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11
▣ 111화. 초월적 무공 (4)
콰쾅!
카이트의 몸이 앞으로 쏘아졌다.
한 줄기 번개처럼 뻗어 오는 그 움직임을 보면서, 엘드리트는 화염의 오러 블레이드를 펼쳤다.
‘속도는 카이트가 더 빠르다. 하지만……!’
지금 카이트의 움직임은 일직선.
충돌하는 타이밍만 맞출 수 있다면, 대응할 수 있다.
“……!”
콰쾅.
화염의 오러 블레이드가 카이트의 공격을 받아치는 데 성공했다.
카이트는 속도를 유지한 채 엘드리트의 옆을 지나쳤다. 그리고 곧바로 각도를 틀어 다시 엘드리트를 향해 쇄도해 왔다.
‘카이트도 아직 이 속도에 익숙하지 않아!’
아무래도 카이트가 이 정도의 스피드로 싸우는 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았다.
아까 처음 공격했을 때보다는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여전히 직선으로 질주하는 것만 가능한 것 같았다.
물론 초고속의 돌격 자체가 위협적인 건 사실이지만… 엘드리트의 기량이면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다.
‘타이밍만 맞춘다면……!’
엘드리트는 기동력으로 대응하는 건 포기했다.
자리에서 이동하지 않고, 카이트가 공격해 오는 방향에 따라 검을 휘둘러서 막아 낸다.
엘드리트가 만들어 낸 화염의 오러 블레이드라면, 카이트가 펼치는 뇌전의 검에 대항할 수 있었다.
‘와라, 카이트!’
쾅! 쾅! 콰쾅!
참격과 참격이 부딪혔다.
충돌할 때마다 불꽃의 파편과 번개의 파편이 주위에 흩날렸다.
카이트는 여러 방향으로 돌진해 오며 맹공을 퍼부었고, 엘드리트는 자리를 유지하며 철벽의 방어로 막아 냈다.
이렇게 되면 카이트의 기력이 더 빨리 소모된다. 지구력에서 우월한 엘드리트가 유리해진다.
그걸 알면서도, 엘드리트는 마음에 여유를 가지기 어려웠다.
‘카이트도 이미 눈치채고 있을 터.’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평범한 인간의 육체를 지닌 카이트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카이트도 그건 알고 있을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기력의 소모가 큰 방식으로 계속 공격해 들어오는 이유가 무엇일까.
‘분명 무슨 생각이 있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카이트의 모습이 갑자기 시야에서 사라졌다.
“……!”
카이트가 아직 컨트롤이 미숙한 게 아니라, 엘드리트를 속이기 위해 일부러 서툴게 움직이고 있었다는 걸 이해한 순간.
뇌전의 참격이 측면에서 쏟아져 들어왔다.
* * *
콰앙!
초고속으로 펼쳐진 참격을, 엘드리트는 가까스로 방어해 냈다.
하지만 직격을 면했을 뿐이다. 자세가 완전히 무너져 있는 상태였기에,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크윽……!”
땅을 뒹굴며 엘드리트가 피를 토했다.
그 정도로 강한 충격을 받은 것이다.
“커헉, 크윽…….”
엘드리트가 당한 것은, 내가 아직 수라청벽검의 속도에 익숙지 않은 상태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오늘 처음 사용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미 나는 뇌전의 기운을 사용한 초고속 전투에 완벽히 적응한 상태였다.
결국 엘드리트는 내가 갑자기 속도를 올리자 대응하지 못하고 당해 버렸다.
“크흑…….”
엘드리트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일반인이라면 내장이 터져서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몸을 일으키는 걸 보면, 용귀족의 육체가 확실히 강인하긴 강인한 모양이었다.
“카이트.”
숨을 헐떡이면서 엘드리트가 나를 노려봤다.
“계속해서, 덤벼라.”
“…….”
엘드리트의 눈동자에는 여전히 투지가 불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알겠다.”
* * *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엘드리트 에인헤랴르는 차기 에인헤랴르 대공으로 촉망받던 실력자였다.
가문의 장녀였고, 누구보다 빨리 9서클에 도달해 소드 마스터로 인정받았다.
드래곤 세력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웠으며, 에인헤랴르를 위협하는 북부의 중소 영주들도 철저히 제압했다.
용살검가 에인헤랴르는 엘드리트의 손에 의해 중흥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얘기했다.
하지만 에인헤랴르의 원로들은 엘드리트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엘드리트의 성격이 너무 냉혹하고 잔인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엘드리트는 그게 문제가 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엘드리트는 언제나 에인헤랴르를 위해 검을 휘둘렀다.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부하들의 목을 치는 것도, 박쥐처럼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중소 영주들의 목을 치는 것도, 전부 다 에인헤랴르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엘드리트가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원로들은 차기 에인헤랴르 대공으로 엘드리트의 남동생을 추대했다.
원정 때문에 엘드리트가 고틀란드를 떠나 있었을 때였다.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엘드리트는 곧바로 원로들을 죽여 버리고 모든 것을 바로잡으려 했다.
하지만 원로들은 엘드리트의 남동생을 방패로 삼았다.
엘드리트가 세상에서 유일하게 애정을 쏟는 가족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엘드리트는 동생에게 칼을 들이대지 못했고, 모든 것에 염증을 느끼며 에인헤랴르를 떠났다.
모든 것을 버린 엘드리트는 북쪽으로 향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북쪽에서 드래곤이나 용귀족들과 싸우다가 죽자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영구동토까지 올라간 엘드리트를 맞이한 것이… 에인헤랴르의 기사였던 용공작 하겐이었다.
하겐은 엘드리트에게 용귀족으로서 제2의 삶을 살아 보라 권유했다.
그리고 당시 벌어지고 있었던 용귀족들 사이의 세력 다툼에 엘드리트를 참가시켰다.
그 싸움에서 엘드리트는 해방감을 느꼈다. 용살검가 에인헤랴르를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순수하게 자신의 전투욕만을 위해 싸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엘드리트는 용귀족이 되었고, 파프니르의 인정을 받아 용공작의 작위까지 얻게 되었다.
그 이후 엘드리트는 용공작으로서의 생활을 만끽하게 되었다.
와이번들을 조교하여 용기병대를 만들기도 하고, 용귀족이나 드래곤들 사이의 세력 다툼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에인헤랴르에 종속되어 있던 시절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하겐과 의기투합하여, 언젠가 드래곤들을 몰아내고 용귀족이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자는 야망까지 갖게 되었다.
하지만.
엘드리트는 종종 생각하게 되었다.
어떻게든 에인헤랴르에 남아… 후진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으면 어땠을까.
당시 원로들은 엘드리트를 숙청하려고 했다. 하지만 엘드리트가 병권(兵權)을 내려놓고 일선에서 물러난다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렇게 했을 경우, 엘드리트는 후진 양성에 힘썼을 것이다. 조카들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후진을 양성하여 가문의 발전에 기여한다면, 엘드리트 에인헤랴르의 이름을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도 가능했을 터.
그렇기에, 엘드리트는 카이트를 더더욱 거둬들이고 싶었다.
현손뻘 되는 사이지만 엘드리트는 카이트를 조카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카이트를 거둬들여 가르침을 주고, 그 성장을 지켜보고 싶었다.
아직 애송이 같은 카이트지만, 엘드리트가 단련시키면 에인헤랴르 대공에 걸맞은 늠름한 남자가 될 것이다.
그런 카이트와 함께 세계의 정점에 선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렇게 된다면, 마음에 응어리져 있던 것들도 전부 다 해소되지 않을까.
엘드리트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앗……!”
전력을 다해 오러 블레이드를 전개했다.
그리고 정면에서 카이트에게 달려들었다.
에인헤랴르의 검사로서 싸우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묵직한 일격을 선사해 주려 했다.
“……!”
꽈앙!
카이트는 이번에는 뇌전의 힘을 사용하지 않았다.
엘드리트가 정면에서 정직하게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로, 빈틈없는 방어 자세로 막아 냈을 뿐이다.
“훌륭하다!”
엘드리트는 다시금 공격을 펼쳤다.
육중하게, 그러면서도 예리하게.
양자의 검이 충돌했다. 굉음이 연달아 발생했고, 주위의 공기가 떨렸다.
우우웅!
필연검 노퉁이 포효했다. 엘드리트의 마력에 반응하면서 더욱더 견고한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그 순간, 엘드리트는 자신이 새로운 깨달음에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더……!”
하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면서, 카이트에게 대적했다.
무한한 재능을 지닌 에인헤랴르의 아이를 향해 전력을 다해 공격을 펼쳤다.
“더욱더……!”
콰콰쾅!
칼라드볼그와 노퉁이 충돌하며 충격파가 발생했다.
노퉁이 칼라드볼그에게 밀리는 일은 없다. 엘드리드가 펼치는 오러 블레이드도 카이트의 그것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엘드리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육체에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드리트는 한계를 넘어서려 했다.
“……!”
쐐애액!
마침내 펼쳐진, 엘드리트의 인생 최고의 참격.
매서운 바람을 발생시키며 노퉁의 칼끝이 카이트의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카이트는 엘드리트의 공격에 대응했다.
몸을 거칠게 비틀면서, 종이 한 장 차이로 공격을 피했다.
그 순간, 칼라드볼그를 감싸고 있던 빛이 한층 더 날카로워졌다.
“와라, 카이트!”
목소리를 높이면서 노퉁을 두 손으로 붙잡은 순간.
엘드리트는 자신의 손이 너덜너덜해진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드리트는 마지막 힘을 다해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카이트의 마지막 공격이 엘드리트를 덮쳤다.
* * *
엘드리트는 내 공격을 제대로 받아 내지 못했다.
노퉁은 튕겨져 나갔고, 칼라드볼그가 그녀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겼다.
“…….”
엄청난 양의 피를 흘리면서도, 엘드리트는 평온한 표정이었다.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이 모조리 해소된 것처럼, 평화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훌륭하다, 카이트.”
엘드리트가 입을 달싹였다.
치명상을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너처럼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에인헤랴르의 아이와 검을 맞댈 수 있어서… 기뻤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용공작이 아니었다.
에인헤랴르의 사람으로서… 마치 조카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아랫사람으로 취급하는 눈빛은 아니었다.
존중이 담긴 눈빛이었다.
“너 같은 아이가 있다니… 에인헤랴르의 미래도 밝구나.”
쿨럭.
엘드리트의 입에서 시커먼 피가 쏟아져 나왔다.
“카이트, 하겐 공을 조심해라.”
“하겐…….”
하겐의 환영은 내 수라흑설검에 휩쓸려 사라진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왠지 하겐이 여전히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겐 공이 이대로 물러설 리가 없다. 이제 너를 포섭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을 테니… 앞으로는 작정하고 너를 공격하겠지.”
“혹시 하겐은 파프니르에게서 나를 말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건가?”
“아니다. 정확히는… 네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자질을 지녔는지 확인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고?”
“그래, 파프니르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였던 초대 시구르드에게 집착하고 있으니까…….”
새로운 정보였다.
파프니르가 초대 시구르드와 싸우다가 패배했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긴 한데…….
“카이트, 너는 강하다…….”
엘드리트가 입에서 피를 흘리며 계속 말했다.
“너라면 하겐 공을 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심해라. 하겐 공은 에인헤랴르 대공을 죽였던 남자… 결코 방심하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한 뒤, 엘드리트는 북쪽 하늘을 쳐다봤다.
영구동토가 있는 방향을 본 것인지, 에인헤랴르의 본거지인 고틀란드를 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카이트, 네가 늠름하게 성장하여 에인헤랴르 대공의 자리를 이어받는 모습을… 발할라에서 지켜보도록 하마…….”
그 말을 남기고.
엘드리트가 천천히 쓰러졌다.
비록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었으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