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84
84화
EPISODE.42
“마법사라는 놈들은 하나 같이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족속들이군.”
음성이 흘러드는 순간.
찬물이라도 쏟아부은 듯한 오한이 일대를 뒤덮었다.
러셀과 휴버트의 걸음이 절로 그 자리에 못 박혔다.
잠시간의 틈은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이렇게까지 평온한 목소리일 줄이야.
날카롭게 불어오는 바람에 인근을 뒤덮었던 폭연이 단숨에 갈려 나간다.
스가악-!
이윽고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쉴드라도 펼친 듯, 반구의 형태로 놈의 인근을 뒤덮고 있는 것.
‘검막……이라고?’
그것은 한 자루의 검으로 만들어 낸 보호벽, 검막(劍幕)이었다.
직접 본 것은 처음이지만, 러셀 역시 검막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다.
검을 휘둘러 만들어내는 선, 그 선을 무수히 겹쳐 만들어내는 면을 통한 검술의 방어 기술.
그걸 실제로 만들어내는 검사를 볼 줄이야.
당연하게도, 무수하게 많은 선을 겹쳐 촘촘한 면을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걸 할 바에는 차라리 방패를 이용하는 게…….’
놀라운 점은, 그렇게 만들어낸 검막을 이용해 쏟아지는 마법을 막아냈다는 점이었다.
폐부를 익혀 버릴 열기도, 쏟아져 내리던 벼락도, 뒤틀어진 중력으로 인해 몰아치던 바위 폭풍도.
그 어떤 것도 저 막의 내부로 파고들지 못했다는 말이었기에.
한 자루 검으로 만들어내는 면(面)이, 그렇게까지 촘촘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의문이 절로 들었다.
츠츠츠츳-.
곧이어 검막이 가라앉는다.
아무리 검막이라도 완전히 버텨내지는 못했던 것일까.
검신의 절반가량이 붉은 쇳물로 화한 채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뿐.
두 사람의 워 메이지가, 쉬지 않고 마력을 쏟아부어 이뤄낸 성과는 그게 전부였던 것이다.
“결정했다.”
댕그렁-!
반절이 된 검을 내다 버리며, 그가 새로운 검을 뽑아 들었다.
“재밌는 걸 보여주마.”
손에 들고 있던 검이 아닌, 허리춤에 패용하고 있던 또 한 자루의 검.
스르릉-.
주변에 옮겨붙은 불꽃을 통해 붉은 검신 위로 화광(火光)이 번져 나간다.
검을 뽑는 순간, 일대의 바람이 달라진 것만 같은 착각이 일었다.
불길하기 짝이 없는 검붉은 색 검신을 따라 요요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그 속에서 러셀이 느낀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이었다.
‘뭐지?’
검이 뽑혀져 나오는 순간부터 이상하게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벌레떼가 발끝을 타고 기어오르는 불쾌감.
헛구역질이 치미는 것 같은 역함.
우우우웅-.
다섯 개의 써클이 일제히 회전하며 그 속에 깃든 마나가 항변했다.
자신은 저 검이 마음에 들지 않노라고.
“드래곤 본으로 만든 요검(妖劍)이다.”
그때 검을 고쳐 잡은 맥라이 휴스가 입을 열었다.
“듣자 하니, 백 명에 달하는 마법사의 피로써 용의 뼈를 타락시켜 만들었다고 하더군.”
“드래곤 본이라고?”
어쩌면 자신이 느낀 불쾌감의 이유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법의 조종이라 불리는 드래곤은, 그 위명에 어울리게 뛰어난 마법 방어력 역시 갖추고 있다던가. 다시 말해…….”
맥라이 휴스는 그렇게 말하며-.
“이 검은 마법, 그 자체를 베어 낼 수 있다.”
-검을 휘둘렀다.
비검(飛劍), 푸크시아(Fuchsia, 분홍).
서거걱-!
마법을 베어내는 검.
그 설명에 걸맞게, 날아든 참격이 일곱 겹에 달하는 방어마법을 단숨에 도려낸다.
충돌이 일어났던 좀 전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라.
“흡-!!”
종잇장처럼 갈라지는 자신의 마법을 목도하며 휴버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거기까지가 찰나.
다음 마법을 캐스팅하려는 순간!
서거걱-!
다시 한번 날카로운 절삭음이 울려 퍼졌다.
“잘 듣는군.”
“쿨럭…….”
베어져 나간 허리춤, 그 사이를 따라 흘러나온 핏물이 바닥을 적셨고.
“사형!”
휴버트를 보호하기 위해, 러셀이 다급하게 마법을 캐스팅했다.
그보다 먼저, 팟!
빗살 같은 인영 하나가 러셀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는 눈이었는데…….”
붉은 장검을 들쳐 올리며 스산한 눈빛을 발했다.
“일단 그 눈부터 도려내 주마.”
음성과 함께 러셀의 눈에 비친 세상이 조금씩 느려지기 시작했다.
시간을 잡아 늘이기라도 한 듯, 기이한 감각.
찰나가 수 분이라도 된 것처럼 길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게 주마등이라고 불리는 것일지도.
‘하지만!’
그 감각 속에서 러셀이 이를 악물었다.
아직 자신에게는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이 몇 개는 남아 있었다. 그 모든 수를 쏟아내기 전에는 포기할 수 없었다.
‘용인(龍人)……!’
눈앞을 가로막은 죽음의 그림자.
그 그림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아껴두었던 한 수를 해방하려는 순간!
“죽어라!”
사신의 선고와 함께, 쐐애애애액!
…….
그 일이 일어났다.
쩌어엉-!
* * *
쩌어엉-!
거울이 깨지는 듯한 소음이 귓전을 울렸다.
그와 함께 러셀을 향해 짓쳐 들던 요검이 그대로 튕겨져 나간다.
아니.
튕겨진 것은 요검만이 아니었다. 요검을 붙들고 있던 맥라이 휴스, 본인 역시 그대로 튕겨져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쿠구구구구구-!
그 거리가 약 백여 미터.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가,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해보지 못하고 그만한 거리를 날아가 처박힌 것이다.
허나, 정작 그러한 일을 벌인 러셀 본인의 표정은 얼떨떨하기만 했다.
‘뭐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 러셀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었다.
‘분명 요검이 짓쳐 들었었는데-.’
그에 대항하기 위해 용인화를 사용하려 했었고, 그보다 먼저…….
‘놈이 튕겨져 나갔다-?’
그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착각이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의문만이 가득한 상황.
그런 러셀을 현실로 끌어들인 것은 맥라이 휴스의 비명이었다.
“끄아아아악!”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솟구친 모래 먼지 속에서 맥라이 휴스가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이! 이 빌어먹을 검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놈의 요검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그 틈을 타, 러셀이 휴버트에게로 다가서며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사형?”
이어 빠르게 뚜껑을 딴 후, 핏물이 줄줄 흘러나오는 허리춤을 향해 포션을 들이부었다.
“크으윽-.”
상처 자국 위로 올라오는 새하얀 거품. 창백해진 얼굴로 휴버트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이 기회로군.”
일격이탈(一擊離脫).
그들이 바라 마지않던, 도주의 틈이 생긴 것이다.
가능하면 이 틈을 이용해 한발 먹여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는 없겠지.’
지체할 시간이 넉넉한지도 알 수 없거니와, 도박수이기도 했으니까.
공격이 통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반대로 그 공격을 통해 놈이 제정신을 차리게 된다면…….
‘쯧.’
생각만으로도 아찔해지는 가정에 러셀이 혀를 차며 신형을 틀었다.
왕녀와 백작, 두 사람이 숨어 있는 방향을 향해 몸을 날렸다.
파밧-!
.
.
그로부터 하루 반나절.
밤부터 부슬부슬 내린 비에, 일대는 완전히 새벽안개에 뒤덮여 있었다.
그리 짙지는 않았지만, 숲속이라는 환경 특성상 앞을 알아볼 수 없는 안개였다.
그런 안개 위를, 날짐승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는 것이 보인다.
갸르륵-.
평범한 날짐승이 아니었다.
크기는 그리 큰 편이 아니었으나, 붉은색의 매끈한 피부에 두 쌍의 날개.
바로 페퍼였다.
푸드덕-.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크게 선회한 페퍼가, 아래쪽에 있는 러셀을 향해 의념을 흘려보냈다.
인근에서 다가서는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내용의 의념.
의념을 받은 러셀이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뜬 곳은, 축축한 습기로 가득한 동굴의 내부였다.
칼리안 산맥의 구석에 위치한 동굴.
주변에 앉아 있는 것은 피로해 보이는 표정의 왕녀와 백작 그리고-.
“으음.”
침음을 흘리고 있는 휴버트였다.
서둘러도 한시가 급한 와중에, 그들이 이곳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떤가? 사제.”
휴버트의 상처가,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했기 때문.
불꽃을 이용해 스스로 상처를 지지고, 포션을 들이부은 그가 물었다.
“바깥쪽은, 뭔가 이상이라도 있는가?”
휴버트의 물음에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런가…….”
딱히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는 러셀의 말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녀와 백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버트가 첨언했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되네. 상대는 소드 마스터. 하루 반나절 간 쉬지 않고 도망쳤다지만……, 그자에게 있어서 이 정도는 그리 대단한 거리는 아닐 테니.”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일부일 뿐이지만, 소드 마스터의 강함을 몸소 겪어봤으니까.
마지막 순간 일어났던 이상 현상이 아니었다면, 도주하는 틈을 만드는 것조차 쉽지 않았겠지.
인간의 격을 완전히 벗어던진 듯 보이는 강함.
‘어쩌면 나는……조금 안도하고 있었을지도 몰라.’
5써클의 벽을 넘어서며, 마도사가 되었으니까.
귀족 위도 회복했으니까.
이쯤 하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안일함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러셀은 그런 생각을 벗어던질 수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러셀에게 있어 제국은, 아버지의 원수나 마찬가지였다.
복수를 이루기 위해선, 저 괴물 같은 소드마스터들을 넘어설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아버지의 원수가 누구인지, 어떤 내막이 있었는지를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겠지만.
사교도가 내뱉은 말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러셀이 혀를 찼다.
‘쯧.’
화제를 전환하기라도 할 요량으로, 러셀이 고개를 돌렸다.
휴버트를 향해 물었다.
“그보다, 상처는 어떠십니까?”
러셀의 물음에 자신의 상처를 내려다보며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어떻게든 지혈은 했네만, 안으로 파고든 기운이 문제로군.”
요검(妖劍) 특유의 기운 때문인지, 흘러든 기운이 계속해서 내상을 악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같은 이유로 포션의 효과 역시 예상했던 것보다 별로였고.
‘그나마 믿어볼 만한 건 이쯤 되면 본국에서도 이상 징후를 눈치챘을 거라는 점인가?’
십 할,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엔디미온 역시 제국에 뒤지지 않을 열강.
아직까지 정보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도리어 그것이 우스운 일일 터.
‘분명 오래지 않아 지원이 도착할 거야.’
문제는 두 사람이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화상으로 상처를 틀어막았으니, 달리는 것 정도야 문제가 아니겠지만…….’
또다시 전투가 일어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사제.”
그런 러셀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휴버트가 러셀을 불렀다.
“나를 두고 가게.”
“……?!”
“성치 않은 몸이니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잠깐 정도는 붙잡아 둘 수 있겠지.”
그리고.
“이왕 누군가 희생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젊고 앞날이 창창한 사제보다는 한 살이라도 더 먹은 내가 죽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결심이 선 음성이었지만 러셀의 생각은 달랐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
“어차피 누군가가 남아야 한다면, 조금 더 오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제 쪽이 나을 겁니다. 그리고-.”
러셀은 이어질 말을 아꼈다.
‘재미있는 걸 보여주겠다고?’
보여주고 싶은 수라면, 이쪽 역시 만만치 않았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