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36
▣ 136화. 용공작 하겐 (2)
“젠장! 구역질이 나는군!”
“이런 끔찍한 고깃덩이와 싸워야 한다니……!”
“생김새도 생김새지만 냄새가 너무 지독해! 짐승의 내장에 코를 박고 있는 느낌이야!”
전장 곳곳에서 기사들이 고통을 호소했다.
하겐이 준비한 것으로 추측되는 혐오스러운 존재 ‘어보미네이션’들과의 싸움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몸통 한가운데에 심장 같은 게 있다! 오러 블레이드로 꿰뚫어 버리면 움직임을 멈춘다!”
“조심해! 놈들은 사람의 살을 뜯어가 자기 일부로 만들어 버린다!”
어보미네이션은 엄청난 기세로 달려들어 사람들을 들이받는다.
그러면서 고기로 된 촉수를 뻗어 사람의 몸… 그러니까 팔다리나 머리 같은 것을 뜯어 가려 한다.
엄청난 힘을 갖고 있어 평범한 기사는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압……!”
콰직!
청적백흑(靑赤白黑) 4남매의 첫째인 슈벤이 도끼로 어보미네이션을 짓이겼다.
내가 가르쳐 준 흑천파산부(黑天破山斧)의 호쾌한 파괴력으로 단번에 심장까지 파괴하고 있었다.
“휴이엔, 놈들을 계속 견제해라! 내가 한 놈씩 박살 내겠다!”
“알겠습니다, 형님!”
사제인 휴이엔의 도움을 받으며, 슈벤은 어보미네이션을 한 마리씩 처치해 나갔다.
그 옆에서 이그니카와 루살카도 절묘한 호흡으로 어보미네이션의 살점을 도려내고 있었다.
“루살카, 심장이 보였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루살카의 수라비룡검이 어보미네이션의 심장을 터뜨렸다.
어보미네이션이 부르르 떨다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모습을 확인한 뒤, 두 사람은 곧장 다음 표적을 향해 움직였다.
“비늘로 뒤덮인 몬스터들처럼 표면이 단단하진 않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군요!”
니얼이 가까이 있는 어보미네이션에게 검을 휘둘렀다.
검기가 실려 있었기 때문에 살을 파고드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고깃덩이 내부에서 이상하게 뒤섞여 있는 힘줄이나 뼈에 걸리는 경우가 많았다.
“카이트 공자님, 이대로 가다간…….”
“어쩔 수 없지.”
고깃덩이의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들어 오고 있었다.
저것들을 일일이 상대하고 있다간 아군의 체력이 금방 고갈될 것이다.
“다들 뒤로 조금만 물러서라.”
“카이트 공자님……!”
지시를 내리면서 하늘 높이 도약했다.
이쪽으로 몰려드는 고깃덩이의 파도, 그 정중앙을 응시하면서 칼라드볼그를 뽑았다.
‘저렇게 대량의 고깃덩이들을 한꺼번에 해치우려면… 에테르의 힘을 상당히 많이 끌어올려야겠군.’
차라리 같은 무게의 드래곤을 상대하는 게 더 편할 것이다.
급소를 공격하여 치명상을 입히는 것만으로 해치울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저렇게 수많은 고깃덩이가 상대라면 하나하나 심장을 터뜨려야 한다.
‘그러니…….’
견뢰검 칼라드볼그.
그 에테르는 뇌전의 형태로 발현된다.
나는 그 힘을 최대한 많이 끌어올렸다.
‘한꺼번에 끝낸다.’
뇌검을 뛰어넘은 뇌검, 수라청벽검.
에테르와 내공을 조화시켜 막강한 양의 뇌기를 발생시켰다.
이것을 몸에 두르면 그야말로 번개와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게 되지만, 오늘은 어디까지나 뇌전을 만들기 위해 쓸 것이다.
‘떨어져라!’
쿠르르릉!
거대한 천둥소리와 함께, 엄청난 뇌전이 떨어져 내렸다.
한 줄기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방으로 퍼지는 번개의 폭우였다.
떨어져 내린 번개는 그 자리에 있던 어보미네이션을 감전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위로 파급되었다.
연쇄적인 감전을 일으키면서 뇌전은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갔다.
“오오……!”
부하들이 탄성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보미네이션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카이트 공자님의 번개가 놈들의 심장을 모조리 멈춰 버린 거군요!”
슈데르츠가 검을 치켜들고 환호했다.
“웬만한 마법사보다도 카이트 공자님이 더 대단하십니다!”
“아직 살아 있는 놈들이 있다. 긴장을 풀지 말고 계속 싸워.”
워낙 숫자가 많았고, 협곡으로 계속 밀려들고 있었기 때문에 전부 다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8할 정도는 무력화시킨 듯하니, 나머지는 내 부하들이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칼라드볼그는 한계에 도달했군. 한동안 쉬게 해야겠어.’
칼라드볼그를 검집에 집어넣으면서, 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쓰러진 고깃덩이들 너머에서 상당히 큰 개체가 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고깃덩이 중에서도 제법 큰 몸집을 지닌 놈들이 있었지만, 저놈은 격이 달랐다.
‘혹시 드래곤으로 만든 어보미네이션인가?’
가장 작은 놈들은 용귀족으로, 중간 크기의 놈들은 드레이크나 너커 등으로 만든 것이고… 가장 큰 놈은 드래곤으로 만든 게 아닐까.
다리나 날개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고깃덩이가 뭉쳐 있을 뿐이지만… 질량을 감안하면 원로급 드래곤 한 마리 정도는 될 것 같았다.
‘하겐이 드래곤까지 어보미네이션으로 만들었다고?’
이건 용귀족이나 괴물들을 어보미네이션으로 만드는 것하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에인션트 드래곤에게서 작위를 받은 용공작들은 일반 드래곤들과 동일한 지위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 드래곤들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는 권한 같은 건 없을 것이다.
‘파프니르가 허가해 줬을 것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저놈은 몸집이 너무 크다.
내 부하 중에는 저런 괴물을 혼자서 쓰러뜨릴 만한 사람이 없다.
“카이트 공자.”
그때 내 곁으로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산중교단의 샤이흐였다.
“아무래도 드래곤으로 만든 어보미네이션 같군.”
“그런 것 같습니다.”
“아까 드레이크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어보미네이션과 싸우면서 느낀 건데, 어보미네이션이 되면 파워가 압도적으로 상승하는 것으로 보이네.”
“그러면 드래곤 어보미네이션도 엄청난 힘을 갖고 있겠군요.”
“그렇지. 생명력도 엄청날 테고.”
“목을 벤다고 해도 죽지 않겠죠.”
“애초에 목이 어딘지도 알 수 없고 말일세.”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나란히 섰다.
“협공하세.”
“알겠습니다.”
샤이흐는 좌측으로, 나는 우측으로 움직였다.
꿈틀거리면서 다가오는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을 양측에서 공격하려 했다.
“흠!”
샤이흐가 단검을 휘두른 순간, 거대한 오러 블래스트가 방출되었다.
막강한 기운이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의 살을 깎아 내는 걸 확인하면서, 나는 발뭉을 뽑아 들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
냉기를 발생시키면서,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의 몸통으로 추측되는 부위를 베었다.
그러자 상처를 통해 냉기가 파급되면서 살이 꽁꽁 얼어 버렸다.
‘부서져라.’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 충격을 주니, 얼어붙은 고깃덩이가 박살 나면서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자네 방식이 더 효과적이군. 계속해서 몰아치게!”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에게서 수많은 촉수가 뻗어 나왔다.
하지만 샤이흐가 이기어검 같은 방식으로 단검을 조종해 모조리 잘라 버렸다.
그사이 나는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의 심장을 포착했다.
“물러서십시오, 최고장로님.”
일격에 심장을 터뜨린 뒤 이탈했다.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은 시커먼 피를 뿜으며 그대로 쓰러졌다.
“해치웠나?”
“아니, 잠시만요.”
하지만.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은 다시금 꿈틀거리면서 활동을 재개했다.
아까보다 움직임이 둔하긴 하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다.
“심장을 파괴한 거 아닌가?”
“…….”
나는 무수절맥공을 사용하며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의 전신을 살폈다.
그러자 심장보다 더 아래쪽에서 마력이 느껴졌다.
“드래곤 하트 때문인 것 같습니다.”
“드래곤 하트?”
“심장에 드래곤 하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보미네이션이 되면서 다른 위치로 드래곤 하트가 이동한 것 같은데, 그게 심장을 대신하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이미 나는 드래곤 하트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러면 그걸 놈에게서 분리하면 된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지원 부탁합니다.”
“으음, 알겠네!”
내가 앞서 나가자, 샤이흐가 단검을 날려 지원해 줬다.
무수히 돋아나는 촉수들 사이를 돌파하고, 놈의 아랫배로 추정되는 부위로 접근했다.
그리고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놈의 살을 얼린 뒤 부서 버렸다.
“……!”
하지만, 모습을 드러낸 드래곤 하트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드래곤 하트 표면에 핏줄이 박혀 있었는데, 상당히 지저분하게 느껴졌다.
‘상태가 안 좋군.’
저기서 마력을 끌어낼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는 체념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드래곤 하트가 산산이 깨졌다.
“이번에는 정말로 쓰러뜨린 것 같군.”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이 쓰러지는 모습을 확인하고, 샤이흐가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참으로 기묘한 괴물이야. 하겐은 왜 이런 것들을 만든 걸까.”
“최고장로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 일단 전력 증강을 위한 것은 아니겠지. 사실 이 드래곤 어보미네이션도 그냥 드래곤이었을 때가 더 강했을 걸세. 힘은 강해졌어도 아무런 기술을 쓰지 못하니까.”
“아까 말씀하신 산중교단의 비전서에 뭔가 다른 얘기는 안 적혀 있었습니까?”
“비전서에… 흠, 대량의 고깃덩이를 도시로 밀어 넣어 모든 것을 뒤덮는 전법이 적혀 있긴 했는데…….”
“…….”
하겐의 목적은 무엇일까.
방금 샤이흐가 말한 대로, 전력 증강이라는 측면에서는 별로 의미가 없다.
드래곤이나 용귀족들 같은 자기 세력의 구성원을 이런 괴물로 만든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파프니르라면 하겐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파프니르가 모르게 무단으로 한 짓이라면?’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만약 하겐이 더 이상 파프니르에게 충성을 바칠 생각이 없다면… 이런 짓을 해도 문제 될 건 없다.
‘아니, 어쩌면…….’
그동안 하겐은 자기 쪽 전력이 소모되는 걸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어떻게 보면 자기 부하들을 일부러 사지로 내모는 느낌도 있었다.
에인헤랴르가 줄곧 경계해 온 남자답지 않은 행동이었다.
‘오늘의 이 상황도, 그동안 했던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협곡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샤이흐가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최고장로님, 일단 이곳에서 잠시 물러서는 게 좋겠습니다.”
“카이트 공자, 하지만…….”
“느낌이 안 좋습니다. 아무래도…….”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 고깃덩이들, 이걸로 끝이 아닌 것 같습니다.”
“뭣…….”
바로 그때.
쓰러져 있던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이 갑자기 위로 솟구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몸을 구성하고 있던 고깃덩이들이 터져 나왔다.
“이런……!”
“최고장로님, 어서!”
나는 경공을 사용해 날아올랐다.
그리고 우리가 쓰러뜨렸던 어보미네이션들에게서 튀어나온 고깃덩이들이 마구 뒤섞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것들은 저절로 증식하여 협곡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것처럼.
“다들 도망쳐라!”
내공을 실어 소리쳤다.
내 부하들은 어보미네이션이 밀집된 지역에 있지 않으니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샤이흐!’
경공을 사용해 빠르게 이탈한 나와는 달리, 샤이흐는 드래곤 어보미네이션에게서 뻗어 나온 촉수에 다리가 붙잡혔다.
“크윽……!”
샤이흐는 다급히 단검으로 촉수를 절단했지만… 결국 초고속으로 증식하는 고깃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 * *
털썩.
끔찍한 고깃덩이 사이를 지나쳐, 샤이흐는 이상한 공간에 떨어졌다.
“으윽, 여기는…….”
다행히 몸에는 이상이 없었다.
고깃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때는 이대로 놈들의 일부가 되는 건가 했지만, 딱히 그런 의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고기로 둘러싸인 공간……?”
육벽(肉壁)이라 해야 할까.
사방이 고깃덩이로 막혀 있었다. 머리 위와 발밑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공간에…….
“카이트 에인헤랴르와 대화를 나누기 위해 준비한 거지만.”
“……!”
수려한 외모를 지닌 남자가 느긋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러기 전에 너부터 처리해야 할 듯하군, 산중교단의 최고장로.”
“네놈, 설마……!”
샤이흐는 눈을 치켜떴다.
파프니르 파벌의 용공작다운 화려한 복장, 그리고 형용하기 어려운 불길한 기척이… 이 남자가 누구인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용공작, 하겐인가!”
파프니르 파벌 최강의 용공작이자 산중교단을 기만한 대죄인(大罪人)이… 샤이흐 앞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