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34
▣ 134화. 설원을 달려라 (4)
쿠쿠쿵!
눈사태 같은 소리를 내면서, 십여 마리의 설룡(雪龍)이 돌진해 왔다.
한쪽 방향에서 오는 게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아직도 신화병장의 에테르를 소모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군.’
조금 전, 나는 위드칼트가 소환한 눈의 거인을 노퉁의 화염으로 녹여 버렸다.
계속해서 비슷한 공격을 한다면 노퉁의 에테르를 소모하게 될 테고, 결국 나를 무력화시킬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다.
‘어리석지.’
내가 신화병장의 에테르에 의존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큰 착각이다
“막을 수 있으면 막아 봐라, 카이트 에인헤랴르!”
위드칼트가 눈 속에서 솟구치며 소리쳤다.
그 호령에 호응하듯이 설룡이 복잡한 궤도를 그리며 나한테 덤벼들었다.
가장 가까운 것은, 우측에서 덤벼드는 두 마리였다.
“…….”
나는 오른손에 든 노퉁을 휘둘렀다.
설룡과는 한참 거리가 있었기에, 그냥 허공을 벤 셈이다.
하지만 아무 의미 없는 행위는 아니었다.
폭발적인 검풍(劍風)이 설룡을 덮쳤으니까.
“아니?!”
검풍에 휩싸인 설룡 두 마리가 산산이 흩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위드칼트가 경악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눈으로 조각을 하려면 더 견고하게 만들어야지. 강풍에 다 흩어지잖아.”
“……!”
아까 나타났던 눈의 거인은 너무 몸집이 커서 이런 건 시도조차 못 했다.
하지만 설룡은 내 검풍으로도 충분히 산산조각 낼 수 있었다.
“으윽……!”
나머지 설룡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원래 서 있던 자리에서 이동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몸을 놀리며 검무(劍舞)를 추었다.
“……!”
팟! 팟! 파앙!
두 자루의 신화병장에서 뿜어져 나온 검풍이 설룡들을 차례차례 파괴했다.
눈이 흩어져 눈보라와 뒤섞였다.
무수히 많은 눈덩이가 내 시야를 가렸다.
“흐읍!”
그리고, 그 사이에서 거대한 얼음의 창이 날아왔다.
하지만 소용없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휘두른 발뭉이 얼음의 창을 깨부쉈다.
“하앗!”
위드칼트의 기합 소리와 함께, 계속해서 얼음의 창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깨부쉈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계속 머무르면서.
“어떻게 된 거냐, 위드칼트.”
슬슬 공격이 잦아드는 걸 느끼고, 한마디 해 줬다.
“내 힘을 고갈시키려 하는 것 같았는데, 네 힘이 먼저 고갈된 것 같군.”
“……!”
눈보라 너머에서 위드칼트가 숨을 삼키는 걸 알 수 있었다.
“네놈, 에테르의 힘도 끌어내지 않고, 어떻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용공작인 나보다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단 말인가……?”
용공작들은 다들 9서클 소드 마스터보다 많은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력을 다해서 싸울 수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
위드칼트의 상식으로는 자기가 먼저 지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용귀족도 아닌 인간 주제에!”
위드칼트가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설마 네놈…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도달한 것이냐?!”
“그랜드 소드 마스터라.”
나는 담담히 대꾸했다.
“너희들은 내가 그랜드 소드 마스터의 자질을 지녔는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하던 것 같은데, 기준이 뭐지?”
“……!”
내 질문에 위드칼트가 움찔했다.
“10서클이 그랜드 소드 마스터인가?”
“그건… 아니다.”
“그래, 역시 그런가.”
베리타스투스도 그렇게 말했었다.
“그동안 하겐이 나를 시험하던 걸 보면,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단 말이지.”
“…….”
“내가 다양한 상황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관찰하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눈보라 너머에서 위드칼트가 숨을 삼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는 대체 뭐지?”
“그건… 네가 알 바 아니다.”
“그런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제대로 모르는 모양이군.”
“……!”
“사실 그동안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어. 그랜드 소드 마스터를 언급하는 놈들은 많은데, 속 시원하게 설명하는 놈은 한 명도 없었단 말이지.”
이 녀석들도 정확한 것은 모른다.
단편적인 지식은 알고 있어도, 그 실체까지 파악하지는 못한 상태인 것이다.
“하겐이나 파프니르라면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마 너희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뭔가가 있는 거겠지.”
무림의 일류 무사도 화경이나 현경이 어떤 것인지 설명하라고 하면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됐다. 네가 알고 있는 걸 들어 봤자 큰 도움도 되지 않겠지.”
“카이트 에인헤랴르, 네놈…….”
“나중에 하겐이나 파프니르를 만났을 때 다시 물어보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면,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는 것 같군. 이제 너도 마법을 쓰기 어려운 것 같고.”
“……!”
내가 전진하기 시작하자, 위드칼트가 다급히 검을 치켜들었다.
마법을 특기로 하는 용공작 같았는데, 검술 솜씨는 어떨까.
“내가 그쪽으로 가겠다.”
“네놈……!”
팟!
경공을 사용하면서 몸을 날렸다.
눈 쌓인 들판을 달리고 있었지만, 땅바닥에 발자국 하나 남지 않고 있었다.
이미 나는 답설무흔(踏雪無痕)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헉……!”
내 속도에 놀란 위드칼트가 다급히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소용없었다.
순식간에 접근한 내 공격이 위드칼트를 덮쳤다.
“크윽!”
발뭉이 오른팔을 절단했고, 노퉁은 가슴을 꿰뚫었다.
위드칼트의 검술이 아주 형편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나하고 칼을 맞대기에는 한참 부족했을 뿐이다.
“내, 내가, 용공작인 내가, 이렇게 허망하게…….”
위드칼트가 피를 흘리면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럴 리가 없다, 나는, 하겐 공의 계획대로, 용귀족들을 규합한 뒤,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몰아세울 거였는데…….”
그렇게 말하다가, 위드칼트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니, 어쩌면… 하겐 공이 나를 먼저 보낸 건, 이렇게 될 걸 예상했기 때문인가……?”
위드칼트는 붉은 피로 눈밭을 적시면서 중얼거렸다.
“대체 하겐 공은…….”
그렇게 중얼거린 뒤.
위드칼트가 앞으로 쓰러졌다.
완전히 숨이 끊어져, 미동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다.
“…….”
나는 검을 넓게 휘둘렀다.
그러자 검풍이 넓게 퍼져 주위의 눈보라를 날려 버렸다.
“헤르브란데.”
“…….”
“불렀으면 대답을 해라.”
“앗, 네!”
근처에 숨어 있던 헤르브란데가 다급히 고개를 내밀었다.
“죽은 척하고 있던 거냐, 아니면 도망친 척하고 있던 거냐?”
“아, 아닙니다. 제가 왜 그런 짓을…….”
변명을 하면서 헤르브란데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에테르의 힘도 별로 쓰지 않고 위드칼트 공을 쓰러뜨리다니… 정말 대단하시군요.”
“너희들 기준으로 보면 어떻지?”
“네?”
“너희 니드호그 파벌에도 용공작들이 있을 거 아냐. 그 용공작들에 비하면 어떤 것 같냐고.”
“…….”
헤르브란데가 잠시 머뭇거렸다.
“용공작들은 파프니르 파벌이나 니드호그 파벌이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무지막지하게 강한 분도 있고, 평균적인 소드 마스터보다 약한 분도 있고…….”
“그런가?”
“네, 하지만…….”
내 눈치를 보면서 헤르브란데가 말했다.
“카이트 님을 상대할 수 있는 분이 있긴 합니다.”
“그래? 누구지?”
“그건…….”
헤르브란데가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눈짓으로 재촉하자 결국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디트리히 공입니다.”
“디트리히라…….”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다.
시구르드 등은 알고 있을까.
“예전에 엘드리트 공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
“네, 서로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만…….”
엘드리트는 지금까지 내가 싸워 온 용공작 중에서 가장 강했다.
그 엘드리트보다 강하다는 건가.
‘흥미롭군.’
지금 우리들의 주적은 파프니르 파벌이지만… 나중에 니드호그 파벌과도 충돌하게 될 것이다.
그럼 그 디트리히라는 놈하고도 싸우게 될 가능성이 높다.
“좋아. 그러면 볼일은 끝났으니, 이만 가 보자고.”
“네? 어디로…….”
“내 부하들하고 합류를 해야 하니까.”
“아, 그렇군요. 그러면 저는…….”
“너도 따라와야지.”
“네?!”
헤르브란데가 눈을 크게 떴다.
“여, 여기로 안내해 드렸는데, 그걸로 끝 아닙니까?”
“누구 맘대로?”
“…….”
나는 니드호그 파벌에 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이 녀석을 포로로 삼으면 앞으로 니드호그 파벌을 상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은 예전부터 설원지대에서 활동했을 테니… 길 안내를 시켜도 될 테고 말이다.
“윽…….”
헤르브란데가 위드칼트의 시체를 살펴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거부한다면 자신도 위드칼트와 똑같은 모습이 될 거라고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헤르브란데.”
“네…….”
“지름길을 알고 있으면, 안내해라.”
“…….”
체념한 표정을 지으며 헤르브란데가 고개를 숙였다.
* * *
이바르가 지휘하는 연합 부대와 웨어울프들의 싸움은 마무리 단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크어헝!”
“큭, 이놈들……!”
웨어울프들을 지휘하고 있던 용귀족들은 이미 샤이흐가 해치웠다.
나머지 웨어울프들도 순조롭게 소탕하고 있었지만, 근처 산에서 갑자기 웨어베어 무리가 뛰어 내려왔다.
웨어베어들이 웨어울프들과 합류하려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나타났다.
“니얼 경! 슈벤 등을 이끌고 우측의 어윈 경을 지원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웨어울프와 웨어베어는 몬스터치고는 지능이 뛰어나다.
용귀족이 쓰러진 상태에서도 나름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어서,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바르 님! 그쪽에……!”
“……!”
어느새 아군을 돌파한 웨어울프 한 마리가 이바르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네가 우두머리냐……!”
포효하면서 웨어울프가 돌진해 왔다.
현재 이바르가 부대를 총지휘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듯했다.
“찢어발겨 주마, 인간……!”
“윽……!”
마침 이바르 곁에는 별다른 호위 병력이 없었다.
샤이흐 등도 멀리 떨어져 있어, 누군가가 막아 주기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옛날 같았으면 죽음을 각오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바르는 단전에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신비한 기운이 경락을 따라 온몸에 퍼졌다. 그것을 손바닥으로 모아, 손에 들고 있는 검으로 흘려보냈다.
칼날이 눈부신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흥, 그 정도 오러로는 내 털가죽을 뚫지 못…….”
“하압!”
파앗!
이바르가 검을 휘두른 순간, 바람이 불었다.
그냥 바람이 아니다. 검기가 실린 바람… 검풍(劍風)이었다.
“크악?!”
검풍을 얼굴에 정통으로 맞은 웨어울프가 비명을 질렀다.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주춤하는 웨어울프를 향해, 이바르는 몸을 날렸다.
“흐읍……!”
전력을 다한 찌르기가 웨어울프의 심장을 꿰뚫었다.
제법 강력한 몬스터인 웨어울프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이다.
‘해냈다!’
이바르가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을 때.
갑자기 웨어울프가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완벽하게 이바르의 허를 찌르는 움직임이었다.
“으윽?!”
하지만, 웨어울프의 손톱이 이바르를 찢어발기는 일은 없었다.
어디선가 날아온 검이 웨어울프의 손목을 날려 버린 뒤, 목까지 완전히 베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 검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검을 보면서 이바르는 숨을 삼켰다.
산중교단에도 단검을 원격 조종하는 기술은 있지만, 저런 장검을 자유자재로 조종하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
“카이트 형님!”
“상대가 마지막 발악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바르.”
산줄기 위에서, 카이트가 정체불명의 커다란 짐승에 올라타고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바르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환성을 질렀다.
“카이트 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너무 늦게 오셨습니다!”
“미안하군, 일이 좀 있었어.”
카이트가 전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래도 아군 피해는 별로 없군. 이바르가 잘 지휘해 준 덕분이겠지.”
“형님…….”
“그렇게 지휘를 하면서도 몬스터들을 상대로 잘 싸웠던 것 같고, 많이 성장했군.”
“……!”
카이트의 칭찬에 이바르는 기쁨을 느꼈다.
이바르 본인도 자신의 성장을 실감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면 남아 있는 잔챙이들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지.”
카이트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으며 말했다.
“용공작 하겐이 설원지대에 도착하는 날짜를 알아냈으니까.”
“……!”
“여기 있는 놈들을 빠르게 정리한 뒤…….”
숨을 삼키는 기사들 앞에서, 카이트가 냉정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하겐 토벌전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