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00
▣ 100화. 북부대공과의 싸움 (1)
용공작 엘드리트와 접촉하고 사흘 뒤.
나는 크레스니크의 영지 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후방 지원부대와 합류했다.
이바르를 만나 상황을 얘기할 생각이었지만, 이바르는 예상 밖의 인물과 함께 있었다.
“카이트.”
“대공 전하.”
시구르드가 이바르와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흑룡기사단도 데려오지 않고, 측근인 볼테온만 데리고 온 상태였다.
“누구를 만났나.”
“…….”
시구르드는 다짜고짜 그런 질문부터 했다.
그 질문을 듣고, 나는 시구르드가 이미 상황을 눈치채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용공작 엘드리트와 접촉했습니다.”
“엘드리트인가.”
시구르드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옆에 있던 볼테온도 표정이 굳어졌다.
“대공 전하, 이건…….”
“골치 아프게 되었군.”
흔치 않은 반응을 보이는 시구르드.
역대 최강의 적들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 * *
“그동안 에인헤랴르 출신으로 용귀족이 된 사람이 적지 않게 있다. 부끄러운 역사지.”
임시 막사 안에서 나와 아그나르에게 자세한 보고를 들은 뒤, 시구르드는 천천히 말했다.
“엘드리트는 에인헤랴르 본가의 인물 중에서는 가장 최근에 용귀족이 된 여자다. 내 고조부의 딸이었지.”
“에인헤랴르 대공 자리를 이어받지 못해 가문을 배신했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동석하고 있던 이바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대공 자리를 이어받지 못했다고 해서 가문을 배신하다니… 너무하는군요.”
“용살검가의 일원으로서 사명감이 부족했던 거겠지.”
이바르에게 대꾸한 뒤, 시구르드가 말을 계속했다.
“에인헤랴르에 있던 시절, 엘드리트는 뛰어난 실력을 지닌 소드 마스터였다. 드래곤들 상대로 많은 공적을 세웠고, 그녀 이상의 기사는 아무도 없었지.”
“그런데 어째서 대공 자리를 이어받지 못한 거죠?”
“당시의 원로들은 다른 관점에서 엘드리트를 평가했다.”
시구르드의 목소리는 냉정했다.
“엘드리트는 냉혹하고 잔혹한 인물이었다. 에인헤랴르에 반기를 드는 세력이 있으면 어린애 한 명 남기지 않고 몰살시켰고, 자기 부하라고 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으면 곧바로 목을 쳤다고 하더군.”
“…….”
엘드리트가 부하의 목을 치는 광경은 나도 목격했다.
에인헤랴르에 있었을 때부터 그런 성격이었다면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을 것이다.
“당시의 원로들은 엘드리트가 에인헤랴르 대공이 되는 걸 두려워했다. 공포정치가 시작될 거라 염려한 거지.”
“그래서 엘드리트를 내친 거군요.”
“여러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엘드리트는 결코 온건한 인물이 아니다. 그런 대우를 받으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거겠지.”
“하지만 엘드리트가 그 정도 인물이었다면 힘으로 에인헤랴르 대공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겠습니까?”
“엘드리트를 대신하여 에인헤랴르 대공으로 지목된 건 엘드리트의 친동생이었다. 엘드리트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애정을 쏟는 가족이었기 때문에, 차마 동생에게 칼을 들이댈 수는 없었다는군.”
상당히 복잡한 사정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엘드리트는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고 에인헤랴르를 떠났고, 영구동토로 가서 용귀족이 되었지. 일설에 의하면 영구동토에서 드래곤들 사이의 내전에 참가했다고 한다.”
“드래곤들 사이의 내전에……?”
“드래곤들 사이에도 파벌이 있으니까 말이다. 엘드리트도 자기 동생이 있는 에인헤랴르와 싸우는 것보다 드래곤들을 상대로 싸우는 게 적성에 맞았겠지. 어쨌든 그 공적으로 엘드리트는 악룡 파프니르에게 용공작으로 임명되었다고 하더군.”
에인션트 드래곤에게서 직접 용공작의 작위를 받았을 정도니, 상당한 활약을 했을 것이다.
“너희들도 알듯이, 일반적인 용귀족들은 드래곤들의 명령을 받아 움직인다. 하지만 용공작은 일반 드래곤의 명령은 받지 않고 오로지 에인션트 드래곤의 명령만 따르지. 그렇기 때문에 웬만하면 우리와 접촉할 일이 없다.”
“저도 그동안 최전선에 있으면서 용공작과 조우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습니다.”
아그나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가 알기로 엘드리트가 영구동토를 나와 에인헤랴르와 적대한 건 최근 백 년 동안 서너 번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렇지. 그런 엘드리트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그만큼 놈들이 진지하게 이번 일에 임하고 있다는 뜻일 거다.”
그렇게 대답하고 시구르드가 탁자 위에 올려놓았던 편지에 시선을 향했다.
엘드리트가 나에게 전달해 줬던 하겐의 서찰이었다.
“이 편지에 하겐의 서명이 적혀 있는 이상, 용공작들 전체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겠지.”
“아버지, 하겐이라면…….”
이바르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백 년 전, 당시의 에인헤랴르 대공을 살해했던 기사 맞습니까?”
“그렇지. 상흔검 발뭉을 사용해 죽였다고 한다.”
에인헤랴르 대공을 살해했던 기사라…….
배신자로서는 엘드리트보다 더 등급이 높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겐이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왜 용귀족이 되었는지, 자세한 경위는 전해지지 않는다. 나도 아는 게 없다.”
“기록이 없는 겁니까?”
“그래, 별로 후세에 전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던 모양이다.”
발뭉을 써서 에인헤랴르 대공을 죽였다면, 하겐 본인도 소드 마스터 수준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엘드리트와 동격 혹은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른다.
“카이트, 엘드리트가 하겐을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나?”
“네, 하겐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 같았습니다.”
“하겐이 파프니르 휘하의 용공작들을 통솔하는 위치에 있나 보군.”
수백 년 전의 인물이니 용공작들 사이에서는 고참 같은 위치일 수도 있다.
“대공 전하, 하겐을 중심으로 한 용공작들이 카이트 님을 노리고 있다면 이건 상당히 큰 문제입니다.”
아그나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놈들은 카이트 님을 용귀족의 일원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그리고 그게 여의치 않으면 카이트 님을 말살하려 하고 있죠. 이건 에인헤랴르 차원에서 대책을 세워야 하는 문제입니다.”
“카이트.”
시구르드의 시선이 나에게 향했다.
“용귀족이 될 생각이 있나?”
“없습니다.”
엘드리트 앞에서 밝혔듯이, 나는 용귀족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
용귀족이 되면 보다 쉽게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경지까지 올라가기가 어려워질 거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너는 더 강해지는 걸 원하지 않나?”
“맞습니다. 하지만 용귀족이 되는 게 정답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군.”
시구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대답을 믿겠다. 그러면 놈들이 너를 말살하기 위해 움직인다는 걸 전제로 대책을 세워야겠군.”
“그런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공 전하.”
아그나르가 걱정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용공작들은 대부분 소드 마스터와 동격, 혹은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놈들이 함께 쳐들어오면 막아 내는 게 쉽지 않습니다.”
“네 의견은 어떤가, 아그나르.”
“놈들은 카이트 님을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에인헤랴르의 소드 마스터들이 모두 모여서 카이트 님을 지키는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그나르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최전선에 있는 에리크까지 불러들여서… 용공작들이 나타나면 결전을 벌이는 겁니다.”
“에인헤랴르의 소드 마스터 네 명이 함께 대처하자는 건가.”
“그렇습니다.”
나와 시구르드, 아그나르, 그리고 최북단 요새의 에리크까지.
네 명의 소드 마스터가 집결하여 용공작에게 대항한다는 것이 아그나르의 작전이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 방법이 가장 낫습니다.”
이바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스스로 말단 기사로 내려간 이바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의견을 제시할 자격이 있었다.
“카이트 형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카이트 형님을 잃는 것도 에인헤랴르의 큰 손실이니까요.”
“맞는 말씀입니다, 이바르 님.”
“아버지라면 엘드리트에게도 대항할 수 있고… 에인헤랴르의 소드 마스터 전원이 모여 결전을 벌이는 게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피어너와 크레스니크 측에도 도움을 요청해야겠죠.”
“어디를 결전의 장소로 삼을지는 논의가 필요할 겁니다. 고틀란드가 아닌 곳으로 해야겠죠.”
이바르와 아그나르가 의견을 말하는 사이, 시구르드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어떻게 생각하나, 카이트.”
“아버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동안 생각을 정리했으니, 슬슬 내 계획을 밝힐 때가 되었다.
“저런 식의 작전은 필요 없습니다.”
“뭐라고?”
“용공작들은 제가 혼자 상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이바르와 아그나르는 눈을 크게 떴다.
“카, 카이트 형님? 지금 무슨 말을…….”
“혼자 상대하겠다고 하셨습니까? 용공작들을?”
당황하는 두 사람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 용공작들은 제가 혼자서 상대하겠습니다. 다른 소드 마스터들을 움직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자, 잠깐만요!”
“카이트 님……!”
이바르와 아그나르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시구르드가 눈짓으로 제지했다.
“카이트.”
“네, 아버지.”
“이유를 설명해 봐라.”
냉정한 질문에 나는 천천히 답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무엇과 무엇이냐.”
“일단 한 곳에 에인헤랴르의 소드 마스터를 집결시킨다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다른 방면의 방비가 소홀해지니, 드래곤들의 공격에 대항하기 어려워집니다.”
“일리 있는 말이군.”
숨을 삼키는 이바르와 아그나르 앞에서 시구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공작들이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이상, 다른 방면을 오랫동안 비워 두는 건 리스크가 크다.”
“물론, 빈틈이 있다고 드래곤들이 직접 공격해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몬스터들을 움직여서 침략을 시작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요.”
드래곤들의 성격을 생각하면, 소드 마스터의 빈자리를 노려서 직접 쳐들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몬스터를 보내는 것 정도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용귀족들이 보기에, 소드 마스터들이 모조리 한 곳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은 몬스터들을 이끌고 쳐들어오기 딱 좋은 상황일 것입니다.”
“네 말이 맞다.”
우리의 대화를 들으면서, 이바르와 아그나르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걸 두 사람도 이해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를 말해 봐라.”
“제가 혼자 있으면, 용공작들이 우르르 덤벼들기 어려워집니다.”
“…….”
이 말에는 시구르드도 허를 찔린 듯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딱 한 명 만나 봤을 뿐입니다만, 용공작들은 드래곤 못지않게 자존심이 강한 것 같았습니다.”
“자존심?”
“네, 드래곤들과는 조금 성격이 다른 것 같긴 했습니다만.”
엘드리트의 태도를 떠올리며 말했다.
“적어도 엘드리트 만큼은… 다른 용공작들과 함께 저를 협공하지는 않을 거라 단언할 수 있습니다.”
“…….”
시구르드가 잠시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군.
“그렇군. 그런 얘기인가.”
“대, 대공 전하, 대체 카이트 님이 무슨 얘기를 하고 계신 겁니까?”
“카이트는 놈들의 자존심을 자극할 생각이다.”
아그나르의 질문에 시구르드가 대답했다.
“용공작들이 나타난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 혼자서 당당히 맞서겠다… 카이트가 이렇게 나오는데, 용공작 여러 명이 나서서 카이트를 포위하고 동시에 공격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앗……!”
“카이트는 아직 서른 살도 안 되었다. 게다가 엘드리트가 보기에는 현손뻘 되는 아이지. 그런 카이트를 잡겠다고 용공작 여러 명이 덤벼드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 그렇군요!”
아그나르가 이제야 이해가 된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안 그래도 용공작들은 일반적인 드래곤들 이상으로 콧대가 높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엘드리트나 하겐은 에인헤랴르의 기사 출신… 카이트 님을 상대로 여럿이서 달려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 잠시만요.”
그때 이바르가 이의를 제기했다.
“그 작전이 성립하려면… 카이트 형님이 엘드리트 등의 용공작들을 상대로 일대일로 싸워 이길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용공작들은 일반 드래곤들보다 강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아무리 일대일이라고 해도 카이트 님 단독으로 용공작들과 맞선다는 건…….”
“아……!”
그렇다.
이건 내가 용공작들과 일대일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작전이다.
“그렇지. 용공작 중에서도 일반 소드 마스터 수준의 힘을 지닌 놈은 쓰러뜨릴 수 있어도… 엘드리트나 하겐처럼 인간 시절에도 이미 소드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던 놈이라면…….”
아그나르의 표정이 창백해졌다.
내가 엘드리트나 하겐까지 쓰러뜨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카이트.”
“네, 아버지.”
“이 부분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시구르드가 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너는 아직 엘드리트를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
시구르드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리고 그건… 일리 있는 평가이기도 했다.
“엘드리트 등의 일부 용공작들은 명백히 너보다 격상(格上)의 존재다. 어떻게 대처하겠나.”
“그 부분에 관해서,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부탁? 나에게 말인가?”
“그렇습니다.”
“…….”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는지, 시구르드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무슨 부탁이냐.”
이바르와 아그나르도 긴장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 속에서, 나는 천천히 말했다.
“한 번만, 저하고 싸워 주셨으면 합니다. 분노검 그람을 들고서 말입니다.”
시구르드의 눈빛이 차갑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