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72
72화
EPISODE.36
꽈릉-!
처음 적중한 뇌격의 뒤를 따르듯, 벼락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떨어져 내렸다.
한 발, 두 발, 세 발, 네 발-!
온몸이 말초신경계 끝자락부터 타들어 가는 느낌!
“꺼어어-!!”
고통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비명도 지를 수 없다더니, 지금이 딱 그 짝인가 싶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 짧은 순간에도, 창졸지간 일어난 마력이 몸을 보호했다는 점이었다.
계약한 마족의 힘을 빌리기에 상대적으로 5써클에 올라서기 쉬웠을 테지만, 그 경지를 도박판에서 따지는 않았다는 점이겠지.
그리고-.
‘내가 위력을 어느 정도 조절한 것도 있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녀석의 인근으로 내려섰다.
쉬이익, 탁-.
“꺼어어어-.”
그때까지도 사교도 여인, 힐라는 바닥에 엎드린 채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내장이 익어 버린 것인지, 살짝 열린 입에선 쉬지 않고 연기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며 러셀이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마지막 순간, 러셀이 위력을 줄인 이유는 간단했다.
‘살려두고 물어봐야 할 것이 있으니까.’
물어봐야 할 것은 두 가지.
그 중 첫 번째는 유적에 관한 정보를 누구에게서 얻었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회귀를 한 자신조차도 알지 못했던 유적이다.
그런데 유적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고 찾아와 습격을 가하다니.
‘가능성이 있는 건 이 정보를 열람할 수 있을 정도의 고위직, 혹은 마탑의 관계자.’
어느 쪽에서든 간에 정보가 샜다고밖에 여길 수 상황. 그렇기에 알아낼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두 번째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문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사교도가 개입되어 있는가.’
물론 지난번 그자가 이들의 뒤에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허나, 서로 같은 사교도인 만큼 물어볼 가치는 있었다.
저벅, 저벅-.
구둣발 소리가 귓전을 자극하고, 간신히 정신을 차린 힐라의 눈동자가 잘게 떨렸다.
여기서 붙잡히게 된다면 어떤 꼴을 당할지 너무도 뻔했다.
‘엔디미온의 마법사들은, 절대로 흑마법사들을 용서하지 않아.’
대륙 어디를 가더라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교도였지만, 엔디미온은 유독 이들에게 가혹했다.
그럴 수밖에.
엔디미온의 건국 신화에서조차 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사교도였으니.
하물며 염탑.
상대는 자신들에게 자비 없기로 유명한 다리아의 제자였다.
불 보듯 뻔하게 그려지는 자신의 운명에 힐라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머릿속으로 치밀어 오른다.
화아악-.
스멀스멀 피어오른 공포감이 물감처럼 퍼져나가고, 이내 뇌리를 장악하려는 순간.
“흐아-!”
힐라가 비명을 내질렀다.
난데없는 비명에 러셀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최후의 발악이라도 할 셈인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그 순간, 비명을 내지른 힐라가 양손으로 제 머리를 움켜쥐었다.
눈과 코는 물론 입에서까지 핏물을 뚝뚝 쏟아내며 애처롭게 소리쳤다.
“제, 제발. 제발 살려 주세요……, 제발.”
이상이 일어난 것은 힐라 만이 아니었다.
“■■■■-!!”
실낱만도 못한 재생력에 의지한 채, 간신히 숨통만이 붙어 있던 키메라가 괴성을 내질렀다.
“흐아아아아!”
사지가 결박당한 채, 전신이 얼어 붙어가던 위가든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비명과 함께 힐라의 몸이 줄줄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꺄아아아악-!”
고약한 악취를 풍기며 촛농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한 제 피부를 바라보며 힐라가 죽어라 비명을 내질렀다.
“-?!”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괴현상.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슈피겔만이 황급히 소리쳤다.
“이, 이건?”
“뭔가 아는 게 있으십니까?”
“브레인워쉬(Brainwash), 사교도들의 세뇌 마법일세. 워낙 희귀한데다 고위의 흑마법이라 이걸 실제로 보는 건 나도 처음이네만…….”
“제발, 제바알-!”
녹아내리는 살덩이를 주워 담기 위해 힐라가 양팔을 바쁘게 움직였다.
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오히려 팔의 움직임으로 인해 살결이 녹아내리는 속도만 더욱 빨라졌을 뿐.
게다가, 녹아내린 살점 역시 문제였다.
살점이 닿은 땅이 점차 부식되더니 녹아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시취와 시독(屍毒)!’
그 성분을 파악한 러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몸이 녹아내리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살아 있는 채로 시독이 흘러나올 만큼 부패하게 만들다니.
‘그것도 이 짧은 시간에.’
생명과 삶에 대한 존중이라곤 이만큼도 보이지 않는, 사교도와 어울리는 지독한 마법이 아닌가.
그때, 힐라가 러셀을 향해 애원했다.
“제발, 제발 살려줘. 제발……, 살려만 준다면 뭐든, 뭐든 할 테니까.”
삶을 향한 간절한 의지.
그 모습이 안타까워 보였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보를 얻기 위해선 셋 중 하나는 반드시 살려야 했던바!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까?”
러셀의 물음에 슈피겔만이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고위의 성직자가 오지 않는 한 무리일세.”
그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는지, 침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긴, 슈피겔만도 이들에게 정보를 알아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을 테니.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군요.”
담담한 듯 내뱉는 앨런의 목소리 또한 평소보다 한 음가량 낮았다.
“제발…….”
그 사이 힐라의 몸은 뼈가 다 드러나 보일 정도로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순간.
다 꺼져가는 목소리로 힐라가 내뱉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히프노스(Ὕπνος)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흘러내린 얼굴 가죽 안쪽에서, 동그란 안구가 굴러 나오기 무섭게 힐라의 몸이 푹 꺼졌다.
뇌, 혹은 심장 중 하나가 녹아내리며 생명 활동이 정지된 것이겠지.
사교도가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이름. 그 이름을 러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히프노스.”
머릿속에 분명히 기억해 두기 위함이었다.
‘아마도 그가 이자들의 배후에 있는 존재일 터.’
히프노스(Ὕπνος).
과거 신화의 시대, 이 대지 위를 거닐었다는 신족 중 하나인 올림푸스 신족의 이름이다.
이명은 ‘깨어나지 못할 잠.’
물론 진짜 이름은 아니겠지만, 자신을 죽음과 가까운 신족의 이름으로 칭하다니.
오만하다고 해야 할까.
그렇지 않으면 어지간히도 제 실력에 자신이 있는 것이라고 여겨야 할까.
5써클 사교도를 수족처럼 부린다면, 최소한으로 잡아도 탑주급 실력.
어쩌면 그 이상, 마스터.
혹은 초인이라고 불리는 벽을 넘어선 마법사일지도 몰랐다.
‘스스로를 하데스(Ἅιδης)나 타나토스(Θάνατος)라고 칭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문득 든 생각에 러셀은 쓰게 웃으며 부분 용인화를 해제했다.
‘윽-.’
순간 뇌리가 욱신거리는 편두통이 몰려들었다.
그와 함께 찾아오는 가벼운 멀미감.
‘이게 반동이라는 건가.’
확실히 전에 비하면 훨씬 나았다. 정신력 소모는 물론 그 후의 반동 역시 견딜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용인화를 해제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휘청거림조차 없었던 것이 그 증거.
그때, 알림이 들려왔다.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총 2명의 사교도를 쓰러뜨리셨습니다. 중급 마석(식용)x6을 보상으로 지급합니다.]여느 때와 다름없이 미션을 완수했다는 알림이 들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러셀은 마음 놓고 기뻐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난장판이 된 베이스캠프.
그 주변에 널려 있는 것은 같은 마법사들의 시체라.
-피해가 너무 컸으므로…….
* * *
베이스캠프의 일이 왕도에 보고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왕도 사대 마탑을 비롯한 마법사계는 물론, 왕도 전체가 발칵 뒤집히기에 충분한 소식.
“감히-.”
그렇기에 왕도 사대 마탑의 탑주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다리아가 은은한 노기를 토했다.
그와 함께 그녀의 앞에 놓여 있던 초콜렛 케이크가 줄줄 녹아내리기 시작하고.
그 모습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이가 손을 뻗었다.
다리아의 손등을 붙잡는 동시에 차가운 바람을 불러와 열을 식혀주며 말했다.
“언니. 진정해.”
품에 안은 새하얀 토끼 인형과, 이제 막 십 대 중후반 정도 되었을까 싶을 만큼 앳된 얼굴.
작은 체구보다 더 긴 로브가 손목 너머까지 축 늘어지는 소녀.
왕도 마탑주들의 회의라는 자리와는 절대 어울리지 않는 외견이었다.
허나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 누구도 그리 말할 수는 없을 터.
놀랍게도 그녀의 정체는 에밀리아 머윈이었다.
왕도 백탑의 탑주이자 7써클의 대마법사, 에밀리아 머윈.
여든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흔 줄로 보이는 다리아와 마찬가지로, 예순이 넘은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린 외견.
하지만, 두 사람이 어린 외모를 하고 있는 이유는 판이하게 달랐다.
다리아의 경우가 단순히 마법을 이용해 노화를 멈춰둔 것이라면, 머윈은 진짜로 어렸으니까.
인간과 요정족의 혼혈인 그녀의 나이는 예순 후반이었지만, 요정들의 나이로 따지자면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의 나이대였을 뿐이었다.
다리아가 그녀를 ‘하양이’라 부르며 이뻐라하는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고.
머윈에 이어 헤밍웨이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하던 그녀의 소싯적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이를 먹어도 젊었을 때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으니…….”
하기야 염탑주가 되며 전보다 점잖아졌다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이라는 게 쉽게 바뀌지는 않는 법이니까.
“흥. 조용히 하시게. 이 영감아. 내가 지금 이 정도 화도 안 내게 생겼는가?”
그런 의미를 담은 헤밍웨이의 말에 다리아가 콧방귀를 꼈다.
“감히 사교도 따위가 엔디미온 내에서 대놓고 모습을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막내까지 노린 상황인데?”
“화를 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조금 더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자는 게지. 급한 성미 하고는.”
헤밍웨이는 이번에도 고개를 흔들며 혀를 찼고, 다리아의 눈가가 꿈틀하고 움직였다.
뭐라고 한마디 쏘아주려는 듯 입술을 씰룩거렸지만 이내 말을 아꼈다.
그녀 역시 헤밍웨이의 말에 틀린 점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흥. 좋아. 어디 한 번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고.”
처음부터 이 이상으로 화를 낼 생각도 없었고.
‘베이스캠프가 타격을 입었다곤 하지만, 사교도 셋 모두를 처리한 상황. 게다가 막내까지 무사하니…… 굳이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낼 이유는 없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노기를 보였던 것은, 그냥 원래 성격이 그런 것뿐이었다.
상황이 정리되자, 헛기침과 함께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앞으로 나섰다.
“흠흠. 그럼 가장 우선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안건부터 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시작된 안건은, 베이스캠프에서 사망한 희생자들에 대한 것이었다.
“급작스러운 사고였다곤 하나 그들 모두가 엔디미온과 마법계를 위해 힘쓰던 이들이었지. 안타까운 이들이 세상을 떠났어.”
“죽은 그들에 대한 대우는 물론 그 유족들에 대한 보상까지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것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안건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하고.
자리에 앉은 네 마탑주들은 익숙하게 그 안건들을 하나둘 처리해 나갔다.
그들 모두가, 왕도 사대 마탑의 탑주 자리에 앉은 지 십 년이 훌쩍 넘어가는 경력자들.
모자라지도, 그렇다고 과하지도 않게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이미 이골이 난 이들이었다.
그렇게 안건이 하나둘씩 처리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단 하나의 안건만이 남았을 때.
황탑주,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불편한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이제 남은 건, 사교도들에 대한 문제뿐이로군요.”
그 말에 동의하듯, 헤밍웨이가 덧붙였다.
“사교도라, 근래 들어 확실히 그 이름을 자주 듣게 되는 것 같네만…….”
지난번 있었던 마차를 공격한 것은 물론 이번 유적 발굴대를 습격한 것까지.
근 십 년간, 사교도들이 이렇게 자주 활동을 한 적이 있는가 싶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더라니, 그 사이에 간덩이가 제대로 부은 게지.”
사교도라는 말에 으르렁거리던 다리아가 재빠르게 덧붙였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수작질을 벌이고 있거나 말이야. 이를테면…… 뭔가를 찾고 있다던가 말이야.”
사교도들이 뭔가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말에는 다른 이들 역시 동의했던바.
“음.”
“흠.”
“나도 언니 말에 동의해.”
다른 세 사람이 각기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놈들이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이고, 그걸 통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를 알아야 한다는 걸세.”
현재로서는 정보가 부족하다는 말이라.
사교도란, 쉽게 말해 곪기 시작한 상처와도 같은 놈들이었다.
작은 상처라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간, 환부를 통째로 잘라내야 하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누구보다 그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리아가 말했다.
“일단 놈들에 대한 경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게 좋을 테지.”
헤밍웨이와 백탑주, 에밀리아 머윈이 말을 받았다.
“사교도 놈들의 흔적을 뒤쫓는 일에도 인력을 조금 더 증원하도록 해야겠어.”
“그럼 나는 회의가 끝나는 즉시 지방 마탑에도 이 일을 전달하고, 경계를 한 단계 격상시키도록 할게.”
풀숲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던가.
사교도란 싹을 뽑아 마땅한 놈들이 분명했다.
하지만 목적도 모르고 과하게 손을 썼다간 도리어 일을 그르칠 위험 역시 존재했던바.
“-지금은 이 정도가 최선일 테니…….”
자리에서 일어나며, 헤밍웨이가 오늘의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 일에 관해선 차후에 다시 논의하도록 하지.”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