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81
81화
EPISODE.41
키옐의 귀족, 킴블리 백작이 사납게 노성을 토했다.
“이 제정신 아닌 작자들 같으니라고!”
반쯤 열린 마차의 창문을 통해, 뒤쪽으로 따라붙은 사냥개들의 모습을 확인하면서였다.
‘추격조가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설마하니 성벽을 넘자마자 행동을 개시할 줄이야.’
고작해야 백작 하나, 특사 하나에게 붙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적들이 이렇게까지 급하게 행동을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쪽의 정보가 샜다고 보는 게 옳겠지.’
문제는 지금 저 추격조들 사이에서 살아나갈 수 있냐는 점이었다.
엔디미온에서 파견된 호위들과 만나기로 한 장소까지는 아직 삼십 분가량의 거리가 남아 있었으니까.
게다가 운이 좋아 도착한다고 해도, 호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혹여 엔디미온 측의 인물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면-.’
이쪽은 그대로 전멸하는 수밖에 없을 터.
그 후의 미래를 그려보던 킴블리 백작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때였다.
“백작님-!”
호위를 겸해 따라온 기사단장 하나가 마차 옆으로 바짝 말을 붙인 것은.
“-단장!”
“기사단을 두 개의 조로 나누겠습니다. 그리고 2조와 제가 남아 시간을 끌어보겠습니다.”
“허나 그렇게 되면 단장은…….”
눈에 보이는 적들이 전부라면 모르겠지만, 추격조가 추가로 따라붙게 된다면 제아무리 백작가의 기사단장이라 하더라도 목숨을 보전할 수 없을 터.
“괜찮습니다.”
걱정 어린 백작의 음성에 기사단장이라 불린 사내는 결연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저 같은 칼 든 무지렁이 하나 보다는, 백작님께서 살아남는 것이 나라를 위해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결정을 내비치듯, 거칠게 바이저를 내리며 얼굴을 가렸다.
찰칵!
바이저 이음매 소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고.
“조를 둘로 나눈다. 부단장은 일조를 지휘해 계속해서 백작님과 마차를 호위하도록 하라!”
“옛!”
“그리고 이 조!”
기사단장이 허리춤에 매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뽑아라!”
창-!
“우리는 이곳에서 적들을 막는다!”
죽음을 각오하라는 말 따위는 필요 없겠지. 이 여정에 따라나섰다는 것부터가, 각오를 마쳤다는 증거였으므로.
“가자!”
“우오오오오-!”
그들이 내지르는 함성과 함께 필사(必死)의 각오가 불꽃처럼 타오르려는 순간!
――――――――!!
――――――――――――!!
좌우(左右), 각기 양쪽에서 고열 고압의 광선포가 지면 위를 수평으로 관통했다.
히이이잉-!
대류 현상과 함께 일어난 광풍에 마차를 끌던 말들이 거칠게 투레질했다.
“저건…….”
3써클.
부족한 실력이나마 한때 마법사의 길을 걸었던 백작이다.
마법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5써클 화염계 마법.
백작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플레어 캐논(Flare Canon).”
* * *
5써클 마도사(魔道師).
소규모 국지전에선 홀로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전력으로 평가받는 이들이었다.
문자 그대로 인간병기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이들이기도 했고.
그런 그들 앞에, 고작해야 수가 많을 뿐인 평범한 병사 따위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그 숫자가 열이든 스물이든, 그렇지 않으면 쉰이건.
화르르륵-!
모조리 태워버리면 그뿐.
일어난 복사열에 대지가 끓어오르고, 달궈진 열기에 쇠로 만든 갑주가 줄줄 녹아내렸다.
피격당하지 않더라도 중상.
“으아아악-!”
“가, 갑옷이 녹아내린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 차려입은 갑주가 도리어 몸을 상하게 하는 꼴이라니.
아이러니(Irony)가 만들어내는 아수라장(阿修羅場).
그 속에서 러셀은 한 마리의 사자처럼 흉포하게 날뛰었다.
전장에서 적에게 자비나 동정을 보이는 워 메이지라니.
신출내기 워 메이지라도 그런 실수를 보이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숙련된 워 메이지가 두 사람임에야.
그로부터 약 오 분 후.
곳곳에서 메케하게 탄 연기가 솟구쳐 오른다.
숯 가마터와 같이 변한 현장에서, 깊게 가라앉은 눈길로 러셀이 불길을 거두어들였다.
‘이렇게 쉬울 리가 없는데.’
미션의 보상과 내용이 꼭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휴버트가 목숨을 잃었을 정도의 임무였다.
분명 여기서 끝이 아닐 테지.
일말의 찝찝함을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것으로 러셀은 경계심을 유지했다.
그때였다.
마찬가지로 전장 정리를 끝낸 휴버트가 물음을 건네 온 것은.
“그쪽의 정리는, 끝났는가. 사제?”
이까짓 적들에게 당할 수준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에, 굳이 괜찮냐는 물음조차 필요 없다.
“예. 끝났습니다.”
담담히 대꾸하며 돌아보자, 휴버트가 기이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반쯤 녹아내린 칼 한 자루를 주워 들더니, 그것을 막대기 삼아 소사체(燒死體) 중 하나를 뒤적거리기 시작한 것.
“사형-?”
의문 섞인 러셀의 음성에 휴버트가 대꾸했다.
“아, 별것 아닐세. 혹시나 더 알아낼 것이 있나 해서 좀 뒤적거려봤을 뿐이야.”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계셨습니까?”
“음.”
잠시간의 침음 후 말이 이어졌다.
“아무래도 이 자들, 제국의 병사들인 것 같더군.”
“제국이요?”
키옐의 후작이 제국과 손을 잡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벌써 제국의 병사가 키옐 내부까지 들어와 있을 줄이야.
“확실한 건 아니야, 아직은 의심 수준이지.”
전투의 마지막 순간, 불꽃을 가르며 공격을 가해오던 기사 하나가 있었다.
딴에는 목숨을 건 공격이었다고 하나 휴버트의 입장에선 그리 치명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은 공격.
허나 그 일초반식도 되지 않은 공격에서 휴버트가 느낀 것은 이유 모를 익숙함이었다.
“나는 그걸 제국의 군사 훈련용 검술 중 하나로 생각했네만.”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하지는 않군. 워낙 짧은 순간인데다, 내가 검술 쪽에는 문외한인지라.”
“가능성의 문제일 뿐이겠지만, 주의해둬서 나쁠 건 없겠군요.”
그 속내를 짐작한 러셀이 한숨을 내쉬었다.
제국의 추격조와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빠를 줄이야.
그때, 러셀을 향해 다가오는 무리가 있었다.
처음 적들을 향해 돌격하려던 기사단장, 그리고…….
‘저 사내가 킴블리 백작이로군.’
40대 중반의, 대대로 키옐 왕실에 충성해온 백작가의 수장.
보고서에서 확인한 인상착의와 같은 얼굴이었기에, 그를 알아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 옆을 뒤따르는 것은…….
‘하녀인가?’
험난한 여정에 하녀를 동참했다는 점이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어쨌든.
“엔디미온의 분들이시오?”
킴블리 백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고, 휴버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염탑의 워 메이지, 휴버트라고 합니다.”
러셀도 자신을 소개했다.
“마찬가지로 염탑의 워 메이지, 러셀 레이먼드입니다.”
소개를 마치는 것과 동시에 두르고 있던 로브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그러자 불타는 장미문, 플레어로즈의 문양이 로브의 어깨 부분에서 타오르듯 모습을 드러내고.
“휴버트 경, 그리고 러셀 레이먼드 경이셨구려.”
두 사람의 신분을 확인한 킴블리 백작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 보니 휴버트와 러셀 레이먼드라면…….’
어디서 들어본 것만 같은 이름에 멈칫하길 잠시, 그의 옷깃을 잡아끄는 손길이 있었다.
“으음?”
러셀이 하녀라 추측했던 여인이었다. 그녀의 손길에 킴블리 백작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인다.
마냥 하녀를 대한다고 생각하기에는 꽤 예의를 차린 행동이라.
‘본래 성격이 저런 이라면 할 말은 없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에 러셀이 두 사람의 행동을 주목했고, 그때.
여인에게 귀엣말로 뭔가를 전해 들은 백작이 두 눈을 부릅떴다.
“엔디미온에서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를 보내준다고 하기는 했지만, 설마, 그게 두 분이었을 줄이야.”
“저희를 아십니까?”
“알아채는 게 조금 늦은 입장에선 웃기는 소리겠지만, 물론이오.”
그 역시 한때는 마법사의 길을 걸었던 몸이다.
염탑주 다리아 스노우화이트는 물론 그 제자들에 관한 소문 역시, 풍문이나마 몇 번이나 접해왔고.
설혹 작위가 없더라도 자작과 맞먹는 권한을 지니는 이들이 바로 5써클 워 메이지들이었다.
키엘과 같은 약소국에서 그 대우는 백작 이상. 거기에 염탑주의 제자라는 배경이 더해진다면…….
게다가 다른 하나는 엔디미온에서 유명한 초신성이었다.
그것도, 백작위뿐만 아니라 징세권 역시 갖추고 있는 진짜 귀족의.
‘어느 쪽이건 간에 가벼이 대할 수는 없겠지.’
그리 판단한 킴블리 백작이 능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구명에 대한 인사가 늦어 미안하구려. 키옐의 백작, 킴블리가 다시 한번 인사드리겠소. 고맙소이다.”
과연, 외교로 유명한 국가의 백작인가.
목숨이 경각에 달했던 것이 불과 몇 분 전의 일이다.
그 사이 신색을 회복하고 적절하게 판단을 내리다니. 나지막이 감탄하는 러셀을 뒤로하며 휴버트가 말했다.
“일단 자세한 이야기는 계속 이동하면서 하는 게 좋겠소.”
이 정도 숫자의 추격조가 몇 번을 따라붙든 문제는 아니었지만, 혹시 모를 일 또한 대비해야 했기에.
.
.
“제국의 병사들이라니, 벌써부터……!!”
마차 안.
어느새 바뀐 장소에서 킴블리 백작이 성토했다.
“따로 보고가 없었던 것을 보면 어딘가의 성벽이 이미 매수가 되었거나, 밀입국 루트를 이용했을 거요.”
키엘에는 해안과 인접한 지역도 있었으니, 어쩌면 그 부근을 통해 들어왔을 수도 있고.
“아직 확정된 문제는 아니니 일단 진정하시지요.”
러셀의 만류에 그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미안하구려. 러셀 경. 추태를 보이고 말았소. 아무래도, 신경이 예민했나 보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보다…….”
열린 창을 통해 마차 밖을 응시했다.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확실히, 사제의 의견엔 나도 동의하네.”
마쉐린 상단에서 제작한 고무바퀴를 끼워 넣었다지만, 마차 자체가 산길을 넘기에 그리 좋은 이동 수단이 아니었으므로.
더욱이 엔디미온과 같이 마차역 제도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이런 곳이라면 더욱더.
“차라리 마차와 기사들을 돌려보낸 후, 최소한의 인원들만으로 이동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사람 하나 정도를 업고 이동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으니까.
“국경만 넘어간다면 워프게이트도 이용할 수 있을 테고요.”
“음……, 최소한의 인원이라면 어느 정도를 말하는 것이오?”
“저와 사형, 그리고 백작님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특사나 사절이라는 단어와 어울리는 규모는 아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
문제는-.
“기사단과 마차는 돌려보낸다 치더라도, 이……아이는 꼭 데리고 가야하오.”
-킴블리 백작이 부리기 시작한 얼토당토않은 고집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것도 아니고, 외교로 유명한 키엘의 백작씩이나 되면서 이 상황에 여색이라니!
“백작, 내 백작의 사생활에까지 왈가왈부하고 싶은 심정은 아니나…….”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 휴버트가 뭐라 쏘아붙이려는 찰나.
“사형.”
러셀이 휴버트을 만류했다.
킴블리 백작이 지금까지 보였던 이상한 태도를 돌이키며 물었다.
“혹시 따님이십니까?”
나라가 위급한 상황인 만큼, 혼자 남은 딸을 하녀로 위장해 함께 대동하려 한 것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므로.
“그건…… 아니오.”
러셀의 물음에 그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도대체 왜-!”
“프로텍트!”
러셀이 다급하게 마법을 펼쳤다.
우우우웅!
반구 형태의 마력벽이 마차를 포함한 일대를 휘감았다.
그리고 반의반 호흡.
쐐애액, 퍼버버벅!
살벌한 관통음, 튕겨져 나간 화살비가 주변의 바닥이나 나무 등치에 박혀드는 소리가 일대를 뒤덮었다.
“적습이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