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02
▣ 102화. 하늘에 서겠다 (1)
베리타스투스를 쓰러뜨리고 왔지만, 이번엔 지금까지처럼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속에서 당당히 개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시구르드의 일격을 막아 내느라 몸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고, 용공작들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해 남쪽으로 빨리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그나르와 모리안 등과는 출발 전에 작별 인사를 했다.
최북단 요새로 돌아가야 하는 아그나르는 내 손을 꽉 붙잡고 ‘무운을 빌겠습니다.’ 하고 당부했다.
모리안은 나를 따라오고 싶어 했지만, 신화병장이 하나 더 있는 상황이면 용공작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그냥 얼스터로 돌려보냈다.
그들과 헤어진 뒤, 나는 부하들을 데리고 남쪽의 감찰기사대 본부로 출발했다.
몸이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 마차를 이용해야 했다.
‘그래도…….’
나는 마차 안에 실려 있는 가죽 주머니를 응시했다.
주머니에는 드래곤 하트가 하나씩 실려 있었다.
‘드래곤 하트를 무려 7개나 더 얻을 수 있었다.’
이번에 내가 쓰러뜨린 드래곤은 전부 네 마리.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져갈 수 있는 드래곤 하트는 최대 4개였다.
하지만 아그나르가 자기 몫의 3개도 나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내가 드래곤 하트를 이용해 모종의 일을 진행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자기 몫도 양보해 준 것이다.
“그러고 보니, 카이트 형님.”
내가 드래곤 하트를 응시하고 있는 걸 보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이바르가 입을 열었다.
“대기하고 있는 동안, 지시대로 드래곤 하트를 앞에 두고 운기조식을 했습니다.”
“좀 어땠지?”
“처음에는 그냥 그랬는데… 어느 순간부터 드래곤 하트와 저 자신이 연결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
이건 예상치 못한 얘기였다.
내가 드래곤 하트 앞에서 운기조식을 하라고 지시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내공 증진 속도를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겁니까?”
“아니, 좋은 현상 같아. 그렇게 하면서 단전이 더 묵직해지는 느낌도 있었나?”
“네, 기분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좋아. 앞으로도 계속해 봐.”
직접 손을 대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드래곤 하트와 연결되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나한테도 도움이 될 만한 얘기 같았다.
* * *
감찰기사본부에 도착하자, 프리드레이프가 나를 맞이해 줬다.
감찰기사대가 원정을 나가 있는 동안 프리드레이프의 기사대가 이쪽 일대를 책임져 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프리드레이프, 별일 없었나?”
“네, 니얼 경이 주변 영주들과 잘 조율을 해 놔서인지 작은 소란 하나 없더군요.”
“그래도 수고 많았다.”
“수고는 원정을 다녀오신 카이트 형님이 하셨죠. 이번에도 큰 공을 세우셨던데, 정말 대단하십니다.”
프리드레이프한테 용공작들의 표적이 되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얘기를 꺼내면 계속 여기 있으면서 나를 돕겠다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국 프리드레이프는 아무것도 모른 채 고틀란드로 귀환하게 되었다.
“아나스타샤, 그럼 지금 우리가 확보한 드래곤 하트가 전부 몇 개지?”
“원래 6개였는데, 7개가 늘어났으니 13개죠. 다만 몇 개는 이미 마력을 많이 소비한 상태입니다.”
아나스타샤의 말대로, 그동안의 전투에서 마법을 증폭시키기 위해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소비한 상태였다.
“그러면… 새로 획득한 드래곤 하트 중에서 다섯 개만 내가 좀 쓰도록 하지. 나머지는 지금까지처럼 계속 연구를 해 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시험해 보고 싶은 게 있어.”
베리타스투스의 것을 포함해 드래곤 하트 다섯 개를 챙긴 뒤, 나는 방에서 준비를 시작했다.
용공작들이 찾아오기 전에… 내가 원하는 경지에 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 * *
“이바르 공자님… 카이트 공자님이 대체 뭘 하려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운기조식을 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운기조식이라면… 카이트 공자님이 어윈과 슈데르츠 등에게 시키고 있는 그것 말입니까?”
“네, 저도 하고 있긴 합니다만.”
니얼의 질문을 듣고, 이바르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만 형님은 뭔가 특별한 방식으로 하시려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방식이라니…….”
“드래곤 하트를 배치해 놓고 있는 것만 봐도, 기존의 운기조식하고는 다릅니다.”
“그렇습니까?”
“네, 저도 드래곤 하트를 앞에 두고 운기조식을 하긴 했습니다만, 카이트 형님은 무려 다섯 개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셨으니까요.”
“…….”
니얼이 입을 다문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카이트 공자님이 그렇게 강하신 건, 그 운기조식 덕분일까요?”
“모르겠습니다. 다만 형님이 그 운기조식이라는 걸 무척 중요시하는 건 사실입니다. 그걸 통해 내공이라는 걸 얻으셨다고 하니까요.”
“내공이요?”
“앗…….”
이바르는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았다.
딱히 카이트한테 비밀로 하라는 명령을 들은 건 아니지만, 함부로 얘기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그 내공이라는 게… 카이트 공자님의 비밀인 겁니까?”
“음, 그게 말입니다…….”
“운기조식을 통해 내공이라는 걸 얻는다? 그러면 어윈이나 슈데르츠 등도 내공을 얻고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바르 공자님, 부디 저한테도 알려 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것 참…….”
이바르가 난감해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니얼의 어깨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바르를 추궁하지 마라, 니얼.”
“카, 카이트 공자님!”
언제 방에서 나온 건지, 카이트가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카이트 형님, 그게…….”
“니얼이라면 얘기해 줘도 괜찮겠지.”
“아, 니얼 경한테는 비밀이 아닌 겁니까?”
“딱히 비밀이었던 건 아니야. 무슨 소리인지 이해 못할 사람한테는 함부로 얘기하면 안 되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카이트가 니얼을 쳐다봤다.
“니얼, 내공이 뭔지 궁금한가?”
“물론입니다. 혹시 그게 카이트 님의 힘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겁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내공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 않아.”
“그러면…….”
니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한테도, 내공을 갖게 해 주십시오. 운기조식이든 뭐든 다 해 보겠습니다.”
“너도 더 강해지고 싶나 보지?”
“물론입니다. 평상시에는 참모 역할을 할 때가 많지만… 저도 한 명의 기사로서 더 강해지고 싶으니까요.”
니얼은 진지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려면 조건이 하나 있는데.”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뭐든 다 해 보겠다고 말입니다.”
“서클을 없애야 해.”
“…….”
카이트의 말을 듣고, 니얼이 잠시 눈을 깜박였다.
“서, 서클이요?”
“마력을 없애 버리고, 서클이 하나도 없는 상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
“그리고 처음부터 내공을 쌓아 나가야 하는 거지.”
얼빠진 표정을 짓는 니얼 앞에서, 카이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 있으면 말해. 이바르와 함께 내공을 쌓게 해 줄 테니까.”
“저기, 농담하시는 게 아니라… 정말로 서클을 없애 버리란 말입니까? 1서클이 되라는 것도 아니고, 0서클?”
“그래.”
“…….”
제 자리에서 굳어 있던 니얼이 이바르를 쳐다봤다.
“이바르 공자님, 이게…….”
“카이트 형님은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저한테도… 서클이 없어서 내공을 쌓을 수 있는 거라고 말씀하셨으니까요.”
“…….”
니얼이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카이트가 니얼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건 천천히 생각해 보고… 다른 녀석들 좀 불러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윈, 모르트, 슈데르츠, 이그니카, 루살카… 대충 이 정도만 부르면 되겠군.”
카이트가 언급한 건 평소 개별적으로 운기조식 등을 가르치고 있는 심복들이었다.
“내가 방 안에 있는 동안, 어떤 식으로 수련을 하면 될지 가르쳐 줘야 하니까.”
“방 안에 있는 동안이라니… 아.”
니얼이 흠칫 놀랐다.
“카이트 공자님, 혹시 지난번에 얼스터에서 그러셨던 것처럼 한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시는 겁니까?”
“그래, 아카샤니그두 때처럼.”
“아, 그런 거군요.”
이바르도 들은 적이 있다.
서쪽의 얼스터 지방에 아카샤니그두가 나타났을 때, 카이트가 사흘 동안 사라졌다가 갑자기 강해져서 돌아왔다고.
그때 카이트는 근처 동굴에서 모종의 수련을 하고 왔다고 했다.
“형님, 그러면 한동안 두문불출하면서 운기조식을 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동안 아무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 부분은 이그니카와 루살카한테도 말하겠지만.”
“알겠습니다.”
용공작들을 상대하기 위해 혼자서 수련할 시간이 필요하다면, 감찰기사대 전원이 협조해 줘야 한다.
“그러면 카이트 공자님, 얼마 정도면 되겠습니까?”
니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난번처럼 사흘입니까?”
“아니.”
카이트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일주일은 필요해.”
“이, 일주일이나요?”
니얼이 눈을 크게 떴고, 이바르도 상당히 놀랐다.
“카이트 형님, 일주일 동안 두문불출한다면… 식사 같은 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런 건 필요 없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주일이나 아무것도 안 먹으면 사람이 견디지 못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우려를 표하는 이바르의 앞에서, 카이트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배 속을 채울 게 엄청나게 많거든.”
* * *
영구동토.
절대로 녹지 않는 눈과 얼음으로 뒤덮은 대지 한구석에, 엘드리트가 조련한 와이번들이 모여 있었다.
평소에는 하위 용귀족들이 와이번을 타고 용기병으로 활동하지만, 지금 와이번을 타려고 하는 건 전부 파프니르에게 작위를 받은 용공작들뿐이었다.
“엘드리트 공!”
건장한 체구의 남성이 손을 치켜들고 인사를 했다.
엘드리트와 마찬가지로 하겐을 따르는 용공작인 파르피온이었다.
“와이번을 타고 이동할 기회를 줘서 고맙소.”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고틀란드 남쪽으로 가 버린 이상, 육로로 이동하는 건 곤란하니까.”
와이번들을 점검하던 엘드리트가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틀란드 정도라면 육로를 통해 이동해도 되지만, 그 아래쪽까지 내려가려면 불필요한 무력 충돌이 발생할 거야.”
“맞는 말이오. 자칫하면 시구르드와 충돌할 수도 있으니.”
현 시점에서 용공작들의 표적은 어디까지나 카이트 에인헤랴르다.
그렇다면 지상의 병력들을 무시하고 하늘로 날아갈 수 있는 와이번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
용공작들만 소규모로 이동하는 거라면 움직임을 포착당할 염려도 없고 말이다.
“다들 모여 있군. 늦게 도착하서 미안하네.”
“하겐 공!”
용공작들의 리더인 하겐이 나타나자, 다들 일제히 예를 표했다.
하겐은 미소를 지으며 답한 뒤, 곧바로 엘드리트에게 시선을 향했다.
“엘드리트, 준비는 다 됐나?”
“네, 이제 올라타기만 하면 됩니다.”
지금 이곳에 모여 있는 건 한 명 한 명이 소드 마스터 이상의 힘을 지닌 용공작들뿐이다.
이런 엄청난 전력이 카이트 에인헤랴르 한 사람만을 위해 움직인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겐 공, 과연 카이트가 우리 제안을 받아들여 줄지 모르겠습니다.”
“나도 바로 고개를 끄덕여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엘드리트의 얘기를 들어 봐도…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닌 것 같더군.”
“흠,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우리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줘야지.”
파르피온의 질문에, 하겐이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번 말해 두지만, 카이트를 죽이는 건 정말로 일이 안 풀렸을 때의 얘기다. 파프니르 폐하도 우리에게 그런 걸 명령한 건 아니니까.”
“알고 있습니다, 하겐 공.”
다른 용공작들에게 주의를 준 뒤, 하겐은 다시 엘드리트에게 시선을 향했다.
“엘드리트, 그러면 도착할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글쎄요, 남쪽 날씨에 별문제가 없다고 가정하고, 우리가 중간에 휴식하는 시간까지 계산했을 때…….”
엘드리트가 남쪽 하늘을 쳐다보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저택 정원에 와이번을 착지시키려면… 딱 일주일 걸리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