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83
83화
EPISODE.42
등줄기를 타고 오르던 불안감이 실체화된 것은, 그보다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산맥을 돌파하기 시작한 지 24시간이 조금 넘어갈 무렵.
한겨울, 머리 위로 얼음물을 쏟아부은 것만 같은 오한.
오장 육부를 동시에 옥죄는 것만 같은 소름이 러셀의 몸을 휘감았다.
온몸의 감각이 경종을 울려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엎드려-!!”
제대로 된 존댓말조차 이루지 못했을 정도로 급박한.
근거보다는 본능에 기인한 외침이었다.
그리고.
――――――――――――――!!!
그 외침이 러셀을 비롯한 일행들의 목숨을 구했다.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구르는 순간, 날카로운 검격이 목덜미 위를 스치고 지나간다.
횡(橫)으로 휘둘러진 검격이 공기를 달구며 일대를 베어냈다.
서걱, 서거걱!
날카로운 절삭음이 울렸다.
우지끈-!
그보다 조금 늦게, 일대의 나무 군락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산맥을 따라 펼쳐진 숲.
그 일부를 마치 벌목장과 같이 만들어내는데 필요로 했던 것은 단 일검(一劍)뿐이라.
휴버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모골이 절로 송연해지는 것 같았다.
만약 러셀이 경고해주지 않았다면.
‘그간 워 메이지로서 쌓아온 본능대로 경고 즉시 몸을 굴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허리가 양단되었을지도.
등에 업고 있는 킴블리 백작이야 말할 것도 없다.
허나 위협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옵니다.”
한 걸음, 두 걸음.
전신을 옥죄는 살기가 조금씩 다가서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경고했다.
살기를 느낀 두 워 메이지가 판단을 내렸다.
그간 전장에서 쌓아 올린 직감과 본능이 뒤섞여 이루어낸, 최선의 판단이었다.
어쩌면 이것 말고 다른 수단이 없다고 해야 할지도.
‘여기까지 따라 잡힌 이상 거리를 벌리는 건 무리야.’
지난날 뼈저리게 확인하지 않았던가.
제대로 된 오러 수련자들 역시, 마법사만큼이나 세상의 경계를 한 발짝쯤 벗어난 존재라는 것을.
단 한 번의 뜀박질로 십 수 미터 이상을 도약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이 정도 간격이란 무의미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지.
느껴지는 기세 또한 스팬덤의 그것보다 강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에 걸리는 것, 그것은 바로 숲을 베어냈던 참격이었다.
‘붉은 비검(飛劍).’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건 분명 살인귀, 스팬덤이 사용했던 것과 같은 종류의 검술이었다.
볼라레 상궤(Volare Sangue).
날아드는 핏물이라는 이름을 가진 비검술(飛劍術), 검술의 이름을 곱씹으며 러셀이 자세를 낮췄다.
등에 업고 있는 왕녀를 내려놓았다.
휴버트 역시 백작을 내려놓으며 임전 태세에 돌입했다.
“최대한 전투의 여파가 닿지 않는 곳에 숨어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왕녀와 백작.
두 사람이라는 짐을 매달고 적과 싸우는 것은 절대 무리였다.
“네? 하지만 도망가는 편이…….”
떨리는 왕녀의 목소리에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마 저쪽에서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도망갈 수 없다.
참격이 날아온 순간, 러셀과 휴버트는 깨달았다.
방금 전 날렸던 참격 역시 인사치레였을 뿐.
‘도주할 수 없다면.’
‘일단은 맞서 싸울 수밖에.’
상황 판단을 마친 두 사람이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라 아주 잠시간의 틈을 만들고 도주하는 걸세.] [알고 있습니다.]최선을 다해 잠시간의 틈을 만들고 도주하는, 일격이탈(一擊離脫)의 전법.
몇 번이나 반복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허나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수였다.
이윽고.
완벽한 사거리 안으로 적이 들어온 순간!
“지금!”
두 사람의 마법사가 일제히 마법을 발포했다.
투두두두두-!
속사(速射), 그야말로 탄막(彈幕)을 방불케 하는 숫자의 마법들이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온다.
적청황백, 4대 속성으로 대표되는 마탑의 계보 중 화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이들이 바로 적탑의 마법사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정점, 염탑에 속한 워 메이지들이 쏟아내는 마법이란!
일점에 집중시킨다면 성벽은 물론, 주변 일대를 녹아내리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이다.
이만한 힘을 분화구에다가 쏟아붓는다면, 실제로 화산을 폭파시킬 수도 있을 터!
그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마법이 쏟아질 때마다 지축을 울리는 굉음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콰앙, 콰르르르릉!
불꽃과 벼락이 쏟아지며 메케하게 탄 냄새가 사방을 잠식했다.
산이 무너져 내리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대기가 끓어 올랐다.
두 사람의 연사가 멈춘 것은, 그로부터 약 일 분가량이 더 흐른 시점에서였다.
한껏 달궈진 공기에 일어난 바람이 하늘로 솟구치며 사방으로 나부끼고.
쿠오오오오!
그와 함께 치솟았던 재가 눈처럼 떨어져 내렸다.
이만한 위력이라면, 죽이지는 못해도 최소한의 상처 정도는 입힐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기대를 무색게 하듯, 사아악!
폭연이 갈라졌다.
갈라지는 폭연 사이로, 반(半)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 하나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상처는커녕 머리카락 하나 상하지 않은 모습.
게다가 주변이 열사지대라도 된 것마냥 들끓고 있는데 산책을 나온 듯 여유 가득한 걸음걸이.
“맥라이……휴스!”
그 얼굴을 알아본 휴버트가 씹어 뱉었다.
러셀의 손끝이 파르르 떨렸다.
볼라레 상궤의 비검을 보고, 그의 또 다른 제자가 온줄 알았더니.
설마 소드 마스터 본인이 직접 왔을 줄이야!
[미션]소드 마스터의 위험으로부터 사형, 휴버트와 함께 생환하세요.
[보상]상급 마석(식용)x5, 중급 마석(식용)x7
기존에 있던 미션이 새로운 것으로 바뀌었지만, 굳이 읽어보지는 않았다.
무슨 내용일지 불 보듯 뻔했기에.
“엔디미온의 마법사들, 그런데 흑발에 붉은 눈동자라…….”
그가 러셀과 휴버트를 돌아보며 입을 땠다.
“그렇군.”
고저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무감각한 음성이 이어졌다.
“네가 러셀 레이먼드로군.”
허나 그 속에서 러셀이 느낀 것은, 목소리만큼이나 텅 빈 공허감이 아닌 꾹꾹 눌러 담은 살기였던바.
”다리아 스노우화이트, 그년의 막내 제자.”
뒷목이 뻣뻣해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은 어금니를 깨물었다.
“네게도 빚이 있었지.”
그 빚이라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는 뻔했다.
철컥.
맥라이 휴스가 검을 고쳐 잡았다.
“너를 죽이면 빚은 물론 그년에게도 내가 겪은 모멸감과 수치심 역시 되갚아 줄 수 있을 터.”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가면 부분을 어루만지는 것과 동시에-.
“적당히 가지고 놀다 죽여주마.”
-폭사되는 살기.
비검(飛劍), 끄레미지(Cremisi, 심홍).
지평선이 붉게 물들었다.
* * *
소드 마스터.
문자 그대로 한 자루의 검으로써 세상의 경계를 부수고 벗어난 초인(超人)을 의미하는 말이다.
아무리 일국의 인간병기 취급을 받는 5써클 마도사라 할지라도, 감히 소드 마스터라는 거성(巨星)을 무너뜨릴 수는 없는 법이라.
그것은 설혹 5써클 마도사가 둘이 된다 하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경우가 조금 달라.’
그들의 목적은 승리가 아닌, 이탈.
그것을 위한 아주 작은 틈이었기에.
게다가.
‘방심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첫 번째 이탈을 이루어낼 만한 틈 정도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쪽은 적의 방심마저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니까.’
어찌도 스승과 제자가 이렇게 똑같은지.
무엇보다, 어떤 일을 벌이건 한 자루의 검과 육신에 국한되는 소드마스터와는 달리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마법사 쪽이 월등히 많았다.
‘프로텍트 쉴드!’
쩌엉-!
다섯 겹이나 펼쳐낸 5써클 방어마법을 통해 날아드는 비검을 튕겨내는 것과 동시에 러셀이 다른 한 손을 뻗었다.
더블 캐스팅, 5써클 마도사 중에서도 일부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기술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스퀘이크(Earthquake)-!’
쿠구구구궁!
마법이 펼쳐지기 무섭게, 대지가 진동했다.
푸드덕, 푸드덕-!
먼 곳에 있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며 파란의 전조를 예고하고, 두두두두두두!
전마(戰馬)가 내달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흙의 파도가 몰려들었다.
직접적으로 지진을 일으킨 것이 아닌, 출력을 집중시키고 형태를 변화해 산사태를 일으킨 것!
“제법 나쁘지 않은 한 수다만…….”
하지만 소드 마스터에게 산사태란, 의미 없는 발버둥일 뿐.
서걱!
“허-!”
직후 일어난 광경을 보며 러셀이 저도 모르게 혀를 내둘렀다.
인간의 몸으로 토사(土砂)를, 산사태를 베어 내다니!
저게 한 자루 검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인가 싶었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차근차근 다음 수단을 준비하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흡!”
바로 휴버트였다.
양손 가득 그러모은 중력장의 일부를 움켜쥐자, 일대의 중력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한다.
뒤집어지고 솟구친 중력이 흩어진 토사들을 한 곳으로 뭉쳤다.
콰과과과과과-!!
거대한 구(球)의 형태로 빚어내며 흙의 감옥 속에 맥라이 휴스를 가뒀다.
아마 토사의 내부에 갇히게 된다면 시야가 막히는 것은 물론, 강철조차 걸레처럼 쥐어짤 만한 압력을 마주하게 되겠지.
하지만 휴버트는 방심하지 않았다.
러셀보다 많은 전장과 사선을 넘어온 그는, 소드 마스터라는 초인이 가진 힘을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지금일세! 사제!”
“예-!”
기다렸다는 듯, 러셀이 손을 내리그었다.
그 궤적을 따라, 일곱 줄기에 달하는 붉은 벼락이 떨어져 내린다.
아니, 벼락이 아니다.
그것은 벼락과 같은 속도를 자랑하는, 불꽃으로 이루어진 창이었으니!
“게이볼그(Gae Bulg)!”
러셀 레이먼드, 오리지널리티.
스스로 ‘죽음의 마창’이라 이름 붙인, 블레이즈 랜스의 완성형 마법.
한 발에 압축된 화력만 할지라도 작은 언덕 하나를 통째로 불살라 버릴 수 있을 위력이었다.
그것이 무려 아홉 발!
꽈르르르릉!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
불기둥이 하늘에 닿을 듯 높게 솟구쳤다.
화르륵!
불어온 열풍이 머리칼과 로브 자락을 흐트러뜨리고, 그보다 먼저.
두 사람이 동시에 손가락을 튕겼다.
가진 마력의 상당수를 꼬라박듯.
고화력, 고출력의 마법을 난사했다. 단순히 벼락이나 불꽃, 낙석 따위만이 아니었다.
중력을 휘저어 인근을 통째로 갈아버리기까지.
!!!!!!
귀를 먹먹케 하는 굉음, 고작해야 십 수 초 마법을 난사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미 일대에는 대 파괴의 현장이 벌어진 지 오래.
아마도 지금의 모습에서 과거 숲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이들은 단 하나도 없겠지.
분명 일대의 지도 역시 새롭게 그려야 할 터.
그러나 정작 그만한 마법을 쏘아낸 두 사람의 얼굴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다.
“하-.”
“허어-.”
가까스로 한숨을 토해낸 후, 급하게 신형을 틀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숨어 있는 왕녀와 백작에게 가기 위해서였다.
응당 사람이라면 열기만으로도 폐부가 익어 버릴 정도였다.
회전과 역회전이 쉬지 않고 걸린 중력 속에서, 제대로 된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것 역시 불가능할 것인즉!
‘이 정도라면-!’
‘아무리 소드 마스터라도…….’
그런 두 사람의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마법사라는 놈들은 하나 같이…….”
음성이 들려왔다.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족속들이군.”
초인의 벽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두터웠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