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Devouring Mage RAW novel - Chapter 98
98화
EPISODE.49
마법과 마법을 주고받는 난타전 속에 의식을 분할한다는 것은 분명 위험한 일이었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상정한 것 이상의 손해를 입을 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도 의식을 분할했던 것은 바로 이 마법을 위함이었다.
경기장 곳곳에 틀어박힌 성에와 얼음 따위가 하나로 엮여 들며 그 자체로써 거대한 마법진(魔法陣)을 이룬다.
고오오오오-.
주변의 마력이 빠른 속도로 얼어붙으며 싸라기눈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일대의 기상 현상마저 뒤바꿀 정도로 강대한 마력.
새하얀 마력을 흘리는 마법진의 존재에 러셀의 의식이 한껏 가속했다.
복잡하게 흘러들며 얽히고설키는 마법의 흐름을 읽어 들였다.
십 할 모두는 아니더라도, 마법의 형상을 어렴풋이 파악해 낼 수 있었다.
‘이만한 규모의-?’
앨런 페이지가 펼치려 하는 것은 경기장 전체를 뒤덮을 만한 수준의 대군마법이었다.
제대로 직격한다면 단 한 발의 마법으로써 군단 하나를 얼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위력.
5써클에 속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써클의 한계를 뛰어넘은 마법이었다.
비교하자면 빙결계 버전의 우레거인의 망치(Mjöllnir of Thunder Giant)쯤 될 터.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이야.’
단순히 펼쳐내는 것이 아닌, 진의 보조까지 받아 완성시킨 마법이 아니던가.
마법진은 이미 완성되어 발동된 지 오래였고 피하는 것은 무리다.
가능하다면 마법이 완성되기 전에 격파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마법진을 따라 흘러나온 마력이 단단한 얼음 결정으로 화해 허공으로 떠오른 앨런을 보호하고 있었기에.
마법을 이용해 저 방어를 뚫는다 해도, 이미 마법은 완성된 후일 터.
그때라면 마법에 직격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마법이 될 것을 예고라도 하듯, 거센 돌풍이 마력 장벽 안쪽에서 몰아치기 시작한다.
“흐으으-.”
전신을 옥죄어오는 한기에 러셀이 새하얀 숨결을 토하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화르륵-.
화(火) 속성 마나가 전신의 마나로드를 휘돌고, 빠른 속도로 한기가 물러나는 것을 느끼며 러셀은 생각했다.
‘이 마법을 뚫어낸다면 내 승리.’
이 마법이야말로 앨런의 전심전력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인즉. 분명 대단한 마법인 것은 맞지만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결정을 내리기 무섭게 러셀의 손끝에서 불길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불길이 창의 형상으로 화하며 전격이 창을 휘감고.
게이볼그(Gae bulg), 육중첩(六重疊).
일점에 집중시킨 마력이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처럼 고조되기 시작한다.
일련의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야말로 찰나, 그 사이 앨런의 마법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거세게 휘몰아치는 얼음 폭풍이 앨런의 머리 위에 거대한 구(球)의 형태로 떠 있었다.
서걱, 서거걱, 카가가가가!
그 끝에서 흘러나온 칼바람이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지면을 후려친다.
그때마다 쪼개진 땅이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에 비해, 불꽃으로 이루어진 창 한 자루에만 의지한 채 얼음 폭풍을 견뎌내는 러셀의 모습은 왜소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했다.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 게이볼그 속에 깃든 마력을 읽어내지 못한 범인(凡人)들이나 할 법한 이야기.
“일점에 집중시킨 마법과, 넓게 방사시킨 마법의 승부로군.”
“불꽃의 창이 얼음 폭풍을 뚫고 마법의 진체에 도달하면 막내의 승리, 반대의 경우에는 그쪽 아해의 승리일 테지.”
마력방벽 안쪽의 상황을 확인하며 두 명의 대마법사들이 앞으로의 상황을 타진했다.
태평해 보이는 말투와는 달리, 두 사람은 이미 마력을 끌어 올려둔 상태였다.
아차! – 하는 순간 두 사람이 개입해야 할 만큼, 지금 장벽 안에서 몰아치고 있는 마력의 기류는 심상치 않았다.
6써클 마법사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미숙한 점이 있으나 다른 5써클 마법사들과 비교해서는 압도적으로 뛰어난 수준.
만약 이 자리에 다른 마법사가 있었다면, 저 광경을 보고 이렇게 말했으리라.
터무니없다-라고.
바로 그 순간, 거구(巨球)의 형태를 이룬 얼음 폭풍이 러셀을 향해 쇄도했다.
콰과과과과-!
공간과 마력은 물론 시간마저 얼려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의 혹한(酷寒)이 몰아친다.
마법이 닿는 것보다 먼저, 그 여파로써 흘러나온 칼바람이 러셀의 주변 지면을 후려치고.
쾅!
한 걸음, 칼날의 폭풍을 피해내며 러셀이 창을 휘둘렀다.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칼바람을 걷어냈다.
싸라기눈과 게이볼그의 불꽃이 충돌하며 새하얀 수증기가 일어난다.
쾅!
두 걸음, 몸을 회전시킨 러셀이 그 힘을 이용해 칼바람 두 개를 동시에 튕겨냈다.
쾅!
세 걸음, 앞으로 찔러 넣은 창이 몰려들던 눈보라를 걷어냈고.
마침내 얼음 폭풍과 충돌했다.
콰과과과과과-!!
러셀의 귓전을 따라 울리는 것은 천지를 뒤집어엎는 굉음이라.
몰아치는 냉기에 로브와 머리칼이 끝자락부터 얼어붙었다.
그렇게 얼어붙은 일부가 강풍을 견디지 못하고 얼음 결정이 되어 바스러졌다.
파사삭-.
‘큭-.’
그 속에서 러셀이 이를 악물었다. 손에 들린 게이볼그를 회전시킴과 동시에 다시 한번 앞으로 내뻗었다.
――――――!!!
일중첩(一重疊), 폭발(爆發)!
그 속에 담긴 익스플로전의 술식이 마법을 폭발시킴과 동시에 거대한 눈보라의 진격을 멈춰 세운다.
터져 나온 불길이 전방으로 몰려들었다.
새빨간 홍염이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며 불길을 깎아냈다.
‘다음-!’
이중첩(二重疊), 폭발(爆發)!
삼중첩(三重疊), 폭발(爆發)!
――――――――――――!!!
러셀이 만들어낸 불꽃의 폭발이 얼음 폭풍을 깎아내는 것이 먼저일지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가 먼저일지.
남은 것은 그야말로 힘과 힘의 싸움.
그리고.
그 싸움이 결착을 맺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
.
의식이 극한까지 압축된 상황에선, 시간의 흐름마저도 느릿하게 느껴진다고 하던가.
러셀과 앨런이 벌인 전투 역시도 그러했다.
두 사람에겐 십 수 분처럼 느껴졌던 순간이 밖에선 고작 수 초에 불과했던 것이다.
환한 빛이 명멸한 후, 쏟아져 나온 것은 압도적인 충격파라.
콰과과과과과과!
그렇지 않아도 만신창이이던 결투장이 완전히 박살 났다.
땅이 파도치듯 뒤집어지며 일그러졌고, 그러고도 남은 충격파가 마력방벽에까지 몰려들었다.
쿠구구구구구구-!
8써클의 대마법사, 두 사람이 만든 방벽이 크게 진동하며 떨려왔고, 높게 치솟은 모래 먼지가 시야를 자욱하게 가렸다.
“쿨럭, 쿨럭.”
그 속에서 누군가 마른기침을 토했다.
이미 결판이 났음을 확신한 두 대마법사가 마력 방벽을 해제한 것은 거의 직후였다.
화아악-.
불어온 바람이 방벽 안쪽을 자욱하게 채우고 있던 모래 먼지를 날려 버린다.
먼저 모습이 드러난 이는 러셀이었다.
힘이 풀린 것인지, 바닥에 주저앉은 채 연거푸 마른기침을 쏟아내고 있는 모습.
그런 그의 옷차림은 그야말로 넝마 그 자체였다.
걸치고 있던 로브는 얼음 가루가 되어 사라진 지 오래고, 상의 역시 곳곳이 찢어져 걸레짝이 되어 있는 상황.
게다가 몸 곳곳에 하얗게 성에가 끼어있기까지.
뒤이어 남은 절반의 모래 먼지마저 사라지며 앨런 역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주저앉은 러셀과는 달리, 그는 등을 바닥에 댄 채 누워있었다.
정확하게는 서 있을 힘조차 없어 쓰러진 것이라 해야겠지만.
“푸하핫–!”
“……?”
팔뚝을 이마에 올린 채 자리에 누워있던 앨런이 돌연 웃음을 쏟아냈다.
평소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전혀 어울리지 않게 호탕하면서도 어딘가 후련해진 웃음이었다.
“졌습니다. 졌어요. 러셀 경.”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운 자신과는 달리, 러셀에게는 아직 여유가 남아 있어 보였기에.
‘어쩌면, 나는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빠른 속도로 격차가 좁혀지던 순간부터, 이 순간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 예감이 반쯤 확신이 되었던 것은 전날 병문안을 갔을 때였고.
대결을 신청한 것 역시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 차이가 더욱더 좁혀져, 러셀이 자신을 추월하기 전에 전력을 다해 부딪혀 보고 싶었으니까.
막상 그렇게 하고 나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련한 것 같기도 하고.’
졌음에도 불구하고, 웃음이 흘러나오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겠지.
그때, 주저앉아 있던 러셀이 입을 열었다.
“솔직히…….”
“-?”
“운이 좋았습니다.”
러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맥라이 휴스, 놈과의 전투 경험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소드 마스터의 검격을 한 번 경험한 적이 있는 덕에, 강력한 힘을 지닌 얼음 폭풍을 흘려내고, 빗겨내며, 깎아낼 수 있었다.
물론 그게 아니라 해도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령의나 완전 용인화를 비롯해, 아직 남겨두고 있는 패는 몇 장 더 있었으니까.
다만 그 경험이 있었기에 저 패들을 남겨둔 채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던 바.
“그……렇습니까?”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지 앨런이 빙긋 웃었다.
직후였다.
각자의 스승들이 다가온 것은.
“잘했다. 수고했느니라.”
그렇게 말하며 헤밍웨이가 앨런의 입안으로 포션을 흘려 넣었다.
“장하구나. 막내야.”
다리아 역시 러셀의 등에 손을 얹으며 마력을 불어 넣었다.
따스한 마력이 흘러 들어오는가 싶더니, 체내 곳곳에 침투했던 한기를 몰아낸다.
곧이어 얼어붙었던 마나로드가 원형을 회복함과 동시에 숨결 역시 온기를 되찾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러셀이 입은 피해 역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그때 빈 포션병을 회수하며 헤밍웨이가 러셀을 향해 말했다.
“드래곤 피어라. 설마 상위 용종의 핏줄을 숨기고 있었을 줄이야. 영악한 녀석.”
“-예?”
난데없는 그의 말에 러셀이 고개를 갸웃했다.
마력 방벽 바깥쪽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알지 못했기에 보인, 당연한 반응이었다.
“흥. 숨기기는. 제 패를 다 까고서 다니는 멍청한 마법사도 세상에 있다던가. 영감?”
그를 향해, 러셀에게 온기를 불어넣던 다리아가 핀잔했고 잠시 입을 다물었던 헤밍웨이가 말을 이어나갔다.
“어찌 되었건, 이-번에는 패배를 인정하마. 이-번 내기의 승자는 너다. 아해야.”
이번을 늘여서 강조하는 건, 단순히 착각만은 아니겠지.
솔직히 다음번에는 더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냥 뒤처지고 싶지만은 않았던 것일까.
그런 스승의 생각이 뻔히 읽힌다는 듯, 앨런 역시 작게 킥킥거렸다.
“흥. 영감. 설마 내기의 내용을 잊은 겐가? 그게 아니라면 천하의 창탑주께서 이제 와 입을 싹 닦으실 리는 없고…….”
지지 않겠다는 듯 응수하는 다리아의 도발에 헤밍웨이가 앓는 소리를 냈다.
“끙.”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은 약속. 지켜야겠지.”
[미션을 완수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최상급 마석(식용)을 지급합니다.] [보상으로 예정된 신대의 유물은 헤밍웨이를 통해 전달될 것입니다.]알림음이 들려왔다.
용을 삼킨 마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