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15
▣ 115화. 카이트를 암살하라 (4)
라시드는 완전히 허를 찔린 상태였다.
여기서 카이트 에인헤랴르와 직접 만나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감찰기사대 본부에 머무르고 있다는 건 이미 확인했는데… 언제 고틀란드까지 온 거지?’
감찰기사대 본부가 있는 구(舊) 루스베르그 후작령에서 고틀란드로 오려면 험준한 산길을 넘어야 한다.
거리 자체도 꽤 되는 편이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 그렇군!’
라시드는 뒤늦게 깨달았다.
카이트가 바이콘을 길들여서 타고 다닌다는 걸 생각해 낸 것이다.
‘바이콘의 최고 속도라면, 우리한테 정보가 전해지는 것보다 빨리 이동할 수 있다!’
어쨌든 난감한 상황이었다.
충분히 정보를 수집한 다음에 카이트와 접촉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대면하게 되다니.
‘아니, 이 상황을 나한테 유리하게 활용할 수는 없을까?’
라시드는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번 임무는 라시드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145억 골드의 가격이 책정된 카이트를 해치우면 라시드의 위상은 하늘을 찌르게 된다.
라시드의 목표인 차기 최고장로 자리에 더 가까워지는 것이다.
‘결코 실패해서는 안 돼.’
찬찬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나쁜 상황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카이트는 이쪽 정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생각을 정리한 뒤, 라시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것 참… 여기서 카이트 공자님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요.”
말투에 남서쪽 시골의 억양을 섞으며, 카이트에게 인사를 했다.
“저는 남쪽의 보틸러스 상단에서 파견된 라틸드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군, 라틸드.”
카이트의 목소리에서 경계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카이트 공자님의 소문은 많이 들었습니다. 드래곤들을 상대로 엄청난 활약을 하고, 스물다섯의 나이로 소드 마스터의 자리에 오르셨다지요?”
라시드는 평범한 상인처럼 행세하며 미소를 지었다.
“북부 최고의 젊은 영웅을 만나서 정말 기쁩니다. 남쪽으로 돌아가면 동료들에게 자랑해야겠군요.”
그렇게 말하고 라시드는 프레아에게 시선을 향했다.
“저는 급하지 않으니, 카이트 공자님부터 응대해 주시죠.”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하하, 물론이죠.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프레아는 눈치가 빨랐다.
곧바로 자연스럽게 카이트를 응대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면 카이트 님, 일단 이쪽으로 오시죠. 원하시는 물건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딱히 고급품을 원하는 건 아니야.”
프레아가 카이트를 데리고 창고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라시드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들 뒤를 따라갔다.
‘좋아, 카이트는 우리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 것 같군.’
카이트는 라시드의 정체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창고에 산중교단의 장로급 암살자가 와 있을 거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을까.
‘내가 9서클의 마력을 지녔다는 걸 꿰뚫어 볼 수도 없을 테고…….’
이대로 계속 카이트를 관찰하며 정보를 수집해 보자.
라시드는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 * *
라틸드라고 자신을 소개한 암살자는 계속 내 뒤를 따라다녔다.
그냥 평범한 상인인 것처럼 행세했지만, 내 눈을 속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완성도가 높군. 몸놀림까지 완전히 위장한 상태야.’
겉모습만으로는 정체를 눈치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걸어 다니는 모습조차 평소 별로 운동을 하지 않은 중년 남자의 것으로 위장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마력을 감지한 상태이기 때문에, 미세한 차이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이미 9서클의 마력을 지닌 실력자라는 걸 파악한 상태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마흔에서 쉰 사이로 보이는 중년의 얼굴.
하지만 실제로는 서른에서 마흔 사이일 것이다.
육체는 제대로 단련되어 있어 군살이 전혀 없다. 뱃살이 있어 보이는 건 복대를 하고 있는 탓이다.
‘전력을 다해서 움직이면 상당히 날렵하겠군. 평소 쓰는 무기는… 단검인가?’
라틸드는 배후에서 나를 계속 관찰하고 있었지만, 덕분에 나도 라틸드를 관찰할 수 있었다.
이렇게 상대방의 정보를 느긋하게 수집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9서클이라고 해도, 시구르드나 아그나르에 비하면 격이 떨어지는 느낌이야. 차르노보그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웬만큼 창고를 둘러본 뒤, 나는 내일 다시 오겠다고 창고지기에게 말했다.
그리고 몇 가지 잡담을 나눈 뒤 그들과 헤어졌다.
“…….”
고틀란드의 거리를 걸으면서, 나는 태연한 표정으로 주위의 기척을 살폈다.
9서클 마력과 8서클 마력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행을 시작했군.’
라틸드라는 가명을 쓰는 9서클 암살자는 제법 가까이에서 나를 미행하고 있다.
8서클 마력의 여자 창고지기 쪽은 더 먼 곳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했다.
‘바깥에 나갔다는 시구르드가 돌아올 때까지 아직 몇 시간 남았으니… 그사이에 처리하면 되겠지.’
나는 미행을 즐기면서 거리를 둘러봤다.
* * *
‘빈틈이 없군. 역시 소드 마스터인가.’
라시드는 카이트를 미행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카이트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민중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는데, 실제로는 아주 작은 빈틈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쪽을 의식하는 기색은 전혀 없어. 미행을 눈치채지는 못한 모양이군.’
계속 카이트를 관찰하면서 라시드는 고민에 빠졌다.
오늘 습격하는 게 좋을까, 아니면 후일로 미루는 게 좋을까.
그런 고민을 하던 사이, 카이트가 뒷골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별로 질이 좋지 않은 가게들이 모여 있는 환락가였다.
‘어떻게 된 거지? 카이트는 유흥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고 들었는데.’
위화감을 느끼면서 라시드는 계속 카이트를 쫓았다.
그리고 카이트가 허름한 가게에 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여기는…….’
유흥업소는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뒷골목 식당이었다.
카이트가 왜 이런 곳으로 들어가는 걸까.
‘그러고 보니…….’
산중교단이 확보한 정보에 의하면, 카이트는 어떤 음식이든 아무거나 잘 먹는다고 했다.
귀족다운 고급 요리도 잘 먹지만, 하층민들이 가는 동네 음식점도 거리낌 없이 드나든다는 것 같았다.
‘망나니 시절부터 즐겨 찾던 단골 맛집인가?’
프레아에게 의견을 묻고 싶었지만, 거리가 있어서 눈짓을 보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
가게를 살펴보니, 지금 손님은 카이트밖에 없는 것 같았다.
카이트는 미리 만들어져 있는 평범한 음식을 주문해서 먹고 있는 중이었다.
‘주위에 사람도 지나다니지 않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카이트에게서 빈틈이 느껴졌다.
아무리 카이트라도 사람 없는 조용한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는 편한 마음으로 지내는 것 같았다.
‘음식 먹을 때는 긴장이 풀어지는 스타일이군.’
지금까지 라시드가 봐 온 실력자들도 대부분 그랬다.
평소 빈틈이 전혀 보이지 않던 사람도 어느 순간 완전히 풀어지는 때가 있다.
그런 때를 노리면 일이 수월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면에서 덤벼들 수는 없지.’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고, 라시드는 주위에 미세한 오러를 뻗었다.
그러자 식당 안에서 카이트가 앉아 있는 위치가 정확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걸로 라시드는 눈으로 보지 않아도 공간 전체를 세밀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
이어서 라시드는 품 안에서 단검을 꺼냈다.
평범한 단검이 아니라, 강력한 몬스터의 마석을 심어 마력에 잘 반응하도록 제작한 것이었다.
거기에 오러를 불어 넣으면…….
‘좋아.’
우웅.
단검이 오러에 휩싸인 채 공중에 떠올랐다.
이어서 라시드는 오러를 칼날 위에서 압축하기 시작했다.
한계까지 날카롭게 만든… 오러 블레이드를 만들기 위해.
‘얼마 전에 암살했던 125억 골드의 9서클 마스터도… 이거에 당했지.’
이것이 라시드의 주특기였다.
아무리 실력 있는 마스터라도, 방심하고 있는 사이 날아온 오러 블레이드가 급소를 찌르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라시드가 만든 오러 블레이드는 초고속으로 날아가며, 자유자재로 궤도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만일 반사적으로 손을 치켜들어 단검을 막으려고 해도, 한계까지 날카롭게 만든 단검이 손바닥을 뚫고 상대방의 급소를 찌를 것이다.
‘내 특기로, 카이트의 숨통을 끊는다.’
산중교단의 암살자들은 몬스터나 드래곤 상대로 싸우지 않는다.
철저하게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것에 특화된 기술만 단련한다.
만약 대형 몬스터와 싸우게 될 경우, 9서클인 라시드보다 에인헤랴르의 6서클 소드 엑스퍼트가 더 잘 싸울 수도 있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거라면 라시드가 에인헤랴르의 소드 마스터들보다 훨씬 우위에 있을 것이다.
적어도 라시드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라!’
쉬익!
공기를 가르면서 단검이 날아갔다.
라시드가 뻗은 오러에 의해 정확히 컨트롤되면서, 가게 안으로 침투했다.
이제 단검은 카이트의 사각으로 파고들어, 그 목을 찌르게 될 것이다.
‘죽어라, 카이트……!’
쐐애액!
라시드의 9서클 마력으로 움직이는 초고속의 단검이 카이트의 목을 향해 쇄도했다.
그리고 교묘하게 파고든 오러 블레이드가 측면에서 목을 관통하여 치명상을…….
“……?!”
오러가 비틀어지는 감촉을 느끼고, 라시드는 몸을 움찔했다.
단검이 카이트를 찌르지 못하고 공중에서 정지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당황하면서 상황을 파악하려고 했을 때.
갑자기 목소리가 들어왔다.
“들어와라.”
“……!”
카이트가 자신을 불렀다는 걸 이해하고, 몸을 움찔했다.
“도망쳐 봤자 소용없다.”
카이트의 목소리는 느긋했다.
중간에 음식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려왔다.
“내가 더 빠르니까.”
“……!”
라시드는 몸을 떨었다.
여기서는 재빨리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암살자로서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
입술을 깨문 채 가게 입구로 걸어갔다.
그리고 숨을 삼켰다.
카이트가 오른손으로는 음식을 먹으면서… 왼손으로 라시드의 단검을 붙잡고 있었다.
‘검지와 중지만으로, 공중에서 낚아챈 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짓을 하면 손가락이 전부 날아갈 것이다.
그냥 단검을 던진 거라면 몰라도, 오러 블레이드가 전개된 단검을 어떻게 맨손으로 저렇게 붙잡는단 말인가.
“솜씨가 좋다.”
“……!”
카이트가 음식을 계속 먹으면서 말했다.
“파괴력 자체는 별로 대단할 게 없지만, 신속하고 은밀하게 사람 하나 암살하기에는 최고의 기술이군.”
“예전에 싸웠던 차르노보그도 비슷한 기술로 나를 견제하긴 했지만, 네 이기이검이 더 훌륭하다.”
이기어검?
처음 듣는 단어였다.
“나도 이렇게 작은 단검을 갖고 이기어검을 펼치는 건 쉽지 않아. 장검 쪽이 더 쉽단 말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카이트가 왼손의 단검을 까닥였다.
“가만있자, 이렇게 하는 건가?”
“……!”
쐐애액!
카이트가 집어던진 단검이 라시드의 얼굴로 날아왔다.
라시드는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속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다.
“……!”
단검 끝이 미간으로 파고들어 오는 것을 느끼고, 라시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단검이 얼굴로 파고드는 일은 없었다.
“……?”
몸을 떨면서 눈을 뜬 순간.
얼굴을 가리고 있던 특수 가면이 툭 떨어져 내렸다.
단검이 라시드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가면만 베어 버린 것이다.
“아…….”
라시드는 소름이 끼쳤다.
대체 어떻게 이런 기교가 가능하단 말인가.
“그 얼굴이 훨씬 낫군.”
카이트가 라시드의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단검은 카이트의 왼손으로 돌아가 있는 상태였다.
“여기 앉아라.”
그 자리에 굳어 있는 라시드에게, 카이트가 맞은편 자리를 가리켰다.
“걱정 마라. 너희 같은 놈들이 조직을 배신하지 못한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
“마지막으로 술 한잔만 하고… 마무리하자.”
그 순간, 라시드는 깨달았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암살에 자원한 순간부터… 자신의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