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29
▣ 129화. 유린하라 (1)
바나디스 요새는 완전히 함락되었다.
백룡기사단과 감찰기사대가 요새를 포위한 뒤, 산중교단의 암살자들이 잠입하여 유들라스를 비롯한 용귀족들을 모조리 죽여 버렸다.
나머지 잔챙이 몬스터들은 에인헤랴르의 기사들만으로도 충분히 섬멸할 수 있었다.
“카이트 님과 에리크 경 없이도 승리할 수 있었군.”
“지휘관인 용귀족들은 산중교단에서 다 해치워 줬고 말이다.”
어윈과 슈데르츠는 피로 젖은 검을 닦아내며 대화를 나눴다.
두 사람은 각각 감찰기사대 1분대와 2분대를 지휘하며 많은 몬스터들을 해치웠다.
“예전 같았으면 상당히 애를 먹었을 몬스터들도… 어렵지 않게 쓰러뜨릴 수 있었어.”
“그래, 공자님이 가르쳐 주신 무공 덕분이지.”
두 사람은 파르피온과의 싸움에서 서클을 파괴당해 마력을 잃었지만, 드래곤 하트로 만든 영약을 먹고 재기에 성공했다.
내공을 갖게 되니 예전부터 카이트가 가르쳐 주던 검법의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아쉬운 점은, 예전처럼 강력한 오러 블레이드를 펼칠 수 없다는 점이다.”
“카이트 님이 말씀하셨잖아. 3갑자 내공에 도달하면 오러 블레이드보다 강한 ‘검강’을 사용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카이트의 말에 의하면, 6서클하고 3갑자가 서로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6서클이 되면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할 수 있게 되듯이, 3갑자가 되면 검강을 익힐 수 있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공으로 육체의 힘을 끌어올릴 수 있으니, 전체적인 전투력 자체는 향상되었어.”
“그건 그렇지. 원래 그건 9서클 소드 마스터나 되어야 할 수 있는 건데.”
마력과는 달리, 내공은 육체의 힘을 끌어올리는 것에 특화된 힘 같았다.
원래 마력을 몸 구석구석으로 보내서 근력이나 민첩성 등을 끌어올리는 건 9서클의 마스터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공은 몸 전체에 순환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 힘이기 때문에 육체 능력을 자연스럽게 증진시킬 수 있었다.
“육합흑구검법도 이제는 충분히 익힌 것 같고… 다른 무공을 배워 보고 싶은데 말이다.”
“청적백흑(靑赤白黑) 4인조처럼 특색 있는 무공을 배워 보고 싶은데, 카이트 님은 아직 우리는 기초적 무공부터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야.”
“흠, 어쩔 수 없군.”
차르노보그의 제자였던 슈벤, 이그니카, 휴이엔, 루살카는 카이트에게 특색 있는 무공을 배워 실전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윈이나 슈데르츠 등은 내공을 얻기 전부터 배웠던 육합흑구검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카이트 공자님이 다른 무공을 가르쳐 줄 마음이 들도록, 열심히 해 보자고.”
“그래, 알겠어.”
그렇게 말하며 어윈과 슈데르츠는 서로 주먹을 부딪쳤다.
에인헤랴르의 정규 기사였던 어윈과 밑바닥 용병 출신인 슈데르츠는 한때 서로 서먹했지만, 지금은 서로를 신뢰하는 전우(戰友)가 되었다.
이건 그동안 함께 싸워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카이트에게 충성을 바치면서 무공을 배우는 동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분대장님들! 지하실에서 금괴가 발견되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금괴? 어떻게 된 거지?”
“용귀족놈들이 배룡주의자들에게 뿌리던 활동 자금이었나 보지. 가 보자고.”
어윈과 슈데르츠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요새 지하로 향했다.
* * *
“아군 피해도 별로 없었습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라 할 수 있겠죠.”
바나디스 요새의 사령실에서 니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나디스 요새는 놈들의 전선 기지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이 함락된 걸 알면 다들 충격을 받을 겁니다.”
“니얼 경의 말이 맞습니다.”
에리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니드호그 파벌의 드래곤 및 용귀족들이 이 근방에서 물러나고, 그 대신 파프니르 파벌이 들어와서 기반을 다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디스 요새가 이렇게 무너졌으니 계획이 틀어졌겠죠.”
그렇게 말하며 에리크가 벽에 걸려 있던 낡은 지도를 가리켰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설원지대에는 바나디스 말고도 용귀족들의 거점이 여러 군데 있습니다. 그런 곳들을 공격하여 용귀족들을 섬멸해야 합니다.”
“에리크 경, 현재 설원지대에서 드래곤들은 별로 활동하지 않고 있는 겁니까?”
“이번에 쓰러뜨린 루마샤리오스 일당을 제외하면, 이 근방에서 드래곤들은 거의 활동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드래곤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지만, 개체 수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웬만해서는 전선에 나서지 않으며 후방에서 대기했다.
이번에 내가 쓰러뜨린 루마샤리오스 일당도 백룡기사단을 괴멸시킬 수 있는 결정적 순간에만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는 용귀족들이 현장 지휘관 역할을 한다.
“그러니 용귀족들을 철저히 섬멸해야 합니다. 놈들이 설원지대의 몬스터들을 규합하여 강력한 몬스터 군단을 만들기 전에 말입니다.”
드래곤 진영에서 ‘병사’ 역할을 하는 건 몬스터들이다.
이 몬스터들은 대부분 인간보다 지능이 낮아 전략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지만, 용귀족들이 ‘지휘관’ 역할을 맡아 통솔해 주면 무서운 몬스터 군단이 될 수 있었다.
“우리가 조사해 본 결과, 용귀족들이 설원지대 곳곳에서 몬스터 군단을 육성하고 있는 것 같았네.”
산중교단의 부하들을 동원하여 바나디스 요새를 뒤져 본 샤이흐가 입을 열었다.
“특히 북서쪽에 있는 산에서 예티를 육성하고 있는 것 같더군.”
“예티는 어떤 몬스터입니까?”
웬만한 몬스터는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예티는 설원지대에서만 사는 이족보행 몬스터입니다.”
에리크가 입을 열어 설명을 해줬다.
“두꺼운 흰색 털가죽을 지닌 유인원인데, 힘이 세고 생명력도 강합니다. 깊은 산속에 틀어박혀 생활하기 때문에 인간을 습격하는 일은 드물죠.”
“그런 놈들을 용귀족들이 조련하여 병사로 만들려 하는 거군요.”
“네, 위협적인 군단이 되겠지요.”
주위 사람들 표정이 심각해졌다.
“예티 군단의 육성이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최대한 빨리 대처하는 편이 낫겠군요.”
니얼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지도 위에 표시를 하면서 니얼이 작전을 제시했다.
“백룡기사단이 바나디스 요새에 주둔하면서 본부 역할을 하고, 카이트 공자님을 중심으로 한 정예부대가 각지를 돌아다니며 용귀족들의 거점을 타격하는 겁니다. 물론, 첫 번째 표적은 예티 군단을 육성하고 있는 곳이 되겠죠.”
그럴듯한 작전이었다.
용귀족들은 전선 기지였던 바나디스 요새를 탈환하려 할 것이다.
대규모 몬스터 군단이나 드래곤이 나타날 것을 대비해 바나디스 요새에는 방어 병력이 주둔해 있어야 했다.
그렇기에 바나디스 요새에는 백룡기사단을 주둔시키고, 내가 이끄는 정예부대가 적들의 거점을 차례차례 분쇄하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흠, 카이트 공자의 감찰기사대와 우리 교단의 암살자들이라면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면서 용귀족들의 거점을 차례차례 궤멸시킬 수 있겠지.”
샤이흐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작전에 찬성이네.”
“최고장로님도 저렇게 말씀하시고… 에리크 경, 어떻습니까?”
“…….”
에리크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카이트 님, 이건 상당히 위험한 작전입니다. 적은 숫자의 병력으로 설원지대를 주파하며 계속해서 전투를 벌여야 하니까요.”
“…….”
“하지만… 카이트 님이 자신 있으시다면, 믿고 부탁드리는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게 말하며 에리크가 고개를 숙였다.
“카이트 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설원지대에 흩어져 있는 용귀족들의 거점을 모조리 괴멸시켜 주십시오.”
“네, 맡겨 주십시오.”
용귀족의 거점을 습격하여 설원지대의 적 세력을 붕괴시키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드래곤과 용공작들도 나타날 것이다.
나를 노리고 있는 하겐이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높았다.
‘어서 나와라, 하겐.’
지도를 응시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설원지대를 완전히 초토화시키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 좋을 거다.’
* * *
바나디스 요새 북서쪽에 있는, 눈 덮인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그곳에서는 용백작 브룸하트가 다른 용귀족들과 함께 ‘웅덩이’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부화장의 상태는 어떤가.”
“술식이 잘 적용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활성화되면 강력한 예티가 연속해서 태어날 겁니다.”
일반적인 동물과는 달리, 몬스터에게는 암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번식 기능도 없으며, 그 대신 ‘부화장’이라 불리는 유기물 웅덩이에서 새로운 개체가 태어난다.
이 부화장은 예티가 태어나는 부화장으로, 현재 용귀족들은 부화장을 더욱 활성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빨리 강력한 예티를 양산할 수 있으면 좋겠군. 훈련까지 마친다면 우리에게 큰 전력이 될 거다.”
“네, 예티의 상위종은 소드 엑스퍼트들도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하니까 말입니다.”
예티의 털가죽은 매우 뛰어난 방어력을 지니고 있다.
오러 블레이드가 아니면 제대로 상처를 입히기 어려울 정도였다.
브룸하트는 이런 예티들로 군단을 조직해 설원지대를 장악할 생각이었다.
“바나디스 요새가 함락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들의 예티 군단이 완성되면 금방 탈환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뭐가 말인가?”
“루마샤리오스 님이 바나디스 요새를 지켜 주기로 약속되어 있던 것 아닙니까? 왜 그렇게 금방 함락된 걸까요?”
“루마샤리오스 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거겠지.”
“아, 그럴까요?”
“그래, 유들라스 용후작이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짓을 한 모양이야.”
드래곤들은 용귀족을 별로 존중해 주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드래곤이 용귀족에게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릴 뿐, 용귀족의 제안을 드래곤이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번에도 유들라스 용후작이 루마샤리오스에게 작전을 제안했다고 하는데… 결국 루마샤리오스가 중간에 변심했을 것이다.
“유들라스 용후작은 루마샤리오스 님과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만…….”
“글쎄, 그사이에 뭔가 기분 상할 일이 있었나 보지.”
사실 브룸하트는 드래곤에 대한 충성심이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드래곤에게 의지하지 않고 용귀족들만의 힘으로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와 싸우고 싶었다.
이건 브룸하트가 예티 군단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브룸하트 님, 혹시…….”
“뭔가?”
부화장을 살피던 용귀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마샤리오스 님이 벌써 당하신 건 아닐까요?”
“당하시다니?”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공격에 쓰러지신 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바나디스 요새가 함락된 것이죠.”
“웃기는 소리.”
브룸하트는 코웃음을 쳤다.
“황룡기사단의 아그나르도 얼마 전 남쪽으로 내려간 상태고, 프레이르 요새에는 백룡기사단의 에리크밖에 없다. 방어만 잘하는 에리크 혼자서 루마샤리오스 님과 그 측근 드래곤들을 쓰러뜨렸다고?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부화장이나 점검해라.”
그렇게 브룸하트가 다그치고 있었을 때.
바깥에서 갑자기 용귀족 한 명이 뛰어 들어왔다.
“브, 브룸하트 용백작! 큰일이오!”
“왜 그렇게 호들갑인가? 무슨 일이지?”
“루마랴시오스 님과 그 측근들이… 얼음 계곡에서 전멸한 듯하오!”
“뭐라고?!”
브룸하트는 눈을 크게 떴다.
방금 비슷한 추측을 했던 용귀족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루마랴시오스 님을 포함해서 드래곤이 다섯이나 있었을 텐데… 에리크 혼자 전부 쓰러뜨렸단 말인가?”
“그게,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아무래도…….”
소식을 전해 주러 온 용귀족이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설원지대에 나타난 듯하오!”
“뭐, 뭣이?!”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 이름이 언급되자, 자리에 있던 용귀족들이 다들 경악했다.
요즘 용귀족들 사이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 카이트 에인헤랴르라면…….”
“아카샤니그두 님과 베리타스투스 님, 그 밖에도 많은 드래곤을 쓰러뜨린 용살검가의 젊은 소드 마스터 말인가?!”
“최근에는 엘드리트 공을 비롯한 용공작들까지 몰살시켰다던데?!”
“시구르드와 함께 서쪽 삼림지대로 간 게 아니라, 이쪽 설원지대로 왔다는 건가?!”
다들 혼란스러워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라는 초특급 위험인물의 등장은 그들 모두를 공포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브, 브룸하트 용백작!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만약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이곳으로 쳐들어오기라도 하면 큰일 납니다!”
“드래곤이나 용공작을 불러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일단 이곳을 포기하고 영구동토 쪽으로 도망가야…….”
“도, 동요하지 마라!”
브룬하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드래곤이나 용공작을 불러와야 한다는 둥, 영구동토 쪽으로 도망가야 한다는 둥 벌써부터 그런 얘기를 하면 어떻게 하나! 그러고도 너희들이 영광스러운 용귀족의 일원이냐?!”
“하, 하지만…….”
“애초에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여기에 쳐들어온다고 결정된 것도 아니다! 그런 최악의 사태까지 걱정하지 마라! 그러니…….”
그렇게 브룬하트가 소리치고 있었을 때.
갑자기 주위에서 북소리 같은 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소리냐?!”
“이건… 예티들이 위험을 알리기 위해 가슴을 두드리는 소리입니다!”
낮게 울리는 소리가 산을 진동시켰다.
한두 마리가 아니라 수십 마리가 일제히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브룬하트 님……!”
그리고, 예티들의 조련을 맡고 있던 말단 용귀족이 뛰어 들어왔다.
“에인헤랴르의 기습입니다! 놈들이 산을 넘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
신속하기 그지없는 기습.
설마 이건, 그동안 소문으로 들었던…….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기습인가……?”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브룬하트는 절망에 휩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