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16
▣ 116화. 카이트를 암살하라 (5)
“…….”
암살자가 말없이 맞은편 자리에 앉는 것을 확인한 뒤.
나는 부엌에 들어가 있던 가게 주인한테 가서 메뉴판을 가리키며 주문을 했다.
원래 이 가게 주인은 귀가 안 들린다. 가게 안에서 소란이 벌어져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던 건 이것 때문이었다.
“한잔 받아라.”
“…….”
주인이 가져온 술병으로 한잔 따라 줬다.
하지만 암살자는 술잔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그냥 죽여라.”
그저 체념한 듯이 말할 뿐이었다.
“너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런 건 알고 있어.”
나는 혼자 술잔을 기울였다.
“너희 같은 암살자 집단은 쉽게 입을 열지 않지.”
“…….”
무림에도 돈을 받고 사람을 죽여 주는 살수 집단이 있었다.
그냥 어설픈 흑도들이 모여서 살인 청부를 받는 게 아니라, 뚜렷한 규율을 갖추고 체계적으로 암살 활동을 하는 단체였다.
말단까지 교육이 잘 되어 있어, 고문을 받더라도 조직의 정보를 토해 내는 일이 없었다.
애초에 생포되기 전에 자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말이다.
“게다가 너는 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이니 말이야.”
“그렇게 보이나?”
“너 정도로 높은 경지에 오른 놈이 말단일 리가 없지.”
“높은 경지라.”
암살자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한테 그런 말을 들으니 비웃음을 당하는 것 같군.”
“그런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웃기지 마라. 평생을 들여 연마한 기술이 어이없게 막혔는데.”
“평생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쓰는군.”
“뭐라고?”
“아직 마흔을 조금 넘은 정도로 보이는데, 평생이라는 말은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쓰는 게 낫지 않나?”
“…….”
내 말을 듣고, 암살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물을 조금 넘은 애송이한테 이런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군.”
“그런가?”
미안하지만 실제로는 너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왔다.
“아니, 그런 애송이한테 완패했으면서 이런 말을 해 봤자 내가 추할 뿐이군.”
암살자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죽여라. 나하고 대화를 나눠 봤자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서두르지 마라. 이름이… 라틸드라고 했었나?”
“그건 가짜 이름이다.”
“본명은 뭐지?”
“그건… 알려 줄 수 없지.”
“그럼 그냥 라틸드라고 부르지.”
나는 술잔을 기울이며 말했다.
“라틸드, 내가 멋대로 떠들 테니 그냥 듣기만 해라.”
“…….”
“일단 너는 산중교단에서 나온 걸로 보인다.”
내 말을 듣고도 표정 변화는 없었다.
이런 얘기에 동요할 정도로 어설픈 정신 교육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까 그 여자… 창고지기도 산중교단 관계자지?”
“…….”
“창고지기 주제에 8서클쯤 되는 마력을 갖고 있어서 말이다. 몇 달 전부터 계속 의심하고 있었지.”
이 말에도 표정 변화는 없었다.
다만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리긴 했다.
내가 아니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반응이었다.
“아마 너희는 세계 곳곳에 사람을 심어 두고 있는 거겠지. 그리고 지역마다 있는 암살자들로는 해치울 수 없는 표적이 있으면, 너 같은 실력자가 출장 나오는 거고.”
“…….”
“어쨌든 이번에는 나를 죽여 달라는 의뢰를 받았나 본데… 과연 누가 나를 죽여 달라 의뢰한 걸까.”
그렇게 묻자 암살자가 눈썹을 찌푸렸다.
“떠보려 하지 마라. 그런 건 나도 모른다.”
“그럼 누가 알지?”
“교단에서도 모른다. 그러니 굳이 캐내려 하지 마라.”
“그렇단 말이지.”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정말로 교단에서는 의뢰자를 모르는 건가.
“그럼 이것만 좀 물어보지.”
“멋대로 떠들 테니 그냥 듣기만 하라면서?”
“가만 좀 있어 봐. 너도 의뢰자가 누구인지 궁금하잖아.”
“뭐라고?”
“내가 묻고 싶은 건, 나를 죽이는 데 얼마를 받았냐는 거야.”
“…….”
“너희 산중교단에는 세상 주요 인물들에게 다 ‘가격’을 매겨 놓고 있다던데, 내 가격은 얼마지?”
나는 암살자의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건 딱히 감춰야 하는 비밀이 아니지 않나? 말해 줘도 될 텐데.”
“어쩔 수 없군…….”
암살자가 한숨을 내쉬었다.
“145억 골드다.”
“145억…….”
솔직히 얼마나 큰 금액인지 잘 모르겠지만… 들어 본 적이 없는 액수이니, 어마어마하게 비싼 것 같긴 하다.
“혹시 145억 골드를 금화로 전부 받은 건가?”
“145억 골드를 어떻게 금화로 받지? 가장 비싼 액면가의 금화로 받는다고 해도 무게가…….”
“그럼 어음으로 받았나?”
무림의 전표(錢票) 같은 어음으로 거래한 거라면, 그냥 그렇다고 인정하고 넘어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답하지 않고 눈길을 피했다.
“금화도 어음도 아니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받았나 보군.”
“……!”
암살자가 흠칫하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지금까지보다 훨씬 뚜렷한 반응이었다.
“현재 나 정도 되는 인물을 죽이려면, 국가 간에 벌어지는 전쟁 비용 수준의 금액을 받아야 할 거다.”
무림 시절, 검마 이서원에게 책정되어 있던 금액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그런 돈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겠지. 남쪽의 황족들이나 귀족들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그놈들이 지금 나를 죽이려 할 이유가 없어.”
“…….”
“북부에서는 나를 죽이고 싶은 놈들이 많겠지만, 그놈들에게 그 정도 금액을 지불할 여유는 없지. 그럼 대체 누가 너희한테 의뢰를 했을까.”
나는 아까 잡았던 단검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북쪽으로 나 있는 창문을 가리켰다.
“저 멀리 북쪽 영구동토에 사는… 온갖 금은보화를 보유한 용귀족들이라면 가능하겠지.”
“……!”
“그런 것이다, 라틸드.”
그렇게 말하고.
나는 창문 밖으로 단검을 던졌다.
“커헉!”
그 직후.
남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뭐, 뭐지?!”
“용공작 하겐이 보낸 첩자겠지.”
그렇게 대꾸하면서 나는 창문 바깥을 확인했다.
근처 건물의 지붕 위에서 시체 하나가 굴러떨어지고 있었다.
“라틸드, 진실을 말해 주지.”
“지, 진실이라니…….”
“이번 암살 의뢰는 너희 산중교단을 이용해 내 역량을 시험하려는 용공작 하겐의 음모다.”
“……!”
암살자가 눈을 크게 떴다.
“하겐은 너희 산중교단에게 매우 가치 있는 물건을 전달했겠지. 에인션트 드래곤인 악룡 파프니르의 심복이니까 그런 보물 하나 정도는 갖고 있었을 거다.”
“그, 그러면…….”
“하지만 하겐은 단순히 나를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야.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다방면에서 확인하려 하고 있지.”
“왜 그런 짓을…….”
“그 녀석 나름대로 계획이 있으니까. 어쨌든, 놈은 너희 산중교단을 제물 삼아 나를 시험하려고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결국 너희 교단은 이용당하고 있는 거다. 145억 가치의 물건 하나만 건네주면, 계속해서 암살자를 보내면서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실력을 검증해 줄 테니까.”
“……!”
“하겐은 너희가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 장로들이 하나씩 죽어 나가다가 최고장로까지 나서는 걸 기대하고 있겠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창문 밖을 가리켰다.
“하겐이 저런 놈을 보내서 내가 암살자를 상대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다는 게 그 증거다. 너희들이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면 저런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
내가 산중교단에게 암살당할 인간이라면, 나는 하겐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
저렇게 계속 나를 관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내가 산중교단에 암살당할 리 없다고 하겐이 판단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내가 너한테 이 얘기를 하는 건,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
침묵하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천천히 말했다.
“이 사실을 산중교단에 가르쳐 주고 싶어서다.”
“……!”
“너희들이 계속해서 나를 죽이러 오는 건 별 상관없다. 하지만 너희들이 적어도 누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서 덤볐으면 좋겠군.”
산중교단이 계속 암살자를 보내온다면, 그냥 격퇴할 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하겐 뜻대로 진행되는 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놈이 구상한 구도를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
내 맞은편에 앉은 암살자는 입술을 깨문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잠시 뒤 눈을 질끈 감고 목소리를 높였다.
“창구원!”
근처에서 숨을 죽인 채 이쪽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창고지기’를 부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얘기는 전부 들었겠지.”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든 것을 전해라. 최고장로님이 아실 수 있도록.”
그렇게 말한 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아니, 카이트 공자.”
그리고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내 역할은 이제 끝났다.”
“임무에 실패한 암살자에게는 오로지 죽음이 있을 뿐.”
그렇게 말하며 그는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죽여 다오.”
“…….”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가게 주인에게 안쪽에 들어가 있으라고 손짓을 한 뒤, 무릎 꿇은 남자를 쳐다봤다.
“이름이 뭐지?”
“라시드.”
그는 침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산중교단의… 라시드 장로다.”
“라시드 장로.”
아까와는 달리, 그는 순순히 자기 이름을 밝혔다.
그가 지금 교단의 규율이 아니라 자신의 명예를 위해 죽음을 택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단검을 다루던 네 절묘한 기교(技巧), 기억하고 있겠다.”
“영광이다.”
마지막으로 미소 짓는 라시드 장로를 향해.
나는 허리에서 뽑은 검을 휘둘렀다.
* * *
“대공 전하.”
외부 업무를 마친 시구르드가 대공궁의 집무실로 들어오자, 볼테온이 다급히 달려왔다.
“카이트 도련님이 대기하고 계십니다.”
“알고 있다. 용공작들을 쓰러뜨리고 필연검 노퉁을 획득한 것에 관해 얘기할 예정이었지.”
“그것이…….”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시구르드의 질문에 볼테온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산중교단이 카이트 도련님에게 암살자를 보냈다고 합니다.”
“…….”
“일단 첫 번째 암살자는 격퇴했습니다만… 앞으로도 계속 암살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같습니다. 카이트 도련님은 오늘 그 부분에 관해서도 상담하고 싶으신 모양입니다.”
“그 녀석은 매번 문제에 휘말리는군.”
“누구를 닮은 걸까요.”
“무슨 소리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쓴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돌리는 노기사(老騎士)를 한번 쳐다본 뒤, 시구르드는 집무실 의자에 앉았다.
“혹시 산중교단에서 카이트의 ‘가격’을 얼마로 책정하고 있는지 아나?”
“사실 얼마 전에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얼마지?”
“145억입니다.”
“…….”
145억.
그건 시구르드의 150억에 거의 근접한 수치였다.
“미래 가치를 감안하여 산정한 금액인 것 같습니다.”
“그놈도 거물이 되었군.”
시구르드는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냥 볼테온에게 눈짓을 하며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어서 카이트를 불러와라.”
145억 골드면 국가 단위의 전쟁 비용 수준이다.
지금 상황은 카이트를 중심으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그놈한테서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군.”
앞으로 전쟁을 주도해 나갈 큰아들을 호출하면서.
시구르드의 눈동자가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