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17
▣ 117화. 암살자의 혈류 (1)
“오늘은 용공작들을 쓰러뜨리고 필연검 노퉁을 획득한 것을 치하하는 자리가 될 거라 생각했다.”
집무실에서 나를 맞이한 시구르드가 평소처럼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가져왔군. 이래서는 축하연을 열기도 어려울 것 같다.”
“축하연을 준비하고 계셨습니까?”
“내가 아니라 볼테온이 준비하고 있었지.”
손가락을 깍지 끼면서 시구르드가 나를 쳐다봤다.
“어쨌든 카이트, 산중교단은 골치 아픈 상대다.”
“그런 것 같더군요.”
“그동안 많은 사람이 산중교단을 괴멸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지.”
“이유가 무엇일까요.”
“일단 놈들은 강하다. 특히 인간을 상대로 한 싸움에 특화되어 있지.”
그러고 보니 에인헤랴르 등에서 검술을 수련하는 건 몬스터나 드래곤과 싸우기 위한 것이었다.
인간 상대로 한 싸움… 특히 전쟁이 아니라 암살이라면 그쪽에 특화된 산중교단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에인헤랴르 가문의 소드 마스터 중에도 산중교단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다.”
“그랬습니까?”
“내 숙부였다.”
이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당시 에인헤랴르 가문에서는 보복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건 좀 의외군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복할 것 같았는데요.”
“보복하고 싶어도 어디에 보복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놈들의 본거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으니까.”
시구르드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놈들의 말단 조직원을 붙잡은 적은 있었지만, 교단의 본거지는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소문에 의하면 몇 년 단위로 본거지를 이동한다고 하더군.”
“그래서 토벌을 포기한 거군요.”
“네가 말한 한 창고지기… 교단의 창구원이었다는 여자를 확보했다고 해도 별다른 정보는 얻지 못했을 거다.”
라시드가 ‘창구원’이라 불렀던 여자 창고지기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래도 굳이 추적하지는 않았다. 그녀에게는 교단의 본거지에 내 얘기를 전하는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본거지로 쳐들어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냥 놈들이 공격해 오는 걸 기다릴 생각입니다.”
“또 그런 전법인가.”
“기다리고 있으면 다른 장로들이 저를 죽이러 찾아올 겁니다. 그놈들을 족족 제압해 버리면 되는 거죠.”
“교단의 장로들을 하나씩 해치워 나간다는 계획인가.”
“그런 놈들을 해치우다 보면 언젠가 최고장로가 나타날 테고… 그놈까지 해치우면 산중교단도 다 끝나는 거 아니겠습니까?”
내 말을 듣고 시구르드가 다시 눈썹을 찌푸렸다.
“너무 쉽게 얘기하는군. 산중교단의 최고장로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최고장로를 알고 계십니까?”
“내가 직접 싸워 본 적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역대 최고장로들의 전설을 생각해 보면 현재의 최고장로도 보통 놈은 아니겠지. 어쩌면 엘드리트보다 골치 아픈 상대일지도 모른다.”
시구르드는 생각보다 최고장로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정말로 최고장로와 싸워 볼 생각인가?”
“사실 싸우지 않고 끝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뭐라고?”
“일단 교섭부터 해 볼 생각입니다.”
용공작들이 들이닥쳤을 때하고는 입장이 반대가 되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교섭을 시도해 볼 것이다.
“아버지, 배룡주의자가 저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들었다. 암살자가 너를 습격하는 걸 관찰하고 있었다던데.”
“산중교단에 제 암살을 의뢰한 건 하겐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겐은 너를 죽이고 싶은 건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것보다는 제 자질을 시험해 보고 싶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네 자질을?”
“얼핏 들은 바에 의하면, 파프니르가 하겐에게 명령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엘드리트에게서 들었던 얘기를 떠올리며 말했다.
“제게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자질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말입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 파프니르는 여전히 초대 시구르드에게 집착하고 있는 모양이군.”
시구르드도 짚이는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파프니르는 우리들의 선조… 초대 시구르드에게 큰 부상을 입었다. 그 원수를 갚고 싶어 하지.”
“그게 그랜드 소드 마스터와 관계가 있습니까?”
“초대 시구르드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였다고 한다.”
시구르드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파프니르는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초대 시구르드가 에인헤랴르 가문에서 새롭게 환생해… 그랜드 소드 마스터로서 다시 자기 앞에 나타나는 것을 말이다.”
“제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면… 파프니르는 저를 초대 시구르드의 환생으로 생각할 거란 말입니까?”
“그런 것이지.”
“어이없을 정도로 허황된 얘기군요.”
내가 이렇게 단언할 수 있는 건, 정말로 허황되기 그지없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나는 검마 이서원이지 초대 시구르드가 아니다.
“제가 초대 시구르드의 환생일 리가 없습니다.”
“글쎄, 네가 모르고 있을 뿐일 수도 있다.”
“아버지…….”
“어쨌든.”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한 뒤, 시구르드가 계속 말했다.
“그렇다면 하겐은 엘드리트 등의 용공작을 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산중교단을 움직여 너와 충돌하게 하려는 거군.”
“네, 그걸 지켜보면서 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려는 거죠.”
“난감한 얘기군.”
시구드르가 눈썹을 찌푸렸다.
“네가 적들을 쓰러뜨리면 쓰러뜨릴수록, 파프니르가 너를 초대 시구르드의 환생이라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건가.”
“네, 하겐이 ‘쭉 지켜봤는데, 역시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자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를 올리겠죠.”
그러면 파프니르는 어떻게 반응할까.
바로 영구동토에서 날아와 ‘초대 시구르드의 환생’인 나를 죽여 버리려 할까.
“…….”
시구르드는 평소 이상으로 심각한 표정이었다.
최강의 소드 마스터인 시구르드도, 에인션트 드래곤인 파프니르가 나타난다고 생각하니 경계할 수밖에 없는 걸까.
“그렇다고 해서… 덤벼드는 적들에게 네가 일부러 패배해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구르드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카이트, 파프니르 문제는 나도 고민해 보겠다. 일단 너는 눈앞에 닥친 위협들에 대처하는 것만 생각해라.”
“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산중교단 상대로는 교섭도 시도해 볼 생각입니다. 하겐의 목적이 암살이 아니라 시험이었다는 걸 깨달으면 산중교단도 태도를 바꿀지 모릅니다.”
“그렇지. 산중교단 입장에서도 하겐에게 이용당하는 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시구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카이트, 주의해야 할 놈이 하나 있다.”
“주의해야 할 놈이라니요?”
“9서클에 도달한 암살자를 하나 알고 있다. 산중교단의 2인자라 할 수 있지.”
그렇게 말하면서, 시구르드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내 숙부를 죽인 것도 그놈이다.”
* * *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산중교단 총본산은 고틀란드 방면의 창구원에게서 전달된 두 가지 소식 때문에 시끌벅적했다.
“라시드가 카이트 에인헤랴르에게 패배하다니!”
“잘난 척만 하더니 이게 무슨 추태인가!”
“장로 자격이 없는 놈이었어!”
장로들은 라시드의 패배에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소식에 관해서는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카이트 암살 의뢰가 용공작의 계략이었다는 게 사실일까요?”
“우리를 이용해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자질을 시험해 보려는 속셈이었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하지만 용공작 하겐이라면 교조의 성물을 제공해 준 것도 납득이 됩니다.”
“안 그래도 지난번 카이트 습격 때 하겐의 태도가 이상했다는 정보가…….”
갑론을박을 벌이던 장로들이, 상석에 앉아 있는 최고장로 샤이흐에게 시선을 향했다.
“최고장로님,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게 정말 용공작의 음모였다면, 우리가 성실히 의뢰를 수행해 줄 필요도 없는 거 아닙니까?”
“…….”
이번에는 의뢰비를 전액 선불로 받았다.
그러면 반드시 표적을 암살해 줘야 한다.
만약 표적을 암살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의뢰비를 전부 반환해야 한다.
문제는 이번에 받은 의뢰비가 산중교단 창시자의 신화병장이었다는 점이다.
가까스로 되찾은 창시자의 유물을 반납할 수는 없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의뢰를 완수해야 한다는 게 장로들 사이의 여론이었지만…….
“암살 자체가 아니라 다른 목적이 있었다면, 우리 교단을 우롱한 겁니다.”
“그런 놈한테 우리가 약속을 지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냥 입을 닦아 버립시다. 어차피 그 하겐이라는 놈이 여기까지 찾아와서 항의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
여러 장로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샤이흐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윽고 샤이흐가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다들 너무하시는군.”
갑자기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고, 장로들이 숨을 삼켰다.
“이, 이스마일 장로!”
“귀환하신 겁니까?!”
새카만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기이한 외모의 남자였다.
눈동자색이 붉고 얼굴색이 창백해서 섬뜩한 인상을 줬고, 팔다리가 보통 사람보다 훨씬 길었다.
남들 눈에 확 띄는… 암살자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의뢰비까지 다 받았는데 의뢰를 포기하겠다? 언제부터 산중교단이 그렇게 불성실한 곳이 되었소? 교단의 긍지를 잃어버린 것이오?”
“하, 하지만 이스마일 장로, 애초에 의뢰 자체에 불순한 의도가…….”
“암살이란 원래 불순한 것이오.”
이스마일의 냉철한 한마디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의뢰인에게 꿍꿍이속이 있으면 뭐 어떻소. 중요한 건 의뢰인이 우리에게 암살 의뢰를 했다는 점이오. 그러면 우리는 고민할 것 없이 암살을 성공시키면 되는 것이오.”
“으음…….”
“최고장로.”
이스마일의 붉은 눈동자가 샤이흐에게 향했다.
“북부에 가본지도 오래 되었으니, 내가 가서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죽이고 오겠소. 그럼 되는 거 아니오?”
“이스마일.”
샤이흐가 이스마일을 빤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쉽게 얘기하지 마라. 카이트는 라시드조차 패배시켰을 정도의 실력자다.”
“라시드 같은 애송이를 패배시킨 게 무슨 의미가 있겠소. 마력만 9서클에 도달했을 뿐, 암살자로서는 여기 있는 8서클 장로들보다 못한 인물이오.”
“라시드뿐만이 아니다. 용공작들도…….”
“최고장로.”
이스마일이 샤이흐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나에게 맡겨 주시오. 어차피 나 말고는 맡길 사람도 없지 않소?”
“…….”
여기 있는 사람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은 건 최고장로인 샤이흐다.
하지만 서열 2위인 이스마일이 샤이흐에게 절대복종을 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원래 이스마일은 선대 최고장로의 아들이라, 교단 내에서 그를 지지하는 세력도 많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북부 구경도 하고 올 겸, 내가 다녀오리다.”
침묵하는 샤이흐 앞에서 미소를 지으면서, 이스마일이 말했다.
“예전에 내가 죽였던 에인헤랴르 가문의 소드 마스터처럼… 카이트 에인헤랴르도 갈기갈기 찢어서 짐승 밥으로 던져 놓고 오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