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13
▣ 113화. 카이트를 암살하라 (2)
“좀 어떠냐.”
방 안으로 들어가자, 침대에 누워 있던 어윈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카이트 님… 윽.”
“일어나지 마.”
어윈은 파르피온의 주먹을 맞아 여기저기 골절상을 입은 상태였다.
한동안 침대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
“뼈가 부러졌을 때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최고다. 죽은 사람처럼 누워 있어.”
“네…….”
내 말을 듣고 어윈이 쓴웃음을 지었다.
“얘기 들었습니다, 카이트 님.”
“얘기?”
“용공작들을 모조리 격퇴했다고 하시더군요.”
“…….”
어윈은 내가 파르피온이나 엘드리트와 싸우는 동안 기절해 있었다.
깨어난 뒤에야 결과를 들었을 것이다.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
“카이트 님을 믿고 있긴 했습니다만, 설마 용공작들을 혼자서 다 쓸어버리실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어윈이 미소 지었다.
“사실 말입니다, 카이트 님.”
“뭔데?”
“저는 카이트 님의 능력을 남들보다 빨리 눈치챈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
“프리드레이프 님을 제외하면 제가 거의 첫 번째 아닙니까.”
내가 어윈과 인연이 생긴 건, 시구르드의 명령을 받아 리저드맨 토벌에 나선 게 계기였다.
그때 하이 리자드맨의 공격에서 어윈을 구해 줬던 게 바로 나였다.
처음 만났을 때 어윈은 나를 안 좋게 보고 있었지만… 그런 일들을 겪으면서 나를 따르게 되었다.
“그 이후 계속 카이트 님을 따라다니면서 온갖 싸움을 겪었지요.”
“그랬지.”
“물론, 싸움에서 활약한 건 카이트 님이고… 저는 뒤치다꺼리 위주로 했지만 말입니다.”
“꼭 그렇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어윈이 각종 잡무를 담당해 준 건 사실이지만, 다른 기사들을 지휘하면서 공적도 많이 세웠다.
“그렇게 카이트 님과 함께하면서… 조금이나마 카이트 님을 따라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어윈…….”
“카이트 님처럼 싸우고 싶었거든요. 이제는 다 의미가 없어졌지만 말입니다.”
의미가 없어졌다.
그 말의 의미하는 것은…….
“서클도 잃었고, 이제 은퇴해야겠군요.”
“은퇴?”
“서클도 없는 녀석이 기사 노릇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부모님 집으로 가서 농사나 지어야겠습니다.”
어윈이 웃으면서 말했다.
“얘기했던가요? 저희 부모님은 고틀란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밭농사를 하고 계십니다.”
“밭농사를 할 만한 곳이 있나?”
“고틀란드 주변이야 대부분 춥고 척박하지만, 그래도 추위에 강한 작물을 기를 만한 곳이 조금씩 있습니다. 그래도 수확량은 많지 않아서, 그냥 검소하게 살고 계시죠.”
“…….”
“이제 나이도 많이 드셨고 하니… 밭농사는 제가 이어받아야죠.”
잠시 어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 좀 따뜻한 동네에 커다란 저택 하나 장만해서, 그곳으로 모시는 게 꿈이었는데 말입니다.”
“…….”
“이젠 기사로서 출세하는 것도 불가능하니, 그냥 헛된 꿈이 되어 버렸지만요.”
그렇게 말한 뒤, 어윈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이쿠, 너무 어두운 얘기를 했군요.”
“어윈.”
“어쨌든 말입니다, 카이트 님.”
어윈이 진지한 눈빛으로 내 얼굴을 쳐다봤다.
“앞으로도… 에인헤랴르를 대표하는 소드 마스터로서 승승장구하길 빌겠습니다.”
“…….”
“비록 저는 여기서 탈락하지만, 계속해서 카이트 님의 무운(武運)을 빌고 있겠습니다.”
진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나를 위해 시간을 버느라 서클을 잃었는데, 조금도 원망하는 것 같지 않았다.
어윈의 충성심이 진실하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어윈, 네 뜻은 잘 알았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만약 네가 정말로 은퇴하고 싶은 거라면, 나는 그 뜻을 존중하고 싶다.”
“네?”
“용공작이니 드래곤이니… 그런 무시무시한 적들하고 싸우느라 많이 힘들었겠지. 앞으로도 그런 싸움이 계속될 거다. 이번에는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고.”
“……?”
“하지만 네가 앞으로도 계속 나하고 같이 싸우고 싶다면…….”
어윈과 눈을 마주치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다시 검을 휘두를 수 있게 해 주마.”
“카이트 님, 그게 무슨…….”
“그동안 아나스타샤 공녀에게 지시해서 연구했던 게 결실을 맺었으니까.”
“……!”
내 말을 듣고 어윈이 숨을 삼켰다.
“어윈, 내공을 얻어라.”
“내공……?”
“서클을 잃었으니, 오러는 더 이상 쓸 수 없다. 하지만 영약을 먹고 내공을 획득해 내가 시키는 대로 수련한다면…….”
나는 예전부터 어윈에게 운기조식 등을 가르쳐 왔다.
이미 준비는 갖춰진 것이다.
“나처럼 무공을 쓸 수 있게 될 거다.”
“……!”
“너는 이미 오러 블레이드를 습득하기 일보 직전이었지. 그러니 검기(劍氣)도 금방 사용할 수 있을 테고, 언젠가 검강(劍罡)도 터득할 수 있을 거야.”
검기.
검강.
생소한 단어에 어윈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 점차 빛이 깃들었다.
“카이트 님, 그건…….”
“어윈, 나처럼 싸우고 싶다고 했었지.”
눈을 마주치면서,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주마.”
“카이트 님……!”
“계속해서, 나와 함께 싸우자.”
그렇게 말한 순간.
어윈의 두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서클을 잃고 은퇴를 결심한 뒤에도 흘리지 않고 있었던 눈물이 결국 터져 나온 것이다.
“함께하겠습니다, 카이트 님……!”
그렇게 소리치면서 어윈이 상처투성이의 주먹을 꽉 쥐었다.
“계속 나를 따라와라, 어윈.”
나는 그 주먹 위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너는 무공을 쓰는 기사가 될 거다.”
* * *
“내공을… 정말로 얻을 수 있게 된 거군요.”
목발로 몸을 지탱하면서, 니얼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서클을 잃고 절망에 빠졌었는데, 이게 이런 식으로 풀리다니…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요?”
“글쎄, 그건 너희들이 판단해야지.”
나는 서클을 잃은 여덟 명에게 영약으로 내공을 획득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해 줬다.
생소한 얘기를 듣고 당혹스러워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결국 다들 내공을 얻어 무공을 배우기로 약속했다.
싸움에서 거리를 두기로 했던 슈벤과 휴이엔도 옆에 있던 이그니카와 루살카의 설득에 넘어갔다.
“정말로 내공을 얻어 무공을 익히면 카이트 공자님처럼 강해질 수 있는 겁니까?”
“너희들 자질과 노력에 달렸지.”
사실 어윈은 6서클, 모르트는 5서클, 나머지는 다 8서클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자질은 있는 편이라 할 수 있었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무공을 가르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일단 전장에 나서는 건 너희들 몸이 다 회복된 다음에야 가능하겠지만, 그 이전부터 계속 운기조식을 열심히 해. 심법 구결도 계속 외우고.”
“운기조식, 심법… 공자님은 대체 어디서 그런 걸 배우셨는지.”
“기연이 있었어, 기연이.”
그렇게 둘러댄 뒤, 나는 화제를 돌렸다.
“니얼, 그것보다 일단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싶은데.”
“용공작 하겐 말씀이시군요.”
니얼이 눈썹을 찌푸렸다.
“일단 놈들도 더 이상 공자님을 포섭하려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말하는 걸 들으니 공자님을 영입하는 건 완전히 포기한 것 같더군요.”
내가 하겐이나 엘드리트 등과 대화를 나눌 때, 니얼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놈들이 이번처럼 내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올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와이번을 타고 우르르 쳐들어오는 일은 없겠죠. 공자님을 죽이려 한다면… 차라리 자객을 보낼 겁니다.”
“자객이라…….”
“엘드리트 이상의 실력을 지닌 용공작도 드물 테니까요. 자객을 보내 암살을 시도하는 게 그나마 가능성이 있겠죠.”
“하지만 그건 용귀족다운 짓이 아니지 않나?”
“하겐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교활한 인물입니다. 다른 용귀족들하고는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니얼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용공작 중에 자객 역할을 할 만한 인물이 있을지 모르겠군.”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암살에 특화된 능력을 지닌 용공작이 있을지…….”
“혹시 놈들이 산중교단의 암살자를 고용할 가능성이 있을까?”
그러고 보니 파르피온은 자기가 산중교단의 암살자 출신이라고 말했다.
“글쎄요. 아예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지만…….”
니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이트 공자님을 암살하려면… 산중교단에서도 장로급을 보내겠죠.”
“장로?”
“산중교단의 고위 간부들입니다. 소문에 의하면 9서클에 도달한 장로도 있다고 합니다.”
“암살자 집단에도 그 정도 실력자가 있었군.”
“마스터급 실력자가 암살 대상일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지금의 카이트 공자님이라면 암살 의뢰 자체가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그런가?”
“네, 너무 비쌀 테니까요.”
그러고 보니 무림에서도 돈을 받고 사람을 죽여주는 살수 집단이 있었다.
강호의 소문을 취합해서 무림인들의 서열을 만들어 가격을 책정했다.
검마 이서원한테도 어마어마한 가격이 책정되어 있어서, ‘이렇게 많은 돈을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그냥 그 돈으로 전쟁을 벌이고 말지.’ 하고 혀를 찼던 게 기억난다.
“아, 그래도 하겐이라면 의뢰비를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그건 어째서지?”
“영구동토에는 드래곤들이 수천 년 전부터 수집해 온 온갖 금은보화가 있다고 하니까요. 하겐 정도의 용공작이면… 웬만한 대부호 이상의 금은보화를 보유하고 있을 겁니다.”
“그걸 산중교단에게 보내서 암살을 의뢰한다는 건가?”
“배룡주의자를 통해 전달하면 되겠죠.”
“흠…….”
“그래도 뭐, 하겐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가능성은 있어.”
하겐은 파프니르에게서 ‘카이트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자질을 지녔는지 확인하라.’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한다.
산중교단에게 암살을 의뢰했는데, 내가 그것도 격퇴해 버리면…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자질을 지녔다는 증거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자질이 어떤 건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애초에 하겐의 진짜 목적이 뭔지도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니, 모든 가능성을 고려해 놓는 편이 좋겠지.”
“그렇군요.”
내가 보기에, 하겐은 드래곤 세력에게 반기를 들 생각일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에인션트 드래곤인 파프니르에게 반역하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단순히 일반 드래곤들을 축출하고 자기들이 파프니르 파벌의 중심이 되려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자세한 건 앞으로 계속 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러면 경비를 더 강화하는 게 낫겠군요. 카이트 님에게 호위 담당도 더 붙이고 말입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네?”
니얼이 눈을 크게 떴다.
“아니, 암살자가 나타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하신 거 아닙니까?”
“그래, 맞아.”
“그러면 경비를 더 강화해야…….”
“나는 놈들을 유인할 생각이야.”
“……!”
나는 사파 흑사련에 속했던 검마 이서원이다.
살수에 대처하는 방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산중교단의 암살자가 나를 노리고 접근한다면, 그냥 때려잡으면 되는 거니까.”
* * *
“진심으로 하는 말씀이십니까?”
성채도시 고틀란드 방면을 담당하는 산중교단의 ‘창구원’ 프레아는 귀를 의심했다.
어두운 여관방에서 만난 의뢰인이 어처구니없는 의뢰를 했기 때문이다.
“죄송하지만 그 사람은 이번에 ‘가격’이 올라서…….”
145억 골드라는 엄청난 금액이 책정되었다는 걸 말하려고 했을 때.
의뢰인이 품 안에서 가죽 주머니 하나를 집어던졌다.
“총본산의 최고장로에게 전달하시오. 그거면 충분할 테니.”
“……!”
가죽 주머니를 열어 보고 프레아는 숨을 삼켰다.
의뢰인의 말대로, 그 안에는 145억 골드 이상의 가치를 지닌 물건이 들어 있었다.
“그러면 다시 한번 말하겠소.”
전율하는 프레아 앞에서 의뢰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암살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