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20
▣ 120화. 암살자의 혈류 (4)
이바르는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이 미끼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비록 직접 검을 휘두르며 싸운 건 아니지만… 카이트 형님의 도움이 되었어!’
현재 이바르는 두 다리로 멀쩡히 서 있었다.
드래곤 하트의 마력으로 만든 영약 ‘에이트르’를 복용하여 1갑자 상당의 내공을 얻고, 카이트가 가르쳐 준 ‘금강역근공’으로 하체의 근육을 보조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내공이 흐르면서 힘이 들어가지 않던 근육에 힘이 들어가게 되었다. 딱딱하게 굳어서 관절의 움직임을 방해하던 근육도 부드럽게 풀리게 되었다.
이바르가 원했던 것처럼 검을 휘두르며 싸우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금강역근공을 더 수련해야 한다고 하지만, 일단 평범한 사람들처럼 걷고 뛸 수는 있게 되었다.
‘역시 내공, 그리고 무공은 대단하다!’
사실 이런 상태에서도 이바르는 평범한 병사들보다 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이트가 이바르를 이번 싸움에 참가시킨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에인헤랴르의 차남인 이바르가 나서서 미끼 역할을 하면 이스마일을 함정에 빠뜨리기가 훨씬 쉬워질 거라는 점.
두 번째, 카이트가 무공을 쓰면서 싸우는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경험하게 만들면… 이바르의 성취를 촉진시킬 수 있을 거라는 점.
첫 번째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고, 두 번째는 아직 모르겠지만… 카이트가 하는 지시니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래, 일단 이 상황을 똑똑히 봐야 해.’
이바르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했다.
카이트의 검에서 발생한 냉기가, 이스마일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바닥에 흥건했던 물도 솟구쳐 올라와 이스마일의 전신을 뒤덮었기 때문에, 이스마일은 순식간에 얼음으로 뒤덮여 버렸다.
“아, 카이트 형님!”
샹들리에에서 카이트가 내려온 걸 보고, 이바르는 다급히 다가갔다.
“훌륭하십니다! 이스마일을 이렇게 쉽게 제압하시다니……!”
“아니, 그렇지 않아.”
“네?”
카이트가 냉정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발뭉의 에테르를 더 많이 끌어 올릴 걸 그랬어. 용귀족이 아닌 인간은 호신강기 같은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는데…….”
“……?”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어 이바르가 멍하니 카이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을 때.
갑자기 파직 소리가 들려왔다.
“……!”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이스마일을 뒤덮었던 얼음이 깨져 나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노기에 얼굴을 붉게 물들인 이스마일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기묘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 전신을 붉은색 기운이 뒤덮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빨간 액체가 이스마일의 피부 위를 순환하는 것 같았다.
‘저건… 피?’
비현실적인 광경에 이바르가 눈을 크게 뜨고 있었을 때.
카이트의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런 것이군.”
어째서인지, 카이트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이스마일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쪽 세계에도 혈마(血魔)가 있었구나.”
* * *
“크으윽!”
신음하면서 온몸의 얼음을 떨쳐 내는 장발의 남자.
그 피부 위에서 순환하고 있는 붉은 액체는… 인간의 혈액이었다.
‘마력이 담긴 혈액이다.’
용귀족을 제외하면 이쪽 세계의 인간은 오러를 피부 표면에 전개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호신강기 같은 방어 기술이 없었다.
아그나르처럼 갑옷 위에 오러를 전개하는 정도다.
하지만 저 남자는… 마력이 실린 혈액으로 몸을 감싸서 자기 몸을 방어하고 있었다.
‘라시드가 오러로 단검을 조종하던 것과 유사한 부분이 있긴 하군.’
혈액을 조종하여 몸을 뒤덮는 기술은 라시드의 단검 조종술과 비슷한 측면이 있었다.
어쩌면 산중교단은 이렇게 오러를 세밀하게 조종하는 기술에 특화된 집단일지도 모른다.
“블러드 스케일을 사용하게 만들다니…….”
이스마일은 무서운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건 웬만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쓰지 않는 기술 같았다.
“가만두지 않겠다……!”
그 순간.
이스마일의 전신에서 강력한 기운이 방출되었다.
오러를 방출하여 원거리 공격을 하는 오러 블래스트였다.
‘정말로 오러 블래스트가 특기인가 보군.’
나는 경공을 사용해 오러 블래스트를 피했다.
아직 몸놀림이 미숙한 이바르의 목덜미를 붙잡은 채.
콰쾅!
오러 블래스트에 휘말려 현관 주변이 다 박살 났다.
안 그래도 파르피온이 침입했을 때 여기저기 부서졌는데, 계속 이렇게 싸우다간 저택 전체가 무너질 것 같았다.
“이바르, 바깥으로 나간다.”
“앗, 네!”
나는 이바르를 데리고 창문을 이용해 실외로 이동했다.
그 직후 이스마일의 오러 블래스트가 벽을 파괴했다.
“진짜 무너지게 생겼군.”
다른 곳에 피신해 있는 니얼 등이 이 광경을 보면 뭐라고 할까.
그런 걱정을 하고 있자, 벽에 뚫린 구멍으로 이스마일이 걸어 나왔다.
“시답잖은 함정으로 나에게 모욕을 주다니…….”
“모욕을 느끼긴 한 모양이군. 함정이 효과가 있었어.”
“닥쳐라!”
헝클어진 머리를 휘날리며 이스마일이 나에게 삿대질을 했다.
“네놈은 산 채로 갈기갈기 찢어 죽여 주마, 반드시!”
“그러고 보니 암살 대상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버릇이 있다고 했지.”
나는 이스마일의 피부 위를 순환하고 있는 혈액을 관찰하며 말했다.
“혹시 그건 피를 얻기 위한 거였나?”
“뭣…….”
내 말을 듣고 이스마일이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역시 그랬군.”
아무래도 이 녀석… 혈천마가의 수장이었던 혈마와 비슷한 듯했다.
그 녀석은 피를 사용하는 마공을 썼는데, 피가 많이 흐르는 전장일수록 더 강해졌다.
다만 혈마는 주위에서 흐르는 신선한 피를 썼고, 이 녀석은 피를 저장해서 쓴다는 차이점이 있는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피를 모은 뒤, 특별한 방법으로 저장하여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는 거겠지. 혹시 강한 마력을 지닌 사람일수록 더 강력한가?”
“네 녀석, 어떻게…….”
이스마일이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눈치챈 거냐?”
“예전에 비슷한 걸 접해 본 적이 있어서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이 기술을 선대 최고장로가 계승한 건 나 하나뿐이다. 다른 사람이 이런 계통의 기술을 쓸 수 있을 리가…….”
다급히 떠들어 대던 이스마일이 갑자기 흠칫했다.
“네 녀석… 설마 교단에서 유실된 비전서를 입수한 거냐?”
“비전서?”
“그, 그래. 그러고 보니 하겐이 교조(敎祖)의 단검을 갖고 있었지. 그리고 하겐은 에인헤랴르의 기사였던 인물…….”
“…….”
아무래도 이스마일은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에인헤랴르가 교조의 유물을 확보하고 있었던 거라면…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갑자기 강해진 것도 설명이…….”
“이봐.”
혼자서 중얼중얼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끼어들었다.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나도 맞아떨어지는 게 없으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마.”
“웃기지 마라. 그러면 내 기술을 대체 어디서 봤단 말이냐!”
“그러니까…….”
잠시 말문이 막혔다.
무림에서 혈마가 쓰는 걸 봤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네가 모를 뿐이지, 산중교단 말고도 그런 기술을 쓸 줄 아는 사람은 있다.”
“웃기지 마라. 그럴 리가 없다.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렇지 않아. 별로 어려운 게 아니니까.”
인간성을 버려야 하는 마공이라서 아무나 못 쓰는 거지… 작정하고 수련하면 나도 금방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나를 모욕하는군, 카이트 에인헤랴르.”
까드득.
이스마일이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선대 최고장로… 아버지가 나한테 전수해 준 비기를, 그렇게 폄하하는 건가.”
“…….”
본의 아니게 이스마일에게 지나친 모욕감을 준 것 같다.
그렇다고 구차하게 해명하는 것도 귀찮고…….
“너는 정말로… 잔인하게 죽여 주겠다.”
이스마일에게서 농밀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이바르.”
“네, 형님.”
“잠시 물러서 있어라.”
“알겠습니다.”
내 말을 듣고, 이바르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방해가 되겠군요.”
“아니, 방해가 된다는 얘기가 아니다.”
“네?”
“안전한 곳에서 내가 싸우는 모습을 잘 지켜보란 말이다.”
“……!”
숨을 삼키는 이바르한테, 한 번 더 말했다.
“내가 싸우는 모습을 보는 게, 네 자산이 될 것이다.”
“아, 알겠습니다!”
이바르가 다급히 움직였다.
이제 근처 안전한 곳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흥…….”
이바르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표정으로, 이스마일이 품 안에서 단검을 꺼냈다.
칼날에 붉은 보석이 박혀 있는 단검이었다.
‘홍보석(紅寶石)?’
바로 그때.
붉은 보석이 묘하게 진동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뒤늦게 이해했다.
‘저건… 혈액이다!’
이스마일이 단검을 집어던졌다.
그러자 붉은 보석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단검을 뒤덮었다.
‘피를 사용해 오러 블레이드를 강화하는 기술인가?’
라시드가 했던 것처럼, 이스마일의 단검이 공중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라시드의 단검보다 훨씬 위력이 강해 보였다는 점이다.
“어려운 게 아니라고 했나, 카이트!”
이스마일이 두 자루의 단검을 추가로 던졌다.
피에 젖은 세 자루의 단검이 동시에 공중을 춤추는 모습은 장관이라 할 수 있다.
“네가 이런 기술을 펼칠 수 있느냐!”
“비슷한 건 할 수 있지.”
“뭐라고?!”
그 순간.
세 자루의 장검이 동시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
견뢰검 칼라드볼그.
상흔검 발뭉.
필연검 노퉁.
세 자루의 장검이, 이기어검술에 의해 공중을 날았다.
“피하고는 상관없지만 말이다.”
팍! 쾅! 콰직!
세 자루의 단검이 모조리 박살 났다.
칼라드볼그, 발뭉, 노퉁이 각자 하나씩 추격하여 파괴했기 때문이다.
“…….”
이스마일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세 자루가 전부인가?”
“……!”
그 순간.
이스마일에게서 무려 열 자루의 단검이 날아왔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신화병장은 이기어검에도 적합하단 말이지.’
커다란 장검인데도 불구하고.
이스마일의 단검들보다 더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공중을 날았다.
각각 다른 궤도를 그리면서, 피로 젖은 단검들을 하나하나 격추해 나갔다.
“윽……!”
이스마일이 절규 같은 신음 소리를 내면서 계속 단검을 던졌다.
무수히 많은 단검이 피를 뚝뚝 흘리면서 어지럽게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대체 품 안에 얼마나 많은 단검을 숨겨 놓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을 해치고 피를 모았던 걸까.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군.’
그러던 도중.
갑자기 단검들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그냥 몇 방울 떨어지는 게 아니라, 완전히 피의 장막을 만든 것이다.
그 덕택에 정말로 완전히 앞이 안 보이게 되었다.
“……!”
그리고 그 너머에서… 이스마일의 핏빛 오러 블래스트가 뿜어져 나왔다.
* * *
혈액과 융합한 오러 블래스트.
이건 평범한 오러 블래스트와는 다르다.
이스마일에게는 비장의 수라 할 수 있었다.
‘이걸로 끝이다, 카이트!’
산중교단의 비기, 서클 브레이크.
적의 서클을 파괴하여 무력화시키는 힘이, 이스마일의 오러 블래스트에 담겨 있었다.
원래 서클 브레이크는 주먹 등으로 직접 적을 타격해야만 가능하지만… 혈액과 융합시키면 오러 블래스트로도 적의 서클을 파괴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건 현재의 최고장로인 샤이흐도 하지 못하는, 이스마일만이 계승한 기술이었다.
‘이걸로 너는 무력화된다, 카이트!’
카이트 앞에서 흥분한 태도를 보였지만, 사실 이스마일은 마음속으로 치밀한 계산을 하고 있었다.
단검을 날리면서 카이트가 그쪽에 집중하게 만든 뒤, 피의 장막을 쳐서 시야를 가로막은 것도 전부 다 이걸 위한 것이었다.
‘네가 엄청난 기량을 지녔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서클이 파괴되어 마력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오러를 컨트롤하면서, 이스마일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건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다!’
오러로 유도하고 있기 때문에, 피한다고 해도 끝까지 쫓아간다.
게다가 이건 혈액을 사용한 오러 블래스트이기 때문에, 막아 낸다고 해도 피가 흩어졌다 다시 모이면서 재공격을 한다.
카이트는 이 공격에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무력해진 너를 갈기갈기 찢어 주마, 카이트 에인헤랴르!’
마음속으로 소리치면서, 이스마일은 핏빛 오러 블래스트를 카이트에게 직격시키려 했다.
그런데…….
“……!”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던 장검 중 하나가, 어느새 카이트의 손으로 돌아가 있었다.
저 붉은색 칼자루의 검은 분명…….
‘신화병장… 필연검 노퉁?’
붉은색 칼자루의 검.
카이트가 그것을 치켜든 순간.
폭발적인 불꽃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