물관에서 보았던 심장을 손에 넣을 수 있겠지.
그리 생각하며 러셀이 조용히 눈을 감았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