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66
66화
EPISODE.33
“허어.”
종종걸음으로 유적의 입구를 빙빙 돌며 당황스런 탄식을 토해내길 몇 차례.
슈피겔만이 냉정을 되찾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음…….”
혹시나 하는 걸음으로 다가간 슈피겔만이 손을 뻗었다.
러셀을 받아들인 어둠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그 순간, 파지직-.
푸른 섬광이 튀어 올랐다.
이전에 그랬듯 자신의 몸이 밀려난다.
뒤로 두 걸음, 조금 멀어진 어둠을 바라보며 슈피겔만이 중얼거렸다.
“허어, 이건 아무래도…….”
오래전 책에서 읽었던 유적의 한 종류가 머릿속에 떠오른 탓이었다.
“주인을 직접 선택하는 유적이라.”
그런 유적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기야, 이런 식의 유적이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이 벌써 몇백 년 전의 이야기니.
어린 나이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마법사.
그리고 그런 마법사를 선택한 고대의 유적.
떠들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이야깃거리는 또 없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피겔만은 웃을 수 없었다.
홀로 유적 속에 들어간 러셀을 질투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세상의 법칙이라는 그물이 얼마나 촘촘한지 어느 정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을 뿐.
‘도대체 이 세상은 저 청년에게 어떤 운명을 가져다 놓으려고 이러는 것인지.’
여기까지만 놓고 본다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영웅담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가 영웅으로 불리기까지의 이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이 존재할 터.
‘부디 내 걱정이 기우였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생각하며 슈피겔만이 몸을 돌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으니 추가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보다, 유적이 주인을 선택한 경우에는 어떻게 되더라…….’
아마도 그 유적 속에서 얻은 모든 물건에 대한 소유는 선택받은 자에게로 일임되었던 것 같은데.
케케묵은 규칙을 떠올리길 얼마간, 일순 슈피겔만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일을 염탑주님께 어찌 보고드려야 할지.’
작성할 보고서의 내용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골이 아팠다.
“휴우,”
절로 한숨이 났다.
그리고-.
-숲의 어둠에 숨어 그 광경을 지켜보는 눈 한 쌍이 있었다.
손바닥만 한 체구에, 제 몸만큼이나 기다란 꼬리. 그리고 붉은 빛을 발하는 두 눈까지.
찍-.
쥐새끼 한 마리가 울음을 터뜨리며 몸을 틀었다.
슈피겔만이 내려가는 산길과는 다른 방향을 향해 서둘러 내달렸다.
찌찍.
* * *
“어-?”
당황스럽기는 러셀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튕겨져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손을 내뻗었거늘.
‘도리어 빨려 들어오다니.’
고개를 갸웃한 러셀이 몸을 돌렸다. 방금 전 자신이 들어온 입구, 이제는 출구가 된 방향을 확인했다.
밖에서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세상과 단절된 듯한 어둠이 출구를 막아서고 있는 것이 보인다.
들어오는 것이 가능했다면, 나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러셀이 다시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파짓!
푸른 섬광이 피어오르며 러셀의 손끝을 밀어낸다.
‘들어오는 건 가능하지만, 내보내 줄 수는 없다는 건가.’
단호한 의지마저 느껴지는 결계에 러셀은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면 남은 것은 유적의 안으로 전진하는 것뿐.
그러기에 앞서, 러셀은 먼저 결계 안으로 들어오며 들었던 말을 곱씹었다.
[용(龍)의 눈을 지닌 마법사여-.]‘마법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이해와 직관을 깨우칠지어다.’
이걸로 확실해졌다.
이 유적은, 자신의 능력과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마 구조는, 전날 폼페이오 화산에서 봤던 것과 비슷한 형식이겠지.’
어떤 형태의 과제를 내고 그 과제를 해결하며 보상을 지급하는 형식.
차이가 있다면 아직 과제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야 하나?’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러셀의 손가락이 허공을 그었다.
스윽-.
그 궤적을 따라 일어난 빛들이 뭉치며 구의 형태를 이룬다.
1써클 발광마법인 라이트(Light).
러셀은 먼저 라이트를 앞으로 전진시켰다.
주변 구조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밖에서 추측했던 대로, 계단을 이용해 지하로 내려가는 방식.’
나선형의 계단이 아래쪽으로 쭉 이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주변의 벽면을 따라, 룬어들이 곳곳에 나열되어 있었다.
아무런 형식도, 규칙도 없이 늘어진 룬어들.
‘이제 막 글을 떼기 시작한 아이가 만든 문장 같아.’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유적은 공간 단절이 사용되었을 만큼 수준 높은 곳이었으므로.
‘조사하다 보면 그 이유도 알 수 있겠지.’
판단을 마친 러셀이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계단을 내려가자 직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일자로 길게 뻗은 통로였다.
벽면에 나열된 알 수 없는 글자들 역시 그대로.
저벅, 저벅-.
언제 어디서 무엇이 튀어나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러셀은 통로를 따라 걸었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오래된 유적을 밟는 구둣발 소리가 규칙적으로 울려 퍼진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뭔가 이상함을 느낀 러셀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일자의 통로.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통로가 끝나지 않는다.
‘벌써 몇 시간을 걸은 것 같음에도 말이지.’
직선 통로로 두 시간.
이미 칼베인 산맥을 넘어섰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거리였다.
뭔가 이상했다.
마치 같은 장소를 계속해서 빙빙 돌고 있는 것만 같은 위화감…….
‘설마?’
혹시나 하는 생각에 러셀이 손을 움직였다.
매의 발톱처럼 날카롭게 손가락을 굽혔으며 그 위로 마력을 덧씌웠다.
지이이잉-.
샤프니스 클로, 혹시나 하는 근접전에 대비한 2써클 마법.
휘둘러진 손끝이 벽면의 일부를 사납게 햘켰다.
콰득, 후두둑-.
뜯겨나간 돌조각이 형편없이 바닥을 굴렀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약 두 뼘 길이의 상흔이 셋, 이만한 흔적을 알아보지 못할 리는 없었으므로.
그리고 다시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
여전히 일자로 뻗은 통로의 중앙에 러셀은 멈춰 서 있었다.
그런 그의 앞 벽면에는, 두 뼘 길이에 달하는 손톱자국이 아로새겨져 있을 따름이었다.
.
.
‘역시나.’
자신이 남긴 흔적을 바라보던 러셀이 슬쩍 주먹을 말아 쥐었다.
‘같은 자리를 계속해서 돌고 있었던 게 맞군.’
지금까지 느껴졌던 위화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첫 번째는 이 유적의 구조가 도넛 같은 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구조라면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도는 것도 말이 되었다.
하지만.
‘기각.’
러셀은 단박에 그 추측을 폐기했다.
‘그랬다면 처음 들어왔던 입구를 한 번쯤은 지나쳤어야 해.’
그렇기에 도넛의 형태는 아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는-.
‘어느 지점에서 지점까지의 공간이 이어 붙여져 있다는 거겠지.’
고차원적인 마법에 의해서.
‘……마법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직관을 깨우칠지어다.’
그제야 처음 들렸던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법적인 방식으로 이 공간을 이해하고 직관하여 벗어나란 건가.’
어쩌면 이게 시험일지도.
화아악-.
발끝을 따라 흘러나온 마력이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주변에 위치한 마력의 흐름을 읽어 들이며 일대를 감쌌다.
바닥에서 위로.
벽면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개미 떼가 바닥을 뒤덮고, 벽을 을 타고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촘촘한 마력의 움직임.
‘번거로운 데다 마력 소비 역시 많지만…… 어쩔 수 없지.’
정보량이 바닥인 상황에서 마법의 구조를 파악하려면 전체를 읽어내는 것이 최선이었으므로.
상승하는 마력을 통해 가장 먼저 전해진 것은 구조적인 정보였다.
이어 벽면을 따라 나열된 마나 구조가 머릿속으로 흘러들고, 러셀이 침음했다.
‘음.’
이해와 직관.
두 가지 힘을 동원해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에 대한 수식을 조금씩 써 내렸다.
수십, 수백 줄에 달하는 수식이 마력 회로처럼 복잡한 구조를 타고 뻗어나가기 시작한다.
‘수식 하나하나가 복잡하거나 고차원적인 건 아니야.’
문제는 그 수식들이 이루고 있는 전체의 구조였다.
‘사중? 아니 오중 복합 마법진을 입체 좌표에 접목시킨 건가?’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정보량.
떨어져 내린 땀방울이 턱선을 따라 송골송골 맺혀든다.
코끝에도 붉은 기색이 살짝 비쳐졌다.
4써클 마스터에 오른 이후로 이만큼이나 머리를 써본 것이 얼마 만인지.
정신력은 물론 체력마저 요할 정도로 고되고 어려운 작업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쉬지 않았다.
피로감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양 의지를 불태웠다.
머리가 터져 나갈 정도로 아득한 정보의 바다, 그 속에서 흘러드는 심상의 편린.
그 편린을 움켜쥘 때마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앎’이 머릿속을 때리고 지나간다.
이런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충격과 놀라움을 선사했다.
‘내가 알던 마법은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정도에 불과하다는 거겠지.’
희열에 가까운 감각 속에서 러셀은 말갛게 웃었다.
.
.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신경을 쓰고 있었다면 몰라도.
정신력을 그곳에까지 분산시킬 여력이, 지금의 러셀에게는 존재하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 일이 일어났다.
우연 속에서 태어난 필연.
층층이 쌓인 심상과 노력을 관통하는 한 줄기의 발상.
그것은 직관이라는 화살이 되어 단숨에 모든 수식을 꿰뚫었다.
쾅!
머릿속에 뇌광이 떨어졌다.
러셀의 주변을 둘러싼 공간이 일변하기 시작했다.
들썩이는 가슴과 어깨, 이윽고 지친 기색 가득한 얼굴로 러셀이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는 공간을 응시하며 내뱉었다.
“……성공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마법을 파훼하기 위한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만약 이것이 완성된 마법이었다면 지금 러셀의 실력으로 이를 파훼하는 것은 절대 무리였겠지.
하지만, 애초부터 파훼를 위해 설계된 것이었기에 무너뜨릴 수 있었다.
찰나가 한 시간이라도 된 듯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성공’이라는 결과물이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 역시 적지 않았다.
‘이런 식의 학습, 혹은 수련-.’
이걸 학습이나 수련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이름 붙이기로 했다.
‘수련을 몇 번만 더 할 수 있어도…….’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펼쳤다.
5, Ⅴ.
다섯이라는 숫자를 한동안 되뇌다 고개를 흔들었다.
주변을 둘러싼 공간이 완전히 바뀐 것도 그쯤이었다.
뒤편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방금 전 러셀이 내려온 나선형의 계단.
아무래도-.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마법에 갇혔던 건가.’
언제 발동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은밀한 마법의 발동.
과연 신대의 유적이라는 건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들어 올린 러셀의 앞을 거대한 문과,
[제 1관문]‘제 1관문’이라는 글씨가 막아섰다.
방금 전 통과한 것이 제 1관문.
‘1관문이 있다는 건…….’
2관문, 혹은 3관문도 있다는 것이었기에.
피로감 가득하던 러셀의 얼굴 위로, 작게 미소가 번졌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