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67
67화
EPISODE.34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아니 어쩌면 보름, 그 이상이 흘렀을지도.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를 세는 것은 이미 무의미했다.
애당초 러셀에게 그 정도 여력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하나하나 닥쳐오는 관문을 통과하는데 온 신경을 쏟고 있었으므로.
화르륵, 화르르르륵-.
두 번째 관문은 문자 그대로의 초열지옥(焦熱地獄)이었다.
사방에서 불길이 붉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덮쳐왔고, 마그마의 격류가 쉴 새 없이 몰려들었다.
화염 속성 마법에 익숙한 러셀이라 할지라도, 채 몇 시간을 견뎌내지 못할 열기.
‘아마 그곳에서, 서른 번은 넘게 죽었던 것 같은데.’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일이 일어난 장소가 시험의 내부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죽음의 순간 어느 정도 이상의 충격은 자동으로 차단이 되었으며 또한.
‘진짜로 죽지 않고 재도전할 수 있었으니까.’
만약 시험이 아니라 현실이었다면, 시체는 고사하고 뼛조각조차 남지 않았겠지.
세 번째 관문의 배경이 된 곳은 망망대해(茫茫大海)였다.
콰릉, 쿠르릉.
철썩, 콰적, 쏴아아아-.
쉬지 않고 벼락이 떨어지며 폭풍과 집채만 한 파도가 몰아치는 망망대해.
그곳에서 러셀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간신히 몸을 누일 수 있는 작은 조각배 하나뿐.
파도에 삼켜지며 들이킨 바닷물의 짠맛이 아직도 입안을 감돌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폐가 소금에 절여졌을지도 몰랐다.
현실이 아니라곤 하지만 어느 하나 고통스럽지 않은 죽음이 없었다.
트라우마가 남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다.
‘애당초 그렇지 않도록 마법으로 인해 보호받고 있을지도 모르고.’
허나 그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바로 네 번째 관문에 있었다.
두 자릿수 초입을 아득하게 넘어서는 횟수의 소사(燒死).
후에 이어진 것은 거기에 준할 정도의 익사(溺死).
그 너머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꿈이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과 기회가 한순간의 꿈이라고 보여주는 듯한 광경.
‘스승님의 제자가 되지도 못했고, 과거로 돌아오지도 못했으며…….’
여전히 절맥을 치료할 방법을 찾기 위해, 온갖 궂은일들을 해 나가는 삶.
절망으로 가득한 삶이자 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 자신의 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손과 발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저도 모르게 입이 뻐끔거리며 온갖 비관적인 미래에 관한 말들을 쏟아냈다.
러셀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이 세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
‘수식의 구조를 비틀어 구성한 마법진.’
‘일곱 개의 마법진을 하나로 묶고, 그걸 다시 사 중첩 이상으로 쌓아 올린 건가.’
‘어딘가 분명 수식의 중심이 되는 구결, 핵이 있을 텐데-.’
비참하기 짝이 없는 꿈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마음이 꺾이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 노력했다.
이 세계에서 벗어나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고자 발버둥 쳤다.
그런 러셀의 노력이 빛을 발하기라도 하듯, 마법진의 구조가 조금씩 분석되기 시작한다.
물론 지금의 러셀로서는 흉내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고차원적인 마법이다.
하지만.
‘전체를 당장 내 것으로 만들 필요는 없어.’
필요한 것은 이 꿈에서 벗어날 정도의 이해, 그것을 꿰뚫을 만큼의 직관.
앞선 관문들로 단련된 이해와 직관을 동원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공을 회전하는 바늘구멍에 실을 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지 않은가.
그리고-.
파앗.
그 순간은 마치 섬광처럼 일어났다.
한껏 날카롭게 다듬어진 이해가.
그것을 촉으로 삼은 직관의 활이 회전하는 바늘구멍에 실을 꿴 것이다!
머릿속을 때리는 벼락과 함께 무엇인가가 몸속에서 폭발했다.
쾅!
.
.
화아악!
찬란한 빛과 함께 절망만이 가득하던 꿈의 세계가 무너져 내렸다.
뒤이어 드러난 것은 적당한 크기의 공간과, 그 중심에 자리한 제단이었다.
계속해서 이어져 오던 몇 개의 관문이 마침내 끝을 드러낸 것이라.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그 광경을 확인할 수 없었다.
온갖 종류의 정보와 감각이 마치 격류라도 된 듯 머릿속을 휘젓고 있었다.
관문을 돌파하며 새롭게 얻은 것을.
기존에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층층이 쌓이며 세상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었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경계가 한층 넓어진다.
‘이게 무슨…….’
그 생소한 감각에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보다 먼저, 격통이 쏟아졌다.
“……!?”
――――――!!!!!
“커헉-!”
외마디 신음과 함께 러셀의 신형이 허물어져 내렸다.
제 자리에 주저앉는 것과 동시에 한 손으로 자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다른 한 손으로 손톱의 날을 세우며 바닥을 긁었다.
‘갑자기 마력이-!’
네 개의 써클이 무엇인가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쏟아져 나온 마력이 전신의 마나로드를 내달리며 사납게 날뛰어댔다.
마치 고삐 풀린 야생마의 그것과 같았다.
“끄윽-.”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드는 충격!
러셀이 이를 악물었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으득-.
짓씹은 입술을 따라 핏물과 함께 비릿한 혈향이 몰려든다.
“흐.”
정신이 조금 깨어나는 것을 느끼며 러셀은 자세를 바로잡았다.
다급히 써클링 작업을 시작했다.
‘통제해야 해.’
이대로 두었다간 날뛰는 마력에 써클이 터져나갈지도 모른다.
자신의 마력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는 마법사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스으읍…….”
숨을 들이쉬고 내쉬길 몇 차례, 러셀의 가슴팍이 볼록하게 솟아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그와 함께 전신을 좀 먹던 고통 역시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다행히 마력의 통제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마구잡이로 날뛴 것이 언제였냐는 듯, 금세 온순한 양처럼 변모하며 러셀의 의지를 따랐다.
문제가 있다면-.
‘속도가 조금 더디다는 점인가?’
물론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부터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었지만.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구잡이로 날뛰어대던 마력은 이미 온순하게 변한 지 오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
아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날뛰어대던 마력을 진정시키기 무섭게, 한층 넓어진 감각을 통해 다양한 깨달음이 머릿속으로 몰려든 것이다.
화아악!
거칠 것 없이 몰려든 깨달음들이 마치 바다와 같이 펼쳐지며 러셀의 의식을 집어삼킨다.
광풍이 몰아치고 파랑이 일어나는 바다가 아닌, 잔잔하게 펼쳐진 대해(大海).
그 속에서 러셀은 자신을 잊었다.
무아(無我)의 경지에 빠진 채, 머릿속에 펼쳐진 대해 위를 표류했다.
스르륵-.
정돈되었던 마력이 다시금 움직이며 심장으로 모여든다.
그와 함께 고요히 회전하고 있던 네 개의 써클 위로, 또 하나의 원이 덧대어졌다.
키이잉-.
조금의 불협화음도 없이 앞선 네 개의 원들과 어우러지며 회전을 시작하는 새로운 써클.
우우우웅-.
필요한 자리에 꼭 맞는 톱니바퀴가 맞물린 것만 같았다.
그리고, 알림음이 들려왔다.
[5써클을 달성하셨습니다.]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아직 무아에 빠져 있는 러셀로서는 듣지 못할 소리.
[보상으로 상급 마석(식용), 중급 마석(식용)x3, 하급 마석(식용)x5를 지급합니다.]상급 마석.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어진 적이 없는 보상이었다.
게다가, 아직 보상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
‘???’이라고 표기되었던 가장 중요한 보상이 남아 있었던바.
[보상으로 용혈(龍血, Dragon Blood)을 지급합니다.] [용의 인자 다량 발현.] [육신을 재구성합니다.]다섯 번째 써클이 태어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변화가 러셀의 몸을 집어삼켰다.
* * *
스스스슷-.
붉은 안개와도 같은 기운이 일어나더니, 이내 러셀의 전신을 휘감았다.
곧이어 러셀이 숨을 들이킬 때마다, 코와 입을 통해 붉은 기운이 체내로 스며들고.
흘러든 기운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마법사의 두 번째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
바로 마나로드였다.
졸졸졸졸-.
시냇물이 흘러드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리며 용혈이 마나로드 곳곳을 누빈다.
쿵, 쿵, 쿵, 쿵-.
그때마다 작은 소리가 울렸다.
마치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소리.
바로 마나로드 곳곳에 자리한 벽들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였다.
까드득-
끔찍한 소리와 함께 온몸의 마나로드가 일제히 뒤틀렸다.
만약 무아(無我)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거품을 물고 기절했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고통이라.
이대로 꼬인 상태가 계속 유지된다면, 마법사로서의 삶은 물론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삶마저 폐인이 될 것이 분명했다.
푸쉬쉬-.
다행히도 마나로드가 제 모습을 되찾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본 모습으로 돌아온 마나로드의 외벽은 전보다 훨씬 질겨져 있기까지 했다.
마법사로써는 다시없을 기연.
게다가 변화는 한 번만이 아니었다.
더욱이 한 곳만도 아니었고.
휘드득-!
풀렸던 마나로드가 다시 한번 뒤틀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근육 역시 함께였다.
우득, 까득, 우드득-.
근골이 뒤틀리고, 팽창과 신축을 반복할 때마다 기괴한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끔찍할 정도의 고통이 동반될 것만 같은 소리였다.
놀라운 점은, 한 차례 소리가 그칠 때마다 러셀의 몸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팔다리가 조금씩 길어진 것은 물론, 전신을 따라 쉬지 않고 땀이 흘러나왔다.
땀이 흘러나온 자리마다 고약한 악취가 풍기기 시작하고, 사박, 사바박.
러셀의 피부가 벗겨졌다.
뱀이 허물을 벗기라도 하듯, 각질이 떨어져 나오며 피부가 깨끗해져갔다.
바디 체인지(Body Change).
뼈를 바꾸고 태를 벗는다 하여 동방에선 달리 환골탈태(換骨奪胎)라고도 불리는 변화가 지금 러셀의 몸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완전한 환골탈태는 아니었다.
진짜 환골탈태는,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 초인(超人)의 경지에 발을 디딘 후에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까.
허나, 그에 준하는 일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우득, 우드득, 우득-.
까득, 콰드득-.
뒤틀리고 어긋나는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알림과 함께 몇 개나 되는 창이 러셀의 주변으로 떠올랐다.
[용혈의 기운을 일부 받아들이는데 성공하셨습니다.] [뼈와 근육, 써클과 심장, 그리고 마나로드가 용의 그것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용인화의 부담이 전보다 줄어들었습니다.] [총 2단계에 걸친 부분 용인화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1단계 용인화의 경우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적인 변화가 많이 줄어들게 됩니다. – 눈, 송곳니] [용인화의 순간, 깨어나는 드래곤 피어의 농도가 전보다 진해집니다.]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