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91
91화
EPISODE.46
사락-.
러셀이 자신의 이름으로 내려온 퇴원 허가서를 내려놓았다.
‘그로부터 벌써 한 달인가.’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의 힘이 더해진 러셀의 회복 속도는, 그야말로 경악스러울 정도였다.
두세 달 정도 입원하며 정양해야 한다던 의무관의 소견이 무색해졌을 정도.
그 소견을 내놓았던 의무관은, 불과 몇 분 전까지 호들갑을 떨어대다 돌아간 후였다.
이십 년 의무관 생활에서 이런 적은 처음이라던가 뭐라던가.
머릿속에 떠오른 의무관의 모습에 피식, 실소하길 잠시. 러셀이 눈을 감았다.
내일, 퇴근하면 해야 할 일들을 하나둘씩 정리해나갔다.
‘탑의 도서관과, 왕립도서관, 그리고 황탑에도 들러 용의 목격담도 알아봐야겠고……, 중간에 왕도 은행에 들러 통장을 한 번 확인하는 것도 좋겠지.’
고무로 된 바퀴가 판매되기 시작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까.
실제로 꽤 많은 상단의 마차들이 고무바퀴를 이용하고 있었다.
게다가 왕도의 귀족들뿐만 아니라, 지방의 귀족들 사이에서도 유행이 번져나가고 있었고.
‘슬슬 왕국 밖으로도 소문이 퍼지고 있을 거야.’
징세권에서 들어온 수입도 있으니, 통장에 찍힌 액수가 결코 적지는 않을 테지.
‘물론 그것들을 하기 전에 저택부터 들러봐야겠지만.’
휴버트가 병문안을 오지 않은 지, 오늘로 벌써 보름이 넘었으므로.
러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닐까, 괜한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하고.
그때였다.
똑똑-.
“있는가. 사제.”
음성이 울려 퍼진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문객의 등장에 러셀이 움찔했다.
“사형?”
드르륵-.
허락 대신 되묻자, 문이 열리며 휴버트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보름하고도 며칠 전 보았던 얼굴과는 달리, 피로함을 완전히 떨쳐버린 모습.
뿐만 아니라 어쩐지, 휴버트의 덩치가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키가 자라났다거나, 살이 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착각이 아니라면 인간으로서, 마법사로서의 격이 성장한 듯한…….
“설마 벽을 넘으셨습니까?”
러셀의 물음에 드물게 쑥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었네.”
“그렇다면, 그간 뜸하셨던 것이…….”
벽을 넘기 위해서라면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벽을 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개인차가 있다고 하니까.’
하루 만에 벽을 넘어서는 이가 있는가 하면, 몇 주가 넘는 무아(無我)를 경험한 후에야 6써클의 벽을 돌파하는 이들 역시 있었으므로.
불과 40대의 나이로 6써클 마법사.
러셀이나 앨런이라는 초신성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빛이 바랜 감이 있다곤 하나, 그 역시 다리아의 제자가 될 만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이였다.
“종종 찾아오겠다고 내 입으로 말해 놓고, 지키지 못해 미안하네. 사제.”
휴버트의 사과에 러셀이 고개를 저었다.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재빨리 첨언했다.
“6써클에 오르신 것,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터럭만큼의 시기심조차 깃들지 않은, 진심 어린 축하 인사였다.
그럴 수밖에.
사형과 사제의 관계라곤 하나, 러셀에게 있어 휴버트는 제2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단순히 아카데미 교수와 학생의 관계였던 점을 말하는 게 아니다.
회귀 전, 아직 미숙하고 부족하던 시절의 러셀에게 휴버트는 지금의 다리아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였다.
당시를 회상하며 건넨 말에 휴버트가 대꾸했다.
“모두 사제 덕일세.”
“예-?”
이건 또 예상치 못한 말이라.
“내가 조금만 더 강했더라면, 사제가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을 테지. 더불어 사형으로써의 면 역시 세울 수 있었을 테고 말이야.”
그제야 러셀은 그가 어떤 마음과 각오로 벽을 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심마(心魔)가 될까 걱정했더니, 도리어 그것을 계단 삼아 경지를 상승시켜 버릴 줄이야.
휴버트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간 사형께서 쌓아 오신 것들이 이제야 빛을 발한 것 아니겠습니까.”
러셀의 칭찬에 그가 희미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계면쩍어하는 것 같았다.
“그보다…….”
웃던 그가 러셀의 옆에 놓여 있는 종이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러셀의 이름으로 쓰인 퇴원 허가서였다.
“벌써 퇴원 허가가 떨어졌는가?”
“오늘 막 떨어진 겁니다. 내일쯤에는 퇴원을 해도 된다고 하더군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빠르군.”
그리 말하며 휴버트가 건넨 것은 실링 왁스(Sealing Wax)로 봉해진 한 장의 초대장이었다.
“이건-?”
봉랍(封蠟) 위에 찍혀진 것은 선명한 왕실의 인장. 러셀이 눈을 크게 떴다.
“자네 이름으로 날아온 왕실 대연회의 초대장일세.”
휴버트가 설명했다.
“기간은 한 달 하고 보름 후. 왕실에서는 자네의 퇴원 기간을 그쯤으로 잡은 모양이더군.”
“음.”
러셀이 짧게 침음했다.
열릴지도 모른다고 다리아를 통해 언질을 듣긴 했지만, 진짜로 개최될 줄이야.
‘거기다-.’
자신의 퇴원 시기에 맞춰 연회를 개최하다니. 이건 거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대우 아닌가.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다.
러셀이 고개를 흔들었다.
“왜 그러는가, 사제?”
“아닙니다. 그저 익숙지 않은 자리가 되는 것이 벌써 불편해서…….”
러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휴버트가 쓰게 웃었다.
“이해하네.”
이 정도 규모는 아니었지만, 그에게도 한때 이런 시기가 있었고 러셀과 같은 마음을 품었으므로.
“하지만 익숙해지는 것이 좋을 걸세.”
충고 역시 잊지 않았다.
“사제의 성취는 특별해.”
“…….”
“그 특별함은 앞으로도 계속 사제를 높은 곳으로 이끌 것이고, 살아가는 세계 또한 넓어지겠지.”
이번 대연회는, 그 넓은 세계를 위한 첫걸음일 뿐이라고. 그렇게 말하는 휴버트의 음성에,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 * *
퇴원 절차라고 해봐야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무사히 퇴원을 마쳤음을 확인하는 종이 위에 서명을 한 후, 짐을 챙겨 나오면 그뿐.
짐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마저도 염탑의 정복을 제외하면, 모두 인벤토리에 보관하면 될 것이었고.
‘대연회까지 앞으로 대충 한달 보름가량…….’
그날 있을 궁정 무도회를 대비해 춤이라도 배워둬야 하나 싶었지만-.
‘흠.’
이내 러셀은 그 생각을 접었다. 그런 사소한 것에 시간을 할애하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기본적인 스텝이나 몸놀림이라면, 어렸을 적 아버지께 배운 것이 희미하게 기억나기도 했고.
그렇게 시작된 러셀의 하루 일과는 규칙적이기 짝이 없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버로드와 위저드바디를 수련했고, 그 후에는 곧장 도서관으로 향했다.
하루는 왕립도서관, 다른 하루는 염탑의 도서관으로.
간혹 왕도 황탑을 방문해 자료를 받아오는 일 역시 더러 있었다.
모두가 용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다.
‘근 천년 이내에 기록된 용의 목격담들…….’
그렇게 오전 일과를 끝내고 나면, 점심을 먹고 개인 수련에 집중하거나 다리아의 아래에서 가르침을 받았다.
마법사로서의 역량은 물론, 워 메이지로서의 기량과 실전성 모두를 키울 수 있는 시간.
‘후우…….’
그렇게 하루 일과를 소화해내고 나면, 육신은 물론 정신까지 고단해질 정도였다.
범인이었다면, 집으로 돌아오는 즉시 침대 위로 허물어져도 이상할 것이 없었을 테지.
‘하지만.’
러셀은 쓰러지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대신, 불끈. 주먹을 말아 쥐고 호흡을 다스렸다.
이제 막 저녁 무렵이 지난 시간이다. 잠에 빠지기에는 지나치게 이른 시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러셀은 정좌를 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머릿속으로 맥라이 휴스의 모습을 떠올리며 복기를 시작했다.
복기가 이어짐에 따라 흘러나온 땀에 의복이 흥건하게 젖어 들었다.
덩달아 숨소리 또한 거칠게 달아올랐다.
고작해야 복기.
상상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투의 여파가 현실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생생한 현실감이 느껴지는 상상은 진짜와 견주어도 큰 차이가 없다던가.
이는 러셀의 복기가, 그것을 만들어내는 집중력이 그만큼 깊다는 증거였다.
‘후.’
러셀이 깊은 한숨을 토했다.
벌써 수십, 수백 번째 패배가 반복되고 있었다.
‘그럴 테지.’
전심전력을 다한 소드 마스터와의 격차만 하더라도 아득할 정도였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요검(妖劍)의 능력 역시 멀쩡하게 쥐여준 상황이었으니.
러셀이 승리하는 것은 애초부터 요원한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셀이 그의 손에 요검을 쥐어준 이유는 간단했다.
‘적의 무기가 항상 용의 부산물로 만든 것이라는 보장은 없어.’
이번엔 운이 좋았을 뿐, 언제나 지금과 같은 운이 따를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때 마력의 흐름을 조금 더 부드럽게 다뤘더라면-.’
‘여기선 조금 더 거칠게 쏟아낼 필요가 있었나.’
‘부족해, 좀 더 빠르게…….’
깨달음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도 작고 소소한 편린들. 그 편린들이 조금씩 쌓여나가기 시작한다.
‘사형이 벽을 넘기 위해 밟고 올라간 것이 심마와 책임감이었다면-.’
자신이 밟고 올라가야 할 것은 어쩌면 이 편린들일 테지.
그렇게 생각하며 러셀이 다시 눈을 감았다.
송골송골, 땀이 맺힌 얼굴로 집중력을 그러모으며 복기를 반복했다.
창틈을 통해 흘러든 푸른 달빛이 그런 러셀의 얼굴을 비스듬히 비추고 있었다.
* * *
“음-.”
거울 앞에 선 채로 옷깃을 여미던 러셀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단정하게 정리된 머리와, 몸에 쫙 달라붙는 연미복을 확인했다.
꽤 돈을 들였기 때문일까. 소재의 질감은 물론 광택 역시 제법 값이 나가 보이는 연미복이다.
과거였다면 무리였겠지만, 고무바퀴 판매 대금이 꾸준히 들어오는 지금 상황에서 이 정도 지출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과연 나한테 잘 어울리는지 모르겠다는 점이지만.”
이런 연미복보다는, 길게 떨어지는 로브보다 염탑의 정복이 더욱 익숙했기에.
그나마 다행인 점은 겉으로 드러나는 연미복의 태는 제밥 괜찮다는 점이었다.
아마도 육체의 단련 역시 게을리하지 않은 덕일 터.
대중들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완전히 말랐거나 혹은 배가 불룩하게 나온 마법사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외견.
다시 한번 몸 곳곳을 꼼꼼하게 점검한 러셀이 손을 뻗었다.
바로 옆, 탁자 위에 올려 둔 브로치를 집어 들었다.
타오르는 장미문, 염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플레어 로즈를 형상화한 브로치였다.
그것을 가슴팍에 매다는 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 그때 누군가 러셀의 방문을 두드렸다.
“준비는 끝났는가. 사제?”
러셀과 마찬가지로 새로 맞춘 연미복을 잘 빼입은 휴버트였다.
“마침 끝난 참입니다.”
그에 답변하며 함께 정원으로 내려가자, 마차 한 대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을 위해, 왕궁에서 보내준 마차였다.
왕궁이 이러한 마차를 보내준 이유는 간단했다.
‘입장 시간 때문이겠지.’
왕궁에서 개최하는 연회는, 참가자 개개인에 따라 입장 시간이 다른 것이 그 특징이었으니까.
마부 역시 그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고, 두 사람을 가장 알맞은 시간에 연회장으로 데려다줄 것인즉.
“그럼 잘 부탁하네.”
마부에게 소정의 팁을 건넨 두 사람이 마차에 올라탔고, 기다렸다는 듯 마차가 출발했다.
다그닥, 다그닥-.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