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68
68화
EPISODE.34
러셀이 깨어난 것은 그로부터 몇 시간이 더 지난 후였다.
이 유적 안에 들어온 후로 며칠이 흘렀는지 짐작할 수는 없었지만.
그를 깨운 것은 바닥을 타고 올라오는 한기와, 주변에서 흘러드는 썩은 내였다.
바람이 들지 않는 탓에, 배출된 노폐물에서 흘러나온 악취가 한곳에 고여 있었던 탓이다.
“으음-.”
코끝을 씰룩이며 침음과 함께 눈을 뜬 러셀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썩은 내.
손에 묻은 노폐물로부터 흘러든 썩은 내가 비강을 쉴 새 없이 찌르고 있었다.
“허-.”
주변을 둘러보던 러셀이 탄식을 뱉었다. 이래서야 오물 구덩이에 누워있는 꼴이 아닌가.
‘나는 분명 유적 안에 있었는데-.’
도대체 이 많은 오물은 어디서 쏟아진 건지.
‘일단 대충 정리 좀 하고, 옷부터 새로 갈아입어야겠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들을 확인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고,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
눈에 보이는 풍경이 미묘하게 달라진 것만 같았기에.
‘왠지 모르게 시야가 조금 높아진 것 같은데.’
우선은 이 썩은 내부터 해결하자.
그렇게 생각한 러셀이 옷을 벗은 후, 빠르게 클린 마법을 사용했다.
‘물로 씻어내는 것도 좋겠지.’
촤악-!
생각이 끝나기 무섭게 물덩이가 머리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매끄러운 마법의 발현.
차가운 물이 전신을 씻어 내리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5써클.’
마법사에게 있어 써클은 신체의 일부와도 마찬가지다.
5써클에 올랐다는 것은 깨어난 순간부터 느낄 수 있었다.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웃은 것은, 마법을 사용했을 때. 그 점을 더욱 분명하게 체감할 수 있어서였다.
‘어쩐지 마법의 발현 속도가 상정했던 것보다 더 빠른 것 같기도 하고?’
러셀의 눈이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을 순차적으로 훑었다.
답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용혈의 기운 일부를 받아들이는 데 성공하셨습니다.]‘뼈와 근육, 써클과 심장, 그리고 마나로드가 용의 그것과 비슷한 성질로 변했다고?’
용(龍). 혹은 드래곤.
마법의 시조이자 조종이라고까지 불리는 그들이었다.
다시 말해 그들의 육체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이야기.
그런 그들과 일부나마 육체가 비슷해졌다니.
깜짝 놀란 러셀이 서둘러 마력을 운용했다.
그 말대로, 마법의 발현이 전보다 한층 빨라진 것이 느껴진다.
단순히 벽을 넘어서서 그렇다고 하기엔 그 정도가 과했다.
게다가-.
‘마나로드 역시 훨씬 굵고 튼튼하게 변했어.’
천형을 타고났던 기존의 마나로드는 물론, 위저드 바디와 오버로드를 이용해 새롭게 만든 마나로드에까지 변화가 일어나 있었다.
다만 뼈와 근육이 달라졌다는 말은 아직 실감하기 힘들었지만.
‘다음은…….’
부분 용인화가 가능해졌고, 부담감이 줄어들었다는 알림이 보였다.
‘눈과 송곳니만 변한다면, 확실히 용인화를 숨기기엔 좋겠네.’
송곳니는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었고, 눈을 변하게 만드는 마법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핑계를 대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실험해 보고 싶었지만-.
‘일단은 다음 기회로 미뤄둘까.’
아무리 부담감이 줄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으므로.
몸 상태에 대한 점검을 마치며, 인벤토리를 연 러셀이 여벌의 옷을 꺼냈다.
몸에 묻은 오물과 악취는 마법을 통해 씻어냈다지만, 옷에 스며든 것을 어찌하기엔…….
‘……차라리 환복을 하는 게 여러모로 편해.’
스륵, 스륵-.
옷과 구두, 로브를 갈아입기 무섭게 러셀은 걸음을 옮겼다.
뚜벅, 뚜벅-.
구둣발 소리를 내며 공동의 정중앙, 우뚝 솟은 제단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분명 지난번, 폼페이오 산에는 이 제단 위에 붉은 뿔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며 손끝으로 제단을 훑는 순간.
화악!
환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알림이 들렸다.
마침내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제단 위에 놓여져 있는 것.
‘가면?’
그것은 바로 새 부리 가면이었다.
새 부리처럼 길쭉한 코와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겉을 제외하면, 딱히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는 외형이라.
무심코 손을 뻗은 러셀이 가면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가면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흘러들기 시작했다.
보상으로 클라우디 링이 지급되었을 때와 똑같은 현상이었다.
‘첫 번째 황금가면.’
굳이 착용할 필요 없이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맑게 하며, 사고(思考)를 보조하는 힘이 깃들어 있는 가면이었다.
‘첫 번째라는 말은, 두 번째나, 세 번째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굳이 착용할 필요 없이 몸에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 효과가 발휘되는 것은 그래서였을지도.
‘얼굴이 셋이 아닌 이상, 세 개의 가면 모두를 착용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이야.’
머릿속에 흘러든 설명대로, 손끝이 닿고 있을 뿐인데 왠지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상태에서라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러셀이 얼굴 위로 가면을 착용했다. 자유로워진 양손으로 허공을 짚었다.
다섯 개의 써클이 맹렬히 회전하며 양손으로 마력을 쏟아내고, 파직, 화르륵!
불꽃과 전격이 함께 튀어 올랐다.
서로 다른 속성의 두 마나가, 손끝을 따라 안정적으로 감도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쾌재를 불렀다.
‘된다!’
한 손에 하나씩, 더블 캐스팅이었다.
‘-이게 된다고?’
놀란 러셀이 토끼 눈을 해 보였다.
5써클부터 더블 캐스팅이 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모든 5써클 미법사가 그것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벽을 넘어선 마법사들 중에서도, 일부.
연산과 마력 조절 능력에 재능이 있는 일부만이 가능한 것이 더블 캐스팅이었으니까.
그게 아니라면 몇 달, 혹은 몇 년 이상의 고련을 해야 했거나.
그런데 막 경지에 올라선 시점에서 더블 캐스팅이 가능할 줄이야.
‘그것도 이렇게 자연스럽게.’
아티펙트의 힘을 빌린 것이라곤 하지만, 엄청난 소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벼락과 불꽃을 응시하길 얼마간, 러셀이 양손을 흔들어 마법을 흩어 버렸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소득이 훨씬 많아.’
처음에는 미션을 해결해 보상을 얻고, 스승님의 마지막 과제를 완수할 생각으로만 온 것이었는데.
설마하니 5써클로 올라설 깨달음까지 얻게 될 줄이야.
‘어쩌면, 이 유적 자체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준비였을지도.’
가능성이 꽤 높은 추측을 뒤로하며 러셀이 몸을 틀었다.
이 유적에서 얻어야 할 것은 모두 얻었을 터.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적을 감싸고 있던 결계의 존재도 희미해졌고.’
이제는 밖으로 나가야 할 때였다.
* * *
‘관문을 통과하면서 들어오느라고 미처 몰랐는데…….’
돌아 나가는 통로는 러셀이 생각했던 것보다 길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통로가 쭉 이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족히 십분 이상은 걸어야 할 터.
러셀은 그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걸음을 옮기며 이런저런 것들을 실험했다.
‘5써클에 올랐다곤 하지만, 나는 이제 막 발을 걸친 정도에 불과해.’
새롭게 올라선 경지에 적응하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한 것이 당연지사.
‘돌아간 후에, 스승님과의 훈련 시간을 조금 더 늘리는 것도 좋겠지.’
실전, 혹은 그에 준하는 훈련만큼 새로운 경지에 적응하기 좋은 것은 없다.
러셀이 생각하기에 다리아의 훈련은 실전에 준할 수준이기도 했고.
물론 늘어날 훈련 양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의 성취에 기뻐할 스승의 얼굴을 생각하면 마냥 피로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던바.
그때였다, 바람이 불어온 것은.
후우우웅-.
옅은 바람이 귀밑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결계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에 바람 역시 드나들 수 있게 된 것일 터.
그리고 그 바람에 섞여 있는 것은 미미한 혈향과 메케한 탄 내…….
‘혈향, 그리고 그을린 향이라고?’
유적 발굴의 현장이다. 크고 작은 사고가 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고작 그 정도 사고로 바람에 혈향이 묻어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인즉.
스으윽-.
러셀의 두 눈이 절로 깊게 가라앉았다.
문제가 생겼다는 생각이 드는 것과 동시에, 러셀의 발끝이 바닥을 박찼다.
질풍으로 화하며 남은 통로를 질주했다.
콰과과과-!!
* * *
아수라장, 혹은 아비규환.
동방에서 넘어왔다는 이 단어들 보다 지금의 상황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다.
베이스캠프 곳곳이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주변에는 피와 시체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으, 으으으…….”
“사, 살려…….”
살아남은 이들의 상황 역시 그리 좋지 않았다.
팔다리가 잘려 나간 이는 물론, 장기가 쏟아지는 이 역시 있었다.
당장 응급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허억, 허억-.”
그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슈피겔만이 거친 호흡을 내뱉었다.
아수라장이 펼쳐진 베이스캠프의 한복판이 마지 제집 인양 앉아 있는 세 인영들을 향해 씹어 뱉었다.
“……삿된 신을 모시는 자들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인가.”
피가 흘러내리는 왼쪽 옆구리를 움켜쥔 채였다.
그런 슈피겔만의 물음에 세 명의 사교도 중 하나가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의 후드 부분을 벗었다.
중년이 넘은 듯 보이는 나이와는 달리, 악동 같은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당연한 걸 묻고 그래. 유적 발굴 현장엔 뭐 하러 왔겠어?”
얼굴만큼 장난스러워 보이는 음성이라. 하지만 슈피겔만은 웃을 수 없었다.
유적 안에 있는 물건을 가져가기 위해 왔다는 말에 슈피겔만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런 일을 벌이고도 무사할 것이라 생각하는 겐가?”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깔깔깔, 말을 참 재밌게 하는 재주가 있는 아저씨네.”
깔깔거리는 웃음과 함께 앞으로 나선 것으로 호리호리한 체격의 사교도였다.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를 벗어 던지고, 짙은 보랏빛 색조 화장이 돋보이는 눈매를 드러내며 말했다.
“무사하지 못하면 어쩔 건데? 응? 아저씨?”
보란 듯 팔을 활짝 펼치며, 자신들의 손으로 파괴한 베이스캠프의 전경을 지목했다.
그녀의 말대로, 베이스캠프를 습격한 사교도들의 실력은 대단했다.
고작 세 명의 숫자로, 이 많은 마법사들을 모조리 도륙했으니.
‘셋 모두가 5써클…….’
아무리 초반의 성장이 빠른 흑마법이라 하지만, 5써클의 마법사는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한참을 깔깔거리던 그녀가 앞으로 다가섰다.
빠직-.
구둣발에 밟힌 나뭇가지 하나가 바스라진다.
“당장 지원이 오기 어렵다는 것쯤은 아저씨도 알고 있을 거 아냐. 으응?”
가장 가까운 마탑이나 도시까지는 말을 타고 달려도 반나절 이상.
지원이 오는 것은 불가능했다.
설혹 온다 하더라도, 이 세 사람의 실력이면 일이 모두 끝난 후일 것이 터.
“그렇다고 아저씨가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손끝으로 제 턱을 훑었다.
“설마 모르고 있는 거야? 아저씨의 숨통이 붙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살려 놓고 있기 때문이라는 거?”
잔인하기까지 한 말이었지만, 슈피겔만은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같은 5써클이라 하더라도 그는 워 메이지가 아니었기에.
역량(力量)이 같더라도, 기량(伎倆)이 달랐다.
“어떻게 할 거야? 응?”
그런 슈피겔만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응? 응? 어떻게 할 거냐고? 응?”
슈피겔만의 실력을 완전히 무시하듯 총총, 지근거리를 돌아다니며 조롱하기까지.
그 광경에 슈피겔만이 으스러져라 주먹을 말아 쥐었다.
바닥의 모래알과 손톱이 손아귀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셋 중 하나밖에 없다면, 충분히 발을 묶어 놓을 수 있었을 것을…….’
동료 마법사들이 쓰러지는걸 보면서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라니.
워 메이지의 길을 선택하지 않은 걸, 오늘만큼이나 후회했던 적이 없었다.
“응? 응? 응? 어떻게 할 거냐니까. 아저씨?”
그 순간!
쿠르릉, 하늘 가득 뇌운이 차올랐다.
“이렇게 할 거다.”
말이 끝나는 것보다 먼저.
뇌광(雷光)이 대지를 찢어발겼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