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97
97화
EPISODE.49
아이스 에이지(Ice Age).
갈라지며, 쪼개지고 어긋났던 대지 위로 얼음이 얼어붙은 모습은, 문자 그대로의 빙하기(氷河期)가 찾아온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마력 방벽 밖에서, 그 모습을 확인한 다리아가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무식하기는.”
그 말에 대꾸라도 하듯, 헤밍웨이가 읊조린다.
“효율적이라는 말을 반대로 한 것이 아닌가?”
무도회에서 함께 춤을 출 정도의 관계가 되긴 했으나 그것과 이것은 엄밀하게 따져 별개의 문제였으므로.
“땅이 흔들리고 쪼개진다고, 그걸 통째로 얼려서 고정시켜 버린 주제에 그걸 효율(效率)이라고 말하다니. 우습지도 않네.”
끌끌거리며 혀를 차는 다리아를 향해 헤밍웨이가 지지 않고 응수했다.
“그대로 있었으면 지진에 균형을 잃었을 테고, 위로 몸을 날렸다면 요격 마법에 뻔히 노출되었을 것 아닌가? 그걸 저리 피해갔다면 충분히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지.”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다리아가 콧방귀를 꼈다.
“흥. 조금은 달라진 줄 알았더니, 절대 한마디를 안 진단 말이지.”
“크흠.”
다리아의 핀잔에 헤밍웨이가 헛기침했다.
그렇게 두 스승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얼음으로 뒤덮인 마력 장벽 안쪽을 확인하며 러셀이 혀를 내둘렀다.
‘굉장한걸?’
벌려진 입을 따라 새하얀 숨결이 흘러나온다.
아닌 게 아니라, 주변의 온도가 단박에 십수 도쯤 내려간 것만 같은 감각.
그 감각 속에서 러셀이 직전의 상황을 되짚었다.
마법사로서의 직감과 직관을 이용해 현상을 분석하고 파악했다.
‘지진을 피해 위로 몸을 날리는 대신, 나와 똑같이 마력을 지표에다 때려 박은 건가?’
강렬한 한기를 동원한 마력이 지변을 통째로 얼리며 지진을 멈춰 세운 것이다.
어긋나고 쪼개진 대지를, 얼음을 통해 통째로 동결시킨 후 강제로 붙잡아 고정시킨 것.
‘과연-.’
넓게 펼쳐진 지진에는 대응이 불가능하겠지만, 국소 범위에 한정된 지진이라면 이렇게도 멈춰 세울 수 있다는 말인가.
물리적으로 저게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의문은 차후로 미뤘다.
애당초 불가능의 영역이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 리도 없을 테지.
마법사로서의 탐구욕보다는 현재 당면한 상황이 더욱 중요했다.
그런 러셀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 등골이 쭈뼛 서는 한기가 사방에서 엄습한다.
이어 앨런의 기세가 일변했다.
공기가 전보다 한층 무겁게 늘어지고, 강렬한 마력이 그의 전신을 따라 솟구쳤다.
마치 지금까지의 싸움은 모두 탐색전에 불과했다고 말하는 듯한 기세. 그 속에서 앨런의 실눈이 광망을 흘렸다.
‘러셀 경.’
저 멀리,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붉은 색 눈동자를 마주했다.
‘제가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듯, 경의 전력 역시 이게 전부가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만한 마법을 발출하고 막아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것이 그 증거라.
츠츠츠츳-.
천천히 마력이 고조되어가는 가운데, 앨런은 전날 느꼈던 러셀의 마력을 떠올렸다.
유적지에서 사교도와 싸울 당시 내뿜었던, 그 광포한 마나를.
닿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소름이 돋고 공포심이 솟구치던 마나였다.
분명 그 마나야 말로 러셀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을 테지. 앨런은 그 힘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다.
그 힘과 한 번이라도 맞부딪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전력부터 드러내는 것이 예의일 터.
실눈 속 앨런의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났다.
대지가 얼어붙은 순간부터, 의식이 거기까지 흘러드는 데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거의 본능적으로 앨런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실감한 러셀이 입을 앙다물었다.
‘온다-!’
청탑의 마법은 적탑의 것에 비해 화력(火力)이 부족하다고 하나, 물 흐르듯 이어지는 연계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하던가?
하얗게 얼어붙은 대지로부터 시작된 한기가 대기를 침범하기 시작한다.
스스슷-.
곧이어 백여 발에 달하는 고드름이 허공을 가득 채웠다.
강력한 위력을 지닌 상급 마법이 아닌, 빠른 캐스팅 속도를 지닌 마법 다발을 준비한 것!
‘쯧.’
자신의 앞에 드리워진 고드름의 그림자에, 러셀이 혀를 찼다.
요격을 위해 준비하고 있던 마법, 게이볼그는 분명 강력한 마법이었다.
허나 저만한 수의 얼음 비를 쳐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바.
그 사실을 인지한 러셀이 빠르게 마법 수식을 바꾸었다.
그 순간, 쐐애액-!
기백에 달하는 고드름이 새하얀 궤적을 아로새기며 러셀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한다.
역순으로 뒤집어지는 수식과 함께 둘로 분해된 마법이 각기 양손을 통해 발출되고!
게이볼그의 첫 번째 속성이 넓게 방사되었다.
벽의 형태로 자리매김하며 얼음의 비를 틀어막았다.
‘파이어 월(Fire Wall)!’
이어 두 번째 속성인 전격을 거미줄과 같은 형태로 흩뿌렸다.
‘일렉트릭 웹(Electric Web)-!’
새파란 전격이 불똥과 함께 튀어 올랐다.
화르륵, 퍼버버벙!
높게 솟구친 불꽃의 벽이 쏟아지는 얼음의 소나기를 막아내고, 그러고도 남은 것들을 벼락의 그물이 걷어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고 빠른 공수(攻守)의 전환. 하지만 앨런의 공격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얼음과 불이 만나며 생긴 수증기가 일대를 뒤덮는 것과 동시에 서리가 내려앉았다.
로브 자락이나 머리카락은 물론, 무릎과 팔꿈치를 비롯한 주요 관절들에도 성에가 끼기 시작한다.
‘이건-.’
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
하지만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창탑의 마법사들은 차가운 한기와 성에를 이용해 적들의 기동성을 빼앗노라고.
헤밍웨이가 20년 전 창안했다는 창탑의 비전 마법, 프로스트 스탑(Frost Stop).
‘멈춰 세우는 서리’
그 진의가 모습을 드러내며 한기가 러셀의 몸을 속박했다. 기동력을 빼앗은 후 이어진 것은 압도적인 양의 융단폭격이라.
쩌저저적-
얼어붙은 대기가 거대한 얼음 조각으로 화하며 러셀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쏴아아아-.
에시드 레인, 산성으로 이루어진 빗줄기가 드문드문 섞여들고.
그 사이로 고압의 물줄기가 채찍처럼 장내를 휘저었다.
일격 일격이 성문, 혹은 성벽을 무너뜨릴 수 있을 법한 위력!
그만한 위력이 한자리에 집중된 것이다.
아무리 콜로세움이라 하더라도 그만한 충격을 견뎌 낼 수는 없었던바.
마력 장벽 안쪽의 대지가 움푹움푹 깎여 나갔다.
고압의 물줄기가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대지가 갈라지며 속살이 쩍쩍 드러났다.
사람 머리통만 한 우박이 지표를 내리쳤다.
쾅!
폭음과 함께 대지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만약 결투장을 둘러싼 마력방벽이 아니었다면, 콜로세움이 통째로 무너졌어도 이상하지는 않았으리라.
폭격처럼 쏟아지는 마법의 포화.
그렇게 한바탕 마법을 쏟아내길 얼마간, 오싹-.
돌연 피부 위를 훑고 지나가는 공포감에 앨런의 손끝이 무뎌졌다.
‘-!’
무너져 내린 대지로부터 피어오른 진한 모래 먼지 사이로, 다이아몬드 더스트(Diamond Dust)와 같이 얼음 결정이 떠도는 것이 보인다.
츠츠츠츠츳-.
일대의 마나가 광포하게 날뛰기 시작하며 파문이 뻗어나간다.
그 파문에 휩쓸린 얼음 결정과 모래 먼지가 사방으로 나부끼는 가운데.
‘부분 용인화.’
그 속에서 호박색으로 빛나는 두 개의 눈동자가 앨런의 뇌리를 꿰뚫었다.
.
.
“이건-?”
용인화의 기척을 느낀 것은 앨런만이 아니었다.
경기장 밖에서, 마력 장벽을 유지하며 대결을 관람하던 두 대마법사.
다리아와 헤밍웨이가 놀란 듯 눈을 치켜떴다.
오만하면서도 광포하게 날뛰는 마나와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감을 자극하는, 마치 종(種)의 차이로 만들어진 것 같은 두려움.
물질계에 존재하는 여러 권능 중, 이 두 가지 현상을 동시에 동반하는 것은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드래곤 피어(Dragon Fear)…….”
“허, 어쩐지 나이에 비해 상당히 뛰어난 재능이라 생각했거늘. 용의 핏줄을 이어받았던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평범한 인간이 드래곤 피어를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잖은가.
헤밍웨이의 중얼거림에 다리아가 손끝으로 아랫입술을 훑었다.
당황이 역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막내, 저 아이의 부모는 모두 평범한 사람일…….”
말을 하다 말고 다리아가 입을 다물었다.
굳이 바로 윗대가 아니더라도 선대의 유전인자가 아랫대에서 발현되는 현상은 분명히 존재했기에.
“-격세유전(隔世遺傳).”
다리아의 중얼거림을 헤밍웨이가 받았다.
“레이먼드 가의 오래된 선조 중에 상위 용종이 있던 모양이로군.
부분 용인화가 아니라, 완전 용인화를 목도했다면 이보다 더한 것을 떠올렸겠지만.
지금으로선 이것이 최선의 추.
같은 생각이라는 듯 다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러셀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절로 깊어졌다.
‘그간 네가 숨기고 있던 비밀이 바로 이것이었더냐. 막내야?’
작금의 상황을 통해 지난날 러셀이 보였던 용에 대한 관심을 납득할 수 있었다.
용의 심장을 원한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이겠지.
바로 그 순간.
러셀과 앨런이 다시 한번 충돌했다.
꽈릉!
* * *
이어진 것은 마법을 이용해 벌이는 난타전이었다.
날카로운 불꽃의 검이 쉬지 않고 공간을 도려내고, 그때마다 대지가 쩍쩍 갈라지며 불길이 치솟아 오른다.
그에 대응이라도 하듯 앨런이 쌍장을 출수했다.
그 손길을 따라 겹겹의 파도가 격랑치며 쏟아져 나온다.
수(水)와 화(火).
명백히 상극관계에 있는 속성이었다. 본래대로라면 러셀이 밀렸어야 하는 것이 정상.
하지만 러셀의 마력은 비이상적일 만큼 강력한 힘과 순도를 지니고 있었던바.
켜켜이 쌓인 파도 또한 러셀의 불꽃을 완전히 꺼뜨리지 못했다.
화르르륵-!
휘둘러진 불꽃의 검이 달려들던 파도를 반듯하게 갈라내고, 그 사이로 드러난 틈을 향해 러셀이 손을 뻗었다.
난타전을 벌이며 의식을 분할해, 미리 장전해두었던 마법을 쑤셔 박았다.
쇼크볼트(Shock Bolt).
삼중첩(三重疊), 속사(速射).
‘형상변환, 관뢰(貫雷).’
쇼크볼트.
쇼크웨이브의 개량형 마법으로써, 넓은 범위에 흩뿌려지던 충격파를 일점으로 그러모은 마법이었다.
그 위력은 일격에 성벽을 관통하고 손가락만 한 구멍을 남길 정도!
그것이 무려 삼중첩.
거기다 꿰뚫는 번개(貫雷)로써 형상 변환시키기까지!
――――!!!
새하얀 번갯불이 공간을 관통하며, 소리보다 먼저 공기가 터져나갔다.
꽈릉!
쏘아진 마법이 앨런의 앞을 막아선 단단한 얼음벽과 충돌하는 순간, 압축되었던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일대를 휩쓸었다.
퍼석, 퍼서석-!
충돌의 여파만으로 약해졌던 지반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바로 앞에서 그 충격파에 직격당한 앨런의 몸이 뒤로 튕겨져 날아갔음은 당연한 일.
쾅!
경기장을 둘러싸고 있던 마력방벽과 충돌한 앨런이 그 자리에서 침음을 토했다.
“컥!”
내장이 진탕되고, 속에서부터 핏물이 왈칵 솟구치는 감각.
물론 러셀 역시 마냥 멀쩡하지는 않았다.
“후우…….”
내뱉는 숨결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귀밑머리와 로브 자락 등.
몸 곳곳에는 하얗게 성에가 내려 있었고, 마법을 출수했던 손끝은 파랗게 변해 덜덜 떨리고 있는 상황.
전형적인 체온저하와 동상의 흔적이었다.
물론 몸 곳곳이 그을린 채, 입가로 피를 흘리고 있는 앨런과 비교하면 나은 편이었지만.
입가를 따라 흘러내리는 핏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신색을 가다듬은 그가 입을 열었다.
“……러셀 경.”
반파된 경기장 곳곳에 틀어박힌 자신의 얼음과, 성에 자국 따위를 확인하며 말했다.
“이 마법을 뚫어낸다면, 그땐 경의 승리입니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