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46
▣ 146화. 악룡의 궁전 (1)
“여기가 파프니르 휘하의 용귀족들이 살던 곳이군요.”
관문을 통과한 우리들 앞에 펼쳐진 건 꽤 넓은 평야였다.
상당히 발달한 도시가 세워져 있었지만,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이쪽에 살던 용귀족들은… 하겐이나 브랜휴트가 전부 어보미네이션으로 만들어 버린 모양입니다.”
“끔찍한 얘기군.”
니얼과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겐은 파프니르에게 반역할 생각으로 용귀족들을 어보미네이션으로 만들었겠지만, 브랜휴트는 그렇지 않다.
파프니르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남아 있던 나머지 용귀족들을 모조리 희생시킨 것이다.
이건 파프니르가 그런 행위를 용인해 주고 있다는 의미다.
“파프니르는 용귀족들이 죽든 말든 별 상관없는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어쩌면 드래곤들한테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용귀족은 그렇다 쳐도… 드래곤들은 같은 드래곤 아닌가? 동족 의식 같은 건 없는 모양이군.”
“글쎄요. 에인션트 드래곤과 일반 드래곤이 같은 종족인지도 알 수 없어서…….”
“하긴 그것도 그런가.”
에인션트 드래곤과 일반 드래곤이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밝혀진 게 없다고 한다.
완전히 다른 종족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 같았다.
“어쨌든, 이런 느낌이면 파프니르의 궁전에 도달할 때까지 아무런 장애물이 없을 가능성도 있겠군.”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때, 모리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이트 님! 서쪽 하늘을 보세요!”
고개를 치켜들자, 무언가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게 보였다.
“설마 드래곤일까요?!”
“아니, 드래곤은 아니야. 멀어서 정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와이번이겠지.”
“아, 그렇군요. 제가 괜히 호들갑을 떨었네요.”
모리안이 머리를 긁적이며 얼굴을 붉혔다.
“그런데 와이번이 왜 날아다니고 있는 걸까요? 다른 놈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데.”
“글쎄, 야생 와이번일지도 모르지.”
지금까지 영구동토를 주파하면서 야생 드레이크는 꽤 자주 볼 수 있었다.
“아니면 엘드리트가 키우던 놈일 수도 있고.”
“아, 용기병을 육성했다던 용공작 말이군요.”
“그래.”
원래 파프니르 밑에는 하겐이나 엘드리트가 육성해 놓은 다양한 전력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도 이제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파프니르에게 반역할 생각이었던 하겐 탓이기도 하지만… 파프니르 본인도 전력을 유지하는 데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자기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자만심 때문일까, 아니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파프니르의 본거지를 향해 계속 전진했다.
* * *
긴 행군 끝에, 에인헤랴르의 기사들은 파프니르의 본거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성에 도착했다.
“형님, 아무래도 이곳은 하겐의 본거지였던 모양입니다.”
지도에는 딱히 표시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 성은 하겐이 살던 곳 같았다.
파프니르의 측근이었던 만큼 본거지에서 가까운 곳에 거주했던 것으로 보였다.
“근처에 와이번을 사육하던 것으로 보이는 장소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엘드리트도 여기서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래, 고위 용공작들의 거처였던 것 같군.”
아무도 없는 성은 음산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추위를 피하기에는 좋은 장소였기 때문에, 우리는 일단 이 성을 숙소로 삼기로 했다.
여기서 파프니르의 본거지까지는 반나절 정도 걸리기 때문에, 하룻밤 묵은 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이바르, 나는 잠시 나갔다 오겠다.”
“네? 어디를 갔다 오시려고…….”
“파프니르 쪽을 살펴보고 올 거야.”
“안 됩니다, 형님. 그쪽을 함부로 자극하지 말라는 게 아버지의 명령이셨습니다.”
“걱정 안 해도 돼. 절벽에 가까이 가지는 않을 테니까.”
이바르에게 뒷일을 맡긴 뒤, 나는 홀로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경공을 사용해 조용히 파프니르의 본거지로 접근했다.
‘저기가 파프니르가 있는 궁전인가.’
파프니르의 거처는 거대한 궁전이었다.
몸집이 워낙 크니 궁전도 커야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무지막지하게 컸다.
‘접근하는 길이 좁군.’
궁전은 마치 해자처럼 보이는 절벽으로 빙 둘러싸여 있었다.
접근하려면 좁은 다리를 건너야만 했다.
‘어차피 드래곤들은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 저런 다리는 필요 없겠지. 저건 용귀족을 위한 건가.’
궁전 쪽은 고요했다.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그냥 조용하기만 할 뿐이어서, 추위 때문에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위 병력 같은 것도 보이지 않고…….’
과연 저 안에는 어느 정도의 병력이 있을까.
어쩌면 파프니르 혼자만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파프니르는 혼자서 우리 전부를 상대할 생각인 걸까.
‘만약 내가 드래곤이었다면… 에인헤랴르 측의 병력이 다리를 건너오고 있을 때 브레스를 발사하겠지.’
좁은 다리이기 때문에 밀집해서 건너가야 한다.
브레스로 한꺼번에 쓸어버리기에 딱 좋은 상황이 될 것이다.
‘내 검막이나 에리크의 오러 실드로 막을 수 있을까?’
평범한 드래곤들의 브레스는 쉽게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에인션트 드래곤의 브레스를 막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정보가 부족하군.’
에인션트 드래곤과 싸우는 건 처음이다.
그렇기에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카이트.”
“아버지.”
어느새 시구르드가 근처에 와 있었다.
“아버지도 정찰하러 오신 겁니까?”
“그렇다.”
나도 그렇지만, 이 사람도 직접 정찰을 하는 걸 즐기는 것 같다.
사실 시구르드는 천리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웬만한 정찰병보다 더 우수하긴 하다.
“뭐가 보이십니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창문도 안쪽을 볼 수 없게 되어 있군.”
시구르드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위를 살펴봤지만, 역시 궁전 바깥에 적들의 병력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네, 궁전 안쪽에 얼마나 병력이 있는지가 중요해졌죠.”
“카이트, 파프니르 혼자만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나?”
“가능성이야 있겠죠.”
“만약 내부에 파프니르 혼자만 있다면…….”
시구르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와 너, 그리고 에리크 정도만 진입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군.”
“셋이서 말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강력한 마법사인 아나스타샤 공녀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
사실 나도 동감이었다.
파프니르와 싸울 거라면 소드 마스터 세 명, 그리고 아나스타샤 정도만으로 충분할 것 같았다.
내 부하들이 2갑자 내공을 획득하긴 했지만, 다들 아직 검강을 쓰지 못하는 상태다. 파프니르에게 상처조차 입히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모리안은 신화병장인 게 볼그를 다루지만…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역시 아직 미숙하다.
“일반 기사들은 데리고 가 봤자 개죽음을 당할 거다.”
“그렇긴 합니다.”
“다만… 파프니르가 다른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난다면, 기사들의 도움도 필요하겠지.”
잔챙이들은 기사들에게 맡기고, 파프니르는 나와 시구르드 등이 상대한다.
그게 가장 적절할 것이다.
“결국 파프니르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군요.”
“그렇지.”
우리는 잠시 말없이 파프니르의 궁전을 응시했다.
마음 같아서는 궁전에 방문해서 ‘내일 어떻게 싸울 겁니까?’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카이트.”
“네, 아버지.”
궁전을 응시하면서, 시구르드가 물었다.
“너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될 수 있을 것 같나?”
“…….”
나는 잠시 고민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런가.”
시구르드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야말로…….”
“뭐지?”
“아버지는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조금 궁금했다.
“나에게는 재능이 없다.”
“네?”
“나는 굳이 말하자면 둔재에 가깝다. 그랜드 소드 마스터에 도달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
어이가 없었다.
에인헤랴르 최강의 검사가 둔재라고?
“아니, 무척 젊은 나이에 소드 마스터가 되지 않으셨습니까?”
“운이 좋았을 뿐이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비전서를 읽을 기회가 있었을 뿐이니까.”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비전서를 읽어서 그렇게 강해지신 거라고요?”
“그렇다.”
시구르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옛날에 네 어머니가 나한테 비전서를 보여 줬다.”
“……!”
“그 덕택에 빨리 강해질 수 있었을 뿐이다. 네 어머니가 말하길, 나는 둔재이기 때문에 그랜드 소드 마스터가 되는 건 어렵다고 했다.”
갑자기 놀라운 얘기가 연달아 나왔다.
브륀힐다가 시구르드에게 비전서를 보여 주고, 시구르드를 둔재라 평가했다니… 대체 브륀힐다는 뭐 하던 여자란 말인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잊어버려라”
“아니, 잠시만요.”
시구르드는 실언을 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고 했다.
“아버지, 거기까지 말씀하시고 얘기를 중간에 끊으시면 안 됩니다.”
“말했을 텐데.”
얼어붙은 땅을 걸으면서, 시구르드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브륀힐다에 관해서는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저한테는 들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닙니까?”
“…….”
시구르드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그렇게 생각하나.”
“네.”
엄밀히 따지자면, 나한테 이 얘기를 들을 권리는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카이트 본인이 아니니까.
하지만 카이트 입장에서는 친어머니의 얘기를 더 듣고 싶어 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
시구르드는 내 얼굴을 지그시 쳐다봤다.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계속 시구르드를 보고 있었다.
“이 싸움이 끝난 뒤.”
“네?”
“이 싸움이 끝난 뒤, 얘기해 주마.”
그렇게 말하며 시구르드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네가 궁금해한 것을, 전부.”
“…….”
“그러니.”
시구르드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승리하고, 살아남아라.”
“아버지…….”
“함께 고틀란드로 돌아가자, 카이트.”
함께 고틀란드로 돌아가자.
시구르드가 이런 식의 말을 건넨 건 처음이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구르드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지.”
“…….”
시구르드와 함께 나는 파프니르의 궁전을 뒤로 했다.
서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어깨를 나란히 하고.
* * *
어쩌다 보니 나는 하겐이 쓰던 방에서 묵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복도에서 모포를 덮고 자도 상관없었지만, 이바르와 어윈 등이 오늘만큼은 꼭 편한 침대에서 자라고 강요했다.
‘비전서라…….’
잠들기 전, 나는 하겐에게서 받은 구슬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비전서는 다 책으로 되어 있다고 했단 말이지.’
대체 이건 어떻게 보는 비전서인 걸까.
그동안 아무리 살펴봐도 답을 알 수 없었다.
아나스타샤에게도 슬쩍 보여 줬지만, 그냥 평범한 구슬 같다는 답변만 받았다.
‘어차피 이제는 너무 늦었지만…….’
파프니르와의 결전은 내일 시작될 것이다.
지금 당장 비전서의 내용을 읽을 수 있어도, 그걸 제대로 이해해서 실전에 활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결국 파프니르와의 싸움에는 써먹을 수 없는 것이다.
‘가만있자, 혹시 하겐이 날 속인 건 아니겠지?’
하겐이 나에게 한 방 먹여 주기 위해 마지막에 거짓말을 한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참 실없는 생각을 하는군…….’
나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하겐이 쓰던 침대여서 그런지 느낌이 아주 좋았다.
‘좀 제대로 설명을 해 주고 죽을 것이지…….’
마음속으로 하겐을 비난하면서 구슬을 침대 옆의 협탁에 던져 놨다.
그리고 협탁에 있던 ‘램프’에 손을 뻗었다.
‘불 끄고 잠이나 자자…….’
이 램프는 마석을 연료로 사용하는 등불인데, 단추 하나만 눌러도 자유자재로 껐다 켤 수 있는 신기한 물건이다.
루스베르그 후작의 소장품 중에도 이런 램프가 있었다. 처분할 때 엄청 비싸게 팔렸다.
“……?”
바로 그때.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램프 근처에 던져 놓은 구슬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뭐야?”
다급히 구슬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구슬은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
다시 협탁 위에 올려놨다.
그러니 구슬이 다시금 빛나기 시작했다.
“설마…….”
이번에는 단추를 눌러서 램프를 껐다.
그러자 구슬은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갔다.
램프를 다시 켜 보니, 구슬은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이건 아무래도…….”
그냥 빛에 반응하는 것일 리는 없다.
혹시 미세한 글자가 새겨져 있나 해서 불빛을 비춰 본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램프의 마석이 빛을 만들기 위해서 방출하는 마력에 반응하고 있는 건가?”
그 사실을 깨닫고,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동안 살짝 내공을 불어넣어 본 적은 있다. 별 반응이 없는 것 같아서 관뒀었는데…….
“내공이 아니라 마력에 반응하는 거였군…….”
하겐도 내가 당연히 마력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해 그냥 아무 설명 없이 넘겨줬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력 없이 내공만 갖고 있었고, 결국 지금까지 계속 삽질만 하게 되었다.
“하겐 이 자식아… 한마디만 해 주지.”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램프를 분해했다.
복잡한 장치에 연결되어 있는 큼직한 마석을 꺼낸 뒤, 구슬과 가까이했다.
예전에 마석에서 직접 마력을 흡수하던 때의 요령으로 마력을 끌어내서… 구슬 쪽으로 흐르게 했다.
“이제야 되는군.”
마력이 주입되면서, 구슬이 점점 활성화되는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구슬에서 글자가 표시된다거나?
바로 그때, 이변이 발생했다.
약하게 빛나던 구슬에서 갑자기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온 것이다.
하겐이 나를 죽이기 위해 넘겨준 폭약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을 정도였다.
“윽…….”
“……!”
하지만, 열기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구슬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그대로 내 눈으로 빨려 들어갔고…….
“……!”
무수히 많은 지식이, 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