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07
▣ 107화. 하늘에 서겠다 (6)
이기어검.
그것은 현경의 경지에 도달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던 초월적 기술이다.
손으로 잡지 않은 상태에서 기(氣)만으로 검을 조종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보면 검이 저절로 하늘을 날아다니며 공격을 펼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이기어검은 현경의 고수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내공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현경의 고수였던 검마 이서원은 이 이기어검으로 수많은 적을 쓰러뜨려 왔다.
“크아악……!”
파르피온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이기어검으로 발뭉을 움직여 그의 오른팔을 절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파르피온의 피부는 두터운 오러로 보호되고 있었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파르피온의 팔이 떨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바, 방금 칼이 저절로 움직인 건가?!”
구경하던 용공작들이 경악했다.
나는 발뭉을 거둬들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놀랄 필요가 있나? 소드 마스터 중에도 이런 기술을 쓰는 사람이 있었을 텐데.”
차르노보그도 오러를 써서 자신의 검을 조종하는 기술을 보여 준 적이 있었다.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시오!”
그때 파르피온이 오른쪽 어깨를 움켜쥐며 소리쳤다.
“손을 대지 않고 검을 조작하는 건, 어디까지나 적의 허를 찌르기 위한 기교……!”
파르피온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내 육체를 보호하고 있던 오러를 찢어발길 정도의 위력이라니… 대체 어떻게 한 것이오?!”
“그럼 다른 소드 마스터들은 이걸 기습이나 견제용으로만 쓴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차르노보그의 유사 이기어검도 위력이 약했다.
“상당히 아까운 얘기군.”
“뭐, 뭐라고?”
“제대로 기운을 불어넣으면… 위력적인 무기가 되는데 말이야.”
그 순간.
발뭉이 다시 한번 움직였다.
방금 자기 오른팔을 잘라 버린 신화병장이 다시 날아오는 걸 보고 파르피온이 다급히 움직였다.
“큭……!”
쿵 소리를 내며 도약했다.
최대한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발뭉은 무서운 속도로 파르피온을 쫓았다.
“이까짓……!”
파르피온은 왼손에 오러를 집중시켰다.
그리고 크게 몸을 틀면서 주먹을 뻗었다.
자기를 향해 날아오는 발뭉을 후려치려 한 것이다.
“하압!”
쿠웅!
굉음이 발생했다.
기운과 기운이 충돌하면서 눈 부신 빛도 터져 나왔다.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이나 용공작들이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을 정도였다.
‘제법이군.’
튕겨져 나간 발뭉을 다시 거둬들였다.
내 손으로 돌아온 발뭉을 회수하면서 고개를 치켜들자, 입술을 깨물고 있는 파르피온의 모습이 보였다.
그 왼손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큭……!”
용공작의 마력을 총동원해 발뭉을 튕겨 내는 것은 성공했으나, 왼손의 피부가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 것이다.
그래도 손이 통째로 날아가지는 않았으니… 역시 파르피온도 제법 강한 인물이다.
‘힘을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면 내가 위험했겠군.’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용공작들 쪽에서 움직임이 있었다.
그동안은 계속 후방에서 지켜보고만 있었지만, 파르피온이 위기에 처한 걸 보고 몇몇 용공작들이 앞으로 나서려 한 것이다.
“다들 멈추시오!”
그때 파르피온이 목소리를 높였다.
“이건 카이트 공자와 나의 승부! 끼어들지 마시오!”
“하지만, 파르피온 공!”
“한쪽 팔을 잃은 상태로는……!”
그때 귀에 익은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물러서라.”
“엘드리트 공!”
지난번에 나를 찾아왔던 용기사공 엘드리트였다.
그녀는 냉정한 목소리로 주위 용공작들을 제지했다.
“파르피온의 명예를 더럽힐 생각인가?”
“……!”
다른 용공작들보다 지위가 높은 걸까.
엘드리트의 말에 다들 조용해졌다.
“고맙소, 엘드리트 공…….”
파르피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에게 다가왔다.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려는지 결의에 찬 표정이었다.
* * *
‘이 남자는, 위험하다.’
파르피온은 카이트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아군으로 만들 만한 존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용공작들은 카이트를 용귀족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앞으로 용공작들이 드래곤을 제치고 세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강대하다.’
소드 마스터가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 텐데, 너무 강했다.
이 성장 속도는 비정상적이었다.
‘정말로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자질을 지닌 건가?’
카이트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재목이라면… 너무 위험하다.
용공작들이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존재가 될 테니까.
기껏 용귀족으로 만들어 아군으로 삼아 봤자, 카이트에게 모든 주도권을 빼앗겨 버릴 수도 있었다.
아니, 카이트의 손에 의해 모든 것이 다 허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그냥 여기서 죽여 버리는 게 맞다!’
파르피온은 피투성이가 된 왼손을 꽉 쥐었다.
오른팔을 잃은 탓에 몸의 균형이 틀어졌다. 하지만 마력을 운용하면서 왼쪽 주먹에 모든 힘을 집중하면 압도적인 파괴력을 발생시킬 수 있다.
‘설령 카이트의 목숨을 빼앗지 못하더라도…….’
카이트의 가슴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가슴 속에 오러를 침투시켜야 한다.
‘서클만큼은 파괴해야 한다!’
파르피온은 오러를 침투시켜 상대방의 서클을 파괴하는 기술이 특기다.
이건 파르피온이 아직 인간이었을 시절에 암살자 집단 ‘산중교단(山中敎團)’에서 배웠던 것이다.
파르피온은 산중교단의 고위 암살자로, 그곳에서 암살용 권술(拳術)을 배웠다.
그 권술의 절기(絶技) 중 하나가 바로 오러를 침투시켜 적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아무리 대단한 실력자라도 서클이 파괴되면 힘을 잃게 되니까.
‘뒷일은 맡기겠소, 엘드리트 공, 하겐 공!’
여기서 도저히 못 당해 내겠다고 하면서 뒤로 물러서는 것도 가능하다.
그렇게 하면 죽음을 각오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파르피온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용공작의 명예를 걸고… 이 위험인물을 반드시 무력화시키고 말겠소!’
다행히 카이트는 검을 날리지 않고 있었다.
파르피온이 부상을 입었다고 생각해 방심한 것일까.
어쨌든 파르피온에게는 호재였다.
“카이트 공자……!”
포효하면서 달려들었다.
아까처럼 정직하게 정면에서 달려드는 것이 아니다.
암살자 시절에 배웠던 기술들을 떠올리면서, 현란한 움직임으로 카이트에게 접근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카이트는 다시 검을 날리지 않았다.
발뭉을 한 손으로 잡은 채 파르피온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고 있을 뿐이었다.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채 파르피온은 좌우로 움직였다.
조금이나마 파고들기 쉬운 순간을 찾아내어, 최선의 일격을 꽂아 넣으려 했다.
“파르피온.”
바로 그때.
카이트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라.”
“……!”
그 말을 듣고, 파르피온은 깨달았다.
저 규격 외의 검사는, 파르피온에게 빈틈을 보여 줄 생각이 추호도 없다.
그 사실을 인식한 순간, 파르피온은 굴욕감을 느꼈다.
카이트가 자기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 서 있다는 걸 실감한 것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감정이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성을 잃고 막무가내로 덤벼든 건 아니었다.
빈틈을 파고들지는 못하더라도, 최선의 움직임으로 카이트를 공격한다.
오로지 그것만을 생각하며 파르피온은 몸을 비틀었다.
최후의 일격이 뻗어 나갔다.
* * *
콰앙!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지고, 다들 숨을 삼켰다.
파르피온의 주먹이… 내 가슴에 정확히 꽂혔기 때문이다.
“좋았어!”
“파르피온의 승리로군!”
후방에서 용공작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떠들어 댔다.
“카, 카이트 님!”
“공자님까지 서클을 파괴당하다니……!”
내 부하들은 절망에 빠진 표정을 지으며 한탄했다.
“…….”
하지만.
나와 파르피온은 서로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냥 가만히 서로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어째서인지, 알고 싶소.”
“이유는 두 가지.”
파르피온의 질문에, 나는 간결하게 답했다.
“첫째, 나는 네가 가슴을 노린다는 걸 눈치채고 호신강기를 가슴에 집중시켰다.”
“호신강기라…….”
“둘째가 뭔지도 말해 줘야 하나?”
“아니오. 그건 말 안 해 줘도 알겠소.”
파르피온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소용없는 짓을 했군.”
그렇다.
나는 아랫배, 단전에 내공을 저장하고 있다.
이쪽 사람들처럼 가슴에 마력 서클을 저장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서클을 파괴하기 위한 오러를 침투시켜 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물론, 서클과는 무관하게 심장에 직접적인 충격이 전해질 수도 있으므로… 호신강기를 집중시켜 충격을 최소화했지만 말이다.
“그냥 받아 준 건, 자만심 때문이오?”
“궁금했거든, 대체 어떤 기술인지.”
나는 이 남자의 마권이 어떤 원리인지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다.
그래서 한번 직접 맞아 본 것이다.
“독학인가?”
“아니오. 산중교단에서 배웠지.”
“산중교단…….”
“나는 그곳의 암살자였소.”
“그랬군.”
이 남자는 여기까지 오는 데 과연 어떤 길을 걸었을까.
궁금하긴 했지만, 더 이상 시간이 없었다.
지금도 여러 용공작들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니까.
“카이트 공자.”
파르피온이 씁쓸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내 가슴에 닿은 그의 주먹은 이미 부서지고 있었다.
그가 마지막 힘까지 쥐어짜서 주먹을 내질렀다는 증거였다.
“끝을 내시오.”
“그러도록 하지.”
패배를 인정한 파르피온의 눈빛은 맑았다.
산중교단의 암살자 출신이었던 그가 어떤 경위를 거쳐 용공작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올곧은 태도는 분명 무인(武人)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경의를 담아 그에게 검을 휘둘렀다.
“한 수 배웠다, 용공작 파르피온.”
촤악.
핏줄기를 뿜으며, 파르피온이 쓰러졌다.
* * *
파르피온이 쓰러졌다.
그 사실은 용공작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글루엔이나 유르카스가 쓰러진 건 별로 충격적이지 않았다. 그들은 어차피 평범한 소드 마스터 이하의 힘을 지닌 용공작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르피온은 다르다. 평범한 소드 마스터 정도는 쉽게 쓰러뜨릴 수 있는 게 파르피온이었다.
그런 파르피온이… 카이트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하고 패배한 것이다.
“어떻게 하지?”
“예상했던 것하고 다른데.”
여러 용공작들이 서로 눈치를 봤다.
그러던 도중, 호전적인 성격의 용공작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드리오스라는 이름의 용공작이었다.
그는 거대한 도끼를 손에 들고 앞으로 나섰다.
“보아하니 재주가 아주 많은 듯하구나! 참으로 흥미롭군!”
괴력으로 이름 높은 드리오스가 나서는 걸 보고 여러 용공작들이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카이트는 파르피온의 주먹을 맞고도 끄떡없었지만, 드리오스의 도끼라면 카이트를 찢어발길 수 있을 테니까.
“어디 한번 내 도끼도 받아 낼 수 있는지 보자꾸나!”
그렇게 소리치며 드리오스가 앞으로 달려 나갔다.
도끼를 치켜들고 돌진하는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의 들소 같았다.
하지만…….
“크억……!”
드리오스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느새 사각에서 튀어나온 검이 드리오스의 목을 찔렀기 때문이다.
드리오스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크, 아…….”
그래도 드리오스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다.
관성의 힘을 빌리면서, 카이트를 향해 도끼를 치켜들었다.
그렇게 최후의 발악을 하려던 순간, 카이트가 들고 있던 검이 번뜩였다.
“……!”
콰르릉!
번개가 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견뢰검 칼라드볼그가 드리오스의 목을 베었다.
고꾸라지는 드리오스와 충돌하지 않도록 한 걸음 이동한 뒤, 카이트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다음은 누가 나올 거지?”
“……!”
여러 용공작들이 주춤했다.
그리고 직감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는, 아직도 진짜 실력을 보여 주지 않은 상태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