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74
74화
EPISODE.37
[상급 마석(식용)을 섭취하였습니다.] [마나석 속 마력을 획득합니다.] [써클의 마나가 상승합니다.]상급 마석을 마지막으로, 그간 모아두었던 마석을 모두 섭취한 러셀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 써클링 작업을 시작했다.
기존에 있던 마나를 더욱 견고히 하며, 새로 받아들인 마나를 쌓아 올려 하나의 성으로써 축조하는 작업.
우우웅-.
고요한 가운데 다섯 개의 써클이 저마다의 하모니를 만들어내며 회전하기 시작한다.
그 위로 새롭게 받아들인 마력이 천천히 덧씌워지고.
캬륵-?
러셀의 변화에 인근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던 페퍼가 고개를 들었다.
가지고 놀던 공을 내버려 두며, 슬그머니 러셀의 근처로 다가왔다.
머리와 꼬리를 둥글게 말아 똬리를 틀었다.
‘녀석.’
러셀이 속으로 헛웃음을 흘렸다.
써클링 작업을 하고 있는 계약자.
러셀을 보호하기 위한 제 나름대로의 행위겠지만, 그 모습이 제법 귀여웠다.
캬륵-.
러셀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페퍼가 단호하게 쏘아붙였다.
딴생각하지 말고 집중이나 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허나 페퍼의 걱정과는 달리, 러셀은 써클링 작업에 태만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생각이 가능하다는 건-.
‘정신력의 한계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건가?’
유적 속, 직관과 이해의 시험을 통과하며 러셀이 가진 정신력의 총량은 전과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난 상태였다.
게다가, 어깨에 매어둔 황금가면 역시 정신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었고.
그렇기에 써클링 작업을 이어나가는 한편, 앞으로의 일에 대해 생각해나가는 것 역시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슈피겔만 장로님께서 주신다고 하신 자료가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테고.’
당장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보고서의 작성일 테지.
스승인 다리아와 염탑에 제출해야 하는 유적과 유물에 관한 보고서.
‘흠.’
그렇게 조금씩, 보고서의 서두에 쓸 내용을 머릿속으로 그려나가길 얼마간.
이내 러셀의 생각은 국무회의에까지 미쳤다.
딱히 특별할 계기랄 것은 없었다.
그저 의식의 흐름을 좇아가다 보니 이렇게 되었을 뿐.
‘국무회의라-.’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해석하자면 단순히 국무를 논하는 자리일 뿐이다.
하지만 이번 보름에 있을 국무회의는 조금 특별했다.
‘그렇겠지.’
평범한 국무회의가 아닌, 일 년에 단 두 차례 있는 자리 중 하나였으므로.
‘여름과 겨울로 나눠, 이 전의 정책을 돌아보며 국가 운영에 대한 청사진을 그리는 자리.’
즉 나라의 반년을 결정하는 자리라는 말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참석하는 이들의 면면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
‘각 부처의 고위 관료와 장관들은 물론 왕도의 대귀족들까지 참석하는 자리.’
관직에 오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참석할 자격이 있는 이들은 인간의 벽을 넘어섰다는 초인(超人).
‘마스터(Master)들 뿐.’
물론 마스터들의 경우는 필참이 아니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초인들이 국무회의에 참석하지 않기도 했고.
다만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이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자리라는 말이었다.
마도총탑회와는 다른 의미로 별들의 축제.
그런 자리에 자신이 참석하게 된 것이다.
‘고위 관료나 대귀족은 물론 하물며 마스터도 아닌데 말이지.’
물론 러셀 혼자만이 참석하는 것은 아니었다.
함께 참석하는 이들의 명단에는 앨런 페이지는 물론 슈피겔만 역시 포함되어있었으므로.
게다가 이전에도 이와 같은 참석자가 없었던 것 역시 아니었다.
‘연령이나 작위에 비해 뛰어난 공을 세운 이들이 왕왕 불려갔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있어.’
하지만 그들 중 러셀보다 나이가 어린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던바.
‘이건 기회라고 생각해야겠지.’
이 나라, 엔디미온 고위의 인물들에게 다시 한번 레이먼드라는 성을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
‘한 걸음 더 나아가 백작 위 역시 회복할 수 있을 터.’
개국공신의 가문인 레이먼드가(家).
러셀이 오로지 자신의 가문에만 허락된 특례를 떠올렸다.
‘5써클 마법사가 탄생하면 백작위를, 7써클 마법사가 탄생하면 후작위를 회복할 수 있는 특례.’
여기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과 시간이 필요했는지를 굳이 지금 논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이 감상에 취하는 것만으로 충분했으므로.
국무회의가 열리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일주일 정도 후. 얼마 뒤 맞이하게 될 그 날을 떠올리며 러셀은 희미하게 웃었다.
.
.
그 후.
국무회의가 시작되기까지, 러셀의 일상은 특별한 일 없이 무탈하게 흘러갔다.
써클링 작업을 통해.
벽을 넘어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원(Circle)들을 계속해 안정화시켜 나가면서였다.
물론 그러는 한편으론 틈틈이 다리아와 염탑에 제출하기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보고서를 제출해야 마무리되는 미션.’
이번 미션을 마무리한다면, 보상으로 전날 보았던 용종의 심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둘씩 일이 차곡차곡 이루어지고 있는 셈.
다만 아쉬운 점은 얼마 전 슈피겔만이 보내준 보고서였다.
문구가 기록된 석판이 너무 심하게 훼손된 탓일까.
‘용신왕’이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 말고는, 딱히 건질만 한 정보가 보이지 않았다.
하기야, 오만하기로 따지면 하늘 아래 견줄 자가 없는 존재들이 바로 드래곤이다.
그만한 능력 역시 갖추고 있었고.
그런 이들이 신이자 왕으로 추앙하는 존재라니.
허구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기록이 남아 있는 것 자체가 오히려 신기한 상황.
‘쯧.’
다시 보았던 보고서를 떠올리며 러셀이 속으로 혀를 찼다.
그것도 잠시, 현실을 받아들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슈피겔만 역시 사전에 그렇게 말하기도 했었고.
일단은 용신왕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것에서 만족하는 수밖에.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국무회의가 있는 보름날이 도래했다.
* * *
“국왕 폐하 드십니다-!!”
시종장의 외침과 함께 회의장의 문이 열리며, 강건한 체구의 사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왕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보랏빛 머리카락과, 사자의 용맹을 몸에 두른 듯 강인한 인상.
그야말로 ‘왕’이라는 단어를 찰흙처럼 빚어 만든 외견을 가진 사내였다.
그럴 수밖에.
지금 등장한 이 사내야말로, 대륙에서 제국 다음으로 큰 국가의 주인임과 동시에 엔디미온의 국왕.
알폰소 라트모스였으므로.
저벅, 저벅-.
사내의 구둣발 소리가 회의장 가득 울려 퍼진다.
그와 함께 장내에 있던 대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고개를 숙였다.
척, 척.
그것은 상석에 앉아 있던 왕도 마탑주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사자와 같은 눈초리로 그들을 둘러본 국왕은 익숙한 걸음으로 가장 상석으로 향했다.
“그만, 국무를 위해 모인 자리인데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안건이 있는 만큼 평소의 과례는 생략하도록 하겠소.”
향하며 입을 열었다.
“경들은 모두 자리에 앉으시오.”
마력도, 그렇다고 오러도 깃들어 있지 않은 목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왕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그 힘에 일어났던 관료들과 왕도 대귀족들이 모두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국왕이 입을 열었다.
자리에 앉은 사대 마탑의 주인들을 돌아보면서였다.
“평소라면 참석하지 않아도 될 회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들을 참석시켜 미안하오. 안건이 안건인지라, 경들의 의견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오.”
“아닙니다. 폐하. 노구인 몸이라지만, 폐하께서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참석해야지요.”
국왕의 말에 헤밍웨이가 능숙하게 답변했다.
다리아와 니콜로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원체 체구가 작은 탓에 의자에 기대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백탑주의 모습만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렇게 생각해준다니 고맙소. 그럼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우선 첫 번째 안건은 근래 들어 잦아진 사교도들의 활동과, 보고서의 내용으로 하겠소.”
한 호흡.
거기서 말을 맺으며 국왕, 알폰소는 탑주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일단 이번 사태에 관련해 왕도 마탑 탑주들의 의견부터 듣고자 하오.”
마침 얼마 전, 네 탑주들의 회의 역시 있었으므로.
“알겠습니다. 폐하.”
공손히 답변한 헤밍웨이는 얼마 전 있었던 회의의 내용을 그에게 전달했다.
“음.”
잠시의 시간이 흐른 뒤, 납득했다는 표정으로 국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서가 부족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정론이로군. 각 시의 영주와 시장들에게도 이 사항을 알리는 것이 좋다고 보는가?”
“사교도들이 암약한다는 소문이 알려진다면 민생에 불안감이 깃들 텐데, 괜찮겠습니까.”
부스럭.
언제 챙겨온 것인지, 계피사탕의 껍질을 벗기며 다리아가 물었다.
평소와는 달리 장난기가 조금도 묻어나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군것질거리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국왕은 그런 다리아의 면모를 책잡지 않았다.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바로 그 때문에, 두 사람의 막내 제자를 국무회의에 불러들인 것이 아닌가.”
“앨런을 말입니까?”
“막내를요?”
헤밍웨이와 다리아가 동시에 반문했다.
민생의 불안을 다스리는 것과, 자신들의 제자가 무슨 상관이 있기에 저런 말을 하는 것인지.
“어둠이 짙어질수록, 빛 역시 선명해지는 법. 믿고 의지할 존재가 생기는 것만큼 민생의 안전에 도움이 되는 일은 없지.”
물론 이제 첫걸음을 뗀 수준에 불과하겠지만-.
“나는 오늘 그 친구들을 이 나라의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영웅으로 만들 생각이라네.”
국왕(國王) 알폰소 라트모스는 그렇게 말을 맺었다.
그와 함께 한 차례 술렁거림이, 밀려든 파도처럼 장내를 뒤덮었다.
!!!
.
.
“음-.”
앨런과 슈피겔만, 그리고 러셀의 입장은 모든 회의가 끝난 후였다.
참석을 명받았다고는 하나, 실질적으로 국무에 관여할 직위는 없었기에 당연한 처사.
“흠…….”
그렇기에 국무회의가 끝날 때까지, 한 장소에 모여 대기하는 중이었다.
물론 마냥 대기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시녀들이 가져다준 연미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 후에는 두 명 이상의 시녀가 달라붙어 머리를 만져주고 얼굴을 화장해주기까지 했다.
“흐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 보길 얼마간.
어색하다는 듯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향유(香油)를 발라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와 화장된 자신의 얼굴은 몇 번을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기에.
‘옷이 불편하기도 하고.’
그런 러셀을 향해 슈피겔만이 말했다.
“꽤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기다리게. 국왕 폐하를 뵙는 자리이니, 허투루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러셀은 자리에 앉았다.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앉아 있는 앨런을 응시했다.
자신과는 달리 어색함 하나도 없이 잘 적응한 모습.
과연, 대귀족가의 차남이라는 건가?
‘나 역시도 연습해두는 편이 좋겠어.’
백작.
앞으로 귀족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며 불편한 옷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길 얼마간.
“!”
러셀과 앨런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대기실 밖, 문 너머에서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왔다.
“와, 왕녀 전하……?!”
부산스런 움직임, 깜짝 놀란 외침과 함께 벌컥!
대기실의 문이 열렸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