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77
77화
EPISODE.39
화르륵-.
다섯 개의 불의 고리가 만들어내는 존재감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력했다.
마법에 문외한인 이라 할지라도 넋을 잃고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 정도.
물론 가진바 힘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젊은 러셀의 외모 역시 한몫했지만.
몇몇 성품 가벼운 귀족들이 저도 모르게 입술을 달싹였다.
“허…….”
“얼마 전 친선 결투에서 봤을 때만 하더라도 4써클이었는데.”
“저 나이에 4써클 마스터라는 것도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거늘, 그 사이에 벽을 넘었는가.”
“저런 청년이 엔디미온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큰 복이라고 해야겠어.”
놀란 것은 귀족들 뿐만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또 마력이…….’
직접 러셀의 경지를 목격했던 앨런뿐만이 아니라 왕도 마탑의 마탑주들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
황탑주,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허허허…….”
꾸벅꾸벅 졸고 있던 백탑주 역시 어느새 잠에서 깨어 러셀을 응시하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요정족 혼혈인 나보다 훨씬 더 순수한 마력이야. 게다가 격도…….”
그들의 이목과 감탄사에 콧노래를 흘리며 다리아가 눈길을 돌렸다.
한껏 우쭐해진 표정으로 헤밍웨이를 바라봤다.
그때 마침, 헤밍웨이 역시 다리아를 보고 있었고 슬며시 눈이 마주친 순간.
‘흥.’
가볍게 콧방귀를 끼며 헤밍웨이가 고개를 돌렸다.
우쭐거리는 다리아의 표정은 언제 보아도 약이 올랐던 탓이다.
그것과는 별개로 헤밍웨이 역시 놀란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력이로고.’
말로 설명되지 않는,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받을 수도 없는 재능이라.
그야말로 불가해(不可解).
이 순간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옆에서 러셀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을 앨런이었다.
‘호승심을 느끼고 자극제로 삼게 할 요량이었건만-.’
러셀의 재능은 도리어 삼켜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거대하고 격정적인 불꽃이었으니까.
하지만 웬걸.
제자의 두 눈에 깃든 것은 추악하기 그지없는 질투심도, 모든 것을 내려놓은 포기의 감정도 아니었다.
호적수를 향한 경탄,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분명 강력한 호승심이었던바.
‘허.’
제자의 심정을 이해한 헤밍웨이가 저도 모르게 로브 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래. 끝에 도달해 보기 전까지 누가 이겼는지 알 수 없는 법이지.’
제자의 부족한 점을 메워주는 것이야말로 스승의 역할일 터.
그때, 침묵을 고수하던 국왕이 손바닥을 들었다.
웅성거림이 가득하던 장내의 소요를 가라앉혔다.
떠들어 대던 신하들의 말이 자신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라니.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감정이었다.
“분명……하군.”
단순히 알고 있던 것과,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의 차이는 컸다.
깃들어 있는 놀람을 숨길 수 없는 목소리에 러셀이 고개를 숙였다.
화륵-.
주변을 환하게 밝혔던 불의 고리 역시 그 자취를 감쳤다.
“경들은 들으라.”
다섯 개의 고리도 확인한 참이었으니, 이제 거칠 것은 없을 터.
낮지만 분명한 목소리가 장내 전체로 뻗어나간다.
“레이먼드 가에 내려진 특례에 따라, 러셀 레이먼드의 작위를 백작위로 승격하겠다. 또한 앞서와 마찬가지로 새벽의 훈장, 모어겐로트(Morgenrot)를 하사하겠노라.”
작위가 한 등위 높긴 했지만, 앨런 페이지와 별반 다르지 않은 내용.
하지만 국왕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또한 지금까지 세운 크고 작은 공들과 적국의 살인귀, 스펜덤의 수급을 베어 돌아온 공을 치하하기 위해 3급의 무공 훈장과 함께 수도 인근 도시의 가구 1만 호에 대한 징세권을 수여하노라!”
“!”
이어진 국왕의 말에 몇몇 귀족들이 눈을 크게 치켜떴다.
3급의 무공 훈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수도 인근 도시 가구에 대한 징세권이라니.
그것도 1천 호나 2천 호도 아니고 무려 1만 호!
‘단순히 명예뿐인 백작 위인 줄 알았거늘.’
일반적으로 대귀족이라 불리는 이들이 백작 위와 함께 십만 호 이상의 영지나 징세권을 가지고 있는 걸 고려하면…….
과장을 조금 더 보태면 작정하고 대귀족 하나를 키워내겠다는 말과 진배없었다.
하물며 상대는 고작해야 열아홉.
아직 장래가 창창한 나이지 않은가.
“폐하…….”
통이 크다 못해 화끈하기까지 한 결정에 재무대신이 무어라 말을 하려는 찰나.
“반론은 받지 않겠다.”
국왕의 음성이 단칼에 재무대신의 말을 잘랐다.
“이는 러셀 백작이 지금까지 세운 공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가능성을 위해 투자하는 것임을 미리 공언해 두겠으며-.”
러셀과 눈을 맞춘 후, 말을 맺었다.
“-경 또한 그 점을 잊지 않길 바라는 바이다.”
그 단호한 태도에 뒤늦게 국왕의 속내를 짐작한 대신들 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영웅으로 만들겠다 하시더니.’
‘이런 의미 셨던 겐가.’
지금 정도의 위치와, 오늘 내려진 상의 무게에 취해 교만하게 군다면 제풀에 나가떨어지고 말 것인 즉.
이건 문자 그대로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러셀이 두 눈을 빛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폐하.”
* * *
국무회의장을 빠져나온 뒤.
다리아의 꽁무니를 쫓아가던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스승님.”
“왜 그러느냐 막내야.”
“나가는 길은 이쪽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말대로, 국무회의는 끝난 지 오래라. 이미 왕성 밖으로 나갔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작 앞서 걷고 있는 다리아는 왕성 내부를 이리저리 휘돌며 빙빙 돌고 있었으니.
초행길인 러셀조차도 의아함을 느낄 정도였다.
“왜 안 물어보나 했다.”
러셀의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 다리아가 답했다.
“어젯밤 네가 제출했던 보고서를 읽었단다.”
보고서라는 말에, 러셀이 무심코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 말씀은…….”
“내가 낸 과제 넷을 모두 마무리했으니, 이제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겠지.”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중급 마석(식용)을 지급합니다.] [추가 보상으로 다리아를 통해 왕궁 비고의 물품 중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용종의 심장이 보관된 곳에 간다는 말이다.
다만 장소가 박물관이 아니라 왕궁의 내부로 바뀌었다는 건-.
‘그 사이에 박물관에 있던 진품을 비고로 옮긴 건가?’
진품과 가품이 교체되는 주기는, 박물관을 관리하는 황탑의 고위직밖에 알지 못했던바.
지금으로선 그렇게 추측할 수밖에.
심장을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고.
그렇게 스승의 뒤를 쫓아 걷길 얼마간, 다리아의 걸음이 멈춰 선 곳은 왕궁의 한켠에 위치한 낡고 허름한 마구간 앞이었다.
워낙 구석진 곳에 있는 데다 정원수가 우거져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왕궁 내에 이런 건물이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낡은 건물.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잔뜩 쌓인 짚 더미 아래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걸 착용하거라.”
다리아가 건넨 것은 작은 반지 하나였다.
마력의 기운이 느껴지는 것이, 마법이 걸려 있는 아티펙트가 분명했다.
‘무슨 아티펙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시키는 대로 반지를 착용하자, 기묘한 마력의 흐름이 자신을 휘감는 것이 느껴졌다.
직후 계단 아래로 내려서는 순간.
“읏-!”
러셀이 저도 모르게 러셀이 침음을 흘렸다. 온몸의 감각이 곤두서는 것만 같은…….
“느꼈느냐?”
“-마나로 이루어진 수십 개의 화살촉이 저를 겨누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네요.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고.”
“정답이란다.”
러셀의 말에 다리아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라면 막내 너도 들어본 적이 있겠지? 이곳의 이름은 제3 보물고란다.”
국보를 비롯한 갖은 종류의 보물과 아티펙트들을 보관해놓은 창고가 몇 개쯤 있다는 소문은, 러셀 역시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설마-.
‘그게 실존하는 거였을 줄은.’
“하지만 나는 이곳을 이렇게 부른단다.”
“……?”
“마법학의 총아(寵兒).”
제대로 된 이유가 없다면, 납득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름이다.
당연하게도 이유는 있었다.
“이곳에 보관된 여러 물건을 보호하기 위해, 건국 이후 수백 년에 걸쳐 각 시대의 대마법사들이 보호 마법을 덧대고 덧대 왔으니…….”
그것도 아주 납득할 만한 이유가.
“이 반지가 없다면, 그 영감탱이나 나라고 할지라도 이곳을 돌파하는 데 족히 몇 시간은 걸리겠지.”
8써클 대마법사의 발을 몇 시간이나 묶어 둘 수 있는 장소라니.
새삼 경외감을 느끼며 러셀이 자신의 손에 착용된 반지를 내려 봤다.
‘이 반지가 일종의 안전장치인 셈인가?’
척.
잠시 후, 지하 통로의 끝에 도달한 다리아가 걸음을 멈췄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커다란 철문.
“다 왔구나.”
철문의 한복판에 난 구멍에 막대 같은 열쇠를 끼워 넣기 무섭게, 철컥!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울렸다. 이어 빛의 문자가 철문의 위로 빼곡하게 떠 오르기 시작한다.
화아아악-.
떠오른 빛의 문자가 몇 개의 원을 이루며 마법진을 만들어나가고.
‘미완성 마법진에 열쇠를 꽂아 작동시키는 구조인가? 그럼 열쇠를 중심으로 삼아서…….’
천성부터 마법사인 러셀은 습관적으로 마법진의 구동 방식을 분석했다.
물론 워낙 수준 높은 것이어서 당장에 얻을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았지만.
그 사이 마법진이 완성되며 철문이 열렸다.
쿠그그그긍-.
위로 열리는 철문, 그 너머의 광경이 훤하게 드러난다.
“라이트-.”
어둠을 밝히기 위해 시동어를 읊는 순간, 환한 빛이 러셀을 덮쳤다.
“윽-.”
철문 너머 쌓인 보물에 한순간 빛이 반사된 탓이었다.
그 모습이 재밌다는 듯, 다리아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분명 이런 광경을 보려고 미리 말씀 안 해주신 거겠지.’
낄낄거리는 스승을 뒤로하며 라이트 마법의 크기를 줄인 러셀이 창고 내부를 찬찬히 살폈다.
눈이 닿는 곳마다 가득 쌓여 있는 것은, 그 양이 가늠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금은보화.
‘이러니 빛이 그렇게 반사가 되는 거지.’
보물고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다리아의 경고가 들려왔다.
“잊지 말거라. 막내, 네게 허락된 물건은 단 하나뿐이란다.”
그 경고에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러셀이 찬찬히 걸음을 옮겼다.
가득 쌓여 있는 보물들은 휘황찬란하지만, 대부분 평범한 것들, 그러니까-.
‘함정이겠지.’
저 번쩍거림에 시선이 팔려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함정.
“후.”
짧은 호흡과 함께 러셀의 두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러자 금은보화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몇몇 물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하나같이 강력한 힘이 깃들어 있는 물건들이었다.
가진다면 당장에 전력이 될 만한 아티펙트도 있었으며, 어쩌면 신대의 물건일지도 모르는 것 역시 몇 보였다.
하지만…….
‘내가 손에 넣어야 할 건 용종의 심장뿐.’
러셀은 흔들리지 않았다.
일말의 미혹조차 깃들지 않은 눈으로 장내를 천천히 둘러봤다.
용종의 심장이 있는 위치를 확인했다.
‘흐음.’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리아가 살짝 입꼬리를 끌어 올렸고, 이어.
러셀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찾았다.’
보물고의 한 켠, 작은 상자 위에 놓여 있는 용종의 심장에 손끝이 닿은 순간.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중급 마석(식용)x2를 지급합니다.]알림이 들려왔다.
[획득한 심장에 마력을 불어 넣을 경우, 심장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납니다.]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