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79
79화
EPISODE.40
홰애액-!
파공음과 함께 날카로운 불화살 하나가 밤하늘을 가르며 치솟았다.
직후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각도로 방향을 선회했다.
완전히 물리 법칙에 어긋난 방향 전환, 설사 활의 달인이라 해도 저런 궤도로 활을 쏘아낼 수는 없었다.
그럴 수밖에.
캬르르륵-.
지금 방향을 뒤튼 것의 정체는 불화살이 아닌 페퍼였으므로.
‘거리가 너무 멀어 불화살처럼 보이긴 하지만.’
조금 전과는 달리 자신의 성장과 변화에 완전히 적응한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신난 표정으로 밤하늘을 쏘다닐 리가 없지 않은가.
작은 날개가 돋아난 걸 보고 성장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다.
‘설마 벼락의 영향을 받아서 성장할 줄이야.’
하지만 여기까지는 러셀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아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야기는 아닌가?’
벼락과 불은 완전히 별개의 속성이 아니었으니까.
실제로 뇌격 속성 마법을 불 속성에서 파생된 것이라 여기는 마법사들도 꽤 있었다.
캬르륵-.
그때 밤하늘을 날던 페퍼가 다시 한번 방향을 선회했다.
연달아 원을 그리며 하늘을 가로질렀고, 그 자리를 따라 용수철과 같은 붉은 궤적이 아로새겨진다.
‘크기만 커진 게 아니라, 비행 능력 역시 좋아졌어.’
예전보다 훨씬 빨라진 속도는 물론 방향 전환 역시 자유롭다.
저만한 속도를 내면서도 방향 전환은 물론 제동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증거였다.
저 크기까지 성장한 페퍼라면…….
혹시나 하는 생각에 러셀이 페퍼를 불러들였다.
캬르르륵-
계약자의 생각을 읽은 페퍼가 양 날개를 퍼덕이며 러셀을 향해 돌아오고, 직후 거대한 뒷발로 러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콱!
단단히 어깨를 움켜쥔 페퍼가 다시 한번 크게 날갯짓을 하는 순간!
화악!
러셀의 눈에 비친 시계가 달라졌다.
휴버트의 저택이 순식간에 점과 같은 크기로 줄어들고, 뒤이어 왕도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물론 레비테이션이나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이 높이까지 올라 올 수 있긴 했다.
하지만.
‘속도나 기동성 자체는 페퍼가 압도적인 수준이야.’
잘 다루기만 한다면 공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단이 하나 늘어난 셈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황소만큼이나 거대해진 페퍼의 덩치 때문에 피격 범위 역시 함께 늘어났다는 점일까.
가르륵-.
그때 페퍼가 사념파를 보내왔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곱씹기도 전에, 페퍼의 모습이 변화했다.
갸르르르륵-!
날카로운 울음소리와 함께 페퍼의 몸이 거대한 불길의 형상으로 변모했다.
츠츠츠츳-.
일어난 불길이 러셀의 전신을 뒤덮으며 옷의 형상으로 화(化)하고.
갸르륵.
바로 옆에서 페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불꽃으로 이루어진 옷, 그 어깨 부분에 페퍼의 머리가 삐죽하고 솟아 있는 것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등 뒤쪽, 옷과 어깨의 연장선을 따라선 불꽃의 날개가 펼쳐져 있었다.
“설마-?”
마치 페퍼와 자신이 한 몸이 된 것만 같은 변화에 러셀의 두 눈이 기광을 토해냈다.
‘설마 특이 능력을 각성한 건가?’
돌연변이로 태어나는 정령들은, 간혹 성장 과정에서 다른 정령들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힘을 각성하는 경우도 있다더니.
언제고 봤던 정령과 관련된 서적의 내용을 떠올리며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페퍼가 그런 부류였을 줄이야.
‘정령을 옷처럼 둘렀으니, 정령의(精靈衣)라고 불러야 하는 건가?’
페퍼의 성장에 특이 능력의 각성.
전혀 예상치 못한 소득의 연속에 ‘나 잘했지?’라고 말하는 듯 페퍼가 제 머리를 볼에 비벼왔다.
갸르르륵-.
“그래. 잘했다.”
러셀이 손을 들어 그런 페퍼의 턱 부분을 살살 쓰다듬었다.
백작위와 1만 호에 대한 징세권.
벼락의 속성을 띤 뿔과 마력 상승의 비약.
정령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옷과 기동성을 갖춘 날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은 날이라는 생각과 함께 러셀이 고개를 들었다.
‘보름달이네.’
고도 높은 곳까지 날아올랐기 때문일까.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오늘따라 유독 커 보이고.
전보다 꽤 시원해진 바람이 불어왔다.
가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때르르르릉-.
알람 마법이 울리는 소리에, 책 속에 얼굴을 묻고 있던 러셀이 고개를 들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창을 통해, 서서히 깔리기 시작하는 노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시선을 조금 아래쪽으로 내리자, 창틀 위로 새하얀 눈이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하긴, 그럴 만도 한가.’
국무회의가 있었던 날로부터 벌써 넉 달, 계절은 가을을 넘어 완연한 겨울에 접어들기 충분한 시간이었으므로.
탑의 높은 곳에 위치한 집무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 여러 마차가 바쁘게 도로 위를 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개중 절반 이상이 검은색 고무바퀴를 끼우고 있는 마차들.
마쉐린 상단에서 판매를 시작한 고무바퀴들이었다.
‘처음 시판을 했을 때만 해도 애매한 반응이었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고무바퀴가 가지고 있던 장점들이 점점 세간에 알려지게 되었던 것.
뿐만 아니라 돈만 있으면 원하는 형태와 크기의 바퀴를 커스텀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왕도 귀족들 사이에선 조금씩 고무바퀴 유행이 불고 있는 중이기도 했다.
덕분에 러셀의 통장에 쌓여가는 돈 역시 상당히 늘어나 있었고.
그렇게 밖을 내다보며 감상에 잠기길 얼마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문득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에 러셀이 재빨리 몸을 돌렸다.
집무실 한켠에 걸어 두었던 로브를 두른 후, 탑의 아래층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우우우웅-.
“음?”
부유석을 통해 아래로 내려가자, 한 무리의 인원들이 1층 로비에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대부분 자신과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모습에, 하나 같이 번호가 적힌 명찰을 가슴팍에 매단 모습.
‘그러고 보니 오늘이었던가?’
그 모습에 러셀은 얼마 전 받았던 공문의 내용 중 일부를 떠올렸다.
‘입탑 면접이 있는 날이라고 했었나?’
자신과 같이, 아카데미 졸업 직후에 왕도 마탑으로 불려오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다른 마탑에서 몇 년간 경험을 쌓은 후, 염탑의 입탑 시험을 치르게 되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었지.’
바로 오늘이 그 시험의 면접 날이었고.
“…….”
자신에게로 향하는 시선을 느끼며 러셀이 그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맞지, 맞지?”
“붉은 눈동자와 검은 머리칼, 저 사람이 소문의…….”
“러셀 레이먼드.”
“왕국에선 잘 볼 수 없는 외모에 이질적인 미남이라더니, 어쩜-!”
반 박자 늦게 뒤따르는 시선에서 웅성거림이 전해졌다.
남자 마법사들은 질시와 경외의 눈빛을, 여성 마법사들은 그 속에 묘한 호기심을 더해서.
여전히 부담스럽기만 한 시선들이었다.
다행인 점은 처음만큼 낯뜨겁지는 않다는 점이겠지만.
‘이골이 났다는 거겠지.’
하루 이틀 저런 시선을 받아온 것도 아니고.
그래도 꽤 신선하기는 했다.
오가며 몇 번이나 얼굴을 마주친 탓인지, 근래 들어 왕도의 마법사들이 저런 시선을 보내오는 경우는 잘 없었기에.
그들의 시선을 흘려보내며 염탑을 빠져나온 러셀이 향한 곳은, 당연하게도 휴버트의 저택이었다.
아직 해가 다지지 않은, 이제 막 밤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할 무렵.
‘확실히 평소보다 이른 퇴근이긴 하군.’
평소대로라면, 노을이 아니라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집무실에서 공부나 연구 등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 텐데.
‘하지만 오늘까지 그럴 수는 없지.’
오늘은 약속이 있는 날이었으므로.
“오셨습니까?”
안으로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고용인이 러셀을 반겼다.
“예. 그런데 사형은 도착하셨습니까?”
약속의 상대는 바로 러셀의 둘째 사형인 휴버트였다.
그가 아카데미 겨울 방학을 맞아 왕도로 돌아왔던 것이다.
러셀의 물음에 고용인이 고개를 주억였다.
“예. 그렇지 않아도 식사 준비가 다 되어가던 터라 모시러 갈 예정이었는데…….”
“그럼 저도 간단히 세안만 하고 바로 식당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애당초 약속도 저녁 식사 약속이었기에.
“알겠습니다. 그럼 식사 준비를 해두겠습니다.”
고용인의 대답을 뒤로 하고,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러셀이 서둘러 세안을 했다.
옷을 갈아입었다.
“왔는가?”
잘 차려진 식사와 식탁.
먼저 도착한 듯, 휴버트가 식당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늦었습니다.”
“아니야. 나도 이제 막 도착했을 뿐이니, 신경 쓰지 말게. 그보다…….”
휴버트가 말꼬리를 흐렸다.
미안함이 잔뜩 섞인 기색으로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5써클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네만, 제대로 축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네. 명색이 사형씩이나 되면서 면목이 없게 되었어.”
이미 몇 달 전에, 축하 편지는 물론 잘 맞춰진 연미복 한 벌까지 선물로 받았던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리 말하는 것은-.
‘얼굴을 맞대고 축하 인사를 건네지 못했기 때문이겠지.’
오랜 시간 5써클 마스터에 정체되어 있던 입장에서, 사제에게 따라 잡힌 것이 화가 날 법도 하건만.
도리어 제대로 축하해주지 못한 미안함만이 가득한 얼굴이라니. 그 속에 담긴 진심을 읽을 수 있었기에 러셀은 조용히 고개를 흔들었다.
“늦었다니요. 지난번 보내주신 편지와 선물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허나…….”
이대로 두었다간 계속 미안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하게 되겠지.
그렇기에 먼저 화두를 돌린 것은 러셀이었다.
“그보다.”
“……?”
“예정했던 것보다 사흘 정도 일정을 당겨 올라오신 것을 보면, 아무래도 탑에서 임무를 받으신 모양이로군요.”
오늘의 약속을 러셀이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이번 겨울, 아카데미를 나와 떠나신 여행에서 사형은 목숨을 잃게 된다.’
그게 단순한 학술 목적의 여행이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탑에서 받은 임무가 문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러셀은 그것을 막고 싶었다.
‘가능하면 애당초 출발을 못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리하기에는 납득할 만한 명분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남은 수는 한 가지.
‘내가 직접 동행하는 수밖에 없겠지.’
얼마나 큰 위험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5써클 마법사가 둘이라면 위험부담이 절반가량 줄어들게 될 테니까.
만약 자신이 전력을 다해 사형을 돕는다면, 6써클.
‘지방 탑주 급 실력자의 손에서 빠져나오는 것도 가능할 테니까.’
사실상 규격 외의 초인(超人), 마스터 급이 아니고서야 위험할 일은 없을 터였다.
“음-.”
잠깐의 침음 후, 휴버트가 답변했다.
“일단은 그렇네, 아직 무슨 임무인지 까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말이야.”
5써클 마스터 급 마법사의 일정을 당겨서라도 출발해야 하는 임무.
뭔지는 몰라도 난이도가 낮지는 않을 것인즉.
“가능하다면, 저도 사형의 임무를 함께 따라가고 싶습니다.”
“내 임무를? 사제가 굳이 그래야 할 이유가 있는가?”
휴버트의 질문에 러셀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아닙니다.”
그에 대한 답변은 이미 준비해두고 있었다.
“저도 슬슬 성과를 갱신할 때가 된 것 같아서요.”
일반적으로 마탑 소속의 마법사들은 연구 성적을 통해 성과를 갱신하곤 한다.
하지만 러셀이나 휴버트 같은 워 메이지는 임무 몇 개를 수행하는 것으로 성과 갱신을 대체 할 수 있었었다.
러셀이 방금 댄 이유 역시 그런 것이었고.
“허, 누가 사제에게 성과 갱신을 이야기한단 말인가?”
러셀의 답변에 휴버트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근래 러셀이 세운 성과만 하더라도, 근 5년간 놀고먹어도 문제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성과 갱신이라니.
기다렸다는 듯 러셀이 덧붙였다.
“그리고, 사형과 함께 임무를 수행해본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습니까.”
“음.”
이어진 러셀의 말에 휴버트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그 말대로.
교수와 아카데미의 학생에서 시작하여 사형제 사이가 되었지만 함께 임무를 나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지 않은가.
이번 기회에 사제, 러셀의 성장을 직접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
“-사제가 원한다면야.”
일단 허락의 말을 내뱉은 그가 빠르게 첨언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결정은 내가 아니라 스승님께서 하시는 것일세. 아무리 내가 동의했다 한들, 스승님께서 반대하신다면 나는 사제의 편을 들어 줄 수 없어.”
그 역시도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답변이기에,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션이 떠올랐다.
[미션]미지의 위험으로부터 사형, 휴버트와 함께 생환하세요.
[보상]상급 마석(식용)x3, 중급 마석(식용)x5
미션의 진행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거나 추가되는 경우는 몇 번이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상급 마석이 셋이나…….’
쉽지 않은 일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건만.
고난을 예고하는 미션창의 내용에, 막대한 보상을 눈앞에 두고서도 러셀은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