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69
69화
EPISODE.35
꽈르르릉-!
귀를 먹먹케 하는 소음, 직후 새하얀 낙뢰(落雷)가 하늘과 지상을 이었다.
5써클이 되며 한층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된 러셀이었다.
그에 호응이라도 하듯, 클라우디 링의 힘 역시 전보다 강해졌고.
두 가지가 어우러지며 만들어낸 마법이다.
급하게 펼친 것이라곤 하나 위력이 약할 리가 없었다.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파바바바밧-!
전격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가며 푸른 스파크가 쉬지 않고 피어올랐다.
만약 수식을 개조해 여파를 한쪽으로 쏟아내지 않았다면, 근처에 있던 슈피겔만까지 휩쓸렸을 테지.
플라즈마와 가까운 수준까지 치 닿은 고온!
그에 지져지다 못해 녹아내리다시피 한 대지에서 유리화된 파편이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
평범한 생물이었다면 시체는 고사하고 뼛조각조차 남아 있지 않을 고열.
하지만 상대는 셋이나 되는 5써클의 마법사였다.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되지 않았다.
그렇게 판단하며, 러셀이 바닥에 내려섰다. 슈피겔만을 보호하듯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착-.
구둣발이 바닥에 닿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과 얼마 전, 유적에 들어가기 전에 봤을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실력이라.
분위기는 물론 감도는 마력 양마저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며 슈피겔만이 소리쳤다.
“자네-!?”
여러 가지 의문이 함축된 짧은 외침.
“괜찮으십니까?”
그 외침에 대답하기에 앞서, 러셀이 물었다.
두 눈은 여전히 치밀어 오른 폭연 속을 응시한 채였다.
[미션]베이스캠프를 쓰러뜨린 사교도들을 처리하세요.
[보상]사교도 1명당 중급 마석(식용)x3
감각을 활짝 열어젖히자, 주변의 상황이 보다 명확하게 인지되기 시작한다.
어쩌면 용혈로 인해 육체가 강화되며 감각 역시 한층 예리해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쑥대밭이 된 베이스캠프, 수많은 사망자, 그리고-.
‘그와 크게 다를 것 없는 중상자.’
손을 쓰더라도 무리일 것이 대부분인 부상이었다.
이 자리에서 살릴 수 있는 것은 슈피겔만 하나뿐.
“나는 괜찮네, 그보다…….”
불과 보름 만에 이 정도라니, 유적 안에서 기연이라도 얻은 겐가?
그렇게 물으려는 것보다 먼저, 섬찟한 소리가 들려왔다.
까득-.
이를 가는 게 분명한 섬뜩한 소리가 폭연 속에서 들려왔다.
연이어 눈가를 따라 그린 보랏빛 색조 화장이 인상적인 여인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도 완전히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왼쪽 팔뚝의 일부가 검게 그을려 있는 게 보인다.
까득-.
자신의 팔과 새롭게 나타난 러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녀가 다시 한번 이를 갈았다.
직후 피어오르던 노기를 간신히 찍어 누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러셀 레이먼드로구나. 분명 4써클이라고 들었는데, 그사이에 또 하나가 늘었다라. 놀라운걸?”
“-?”
적들, 세 명의 사교도들을 응시하던 러셀이 고개를 외로 꼬았다.
‘내 이름을 안다?’
사교도 녀석들과 붙어본 적이 있으니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교도가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앎과는 조금 다른, 마치 자신을 목표로 노린 것만 같은 어투가 아닌가.
“안에서 뭘 얻었지?”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어, 그녀의 뒤쪽에 서 있던 사내가 움직였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의 중년 사내였다.
“그걸 곱게 넘겨준다면, 적어도 편한 죽음을 약속하지.”
“글쎄?”
러셀이 고개를 갸웃하며 시선을 움직였다.
앞에 나선 두 남녀가 아닌, 여전히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교도의 움직임을 쫓았다.
‘우두머리는 저쪽인가?’
같은 5써클이라고 하지만, 어쩐지 느껴지는 기운이 달랐다.
조금 더 단단한 바위 같은, 아니.
‘바위가 아닌 짐승 같은 마력인데.’
하나가 아닌, 여럿 이상의 짐승이 로브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 감각.
팔뚝을 따라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확인하며 러셀이 인벤토리를 열었다.
황금빛 새부리 가면을 꺼내 얼굴에 뒤집어썼다.
딸깍-.
“우스꽝스럽게 생긴 가면이로군. 그게 유적 안에서 얻은 유물인가?”
탐욕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와 눈빛. 하지만 저들은 모를 것이다.
방금 그 한마디에서 러셀이 어떤 정보를 얻어내었는지를.
“과거의 유적에서 뭔가를 찾고 있던 거군.”
낮게 가라앉은 음성.
두 남녀의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그것도 잠시, 이내 소요를 가라앉힌 사내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되물었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지, 우리는 잘 모르겠는걸?”
어깨를 으쓱하기까지.
하지만 이미 그들의 노림수를 꿰뚫어 본 러셀에겐 가당치도 않은 연기였을 뿐.
“스스로 찾는 물건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유적 안에서 나온 걸 회수하러 왔다니. 우습지 않아?”
“…….”
“네놈들에게 명령을 내린 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유적 안에 그 작자가 찾아 헤매던 물건이 없다면 그땐 어떻게 할 테지?”
대답이야 뻔했다.
원하던 물건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다른 유적들을 주시할 수밖에.
일의 핵심을 찌르는 러셀의 말에 사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장난기 가득하던 얼굴을 거두어들이며, 차갑게 식은 얼굴로 러셀을 노려보며 뇌까렸다.
“네 녀석이 죽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늘었구나.”
숨길 생각조차 없는 말투와 함께, 웅혼한 마력이 사내의 전신을 휘감는다.
동시에 여인의 몸 아래로 마력이 원을 그리며 회전하기 시작하고, 쿵!
그때까지 침묵을 유지하던 로브 사내 역시 거구의 몸을 움직였다.
평범한 인간의 몇 배쯤 되는 질량을 지닌 듯 땅이 무겁게 떨렸다.
그 진동을 기억해두며 러셀이 외쳤다.
“플레어 캐논(Flare Canon)!”
휴버트의 주력기인 5써클 화염계 마법의 한 갈래.
외침과 동시에 고온의 옥염(玉炎)이 지평선을 내달렸다.
―――――!
문자 그대로의 광선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 보이며 베이스캠프 한복판을 관통했다.
콰아아앙!
불꽃보다는 폭발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러셀의 마법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블라스트 번, 게일 스톰!’
잠시의 틈조차 내어주지 않겠다는 듯 마법의 포격을 연거푸 쏘아냈다.
바람결에 혈향을 느낀 순간부터, 메모라이즈 해두었던 마법들을 계속해서 해방시켰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동시에 또 다른 마법을 캐스팅하기까지.
‘가라-!’
그 광경에 여자 사교도가 경악을 토했다.
그리고 고개를 홱 돌려 중년 사교도에게 물었다.
“더블 캐스팅! 얼마 전까지 4써클이었다면서, 저게 가능한 거야?”
“천재라더니 확실히, 여기서 싹을 잘라두는 편이 좋겠군-.”
놀라기는 사내 역시 마찬가지.
빠르게 표정을 굳히며 그가 고개를 주억였다.
화아아악-!
바람을 살라 먹으며 불꽃이 그 덩치를 부풀리기 시작한다.
한계까지 치밀어 오른 고열은 그 열기만으로도 사교도들을 위협하기 충분할 정도!
화르르륵!
하지만 상대 역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5써클의 실력자들.
고작 마법의 연사 따위에 당해 줄 정도로 호락호락한 이들은 아니었다.
“흥,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5써클에 도달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 테지! 그에 비해 이쪽은 셋 모두 전투에 익숙하다고!”
쐐애애액-!
여인 특유의 고음, 그 뒤를 이은 것은 날카로운 파공음이라.
불꽃을 가르며 어둠의 창이 러셀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들었다.
그 수가 하나가 아닌 둘!
콰드득, 콰즉, 콱!
흙벽이 솟구치며 달려드는 어둠의 창을 막아낸다.
두터운 흙벽에 꽂힌 어둠의 창이 흐릿해지며 형체를 잃어가고.
슈피겔만이 소리쳤다.
“가세하겠네!”
삼 대 일의 상황일 때는 몰라도, 지금의 상황이라면 자신 역시 한 손 보탤 수 있었을 것이므로.
“방어를 부탁드립니다.”
그가 펼친 쉴드의 강도를 확인하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워 메이지는 아니라지만, 땅 속성 마법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황탑의 장로다.
그가 펼쳐내는 쉴드의 견고함은 통상적인 방어마법보다 한 수 위였다.
파밧-
그 틈을 이용해 녀석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세 방향을 틀어막고, 포위망을 좁혀올 생각인가?’
러셀 혼자였다면, 포위망을 돌파하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부상을 입은 슈피겔만까지 보호해야 하는 상황.
러셀로서는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하나라면 몰라도-.
‘둘 이상이 슈피겔만 장로님께 달라붙으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게 분명했다.
러셀이 눈동자를 굴렸다. 빠르게 머릿속으로 셈을 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가진 수를 어느 정도 드러낼 필요가 있었다.
‘부분 용인화? 그렇지 않으면 정령 마법?’
결정을 내린 러셀이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마력을 움직이려는 찰나!
“혹한의 주인이여, 나 그대의 손길을 이곳에 청한다!”
포위망의 바깥쪽에서부터 거대한 냉기가 난입했다.
“-다이아몬드 거스트(Diamond Gust)!”
지면과 수평선을 그리며, 얼음 알갱이 섞인 돌풍이 몰아쳤다.
* * *
얼음 돌풍이 몰아친 범위는 실로 절묘했다.
마구잡이로 난입한 것 같으면서도, 정작 러셀이 쏟아낸 화염 마법의 영역을 침범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교묘하게 그와 균형을 이루며 정확하게 사교도들의 진형을 흐트러뜨리는 형태로 뿌려진 마법.
놀라운 마력 컨트롤이 아닐 수 없었다.
직후 베이스캠프의 바깥쪽에서 마법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리호리한 장신에, 가느다란 실눈을 지닌 이지적 분위기의 사내.
‘앨런 페이지.’
푸른 마력을 휘감은 구둣발이 바닥을 밟는다.
그에 따른 마력의 상승 현상에 머리카락이 가볍게 흔들렸다.
시중에 나도는 영웅담 속, 영웅과도 같은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제가 너무 늦어 버린 모양이군요.”
조금만 더 빨리 왔다면 다른 이들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였다. 허나 그런 감상은 길지 않았다.
이미 죽은 이들에게 애도하는 것보단, 남은 적들을 상대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므로.
전투태세에 돌입하며 그가 말을 걸어왔다.
“괜찮으십니까. 러셀 경, 슈피겔만 장로님.”
“나는 괜찮네.”
슈피겔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옆구리의 상처가 쑤시긴 하지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저도 괜찮습니다.”
마나의 잔량은 구할 이상, 괜찮은 것은 물론 아직은 여유롭기까지 하다.
그 대답 때문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달라진 러셀의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경, 설마……?”
앨런 페이지가 깜짝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그의 물음에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러셀이 두르고 있던 로브를 벗었다.
와이셔츠의 단추를 몇 개 풀어냈다.
한결 움직이기 편해진 옷차림으로 차갑게 뇌까렸다.
“이제 수적으로 대등해졌는데, 어떻게 할 거지?”
애당초 수적으로 밀린다고 하여 크게 밀린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허나 적어도 슈피겔만을 지키면서 싸워야 할 이유는 사라진 것이다.
러셀의 물음에 남녀 두 마법사가 시선을 교환했다.
“가능하면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해결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상정하고 왔다는 듯 갈라섰다.
여성 쪽은 슈피겔만을 향해, 중년 남성은 앨런을 향해서.
남은 것은 시종일관 말을 하지 않고 있던 거구의 사내 하나뿐.
슈피겔만을 향해 걸어가던 여성 사교도가 로브로 뒤덮인 그의 몸을 툭툭 두드렸다.
“안에서 얻은 건 무조건 다 빼앗아야 해. 무턱대고 죽여 버리면 나중에 귀찮아진다구.”
슈피겔만을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자, 그럼 아저씨는 다시 나랑 놀아볼까?”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