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87
87화
EPISODE.44
자신이 지닌 마력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러셀 본인 역시 어느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다.
‘평범한 마법사들은 내 마력을 제대로 감지조차 하지 못했어.’
아니, 평범한 마법사들뿐만 아니다.
러셀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한,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 중에서도 그의 마력을 제대로 감지해낸 이는 극소수였다.
그 블레인조차 러셀의 써클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얕은수를 동원해왔을 정도였으니.
실제로 러셀이 지닌 마력양을 제대로 파악해 냈던 것은, 지금까지 다리아와 헤밍웨이.
단 두 사람뿐이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적어도 8써클 정도 수준에 오르지 않는 한, 내가 가진 마력을 제대로 감지해 낼 수 없다는 말이겠지.’
러셀이 휴스를 속이는데 사용한 한 수 역시, 바로 그런 특성에서 기반한 것이었다.
정령의를 이용해 강제로 마력의 기척을 만들어낸 후,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마력은 최대한 숨겼던 것.
“볼캐닉 캐논(Volcanic Cannon)―!!!!”
꽈아앙-!
고온의 마그마는 물론 화산탄까지 뒤섞인 폭발.
평범한 마그마의 분출이 아니다.
마법을 통해 작은 화산 그 자체를 구현해낸 것이다.
순식간에 마그마에 뒤덮인 적의 모습을 목도하며 러셀이 성대를 움직였다.
【…….】
음성의 주인이 남기고 간 ‘한 수’를 토해내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촤악!
마그마가 갈라진다.
다섯 토막, 여섯 갈래로 갈라진 마그마가 각기 다른 방향을 향해 콸콸 솟구치고!
“감히이-!!”
그 속에서 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 손으론 자신을 향해 솟구쳐 오르는 마그마를 막아내면서였다.
마그마를 막아내며 물집이 잡힌 오른팔과 짜증이 치밀어 오른 눈동자.
그리고 검게 그을려 매캐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머리칼.
“인정하마.”
그 사이로 형형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여태껏 많은 마법사들을 죽여왔지만, 그 버러지 같은 수준으로 나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놈은 네가 처음이다.”
인간의 벽을 초월한 마스터(Master)급 강자의 인정이었다.
하지만 정작 인정을 받은 러셀은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그리하기에는 휴스가 내뿜는 살기가 너무 압도적이었으므로.
화아악-.
주변의 색이 무채색으로 물드는 것만 같았다.
비록 완전히 재현된 것은 아니라고 하나, 드래곤 피어마저도 몰아내는 기세에 러셀이 질린 표정을 해 보였다.
‘맨몸으로 화산폭발을 견뎌냈다고?’
아무리 규모가 작다지만 화산은 화산이거늘!
놀람도 잠시.
순간의 실책을 깨달은 러셀이 다시금 긴장의 끈을 붙잡았다.
바로 그 순간, 스팟-.
“큭-!”
러셀이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그와 함께 어깻죽지에서 핏물이 튀어 올랐다.
깊지는 않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면 필시 목이 베여져 나갔을 위치.
핑거 블레이드(Finger Blade).
동방에선 달리 검결지(劍結指)라고 불리는 수법이었다.
설마 그걸 이 거리까지 쏘아낼 줄이야.
그 여파만으로도 속살을 드러내며 쩍 갈라진 대지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도 잠시.
다급하게 몸을 튼 러셀이 방어마법을 펼쳤다.
상처 입은 어깻죽지가 욱신거렸던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반응 속도.
쾅, 쾅, 쾅!
마그마의 분출을 떨쳐낸 휴스가 어느새 지근거리까지 다가와 있었다.
소드 마스터를 상대로 그의 공권 안에 들어가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어딜-!”
허나 휴스 역시 그와 다를 바 없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 잡은 거리를 내어 줄 생각이 없는 듯, 다섯 손가락으로 뿜어내는 비검과 검결지가 쉬지 않고 갈마든다.
피처럼 붉은 오러가 러셀의 눈앞을 순식간에 난도질했다.
촤자작, 쩡, 쩌어엉-!
마치 이것이 소드 마스터의 진심이라고 말하는 듯한 공격에, 러셀이 펼친 방어마법이 유리처럼 깨져나갔다.
“컥-!”
그러고도 남은 여파가 쉬지 않고 러셀의 몸을 후려쳤다.
망치로 몸 곳곳을 후려치는 듯한 강격(强擊).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의 훈련을 통해 단련해두지 않았다면 필시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을 테지.
“큭-.”
연타, 연타, 연타, 연타.
눈앞을 하얗게 물들일 정도의 고통을 감내하며 계속 방어마법을 펼치던 러셀의 기세가 돌연 일변했다.
‘이대론 끝이 없어-.’
화악-.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
두 개의 마법을 극한으로 펼쳐내며 고통을 최소화시킴과 동시에 마법을 펼쳐 휴스의 공격을 맞받아치기 시작한 것.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것이 아닌, 그 반대에 가까운.
뼈를 내주고서야 가까스로 살의 일부만을 간신히 취할 뿐인.
손해가 막심한 싸움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이 거리에서의 난타전이라면 휴스 쪽이 훨씬 유리할 테니까.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휴스의 거리를 빠져나올 만한 수단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꽈릉!
벼락과 검결지가 충돌했다.
화르르륵!
공기를 통째로 불살라 만들어낸 진공 공간을 통해 비검을 막아낸다.
찰나의 순간, 중력을 이용해 휴스의 발을 묶어내고.
쾅!
대지가 거대한 송곳의 형태로 솟구쳤다.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죽음이 확정된, 위태롭기 짝이 없는 외줄 타기.
그건 이미 기술과 묘기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기행이었다.
유적에서 얻은 아티펙트.
황금 가면을 통해 심력의 부하를 분산시키지 않았다면 절대로 불가능했을 테지.
그러는 한편으론 반격의 준비 역시 하고 있었기에.
‘게이볼그-!’
써클이 세차게 회전하며 쉬지 않고 마력을 쥐어 짜냈다.
용인화를 사용하며 듬뿍 늘어난 마력. 그중 방어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을 제외한, 대다수를 그 속에 때려 박는다.
수십 발에 달하는 마창.
그 이상의 마력을 단 한 발에 집약하는 것이다.
압축하고 또 압축한다.
일점(一點).
모든 힘을 한 점에 수렴케 하여, 설령 소드 마스터의 오러라 할지라도 일순간이라면 뚫어낼 수 있도록!
“크으으-.”
가면도 감당해내지 못하는 부하가 뇌를 마구잡이로 주물러댔다.
푸확-.
그때마다 코피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미 피 칠갑이 아닌 곳이 없었으니까.
막아내고 피해냈음에도 그 여파만으로도 중상.
새삼 초인과의 격차를 여실히 실감하며 러셀이 이를 악물었다.
‘블레이즈 스탭-.’
화르르륵!
발치 아래에서 솟구쳐 오른 불꽃이 파문을 그리며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순식간에 일대의 대기가 끓어올랐다.
“같이 죽기라도 할 셈이라면, 상대를 잘못 골랐다. 마법사!”
단숨에 주변을 꽉꽉 채운 불길에 가당치도 않다는 듯 놈이 소리쳤다.
‘멍청한 놈…….’
왈칵, 솟구쳐 오르는 핏물을 다시 삼키면서도 러셀이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이 블레이즈 스탭을 펼친 것은 놈과 동반자살을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대기를 달구어 그 열기로 게이볼그를 숨기기 위함이었을 뿐.
‘기회는 단 한 번뿐이야.’
단 한 번의 기회로, 놈의 심장을 꿰뚫어야 했다.
이게 실패하는 순간, 사실상 죽음은 확정적이었던 바.
“제가 도망 다닐 공간이 줄어드는 것도 모르고 불을 지르는 꼴이라니-!”
마냥 멀쩡하지만은 않았는지, 곳곳에 화상을 입은 휴스가 노호성을 토하며 쌍장을 교차했다.
“불을 향해 달려드는 부나방, 그야말로 벌레와 같은 말로로구나!”
쾅쾅!
방어마법이 박살 나는 것과 동시에 콱!
그의 좌수가 러셀의 어깨를 찍었다.
“끝이다. 이 지긋지긋한 마법사 놈아!”
콰드득! 다섯 개의 손가락이 강철 송곳이라도 된 듯, 어깨뼈를 으스러뜨리며 파고들었다.
하지만 알까.
불을 지른 것도, 놈에게 어깨뼈를 내어 준 것도.
모두가 러셀의 노림수였고, 맞춰 나가던 퍼즐 조각이었음을!
“그래, 끝이다.”
찰나의 방심, 그 틈을 노려 러셀이 양손을 움직였다.
“끅!”
신음과 함께 자신의 어깨를 파고든 휴스의 팔을 움켜쥐었다.
이 순간을 위해, 꼭꼭 숨겨두었던 메모라이즈를 해방했다.
“패럴라이즈(Paralyse)-!!”
5써클 마비마법.
소드 마스터의 마법 방어력을 생각하면, 몸 전체를 묶어두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와 연결된 왼팔 정도는-!’
“큭!”
팔이 저릿해지는 감정에 휴스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그보다 반 박자 빠르게, 하늘 높은 곳에 떠 있던 마법이 낙하했다.
러셀 레이먼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
죽음의 마창(魔槍), 게이볼그(Gae Bulg).
그 위로, 음성이 남겨 두었던 최후의 ‘한 수’를 겹쳤다.
말에는 힘이 깃든다-던가.
마법의 근원에 가장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마법사조차 쉬이 흉내 낼 수 없는.
물질계의 현상 자체에 간섭하는 최고위 마법.
언령(言霊).
물론 완전하지는 않았다.
그마저도 음성의 주인이 남겨준 힘을 이용해 사용한 단 한 번에 불과했고.
허나 적어도 이 싸움의 피날레를 장식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으니.
【꿰-뚫.어.라-!!!!!!!!!】
노을이 지기엔 너무도 이른 시각.
붉은 기운이 산자락을 뒤덮었다.
――――――!!!!
* * *
작은 언덕 몇 개쯤은 단숨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충격파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산봉우리가 통째로 뒤집히고, 사방으로 낙석이 쏟아졌다.
충격파를 이기지 못한 러셀의 몸뚱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커헉, 쿨럭, 쿨럭-.”
폭발이 일어난 최중심부는 그야말로 지옥 그 자체.
‘마지막 순간 블링크를 이용해 몸을 빼냈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물론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러셀의 몸 상태는 결코 정상이 아니었다.
폭발의 충격파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터져 나온 돌덩이에 가격당한 것인지.
한쪽 다리가 흉물스럽게 뒤틀려 있었다.
게다가-.
‘-갈비뼈가 족히 네 대 이상은 나간 것 같은데…….’
쿨럭, 쿨럭.
기침이 올라올 때마다 핏물이 왈칵 솟구쳤다.
토혈과 함께 러셀이 다시 한번 바닥을 뒹굴었다.
심각한 것은 외상뿐만이 아니었다.
용인화의 제한 시간이 끝난 것인지, 그 반동마저 몰려오기 시작한 것.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까무러쳐도 이상할 것이 없는 두통과 어지럼증이라.
“웨엑-!”
뇌 위로 바늘 한 줌을 흩뿌린 듯한 고통 속에서, 러셀이 토사물 섞인 핏물을 토했다.
거친 숨을 몰아냈다.
“이긴……건가?”
언령.
비록 자신의 것이 아닌 힘을 빌리긴 했지만, 그 소드 마스터에게?
당장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탈진한 가운데에도, 러셀은 희미하게 웃었다.
결코 이뤄낼 수 없는, 허공을 회전하는 바늘귀에 실을 꿰기라도 한 것만 같은 성취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라.
그 성취감을 박살 내기라도 할 요량인지.
덜그럭, 덜그럭-.
다 무너져 내리고, 여전히 불길이 끓어오르는 구덩이, 그 속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맥라이 휴스였다.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던 화상자국은 상반신의 반절까지 퍼져나가 있었고, 마법에 관통당한 것인지.
왼팔은 완전히 증발되어 사라진 모습,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스는 살아 있었다. 중상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을지언정 숨통이 붙어 있었다.
‘그걸……막았다고?’
정확히는 막았다고 하기보다는, 팔 한쪽을 대가로 간신히 흘려냈다고 해야겠지만 맥락상 의미는 크게 다르지 않았으므로.
“크흐. 크흐흐.”
철벅, 철벅-.
녹아내린 피부가 진물과 함께 바닥을 적시는 가운데 러셀의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짐승처럼 울었다.
그럴 수밖에.
화상은 거의 몸의 절반을 뒤덮었고, 뜯겨져 나가며 증발해버린 왼팔은 최상급 포션을 들이붓더라도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이번 일로 자신은 명실상부 모든 소드 마스터들 중 최약체가 되었을 터.
그 모든 것을 이뤄낸 것이 고작해야 5써클 마법사, 자신이 버러지 취급하던 수준이라는 사실을 휴스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곱게 죽이지는 않겠다. 적어도 나와 같은……, 아니. 내가 겪은 고통의 몇십 배 정도는 겪어줘야겠어.”
광기로 가득 찬 눈 위로, 섬뜩한 살광이 번들거린다.
“일단은 왼팔부터-.”
제가 당한 것을 돌려주기라도 할 셈인지, 왼팔을 잡아 뜯기라도 할 듯 그가 손날을 세웠다.
“큭-.”
죽음을 각오한 순간에도 러셀은 이를 악물었다.
덜컥거리고 삐걱거리는 써클을 회전키 위해 노력했다.
“!!!”
실낱같은 마력이 흘러나올 때마다 벼락이라도 맞은 듯한 고통이 엄습한다.
불개미 떼가 마나로드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만 같았다.
그 속에서 러셀이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고작해야 ‘매직 미사일’한 발뿐.
의미 그대로 최후의 발악.
남은 힘을 그러모아 그것을 쏘아내려던 러셀의 앞으로, 콰드득!
돌연 거대한 흙의 벽이 치솟아 올랐다.
쾅!
치솟아 오른 흙벽이 휴스의 공격을 막아냈다,
“짐승처럼 천박한 그 품성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것이 없구려. 맥라이 휴스 경.”
바위처럼 단단한 음성 하나가 들려왔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