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4
▣ 14화. 칼춤을 추고 오자 (3)
“크헉!”
마지막 남은 자객이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내가 던진 단검이 정확히 급소를 관통했기 때문이다.
‘월야비연도(月夜飛燕刀)도 어려움 없이 사용할 수 있군.’
월야비연도는 흔히 말하는 비도술이다. 내공을 활용하기 때문에 단순히 칼을 날리는 것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다.
비도술에 적합한 비수가 있으면 더 좋지만, 자객들에게서 빼앗은 단검으로도 충분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러면…….”
자객 중에는 아직 숨통이 붙어 있는 놈이 있었다.
놈을 족쳐서 이번 습격의 배후를 알아내야 한다.
“너희는 내가 카이트 에인헤랴르라는 걸 알고 습격했을 것이다.”
“크윽…….”
“너희가 누구인지, 너희 배후에 있는 게 누구인지, 낱낱이 밝혀 줬으면 한다.”
“우, 웃기지 마라. 우리는 결코 정보를 누설하는 일이…….”
“그래, 명색이 자객인데 그 정도 훈련은 받았겠지.”
나는 자객의 옷을 찢어서 재갈을 물렸다.
“너무 시끄러우면 내 부하들이 잠에서 깰 테니 말이야.”
“……?”
“그러니, 모든 걸 털어놓을 생각이 들면 눈을 미친 듯이 깜박여라. 바로 멈춰 줄 테니.”
의아해하는 자객 앞에서, 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분근착골(分筋錯骨)이라는 건데, 한번 경험해 봐라.”
* * *
“카이트 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좋은 꿈 꾸셨습니까?”
“그래, 좋은 아침이다.”
다음 날 아침.
태평하게 잠에서 깨어난 어윈, 모르트와 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하품을 했다.
‘자객을 족치느라 잠을 충분히 자지 못했어.’
어젯밤, 분근착골로 고문한 덕분에 자객에게서 어느 정도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자객은 고문에 대비한 훈련을 받은 것 같았지만, 뼈와 살이 끊어지듯이 뒤틀리는 감각은 처음 경험하는 듯했다.
결국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모든 걸 토해 냈다.
‘산중교단(山中敎團)이라…….’
그들은 산중교단이라는 이름의 암살자 조직 소속이었다.
산중교단은 이 세계 전역에서 암약하는 조직으로, 충분한 대가만 지불하면 누구든지 죽여 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무림에 있을 때도 먼 서역에 산중장로(山中長老)라는 노괴가 암살자 집단을 이끌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산중교단은 말단 조직원들 간의 정보 공유가 별로 없으며, 어제 나를 습격한 자객들도 의뢰자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듯했다.
다만, 카이트의 동생들이나 그 추종자들이 의뢰한 건 아닌 것 같았다.
‘암살의 기한이 촉박했어. 동생들이 그렇게 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할 이유가 없지.’
그렇다면 유르고스 가문에서 한 짓일 가능성이 높다.
유르고스 가문의 영지에 발을 들이기 전에 나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다.
‘도적에게 습격당한 것처럼 뒤처리를 해달라고 했지. 속셈이 엿보여.’
놈들은 내가 자기들 영지로 들어오기 전에 선수를 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를 죽인 뒤 뒷감당을 어떻게 할 생각일까.’
시구르드는 유르고스 가문을 의심할 것이다.
유르고스 가문의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위험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죽이려 했다는 건… 믿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지.’
그게 무엇일까.
북부에서 엄청난 힘을 지닌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원한을 사고도 무사하려면, 어떤 뒷배가 필요할까.
‘드래곤이군.’
배룡주의자들의 신앙 대상.
그 드래곤들과 유르고스 가문이 상당히 깊게 연결되어 있는 게 분명했다.
* * *
“미안하지만 암살 계약을 취소해야 할 것 같소.”
“뭐요?”
산중교단의 ‘창구원’에게서 착수금을 돌려받고, 페루스는 눈을 크게 떴다.
“암살 계약을 취소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우리가 보낸 암살자들이 전멸했소. 다들 처참한 시체로 발견되었지.”
“시체로?”
“확인해 본 결과, 고틀란드 방면에서 정보 갱신이 있었소. 그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할 때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죽이려면 이것보다 스무 배 이상 많은 금액이 필요하오.”
“……!”
믿겨지지 않는 얘기였다.
이것보다 스무 배 이상 많은 금액이라니,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언제부터 그런 거물이 되었단 말인가?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최신 정보를 확인하지 않고 의뢰를 받아들인 건 우리들의 실수라고 할 수 있소. 그러니 착수금은 전액 돌려주겠소.”
“자, 잠깐, 뭔가 이상하지 않소. 카이트 에인헤랴르는 1서클의 소드 노비스인데…….”
“그 1서클의 소드 노비스가 킹 리자드맨을 쓰러뜨렸소.”
“……!”
킹 리자드맨을 쓰러뜨렸다?
하이 리자드맨을 쓰러뜨렸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킹 리자드맨을……?
“그, 그런 건 다 헛소문이오! 에인헤랴르 대공가에서 장남을 띄워 주기 위해 퍼뜨린 가짜 정보라고!”
“의심되면 고틀란드에 직접 가서 확인해 보시오. 거기 사람들은 다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킹 리자드맨을 쓰러뜨렸다고 믿고 있으니까.”
“……!”
“물론, 그게 전부 다 허위일 수도 있소.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정보를 기준으로 금액을 산정할 수밖에 없소.”
산중교단은 세계 전역에 정보망을 갖고 있다.
그들은 암살 대상의 실력뿐만 아니라 암살 이후의 보복 가능성까지 감안해서 금액을 산정한다.
암살자들에게 그 금액은 절대적이며, 결코 깎아 주는 일이 없다.
“정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암살을 의뢰하고 싶다면, 스무 배 이상의 금액을 준비해 주시오.”
“…….”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착수금이고… 성공 보수는 따로 준비해야 될 것이오.”
페루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만한 돈을 준비하려면 유르고스 가문의 금고를 탈탈 털어도 부족하다.
‘아카샤니그두 님에게 보상을 받으면 감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른다.’
의뢰비는 즉각 지불하는 게 원칙이다.
핑계를 대면서 미루는 사람은 그 목숨으로 대가를 지불하게 된다.
‘지금 당장 아카샤니그두 님의 비호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위험해.’
에인헤랴르의 보복에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산중교단의 보복은 즉각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중교단에 의뢰비를 독촉당하는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알겠소. 의뢰를 포기하지.”
“잘 생각했소. 다른 사람을 죽이고 싶어지면 언제든지 연락하시오.”
페루스가 의뢰를 포기하자, 창구원은 바로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페루스는 입술을 깨물었다.
‘겁쟁이들…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킹 리자드맨을 정말로 쓰러뜨렸을 리가 없다.’
1서클의 소드 노비스가 그렇게 금방 강해지는 건 불가능하다.
킹 리자드맨을 쓰러뜨린 건 다른 소드 엑스퍼트일 테고, 산중교단의 암살자들도 카이트의 수행 기사들이 쓰러뜨렸을 것이다.
‘나는 예전부터 북부대공의 자식들을 주목해 왔어. 그러니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지.’
아무런 능력도 없으면서 북부대공의 장남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주위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놈이었다.
그런 놈이 킹 리자드맨을 쓰러뜨릴 정도의 무용을 발휘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직접 맞이하는 수밖에 없겠군.’
물론, 그놈은 행패를 부리면서 유르고스 가문을 도발할 것이다.
그리고 온갖 트집을 잡은 뒤 북부대공한테로 돌아가서 ‘유르고스 가문이 용살검가 에인헤랴르를 모욕했습니다. 가만 놔두면 안 됩니다.’ 같은 소리를 할 게 분명하다.
‘북부대공의 노림수대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지.’
유르고스 가문은 오랫동안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왔다.
강대한 힘을 지닌 북부대공 앞에서 유르고스 남작은 항상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이 페루스의 꿈이었다.
‘언제까지 에인헤랴르에게 당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
페루스는 배룡주의자지만, 엄밀히 말해서 배룡주의의 신봉자는 아니다.
드래곤이라는 강대한 존재들의 힘을 빌려 커다란 권력을 손에 넣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원래는 아카샤니그두의 지원을 받으면서 조금씩 가문의 힘을 키워 나갈 계획이었지만… 예상외로 일찍 에인헤랴르의 표적이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계획을 변경할 수밖에 없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죽여 버리고, 그 목을 아카샤니그두 님에게 바치겠다!’
그렇다.
여기서 유르고스 가문이 살 길은 카이트 에인헤랴르를 죽여 버리는 것밖에 없다.
북부대공의 보복이 시작되기 전에 도망쳐서 아카샤니그두의 비호를 받으면 유르고스 가문의 승리다.
에인헤랴르의 장남을 죽였다는 공로면 용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테고, 드래곤들의 지배 영역에서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에인헤랴르 가문 자체를 지도상에서 없애 버려 주지.’
야망을 불태우면서, 페루스는 혼자 미소를 지었다.
* * *
“여기서부터 유르고스 가문의 영지입니다, 카이트 님.”
“흠…….”
산길을 달려 도착한 유르고스 가문의 영지는 고틀란드 근방보다는 온난한 땅이었다.
그렇게 물자가 풍족해 보이지는 않지만, 농사지을 땅 정도는 있어 보였다.
“저쪽으로 보이는 성에 유르고스 남작이 살고 있습니다.”
“저기로 가서 인사를 올리면 되겠군.”
나는 어윈, 모르트와 함께 말을 몰고 나아갔다.
하지만 금방 우리들 앞을 가로막은 집단이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공자님.”
선두에 있던 붉은 머리의 남성이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스칸센 유르고스의 아들인 페루스 유르고스입니다. 공자님을 성으로 모시겠습니다.”
“…….”
공손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긴장으로 가득한 목소리 속에… 살기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그렇게 마음을 먹은 거라면, 나로서도 일을 진행하기 쉬워지지.’
시구르드의 명령은 유르고스 가문을 압박하여 놈들이 본색을 드러내게 만들라는 것이었다.
유르고스 측에서 먼저 나를 죽이려든다면 반가운 일이다.
‘산중교단을 이용해 나를 죽이는 건 포기했나 보군. 직접 나를 죽이기로 마음먹은 건가.’
그때 옆에서 어윈이 귓속말을 했다.
“페루스 님은 5서클의 소드 그래듀에이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경계하시는 편이 좋을 겁니다.”
“…….”
5서클.
어윈하고 동격이라는 건가.
‘과연 그럴까?’
나는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전방을 향해 미약한 기운을 쏘아 보냈다.
“……?”
페루스 유르고스가 몸을 움찔했다.
아마 찌릿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왜 그러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무림에서는 상대방의 몸에 약간의 내력을 흘려보내 몸속을 탐색하는 수법이 있었다. 이걸 통해 상대방이 어느 정도 내공을 갖고 있는지도 확인 가능했다.
흑사련에서는 이걸 직접 손을 대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무공을 개발했다.
이름은 무수절맥공(無手切脈功)이라 하며, 역시 1갑자에 도달하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무공이었다.
‘절맥(切脈)이란 맥을 짚는다는 뜻… 손을 대지 않고도 맥을 잡을 수 있는 무공이란 거지.’
이미 나는 어윈과 모르트, 암살자들을 상대로 무수절맥공을 시험해 봤다.
그 결과 무수절맥공으로 내공뿐만 아니라 마력의 양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페루스의 마력은…….’
모르트보다 두 단계, 어윈보다 한 단계 높다.
그렇기 때문에… 페루스는 6서클의 소드 엑스퍼트다.
‘힘을 숨기고 있었군, 페루스 유르고스.’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 정도는 되어야 상대하는 보람이 있을 테니까.
나를 습격했던 암살자들 중에서도 이 정도 경지에 도달한 놈은 없었다.
‘이 정도라면 본인이 직접 나서야지. 안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페루스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만나서 반갑다, 페루스 유르고스.”
“네, 공자님. 일단…….”
“오랜 여행으로 피곤하군.”
페루스의 말을 끊으면서 거만한 말투로 말했다.
에인헤랴르의 망나니 첫째아들답게, 방약무인하게.
시구르드도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 걸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연회를 준비해 줬으면 한다.”
“연회… 말입니까?”
“그래, 연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내 피로가 싹 풀릴 수 있도록, 호화롭게 말이다.”
그 호화로운 잔칫상이, 유르고스 가문에게는 제사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