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06
▣ 106화. 하늘에 서겠다 (5)
갑자기 나타난 흑발의 청년.
오랫동안 두문불출하고 있었는지, 머리는 산발이었고 얼굴도 지저분했다.
하지만 눈빛은 맑았고, 표정에는 흐트러진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파르피온은 카이트가 나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갑소, 카이트 공자.”
파르피온은 칼에 찔린 주먹을 거둬들이며 말했다.
“나는 파르피온이라고 하오. 파프니르 폐하를 따르는 용공작으로서…….”
그렇게 자기소개를 하려고 한 순간.
카이트에게서 갑자기 돌풍이 휘몰아쳤다.
마치 천재지변 같은 바람에 파르피온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
쨍그랑!
배후에 있던 창문을 깨뜨리고, 파르피온은 바깥으로 추락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 * *
“카, 카이트 형님?!”
이바르도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카이트에게서 돌풍이 불더니, 무시무시하던 용공작을 날려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돌풍이 잦아들자, 꼬질꼬질하던 카이트의 얼굴이나 머리카락이 깨끗해졌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것일까.
“혀, 형님, 무슨…….”
“이바르, 묶을 거 없나?”
“네?”
“머리가 너무 길어져서.”
“……!”
그러고 보니 카이트의 머리카락이 일주일전보다 훨씬 길어진 상태였다.
이바르가 다급히 옷자락을 찢어서 건네자, 카이트는 그걸로 머리를 묶었다.
“어? 형님, 왠지 키도 예전보다 커지신 것 같은…….”
“환골탈태를 했으니까.”
“화, 환골탈태요?”
“슬슬 그럴 때가 되었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면서 카이트가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깨진 창문 밖을 내다봤다.
“상황은 대충 알겠군.”
“혀, 형님, 지금 용공작들이…….”
“됐다, 설명 안 해 줘도 된다.”
카이트가 창틀에 손을 댔다.
“버텨 주느라 수고 많았다.”
“형님…….”
“여기서부터는…….”
창문 밖으로 몸을 날리며, 카이트가 말했다.
“내가 맡는다.”
* * *
휘익!
3층에서 뛰어 내려오는 그림자를 보고, 용공작 유르카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조금 전, 카이트를 잡으러 3층으로 올라갔던 파르피온이 창문에서 떨어져 추락했다.
스스로의 의지로 내려온 게 아닌 것 같았다.
‘설마 파르피온 공이 당한 건가?’
유르카스가 검을 휘두르는 걸 멈추고 경계하는 사이, 기사들의 시선이 3층에서 내려온 청년에게 향했다.
“카, 카이트 님!”
“공자님!”
“드디어 나오셨군요!”
피투성이가 된 기사들이 환호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절망에 빠져 있던 놈들의 얼굴에 희망이 깃들었다.
‘저놈이 카이트로군.’
카이트 에인헤랴르.
건물 안에 틀어박혀 있었다는 그놈이 튀어나온 것이다.
“…….”
밖으로 나온 카이트는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부상을 입은 부하들의 모습을 한 번씩 확인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가 너희들을 그렇게 만들었지?”
그 질문을 듣고.
유르카스는 기사들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칼에 베인 상처는 내가 한 것이다.”
“…….”
카이트의 시선이 유르카스에게 향했다.
그러자 유르카스는 미소를 지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톱 같은 검이군.”
“그렇지.”
카이트가 지적한 대로, 유르카스의 검에는 나무를 베는 톱처럼 톱니가 존재했다.
이걸로 유르카스는 수많은 적을 말 그대로 ‘찢어발겨’ 왔다.
“상처가 치료되려면 한참 걸리겠어.”
카이트가 부하들의 부상을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그 태평한 목소리를 듣고 유르카스는 무심코 피식 웃었다.
“치료라니, 지금 그런 걸 걱정할 상황인가?”
그렇게 말하며 유르카스는 검을 다시 치켜들었다.
“자기 목숨이나 걱정하는 게 좋을 듯한데.”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
“어째서지? 내가 너한테 칼을 들이대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물론, 유르카스에게 카이트를 죽일 권한은 없다.
카이트를 영입하는 게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르카스는 일부러 살기를 드러냈다.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
“카이트 에인헤랴르, 네 부하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건방진 소리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
“뭐지?”
“네 이름이 뭐지?”
“…….”
유르카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을 수는 없었다.
“똑똑히 들어라. 나는 파프니르 폐하에게 용공작의 작위를 받은 유르카스라고 한다.”
“그렇군, 유르카스라고 하는가.”
카이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이름은 알고 벌을 주는 게 합당할 것 같아서 물어봤다.”
“벌?”
“그래.”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유르카스에게, 카이트의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없는 동안, 내 부하들을 상처 입힌 벌이다.”
그 직후.
유르카스는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을 느꼈다.
하늘과 땅이 반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걸까.
환술에 당한 걸까.
눈을 깜박인 직후, 유르카스는 뒤통수에 충격을 느꼈다.
“앗…….”
뒤늦게 유르카스는 깨달았다.
자신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땅으로 떨어졌다는 것을.
어느새 카이트가 검을 뽑아서 자신의 목을 베었다는 것을 깨닫고, 유르카스는 전율했다.
“아…….”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내린 ‘참수형’에 어떤 저항도 하지 못했다.
“아아아아……!”
그동안 수많은 적을 찢어발겨 온 톱니 칼에 손을 뻗고 싶었지만, 머리와 분리된 몸통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절망적인 공포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유르카스의 의식이 끊겼다.
* * *
“유, 유르카스가…….”
“일격에, 목이 날아갔다고?!”
당황하는 용공작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파르피온은 몸을 일으켰다.
‘당혹스럽군.’
조금 전에 3층에서 추락하긴 했지만, 그 데미지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것보다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카이트에게서 발생한 돌풍에 휘말려 창문 밖으로 날아갔다는 게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설마 그사이 유르카스의 목이 떨어질 줄이야.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이렇게 강했단 말인가?’
유르카스가 비록 용공작 중에서는 하위에 속한다고 하나, 반격조차 못 하고 일격에 쓰러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카이트에게 그 정도 힘은 없었을 터였다.
‘설마… 갑자기 강해졌다는 건가?’
아까 어떤 기사가 말했다. ‘카이트 공자님은 지금 너희들을 쓰러뜨릴 준비를 하고 계시다.’라고.
그렇게 준비한 결과가 이거라는 건가?
“…….”
파르피온은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겐과 엘드리트 등은 아직 움직임이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파르피온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확인해 보자.’
주먹을 쥐면서 카이트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카이트도 파르피온에게 시선을 향했다.
“칼에 베인 부상 외에, 타격에 의한 부상도 있더군.”
카이트는 부하들을 때려눕힌 게 파르피온이라는 걸 눈치챈 듯했다.
“권(拳)을 쓰는 고수라… 이쪽 세계에서는 없는 줄 알았는데.”
“카이트 공자.”
파르피온은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나는 용공작의 작위를 지닌 파르피온이라고 하오.”
“만나서 반갑군, 파르피온 용공작.”
“오늘 우리는 카이트 공자에게 용귀족의 일원이 되어 달라고 제안하러 왔소. 하지만 카이트 공자를 만날 수 없다고 하여, 무력 충돌이 있었던 것이오.”
카이트를 세심히 살피면서 계속 말했다.
“그러니…….”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파르피온.”
카이트가 갑자기 말을 가로막았다.
“이미 내 부하들을 다치게 한 유르카스가 죽었다.”
차갑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네가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
어떤 교섭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로.
카이트가 칼날 같은 눈빛을 보냈다.
* * *
파르피온이라는 용공작에게서 투기(鬪氣)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상당한 위압감이었지만, 나는 눈길을 돌리는 일 없이 파르피온을 쳐다봤다.
‘유르카스보다 마력량이 더 많은 듯하군. 육체 자체도 훨씬 우수하다.’
그때 파르피온이 고개를 치켜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정문 쪽에 몰려 있는 용귀족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겐 공!”
하겐.
용공작들을 통솔하는 남자의 이름이다.
그놈도 이곳에 와 있는 건가.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을 것 같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선언한 것으로 충분한 듯했다.
“카이트 공자, 유감이오.”
파르피온이 나를 노려보며 자세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며 여러 기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카이트 님! 조심하십시오!”
“저 용공작은… 서클을 파괴하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서클을?”
그러고 보니 쓰러져 있는 니얼 등에게서 마력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파르피온의 공격을 받아 서클이 파괴되었단 말인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파르피온은 마력을 아주 잘 다루는 권사(拳士)일 것이다.
상대방의 심장 주변을 타격하면서 특수한 오러를 침투시킨다면 서클을 파괴하는 것도 가능할 터.
‘마공(魔功)이라 할 만하군. 아니, 마권(魔拳)이라 하는 게 더 적절할까.’
무림에서도 온갖 특이한 권법이 있었다.
이쪽 세계의 용공작이 펼치는 마권은 어떨까.
“서클이 손상되어도 걱정할 필요 없소. 용귀족이 되면 다시 마력을 주입할 수 있을 테니까.”
나를 제압하기 위해 파르피온이 마력을 끌어올리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상대해 온 잔챙이 용귀족들과는 달리, 오랜 시간 동안 마력 운용을 철저히 훈련해 온 것으로 보였다.
“일단 당신을 제압하겠소, 카이트 공자.”
“할 수 있으면 해 보시지.”
짤막하게 대꾸한 순간.
파르피온이 질풍처럼 달려들어 왔다.
“……!”
쿠웅!
눈을 부릅뜬 파르피온이 주먹을 내질러 충격파를 발생시켰다.
주위에 있던 기사들까지 뒷걸음질하게 만들 정도의 충격파였다.
하지만 나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견실한 호신강기가 모든 충격을 막아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격에 승부를 낼 생각이군.’
파르피온의 주먹은 정확히 내 가슴을 향하고 있었다.
거기서 오러를 침투시켜 서클을 파괴하는 기술인 것 같았다.
나는 서클이 없기 때문에 서클이 파괴될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저런 공격을 굳이 받아 줄 이유도 없었다.
“……!”
쿠웅!
굉음과 함께 파르피온의 주먹이 멈췄다.
내가 왼팔을 들어, 파르피온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아 냈기 때문이다.
“파르피온의 공격을…….”
“맨손으로, 막아 냈다고?!”
용공작들이 술렁이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놀란 건 파르피온이었다.
“어떻게…….”
파르피온의 주먹은 내 손바닥에 정확히 막혀 있는 상태였다.
자신의 마권이 어떻게 이 정도로 쉽게 막혔는지, 파르피온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 같았다.
“어떻게 한 것이오, 카이트 공자.”
파르피온이 몸을 떨었다.
“인간의 몸으로, 이런 일을 할 수 있을 리 없소. 대체 무슨 준비를 했기에, 내 주먹을 막아 낼 수 있게 된 것이오?”
“8갑자에 도달했지.”
“8갑자……?”
그렇다.
나는 일주일 동안 오마도천대법(五魔到天大法)으로 드래곤 하트의 마력을 받아들였다.
이건 단순히 마력만을 흡수한 것이 아니었다. 내 안에 존재했던 6갑자의 내공까지 완전히 개방하여, 드래곤 하트의 마력과 어우러지게 만들어 오행에 따라 순환시키면서 한계까지 정화했다.
그동안 내 내공은 온갖 잡다한 기운들을 흡수하며 쌓아 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흑천수라심법을 운용해도 순도(純度)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것처럼, 정순하기 그지없는 내공이 내 단전에 자리 잡고 있다.
천마를 탄생시키기 위해 흉천마가(凶天魔家)가 만들었던 오마도천대법(五魔到天大法)을 통해, 나는 극도로 정갈한 8갑자 내공을 손에 넣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경(玄境)에도 도달했다.”
8갑자 내공뿐만이 아니다.
오마도천대법으로 마력을 흡수하여 새로운 내공을 갖추면서, 나는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내가 왜 이 세계에서 강해지려 하는지, 검마 이서원의 마지막 기억을 돌이켜 보며 다시 한번 확인하고 왔다.
그 결과, 나는 도달할 수 있었다.
검마 이서원이 도달했던 경지… 현경에.
“그렇기에…….”
기(氣)를 뻗었다.
화경이 힘을 극대화하여 쓸 수 있는 경지라면, 현경은 힘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경지다.
그렇기에 현경이 되면… 이런 것도 가능하다.
“이제는 이기어검(以氣馭劍)이 가능하지.”
그 순간.
저절로 솟구친 발뭉이 파르피온의 오른팔을 절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