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73
73화
EPISODE.37
다그닥, 다그닥-.
밤의 어둠이 고즈넉하게 깔린 가운데, 말발굽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 대의 마차가 미끄러지듯 대로 위를 내달렸다.
인근 마탑의 인장이 찍혀 있는 마차로 그 안에는 러셀과 앨런, 그리고 슈피겔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덕분에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까지는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겠어.’
베이스캠프에서의 뒤처리, 이를테면 그곳에서 사망한 마법사들의 시신에 관한 문제라던가…….
그런 것들까지 마탑에서 처리해주기로 했으니 뒷일은 걱정할 필요 없겠지.
팔짱을 끼며 러셀은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었다.
지금 마차 내부에는 기묘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그런 충격적인 사건 직후에 쉬이 입을 열 만한 이는 없었으므로.
게다가 슈피겔만은 부상 중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한동안 침묵이 지속되고, 앨런이 입을 연 것은 그로부터 꽤 시간이 흐른 후였다.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에 도착하기까지, 채 한 시간도 남겨 두지 않은 무렵.
“실례가 안 된다면,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다. 러셀 경.”
“……?”
목줄을 이용해 어깨 위에 비스듬히 걸어둔 황금가면을 응시하며 물었다.
“못 보던 가면인 것 같은데, 그 황금가면이 이번 유적에서 발견된 물품입니까?”
유적이라는 이야기에, 부상을 당해 쉬고 있던 슈피겔만 역시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올린다.
이어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러셀의 어깨 위에 걸려 있는 황금 가면을 바라봤다.
하긴, 그의 전문 분야는 마법 고고학이었으니까.
딱히 숨길만 한 것도 아니었기에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걸어두었던 황금 가면을 제 손바닥 위로 옮겨 오며 덧붙였다.
“대충 시험해 봤는데, 마법을 사용할 때 정신력의 부담을 덜어주고 연산을 보조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자네가 전투 중에 그 가면을 썼던 거군.”
납득했다는 듯 중얼거린 슈피겔만이 손가락을 뻗었다.
눈앞에 둔 과자가 먹고 싶어 안달 난 아이처럼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 괜찮다면 내가 잠시만 살펴봐도 되겠는가?”
무려 신화시대 즈음으로 추정되는 유적에서 나온 물건이다.
어쩌면 신대의 유물일 가능성 또한 있었다.
‘관심이 가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겠지.’
부상을 당한 몸에다가, 5써클 마법사가 둘이나 더 있는 상황. 또한 장소 역시 좁은 마차 안이 아닌가.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
‘애당초 그러실 분도 아니겠지만.’
러셀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침을 꿀꺽 삼켰다. 고고학자로서의 탐구심이 보통이 아니었던 모양.
바로 직후!
“윽-!”
신음과 함께 슈피겔만이 뻗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한순간 일어난 새파란 번갯불.
슈피겔만의 손끝은 경미한 화상으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던 기능에 러셀이 놀란 눈을 해 보였고, 앨런이 자신의 턱을 쓸어내렸다.
실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흥미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주인이 아닌 이를 거부하는 마법이 걸려 있는 모양이로군요.”
들어갈 수 있는 자를 선별하는 유적과, 주인을 선택하는 유물.
퍽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닌가.
파짓-.
“……그런 모양이로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반대 손가락까지 화상을 입은 슈피겔만이 아쉽다는 얼굴로 입맛을 다셨다.
“어차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니, 작성이 끝나는 대로 한 장 복사해서 장로님께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러셀의 말에 슈피겔만이 반색했다.
“장로님께서도 제게 자료를 넘겨주겠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자료?”
고개를 갸웃하길 잠시간.
“아. 그렇군. 자네에게 용신왕에 대한 자료를 넘겨주기로 했었지.”
이내 슈피겔만은 턱을 주억였다.
“왕도로 돌아가 몸이 괜찮아지는 대로, 정리해서 보내주도록 하겠네. 다만-.”
자신 없는 어투로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다.
“큰 기대는 하지 마시게. 워낙 자료가 적은데다 극히 일부- 언급만 되는 수준이라…….”
“충분합니다.”
아무리 단편적인 정보라도 없는 것보단 훨씬 나았기에.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세 사람을 태운 마차는 워프 게이트가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어느 분이 먼저 이동하시겠습니까?”
워프 게이트를 담당하는 마법사의 질문은 타당한 것이었다.
염탑, 창탑, 그리고 왕도 황탑.
셋 모두 왕도로 가는 것이라지만, 도착지는 각기 달랐으므로.
물론 가장 먼저 갈 사람이야 정해져 있었다.
일 순위는 슈피겔만 장로, 선배일 뿐만 아니라 부상자이기까지 했으니까.
“장로님이 먼저 황탑으로 이동하신 후에, 저희들도 각자 이동하겠습니다.”
러셀의 말에 동의하듯 앨런이 고개를 끄덕이자, 슈피겔만이 자신의 뒷덜미를 어루만졌다.
“고맙네. 그럼 먼저 이용하도록 하지.”
딸깍-.
그 말을 끝으로 워프 게이트가 있는 방의 문이 닫혔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워프 게이트를 활성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자연스럽게 러셀과 앨런, 두 사람만이 복도에 남게 된 상황.
먼저 말을 걸어온 것은 앨런이었다.
“축하를 드리는 것이 우선이겠지만…… 솔직히 조금 놀랐습니다.”
“……?”
무슨 말인가 싶어 시선을 돌렸지만 앨런은 그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꽉 닫힌 문만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5써클에 오른 후, 얼마 정도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건만. 이렇게 빨리 쫓아올 줄이야.”
고저 없이 일정하고 담담한 목소리.
그 속에서 러셀이 읽은 것은, 싹이 트기 시작한 시기심이 아닌 향상심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불이 붙은 건가.’
그렇지 않아도 천재라고 불리던 이다. 그런 이가, 자신에게 자극을 받아 회귀 전보다 빠르게 5써클에 오르기까지 했다.
‘거기에 불까지 붙는다면…….’
피부 위가 절로 오싹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러셀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쩌면 두 분 스승님들의 내기는, 처음 예상하셨던 것보다 훨씬 짧게 끝날지도 모르겠군요.”
그만큼이나 러셀의 능력을 높게 평가한다는 말이겠지. 허나 러셀은 그런 앨런의 평가에 속 편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뒤이어 흘러나온 말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기한을 꽉 채우게 되거나, 말입니다.”
“!”
불이 붙었으니, 절대로 따라잡히지 않겠다는 선전포고일까?
아까와는 다른 기분으로 오싹해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렇게 되겠습니까?”
다분히 도전적인 어투.
앨런 페이지, 한때는 존경했고 지금도 존경하는 마법사인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으로 인해 불이 붙은 한 사람의 경쟁자이기도 했다.
추악한 시기심에서 발호한 것도 아닌, 향상심에서 나온 순수한 선전포고였으니 그에 응해주는 것도 당연할 터.
러셀의 말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놀란 표정으로 러셀을 바라봤다.
설마하니 러셀이 저렇게 응수해 나올지는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도리어 기쁘다는 듯, 제법 커다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끝났습니다. 그럼 다음 분…….”
그때.
슈피겔만의 이동이 끝난 듯, 워프 게이트실의 문이 열렸고,
“하지만…….”
안쪽으로 들어서며 앨런이 말을 맺었다.
“……전자의 경우도 어떤 기분인지, 꽤 궁금하긴 하군요.”
…….
복도에 홀로 남은 러셀의 귓전으로 앨런의 말이 몇 차례 반복해서 떠돌았다.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시다면…….’
알게 해주는 수밖에.
자신 역시 불이 붙은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물론 러셀에게 앨런과 같은 천재적인 재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겐 노력한 만큼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 있었던바.
[미션 – 2]천재를 따라잡아라.
앞선 내기 미션에서 파생된 추가적인 미션입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앨런 페이지의 실력을 따라잡고, 그를 넘어서세요.
앨런 페이지의 인정을 받을 시 미션이 완료됩니다.
[보상]상급 마석(식용), 중급마석(식용)x5
그 무엇보다도 명확하게 제시된 보상. 러셀의 눈이 선연히 빛을 발했다.
* * *
왕도(王都).
엽탑으로 돌아온 러셀을, 기다렸다는 듯 다리아 스노우화이트가 호출했다.
전에 비해 얼굴이 조금 수척해 보이는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일까?
‘아마 아니겠지.’
보고서에 쓰인 대로라면, 상대는 세 명이나 되는 5써클의 사교도였으니까.
거기다 약식으로 제출된 최초 보고서.
‘그걸 통해 알 수 있는 정보는, 상당히 한정적이야.’
아무리 8써클 마법사라 할지라도 앉은 자리에서 수백 킬로 밖을 내다보는 능력은 없었기에.
다리아가 걱정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탑의 꼭대기 층에 위치한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오는 기척을 느끼며, 다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왔구나. 막내야.”
러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왔다.
그런 다리아를 안심시키듯 러셀이 양팔을 가볍게 벌렸다.
한눈에 파악 할 수 있도록 전신을 말끔하게 드러내 보이며 말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스승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것일까.
제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듯, 다리아가 러셀의 몸 주변을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한 것은 그 후였다.
“다행이로구나. 창탑의 꼬마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기에 혹시나 했거늘.”
평소와 같은 장난스러움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중한 목소리였다.
그만큼 걱정이 컸다는 거겠지.
“그런데-.”
“……?
그때, 러셀을 바라보던 다리아의 눈빛이 일변했다.
방금 전까지 느껴지던 걱정스러움은 간데없고, 남은 것은 베일 듯 날카로운 눈초리라.
그의 전신을 쓸어보던 다리아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벽을 넘었느냐, 막내야?”
물음이라기보단 확신에 가까운 외침, 그럴 수밖에.
여전히 알아보기 힘든 마력이라는 점은 변함없지만, 잘 살펴보면 마력의 깊이와 파동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더욱이 붉은 빛을 반짝이는 두 눈에는 전과 다른 심유함과 현묘함 마저 깃들어 있기까지.
벽을 넘어서진 않고선 찾아볼 수 없는 변화였다.
이 변화를 눈치챈 것 역시, 다리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블레인, 그 썩을 영감도 막내의 마력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었지.’
그게 아니라면 제 제자를 충동질하여 자신만만하게 대결을 걸어왔을 리가 없지 않은가.
‘같은 마스터 급의 마법사라 할지라도, 7써클의 마법사는 막내의 마력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없다는 말이 되겠어.’
눈에 깃든 심유함이니 현묘함이니 하는 것 또한 능력은 물론 평소 관심이 있었으니 알아볼 수 있는 것이었고.
“예.”
“아하! 어쩐지, 5써클 사교도 셋을 상대로 싸운 것 치고는 상처가 거의 없다 싶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구나.”
러셀의 단호한 대답에 그녀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채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5써클, 대단하구나. 석년의 창탑주는 물론 나 역시도 그와 같은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었거늘. 좋구나. 아주 좋아.”
귀에 걸려라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견한 음성으로 러셀을 칭찬했다.
“이제 그 창탑주의 제자를 따라잡는 것도 머지않았구나. 이 소식을 듣게 되면 그 영감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눈에 선해!”
어느새 빼든 것인지, 품속에서 커다란 롤리팝 캔디를 꺼내 와작와작 깨 먹었다.
“내기 물품으로 뭘 내놓을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배도 좀 아프겠지.”
깔깔깔-!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수척함은 완전히 사라지고, 남은 것은 기쁨과 통쾌함의 감정뿐.
그렇게 한동안 다리아는 지칠 줄 모르고 낄낄깔깔 웃어댔다.
그리고 몇 분 후.
다리아의 웃음이 채 그치기 전에, 지이잉-.
아래층과 연결된 부저가 진동했다.
“탑주님.”
곧이어 일 층에서 데스크 업무를 보는 이의 익숙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방금 막 국왕 폐하께서 보내신 전언이 도착했습니다.”
“으응? 전언?”
한참을 웃어 배가 아픈 것일까.
아랫배를 살살 어루만지던 다리아가 고개를 갸웃했다.
“네. 탑주님을 통해 전달될 전언이지만, 받는 사람은 제자인 러셀 레이먼드 경입니다.”
“전언의 내용은 무엇인가?”
“이번 사태에서 큰 공을 세우고, 유적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러셀 레이먼드 경의 공을 치하할 예정이니…….”
전언의 내용을 확인하는 듯 잠시 늘어졌던 말꼬리가 제자리를 찾았다.
“……다음에 보름에 있을 국무회의에 참석하라고 하십니다.”
공을 치하한다는 말에, 이야기를 듣던 러셀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