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65
65화
EPISODE.33
슈피겔만 장로.
평민의 신분에서 시작해 왕도 황탑의 장로에까지 올라선 그는 마법사 계에선 꽤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워 메이지는 아니라지만, 5써클에 달하는 마법 실력은 절대 얕볼 수 있을 만한 것이 아니었다.
‘회귀 후에 딱히 인연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전생에서 프리랜서 일을 하며 멀찍이서 얼굴을 본 적이 있는 이였기에, 후배의 위치에 있던 러셀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슈피겔만 장로님을 뵙습니다. 염탑의 러셀 레이먼드입니다.”
그 공손한 인사에 슈피겔만의 눈매가 호선을 그렸다.
“오오, 자네가 바로 그 소문의 풍운아로군.”
손바닥을 뻗어 악수를 청했다.
“슈피겔만일세. 자네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저기서 자주 전해 들었네. 재능이 뛰어난 탓에, 염탑주께서도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러셀이 가볍게 웃었다.
“과찬이십니다.”
“과찬은 무슨. 자네는 이미 스스로의 실력을 입증하지 않았는가.”
스팬덤을 쓰러뜨린 것.
거기에 더해 제론과의 친선 대결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까지.
“자네 나이에 그 정도 실력을 갖춘 마법사는 역사책에서도 찾기 쉽지 않아.”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마냥 겸손을 떨어대는 것도 예의가 아니었기에.
러셀이 머쓱한 표정으로 웃었다.
얼굴에 금칠이 되는 기분은, 몇 번을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화제를 돌렸다.
베이스캠프의 뒤편, 임시로 마련한 산길을 응시했다.
“그보다, 현장을 한 번 직접 볼 수 있겠습니까?”
슈피겔만 만큼 마법 고고학에 정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러셀 역시 기본적인 조예라면 있었다.
아카데미의 교양 수업으로 마법 고고학에 관해 들은 적이 있는 데다, 회귀 전.
‘자잘한 유적 발굴에 참여한 적이 있었으니까.’
물론 큰 역할은 아니었지만.
이 시기에 발견되었음에도 회귀 직전까지 존재를 알지 못했던 유적이다.
한 번 봐둔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을 터.
러셀의 물음에 슈피겔만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 내 직접 안내해 주도록 할 테니 따라오시게.”
“장로님께서 직접 말씀이십니까?”
슈피겔만의 직위는 조사대의 총책임자.
그런 그가 자신의 안내역으로 나서겠다니.
닭을 잡는데 소 잡는 칼이 나서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걱정일랑 마시게. 방금 막, 오늘치 업무가 끝난 데다 보고서 역시 작성을 마쳤으니 말이야. 거기다…….”
그가 고개를 돌렸다.
산자락을 따라 뉘엿뉘엿 깔리기 시작하는 노을을 응시하며 말했다.
“마침 해도 저물어가지 않는가. 산책하기 딱 좋은 시간이지.”
.
.
슈피겔만의 말대로.
해가 지고, 산길을 따라 밤의 어둠이 옅게 깔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저벅, 저벅-.
잠시간의 침묵 가운데 먼저 입을 연 것은 러셀이었다.
“한 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장로님.”
“음?”
러셀의 물음에 묵묵히 앞서가던 그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마법계의 신성이 내게 묻고 싶은 것이라……, 나도 궁금하군.”
얼마든지 물어보라는 대답에 러셀은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흑발의 용사와, 뿔이 여럿 달린 용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평범한 동화 속의 이야기였다면, 그에게 묻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벽화를 목격했던 곳이 오래된 유적이었다.
슈피겔만에게 물을 이유는 분명했다.
러셀의 물음에 그의 걸음이 조금씩 느려졌다.
“흑발의 용사라, 자네와 머리색이 같군.”
이어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더니 물었다.
“그보다 뿔이 여럿 달린 용이라니, 그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었는가?”
그의 물음에 잠시 주저하던 러셀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자신이 가진 특별한 능력과, 그 연원에 대해 설명하긴 힘들지만 유적에서 본 벽화에 대해선 이야기 할 수 있었으므로.
“스승님께 임무를 받고 사교도를 추적해 나섰을 때의 일입니다…….”
불어오는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여름이라곤 하지만, 밤중의 산길이라 그런 것인지 꽤나 선선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슈피겔만은 러셀의 앞에서 걷고 있지 않았다.
걸음을 뚝 멈춘 채, 흥미진진한 눈으로 러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유적은 어떻게 되었는가?”
희열과 떨림을 숨기지 못하는 목소리였다.
“당시의 전투로 거의 대부분이 파괴된 데다, 남은 일부 역시 모래 속에 파묻혔습니다.”
“허어…….”
러셀의 말에 그가 탄식했다.
“그렇게까지 되었다면 다시 찾는 것도 쉽지 않겠구먼. 좋은 사료가 되었을 터인데. 아쉬워. 참으로 아쉬워.”
잠깐 입맛을 다셨다.
다시 몸을 돌려 앞서 걸은 그가 설명을 시작했다.
“여러 개의 뿔을 가진 용. 그 존재가 무엇인지는 나도 정확하게 답을 해 줄 수 없네.”
“그렇습니까…….”
슈피겔만의 말에 러셀이 아쉬움 가득한 표정으로 대꾸하며 고개 숙였다.
마법 고고학의 대가인 슈피겔만.
그런 그조차 단서를 줄 수 없다면 사실상 알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렇지만 유추해 볼 만한 존재는 있지.”
하지만 이어진 그의 한 마디는 러셀로 하여금 숙였던 고개를 들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유추해 볼 만한 존재 말입니까?”
“그렇네. 근래 발견된 유적들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몇 개의 단어가 있어서 말일세.”
“……?”
고개를 갸웃하는 러셀을 향해 그가 툭 내뱉었다.
“용신왕(龍神王).”
그렇지 않아도 지고한 존재라고 불리는 것이 바로 용, 드래곤(Dragon)이다.
그런 지고한 존재의 뒤에, 신과 왕이라는 이름까지 붙다니.
‘용들의 신인 동시에 왕이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일까?’
오만을 넘어 일견 광오하기까지 한 이름이 아닌가.
슈피겔만의 추측이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드래곤은 레드니 블루니 분류에 따라 하나 내지는 두 개의 뿔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지.”
하지만.
“그것을 넘어 마치 왕관이라도 된 듯, 여러 개의 뿔을 쓰고 있는 존재라면 용신왕이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지 않겠는가?”
꽤나 그럴듯한 추측이었다.
“용신왕…….”
러셀이 몇 번이고 용신왕이라는 이름을 곱씹었다.
“필요하다면, 탐사를 마치고 돌아간 후 그와 관련된 자료를 복사해 넘겨주도록 하겠네.”
“정말입니까?”
예상치 못한 호의에 반문하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졸업한 아카데미에, 소속된 마탑 역시 다르다지만 그래도 마법계에서는 선후배 사이 아닌가. 어려울 것도 아니야.”
조금 자신 없어 보이는 태도로 첨언했다.
“물론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발굴된 사료 전체에 있어, 용신왕이라는 단어가 차지하는 비중 자체가 너무도 단편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러셀에겐 충분한 도움이었다.
완전히 끊어지는 것보단, 별것 아닌 단서라 하여도 이어지는 편이 나았으니까.
이에 러셀이 크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그와 동시에 슈피겔만이 걸음을 멈췄다.
“그보다…….”
자신의 앞을 돌아보며 말했다.
“도착했군.”
유적의 입구가 보였다.
.
.
얼마 전, 산사태가 났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난장판인 광경이었다.
정리되지 못한 토사가 곳곳에 쌓여 있었고, 나무 등치나 뿌리로 보이는 것들이 곳곳에 박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성인 장정만 한 바위가 몇 널브러져 있기까지.
‘정리가 되어서 이 정도란 말이지…….’
새삼 굉장했을 것이 분명한 산사태의 위력에 감탄한 러셀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 되니까, 오래도록 발견되지 않았던 유적이 그 모습을 드러낸 거겠지.’
난장판의 정중앙에, 유적의 입구로 보이는 무엇인가가 우뚝 솟아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형태입니까?”
그 외견을 보며 러셀이 물었고, 슈피겔만이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알 수 없네.”
전보다 한층 가라앉은 눈으로 유적의 입구를 노려봤다.
“입구의 형태로 보자면 자네의 추측이 합당하다만, 우리는 아직 그 어떤 것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라네.”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러셀의 요청에 그는 대답 대신 걸음을 옮겼다.
성큼성큼, 유적의 입구를 향해 다가갔다.
아래로 이어지는 것이 분명한 입구를 향해 손을 밀어 넣었다.
그 순간.
파지지직-!
푸른 섬광이 튀어 올랐다.
섬광과 함께 슈피겔만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5써클 마법사의 몸을 밀어낼 만한 위력이라니, 러셀이 황급히 달려가며 그를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나는 괜찮네.”
다행히도 슈피겔만은 괜찮았다.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상처가 하나도 없어?’
뻗었던 손은 물론이거니와, 입고 있는 의복 역시 찢어짐 없이 멀쩡했다.
“보시다시피, 결계가 쳐져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네. 다행히 살상력은 없어 다친 사람은 없지만.”
어깨를 으쓱하는 슈피겔만을 뒤로 하며 러셀이 유적의 입구를 노려봤다.
“음.”
눈에 보이는 것은 칠흑 같은 어둠뿐.
아무리 밤이라곤 하나, 너무 어둡지 않나 싶었다.
마치 저 안의 공간이 세상과 단절되기라도 한 것처럼.
‘공간단절, 혹은 차단이라니…….’
어느 쪽이건 터무니없긴 마찬가지다.
혹시나 싶어 라이트(Light) 마법을 흩뿌려 보았지만 별반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파지직-!
라이트 마법 역시 푸른 섬광에 막혀 소멸되었을 뿐.
“몇 가지 실험을 해봤지만, 모두 다 소용없었네. 이 결계를 해제하기 전까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리일 테지.”
만약 입구에 펼쳐진 마법이 정말로 공간단절이라면, 이곳에 있는 인원들로 이 마법을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이 시대의 누가 오더라도 가능성이 높지 않을 거야.’
공간단절은 최소한 9써클이 된 후에야, 비로소 시도해봄 직한 마법이었으므로.
9써클.
인간으로 태어나 필멸자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초월자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라던가?
하지만 근 천 년간 9써클의 경지에 도달한 마법사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8써클 마법사들만이 한 세기에 몇몇 존재해왔을 뿐.
그런데 그 9써클 마법의 잔재가 지금 눈앞에 남아 있는 것이다.
어쩐지 가슴 한켠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며 러셀은 생각했다.
‘이 유적의 존재가, 왜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이제야 납득이 가는구나.’
결계를 해제하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유적.
짐작건대, 회귀 전에도 이 결계를 해제하는 것은 실패로 돌아갔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1급 이상의 기밀로써 세간에 공표하지 않고 그대로 묻은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이 이 유적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한 이유 역시 설명이 되었다.
‘문제는 그렇게 되면 이번에도 달리 손쓸 도리가 없이 이 유적을 방치해야 한다는 건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기에 러셀이 손을 뻗었다.
푸른 섬광의 결계가 막아서고 있는 곳, 어둠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슈피겔만 역시 대수롭지 않은 듯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순간.
화악!
러셀의 손끝이 결계를 통과했다.
[용(龍)의 눈을 지닌 마법사여, 마법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이해와 직관을 깨우칠지어다.]입구의 어둠이 그의 전신을 집어삼켰다.
화아악-!
입구에 홀로 남은 슈피겔만이, 러셀을 집어삼킨 어둠을 일별하며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허어-!?”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