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85
85화
EPISODE.43
화악-!
맥라이 휴스의 신형이 거침없이 산길을 내달렸다.
질풍이라도 된 듯한 움직임.
그때마다 발걸음을 따라 일어난 바람에 옅게 깔린 새벽안개가 갈라지고.
맥라이 휴스가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거침없는 발걸음과는 달리, 짜증 가득한 얼굴.
그럴 수밖에
검을 쥐고 있던 그의 오른팔은 현재 피투성이였으므로.
‘감히 검 따위가 내게 반항하다니.’
지금까지 그가 요검을 이용해 베어 죽인 마법사의 숫자는 기백에 달할 정도였다.
개중에는 적지만 탑주급의 실력을 가진 이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오늘과 같은 일은 처음이었다.
마치 검이 휘둘러지기를 거부하는 것만 같은 감각.
당시의 상황을 회상하며 맥라이 휴스가 자신의 손에 들린 요검을 노려봤다.
강대한 오러를 이용해 찍어 눌렀기 때문일까.
검신을 타고 흐르는 요기는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오른팔이었다.
치밀어 오른 요기 탓에, 근육이 뒤틀리고 뼈도 조금 어긋난 것 같았다.
검을 휘두르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반응이 반 박자 느려지게 될 것인즉.
‘흥.’
머릿속에 떠오른 걱정에, 맥라이 휴스가 콧방귀를 꼈다.
기껏해야 버러지 놈들.
‘그런 놈들을 상대로 하기에는, 과한 걱정이야.’
혀를 차며 가슴팍을 내려봤다.
정확히는 가슴팍에 매달려 있는 목걸이였다.
나침반의 형상을 하고 있는, 허나 바늘은 하나 밖에 달려 있지 않은 목걸이였다.
그럴 수밖에.
이 목걸이에 달린 나침반은, 평범한 물건이 아닌 추적마법이 걸린 아티펙트였으므로.
우우웅-.
오러를 불어 넣자, 나침반에 달린 나침반이 핑그르르 돌았다.
이내 흑색으로 물든 바늘이 한 쪽 방향을 가리켰다.
‘저쪽이로군.’
대상의 신체 일부분.
이를테면 손톱이나 머리칼 같은 것을 이용해 상대를 추적하는 종류의 아티펙트였다.
그걸 제공해준 이는 다름 아님 키옐의 후작이라는 작자였고.
이 아티펙트가 있는 이상, 왕녀는 자신의 추적에서 벗어날 수 없을 터.
바늘이 검게 물들었다는 것. 이는 멀지 않은 곳에 왕녀가 있다는 신호였다.
그 신호에 맥라이 휴스가 입술을 씰룩였다.
“저열한 것들이.”
고작해야 이 정도밖에 도망가지 못할 것을, 벌레처럼 꾸물거리는 꼴이라니.
그렇게 생각하며 맥라이 휴스가 검을 고쳐 쥐었다.
이번에야말로 놓치지 않겠노라,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번 신형을 가속했다.
쾅-!
.
.
“음?”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가던 맥라이 휴스, 그가 이변을 감지한 것은 그로부터 잠시 후의 일이었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가로지르며 내달리던 그의 감각에 이상 징조가 감지된 것이다.
말초 신경계가 짜릿하게 타들어 가는 것 같은 감각!
파짓-!
몸을 비틀기 무섭게, 여섯 줄기 뇌광이 그 자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꽈르릉-!
애꿎은 나무 위를 때린 벼락이 주변으로 퍼져나가며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여 들기 시작한다.
연쇄전광(連鎖電光).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ing).
“칫-!”
마법의 정체를 꿰뚫어 본 그가 검신 위로 오러를 덧씌웠다.
쾌도난마(快刀亂麻)
검을 휘두르며 자신을 옭아매 오던 벼락의 그물을 베어냈다.
마법을 베어내는 요검답게, 거침없는 검격!
촤르륵, 펑펑!
찢겨져 나간 벼락의 파편이 사방으로 튕겨졌다.
폭발이 일어나고.
기다렸다는 듯, 거대한 그림자가 그의 머리 위를 덮었다.
집채만 한 바위가 하늘을 검게 물들이며 떨어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벌레 같은 놈들이, 가당치도 않은 수작을 벌이는구나!”
마법으로 띄워 올리고, 가속 마법을 걸었다고는 하나 그래봐야 크기만 큰 바윗덩어리일 뿐.
저따위 것을 베어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서거걱-.
날카로운 절삭음과 함께 하늘을 뒤덮었던 돌덩이가 수백, 수천에 달하는 돌조각으로 화했다.
그 순간.
파짓-.
바위와 바위 사이로 작은 전격이 튀어 오르고, 꽈릉!
청색 뇌광이 하늘과 땅을 이었다.
노리는 것은 맥라이 휴스가 아닌, 박살난 바위의 파편!
화탄석(火彈石).
놈이 오기를 기다리며 러셀이 인근의 계곡에서 옮겨온 돌이었다.
일정 이상의 온도가 가해질 경우, 팝콘처럼 터져나가며 일대를 초토화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돌.
‘아무것도 모르는 용병들이 저 위에 고기를 구워 먹다 폭발하는 일이 왕왕 있었지.’
벼락이 내리꽂히는 순간, 연쇄 파괴가 일어나듯 돌조각들이 터져나간다!
쾅, 쾅, 쾅, 쾅!
날카롭게 깨지고 조각난 바위의 파편.
그 위로 더해진 폭발력에 인근의 나무들에 벌집과 같은 구멍들이 생겨났다.
퍼버버버벅-.
그 위로 러셀이 마법을 쑤셔 박았다.
클라우디 링의 힘을 빌려 간신히 형상만을 재현해낸 뇌우(雷雨, Thunderstorm).
그리고-.
“게이볼그(Gae Bulg)-!”
표현 그대로의 벼락불이 일점에 집중되었다.
5써클 마법사 혼자서 만들어냈다고 보기에는 터무니없는 위력이었다.
과장을 조금만 보탠다면, 탑주급의 마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터!
―――――――!!!
제대로 된 소리조차 이루지 못할 정도의 굉음.
폭연이 일어나며 산맥을 따라 자라났던 나무가 잿가루조차 남기지 못하며 증발했다.
박살 난 바윗덩어리들이 쉬지 않고 산 아래를 향해 굴러떨어졌다.
충격의 여파로 산자락의 일부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몇 개 중대, 그 이상을 몰살시켜 버릴 수 있는 위력의 마법이다.
제대로 적중했다면 이 자리를 묫자리로 쓴다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상대방이 마스터가 아니라는 가정하에서나 가능한 일이겠지만.
‘사형과 함께 펼쳤던 마법의 포화 속에서도 멀쩡했던 자야.’
애당초 이 정도 공격으로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건 굳이 따지면 인사치레 정도일 뿐.
아니나 다를까.
오싹.
폭연 사이로 쏟아져 나온 살기에 여섯 개의 감각이 일제히 경종을 울려댄다.
“……!!”
다만, 의외였던 점은 방금 전의 포격이 유의미한 타격을 만들어냈다는 점이었다.
그의 한쪽 볼을 따라 난 생채기에서 미미하나마 핏물이 비치고,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던 반 가면이 박살 난 것이 그 증거라.
화상자국으로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드러내며 그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다.
“버러지 주제에 웃기지도 않은 일을 벌였구나.”
오물이라도 뒤집어쓴 것만 같은 모멸감.
그럴 수밖에.
그에게 있어 이 상처는, 벌레의 날갯짓이 닿은 것이나 다를 바 없었으므로.
“죽이더라도, 곱게 죽이진 않으마.”
이 개 같은 기분을 덜어내기 위해선 천 조각, 아니 만 조각.
그 이상으로 도려내리라 다짐했다.
그때 문득, 한 줄기 의아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가라앉은 폭연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마법사가 러셀, 하나였던 것이다.
아무리 감각을 확장해 봐도, 다른 하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의 이목을 숨길만 한 아티펙트를 지니고 있는 게 아닌 이상, 그런 일은 불가능할 진데…….
‘방금 전의 공격이, 저 꼬마 놈 혼자서 이뤄낸 거라고?’
아직 스물도 안 되어 보이는 애송이가 그걸?
알 수 없는 오싹함이 그의 몸을 엄습했다.
그간 쌓아 올린 검사로서의 직감이 외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싹을 꺾어 두지 않으면, 분명 큰일이 날 것이라고.
반드시 이 자리에서 죽여 두어야 한다고.
물론 이 직감을 확신으로 바꾸기 위해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다른 한 놈은 어디로 간 거냐?”
“글쎄-?”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러셀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런 걸 말해줄 정도로 우리 사이가 돈독했던가?”
그리 대단할 것 없는 도발이었다. 놈이 걸려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을 공략하기 위해선 아주 작은 조각을 쌓아 올릴 필요가 있었던바.
러셀의 도발에 놈이 입꼬리를 씰룩였다.
“너 따위를 도륙하고 녀석들을 좇아가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건, 네 녀석도 알고 있을 터. 어설프게 죽음을 재촉하는구나.”
직후였다.
문득 떠올랐다는 듯 그의 눈 위로 이채가 번진 것은.
“그러고 보니, 그 눈.”
“……?”
“어디서 봤나 했더니, 그 버러지 같은 놈의 혈육이었나? 어쩐지.”
이름이 꽤 익숙하다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박에 기억하지 못했던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워낙에 오래된 기억이라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그래봐야 버러지, 게다가 이미 죽어 버린 놈이기 때문이겠지.’
전혀 예상치 못한 그의 말에 러셀의 몸이 일순 멈칫했다.
놈이 언급한 이가 누구였는지, 너무도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아버지를 알고 있나?”
“전장에서 오다가다 몇 번 마주친 정도라도, 아는 사이라면 그렇다고 해야 할 테지.”
러셀의 물음에 그가 혼잣말처럼 뇌까렸다.
“버러지 같은 놈이, 주제도 모르고 얼마나 나를 노려보던지. 언제고 꼭 눈알을 도려내 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가 어깨를 으쓱였다.
“아쉽게도, 이미 선수를 친 작자들이 있더군.”
마치 아버지를 죽인 자들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음성에, 러셀의 눈에서 번갯불이 튀었다.
“누구지?”
“……?”
“네가 말한, 선수를 친 작자들이 누구냐고 물었다.”
러셀의 물음에 그가 고개를 외로 꼬았다.
“글쎄, 그런 걸 말해줄 정도로 우리 사이가 돈독했는지 모르겠다만…….”
러셀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돌려 주다 말고 돌연, 이죽거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재미있는 걸 알려주마.”
“……?”
“왜 네 아비를 죽인 이가 제국이라고만 생각하는 거지?”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흉수가, 제국이 아닌 엔디미온 내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놀람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한 말이었다.
하지만 놈은 모르겠지.
딴에는 도발을 돌려주겠다고 받아친 말이, 도리어 러셀을 냉정하게 만들었음을.
“그렇군.”
소요는 물론 감정의 동요마저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놈과 아버지가 어느 정도 악연으로 엮여 있는 건 확실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흉수까지 알고 있다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 흉수가 내부에 있다는 말 역시, 자신을 흔들기 위해 내뱉은 말일지도.
그렇다면-.
‘확신도 없이 섣부른 도발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어.’
오늘 들었던 말을 기억하고, 의심의 끈을 놓치지 않으면 될 뿐.
그리 생각한 러셀은 물질계와 정령계를 잇는 문을 열었다.
화륵, 갸르르륵-!
페퍼를 소환하는 것과 동시에, 그 힘을 몸 위로 둘렀다.
정령의(精靈衣).
정령의 불꽃으로 이루어진 옷과 날개가 러셀의 전신을 뒤덮는다.
이것으로 하늘은 온전히 러셀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용인화(龍人化).”
시동어를 읊는 순간, 러셀의 몸을 따라 거대한 마력이 폭사되었다.
인간의 몸으로 쌓아 올렸다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정순하면서도 광포한 마나와 함께 대기가 거칠게 요동친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마 양옆으로 각기, 붉은색과 푸른색의 반투명한 뿔이 자라났다.
화우우우우-!
불어온 바람이 크게 회전하며 일순 소용돌이를 만들어낸다.
그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생물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눈동자.
화악-!
샛노란 눈동자가 개안 되는 것과 동시에, 드래곤 피어가 일대를 잠식했다.
콰우우우우.
주변의 마력이 물먹은 솜마냥 무겁게 늘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이 걷히고 드러난 러셀의 모습은, 그야말로 전설 속에 나오는 반인반용(半人反龍).
드래고니안, 그 자체였다.
바로 그 순간.
『감히 용의 뼈로써 만든 물건으로 용제(龍帝)를 위협하려 하다니.』
맥라이 휴스를 응시하는 러셀의 머릿속으로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가당치도 않는구나.』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