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14
▣ 114화. 카이트를 암살하라 (3)
“최고장로님, 어떻게 보십니까?”
“제가 보기에도 이건 진품으로 보입니다.”
산중교단 총본산은 소란스러웠다.
북부에서 전달된 ‘물건’ 때문이었다.
“성물(聖物)이 틀림없습니다.”
“이 단검… 교조(敎祖)님의 것이 분명합니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낡은 단검.
그것은 에테르가 내재되어 있는 ‘신화병장’이었다.
그리고… 먼 옛날 산중교단이 잃어버린 ‘창시자의 단검’이기도 했다.
“어째서 의뢰자가 이런 걸 갖고 있었던 걸까요.”
“창구원은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 거요?”
“의뢰자는 변장을 하고 있었고, 미행을 하려고 했더니 어느새 사라졌다고 했소.”
“아마 대리인일 겁니다. 의뢰자를 잡아도 흑막은 알아낼 수 없겠죠.”
교단의 장로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창시자의 단검이 교단으로 돌아온 건 기쁜 일이었지만, 돌아온 경위가 문제였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암살해 달라니…….”
“가격을 145억 골드로 올리자마자 의뢰가 들어왔군요.”
“이 단검은 충분히 그만한 값어치를 합니다. 특히 우리 교단 입장에서는… 전 재산을 내던져서라도 되찾고 싶었던 성물이니 말입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죽이기 위해 이런 걸 준비할 수 있는 사람… 대체 누굴까요.”
“혹시 황실……?”
“황실이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왜 암살한단 말이오!”
“고틀란드에서 의뢰했으니 북부 쪽 세력 아니겠습니까?”
“북부에서? 그럼 대체 어딥니까? 광휘창가? 귀살마가? 아니면 용살검가 내부?”
“지금 시점에서 북부에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암살하려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장로들이 갑론을박을 하고 있었을 때.
침묵을 지키고 있던 최고장로 샤이흐가 입을 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의뢰를 받았다는 점이다.”
“…….”
샤이흐의 발언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정확히 145억 골드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 단검은 우리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의뢰비를 전액 선불로 받았다고 해야 하겠지.”
“…….”
“다른 물건도 아니고, 교단의 성물이다. 그러니 우리는 반드시 의뢰를 성공시켜야 한다.”
의뢰를 실패, 혹은 포기하여 의뢰비를 환불해 주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된다.
이 단검은 온전히 교단의 것이 되어야 한다.
“설마 지금 여기에… 의뢰 성공과 관계없이 단검만 챙길 생각을 하는 장로는 없겠지?”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최고장로.”
“교조의 성물과 관계된 일입니다. 그런 불경한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장로들의 대답을 듣고, 샤이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의뢰를 어떻게 수행할지부터 얘기해 보지. 의뢰의 배후가 누구인지는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봐도 되는 거니까.”
“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장로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는 이미 100억 골드 이상의 값이 매겨진 소드 마스터…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
“평범한 암살자를 보내 봤자 개죽음을 당하겠지요.”
“그럼 역시 장로 중에서…….”
장로들은 다들 8서클 이상의 실력자들로, 각자 최소한 한 명 이상의 ‘마스터’를 암살한 실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장로들에게도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암살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최근 들어온 정보에 의하면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용공작들을 몰살시켰다고 합니다.”
“에인헤랴르 출신의 용공작 엘드리트조차 카이트의 칼에 목숨을 잃었다지 않습니까.”
산전수전을 다 겪은 산중교단의 장로들조차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암살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 교단의 배신자였던 파르피온도 당했다는 게 마음에 걸립니다.”
“교단의 암살술을 활용했을 텐데 카이트가 살아남았다는 건…….”
산중교단에는 상대의 서클을 파괴하는 기술이 있다.
교단의 암살자들이 격상의 상대조차 암살할 수 있었던 건 이 암살술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카이트는 파르피온을 상대했는데도 불구하고 멀쩡히 살아서 활동하고 있었다.
“다들 너무 겁이 많군. 은퇴할 때가 된 건가?”
바로 그때.
중간 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장로들이 그렇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내가 나서도록 하지.”
“라, 라시드 장로!”
날카로운 눈매를 지닌 남자였다.
새카만 머리카락을 짧게 깎았고, 눈썹도 정리하고 있어 단정한 인상이었다.
“최고장로님, 저에게 맡겨 주셨으면 합니다.”
“라시드…….”
라시드는 아직 마흔둘밖에 안 된, 최연소의 장로였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장로 중, 실력으로 라시드에 대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라시드는… 이미 9서클에 도달한 상태였으니까.
“저는 100억 골드 급의 표적을 암살한 실적도 있습니다.”
“그래, 바로 저번 달의 일이었지.”
얼마 전, 라시드는 남부에서 이름을 날리던 9서클의 ‘보우 마스터’를 암살했다. 125억 골드의 가격이 책정되어 있던 인물이었다.
만약 라시드가 145억 골드짜리 표적인 카이트 에인헤랴르까지 쓰러뜨린다면… 라시드는 차기 최고장로 자리까지 노릴 수 있게 된다.
“제가 맡겠습니다, 최고장로님.”
“라시드.”
샤이흐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는 아직 젊다. 산전수전을 겪은 다른 장로들에 비하면 아직 애송이라 할 수 있지.”
“…….”
“하지만, 카이트는 너보다 더 젊다. 그 젊은 기세를 상대하려면… 네가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군.”
그 말을 듣고, 장로들이 술렁였다.
“최, 최고장로님, 라시드에게는 역부족 아니겠습니까?”
“좀 더 경험 많은 사람을 보내는 편이…….”
몇몇 장로들이 이의를 제기했지만, 샤이흐는 표정 변화 없이 쏘아붙였다.
“그럼 자네 중에서 누군가가 맡아 줘야겠군. 라시드보다 이번 의뢰를 잘 수행할 자신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 보게.”
“…….”
샤이흐의 말에 장로들이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샤이흐는 코웃음을 쳤다.
“라시드가 실패하면 자네들이 나서야 될 수도 있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 두도록.”
“최, 최고장로님…….”
물론, 지금 여기 있는 장로들만이 산중교단의 전력인 것은 아니다.
다른 임무 때문에 바깥에 나가 있는 장로도 있고, 그중에는 라시드 이상의 역량을 지닌 실력자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투입할 수 있는 장로 중에서는 라시드가 가장 강했다.
최고장로인 샤이흐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라시드, 바로 출발하도록 해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최고장로님.”
최고장로의 허락을 받은 라시드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 * *
“이곳으로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구(舊) 루스베르그 후작령에도 지부가 있는데.”
산중교단의 고틀란드 담당자인 프레아는 갑자기 방문한 ‘장로’ 라시드를 응대하고 있었다.
“그쪽 담당자는 피어너에서 파견된 니얼이라는 남자에게 감시당하고 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너는 카이트 에인헤랴르와 직접 만나 본 적이 있다고 하더군. 네 의견도 듣고 싶어서 말이다.”
라시드는 총본산에서 카이트 암살을 명령받고 즉각 고틀란드로 왔다.
카이트가 있는 감찰기사대 본부로 가기 전에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직접 만나 본 적이 있다고 해도, 이곳에 잠시 방문했을 뿐입니다.”
프레아의 표면적 신분은 상단의 재고 관리 담당자다.
평소에는 이곳 창고에서 재고품을 관리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때 카이트 에인헤랴르는 이곳에서 검을 고르려 했죠.”
“그 부분, 좀 더 자세히 듣고 싶군.”
“알겠습니다.”
프레아는 어느 날 갑자기 카이트가 찾아와서 ‘우연히 탄생한 명검’을 찾기 위해 창고를 뒤집어엎어 놨던 얘기를 해 줬다.
다 듣고 난 뒤 라시드는 턱을 쓰다듬으며 신음했다.
“장검과 장검, 단검과 단검을 서로 부딪치면서 가장 튼튼한 놈을 찾았단 말이지…….”
“이 창고에 부러진 검이 수북하게 쌓였습니다.”
“흥미로운 에피소드로군. 역시 파격적인 인물 같다.”
“이런 정보가 암살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대상을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행동을 예측하기 쉬워지지. 내 암살에는 필수적이다.”
“…….”
프레아는 잠시 라시드의 얼굴을 쳐다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100억 골드급 표적을 암살하는 등 많은 공적을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암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불가능한 일은 없다.”
라시드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강한 소드 마스터라도, 목을 찔리면 죽기 마련이지.”
자기 목을 가리키며 말하는 라시드를 보면서, 프레아는 생각에 잠겼다.
카이트는 무시무시한 힘을 지닌 인물이다. 하지만 라시드라면… 그를 암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는 비교적 젊지만, 실력은 확실하다고 하니까.’
소문에 의하면, 라시드는 최고장로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노력하여 독보적인 기술을 터득했다고 한다.
‘언젠가 최고장로가 되겠다는 야심이 있으니… 이번 임무를 꼭 완수하려 할 거야.’
프레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실례하겠다.”
굳게 닫혀 있던 창고 문이 열리자.
프레아와 라시드에게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지난번에도 왔었던 카이트 에인헤랴르인데… 선객(先客)이 있었군.”
“……!”
카이트가 태연한 표정으로 창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남쪽 감찰기사대 본부에 머무르고 있어야 할 사람이 어느새 고틀란드로 온 것일까.
“감찰기사대에서 사용할 훈련용 장비가 필요해서 말이야. 상품을 둘러보고 싶은데, 괜찮겠나?”
* * *
창고에 앉아 있던 남녀를 보면서, 나는 속으로 피식 웃었다.
‘역시 수상한 놈들이군.’
내가 고틀란드에 와 있는 건 용공작들과의 전투 결과를 시구르드에게 직접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엘드리트를 쓰러뜨린 뒤 전리품으로 얻은 ‘필연검 노퉁’을 어떻게 할지 의논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바이콘을 타고 혼자서 고틀란드로 달려왔는데…….
‘이렇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면 그냥 지나칠 수 없지.’
현경에 들어서면서, 무수절맥공의 유효 범위가 상당히 넓어졌다.
마음만 먹으면 고틀란드 전역을 샅샅이 살펴보는 것도 가능했다.
이런 녀석들이 시가지 구석에 숨어서 음모를 꾸미고 있으면 바로 눈치챌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정도 마력을 지닌 놈들이 이런 창고에 모여 있는 건 말이 안 된단 말이지.’
이 상단의 창고 관리자가 꽤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특별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서 그냥 내버려 두고 있었지만 말이다.
‘같이 있는 남자는 9서클이군.’
차르노보그가 죽은 뒤, 북부에 9서클은 세 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시구르드, 에리크, 그리고 아그나르다.
이 남자는 어딘가 다른 지역에서 숨어들어 온 것이다.
‘남쪽에 있는 9서클 마스터들에 관해서는 니얼한테 얼추 들었어. 하지만 이 남자는… 그중 누구도 아닌 것 같군.’
게다가 이 남자… 얼굴에 인피면구 같은 걸 뒤집어쓰고 있다.
너무 완벽해서 알아보기 힘들지만, 나도 흑사련에 있을 때 저런 인피면구를 사용한 적이 있어서 눈치챌 수 있었다.
‘변장을 하고 북부로 숨어들어 온 정체불명의 9서클…….’
상단의 창고를 방문한 고객인 척 행세하고 있는 남자를 살펴보면서, 나는 그 정체가 무엇일지 생각했다.
‘자객이군. 산중교단에서 온 건가.’
그렇다면 여자도 산중교단 관계자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마력을 지녔으면서 상단 창고에서 재고 관리를 하고 있는 것도 정체를 위장하기 위한 것이다.
‘하겐이 내 자질을 시험해 보기 위해 산중교단에 암살을 의뢰한 건지, 다른 곳에서 의뢰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태연한 표정으로 응대하려 하는 두 사람.
그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이건 나한테 상당히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산중교단의 실체를 알아낼 기회로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