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5
▣ 15화. 칼춤을 추고 오자 (4)
“그렇지 않아도 환영회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공자님.”
유르고스 남작인 스칸센 유르고스가 공손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공자님이 특별히 말씀하신만큼, 준비하고 있던 것보다 더 큰 규모로 연회를 열어 봤습니다. 어떠신지요?”
“그럭저럭 괜찮군.”
지금 눈앞에는 정말로 호화로운 연회가 펼쳐지고 있었다.
무대에서는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서 무희(舞姬)들이 춤을 추고 있고, 우리들 바로 앞에는 각양각색의 요리들이 차려져 있었다.
“이, 이렇게 엄청난 음식들이라니…….”
“게다가 술도 최고급들만! 와하하!”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있는 어윈과 모르트도 눈을 크게 뜨고 놀라워하고 있었다.
아직 젊은 기사들인 이 녀석들은 이런 요리를 대접받을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어윈, 모르트, 음식을 먹는 건 괜찮지만 술은 입에 대지 마라.”
“물론입니다.”
“아, 알고 있습니다.”
어윈과 모르트는 내 경호 기사이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술을 마셔서 취해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사실 내가 저 녀석들에게 주의를 준 건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지만.’
어쨌든 호화로운 연회였다.
성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 정도 규모의 연회를 열 일은 평소에 없었을 것이다.
“공자님, 술 한 잔 올리겠습니다.”
그때 페루스가 다가와서 나한테 술을 권했다.
나는 거만한 태도로 술을 받은 뒤, 단번에 들이켰다.
“어이쿠, 아주 시원하게 드시는군요!”
스칸센이 내가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면서 호들갑을 떴다.
남작 작위를 지닌 귀족인데 지나치게 저자세였다.
“그러면 제 잔도 받아 주십시오!”
“그래야지. 가득 채워 줬으면 좋겠군.”
그렇게 자세를 낮춘 스칸센에게, 나는 한없이 거만한 태도로 응대해 줬다.
용살검가의 망나니 카이트 에인헤랴르다운 태도를 보여 주고 싶었다.
‘카이트가 실제로 어떤 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면 됐겠지.’
어윈이나 모르트가 우려하는 시선을 던지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목적은 이 녀석들이 ‘역시 이놈은 그 망나니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맞구나.’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유르고스 남작.”
“네, 공자님.”
“연회가 끝난다고 해서… 정말로 끝은 아니겠지?”
나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말했다.
“나를 환영해 줄 거면, 마지막까지 확실히 환영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무, 물론입니다.”
스칸센이 손뼉을 치자, 어딘가에서 늘씬한 미녀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저희 영지에서 특별히 고른 여인들입니다. 마음에 드는 아이를 하나 고르시면…….”
“하나를 고르라고?”
“네?”
“이봐, 특별히 고른 여인들이라면서. 거기서 또 한 명을 골라야 하는 건가?”
당황해하는 스칸센 앞에서 페루스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밤이 되면 모든 아이를 침소로 들여보내겠습니다.”
“하하, 말귀를 잘 알아들어서 좋군!”
나는 술잔을 치켜들며 웃음을 터뜨렸다.
색골 망나니다운, 음흉한 웃음 말이다.
“복잡한 얘기는 내일 하고, 오늘은 밤을 즐기자고! 하하하!”
난장판을 벌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스칸센과 페루스가 경직된 미소를 지었다.
* * *
늦은 밤.
카이트를 침실로 안내한 뒤, 스칸센과 페루스는 목소리를 낮추고 대화를 나눴다.
“역시 망나니는 망나니였군.”
“네, 우리가 알고 있던 카이트 에인헤랴르가 맞는 것 같습니다.”
주색잡기에 환장한 에인헤랴르의 망나니.
그동안 알려져 있던 카이트 에인헤랴르의 모습과 동일했다.
“역시 킹 리자드맨을 쓰러뜨렸다는 건 가짜 정보였던 모양이야.”
“자세나 눈빛 같은 걸 봐도 별 볼 일 없는 인물 같았습니다.”
“검을 단련한 게 아니라는 건가?”
“네, 분명합니다.”
카이트 에인헤랴르는 별 볼 일 없는 인물이 맞다.
그 사실을 확인하고 두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산중교단의 암살자들을 격퇴한 건 수행원들이었군.”
“시중들던 아이들이 넌지시 물어보니, 5서클과 4서클이라고 합니다.”
“흠… 산중교단의 암살자가 5서클 한 명과 4서클 한 명에 당할 것 같지는 않은데.”
“어쨌든 그들도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페루스가 미소 지었다.
“이미 다 잠들어 있으니 말입니다.”
“술을 안 마셔서 걱정했는데, 디저트는 별 의심도 안 하고 먹더군.”
이번 연회에서 유르고스 가문이 준비한 술에는 수면제가 섞여 있었다.
술에 입을 대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해서 디저트에도 수면제를 섞어놨는데, 수행원들은 그걸 먹고 잠들어 버렸다.
“양이 부족해서 지속 시간이 짧긴 하겠지만… 그래도 한동안 일어나지 못할 겁니다.”
“그래, 그렇겠지.”
스칸센이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카이트 에인헤랴르 쪽은…….”
“아침까지 깨어나지 못하겠죠. 술을 잔뜩 퍼마셨으니 말입니다.”
“크크큭… 멍청한 녀석.”
아마 카이트는 여자들이 찾아오는 걸 기대하면서 침대에 누워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면제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그대로 곯아 떨어졌을 테고…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술판을 벌이더니, 꼴좋게 되었군.”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 저 녀석의 목을 베어서 아카샤니그두 님에게 바치면 되는 건가.”
“그 역할은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네 공적으로 삼아라.”
사실 6서클의 소드 엑스퍼트인 페루스의 실력이면 이런 짓을 꾸미지 않아도 카이트와 수행원들을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짓을 꾸민 건, 최대한 확실하게 일을 진행시키고 싶다는 페루스의 바람 때문이었다.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장남을 죽이는 일인 이상, 약간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무색무취무미(無色無臭無味)의 독약을 구할 수 있었다면 독살부터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면 부탁한다, 페루스.”
“네, 다녀오겠습니다.”
페루스는 스칸센을 내버려둔 채 카이트의 침소로 향했다.
이미 페루스의 손에는 유르고스 가문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장검이 들려 있었다.
‘이걸로 북부대공의 장남을 죽이고… 그 목을 아카샤니그두 님에게 바쳐, 용귀족이 되는 거다.’
드래곤들의 토지로 이주하면 유르고스 남작 가문 시절보다 훨씬 나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는 몬스터들뿐만 아니라 인간 노예들도 있다.
그들 위에서 귀족으로서 군림하는 건 매우 즐거운 일일 것이다.
‘이미 준비는 다 되어 있는 상태니까.’
페루스는 이미 아카샤니그두에게 연락을 취한 상태였다.
아직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분명 아카샤니그두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그 기대를 충족시킨다면… 염원하던 용귀족이 될 수 있다.
“…….”
주위는 조용했다.
거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시종 등도 다 내보낸 상태였다.
어차피 아카샤니그두에게 가는 건 스칸센과 페루스 등 유르고스 가문의 사람들과 일부 측근들뿐이니까.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군.’
카이트의 침소에 발을 들이자, 드르렁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여러 여자와 동시에 뒹구는 꿈?’
페루스는 마음속으로 비웃으면서 침대 쪽으로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는 멍청한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
이불을 걷은 순간, 페루스는 깜짝 놀랐다.
침대에 누워 있는 건… 카이트가 아니었다.
“수, 수행 기사?!”
카이트를 수행하던 기사 중 한 명이었다.
이름은 아마… 모르트였던가.
“어째서 이 기사가 여기에……!”
수면제에 취해 방에서 곯아떨어져 있어야할 모르트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아니, 애초에 카이트는 어디로 간 걸까.
카이트야말로 대량의 수면제를 마시고 완전히 잠들었을 텐데…….
“페루스 유르고스, 대체 뭐 하고 있는 겁니까!”
“……!”
그때, 커튼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이 있었다.
수행원 중 한 명인 어윈이었다.
“카이트 님의 침소에 검을 들고 찾아오다니, 대체 무슨 짓입니까!”
“어, 어떻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윈도 수면제에 취해 방에서 잠들어있어야 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아예 멀쩡한 모습으로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내가 혈도를 짚어서 강제로 잠에서 깨워 줬기 때문이지.”
“……!”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페루스는 흠칫 놀라면서 뒤돌아봤다.
그곳에는… 카이트가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스칸센을 한 손으로 질질 끌면서.
* * *
“아버지……!”
비명을 지르는 페루스를 향해, 나는 축 늘어진 스칸센을 집어 던졌다.
그리고 어윈에게 말을 걸었다.
“어윈.”
“네, 카이트 님!”
“페루스 유르고스가 검을 들고 내 침소에 숨어들어온 것, 똑똑히 봤겠지?”
“물론입니다!”
“좋다. 다음에 대공 전하 앞에서 직접 네 입으로 증언해 주길 바란다.”
“네, 기사의 명예를 걸고 진실만을 증언하겠습니다!”
힘차게 대답하는 어윈에게서 수면제의 영향은 느껴지지 않았다.
만약, 술까지 퍼마셨다면 내가 각성혈을 자극해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참고로 모르트는 나 몰래 술을 몇 잔 마신 상태였다.
“어, 어떻게 멀쩡한 거지?”
페루스가 스칸센을 부축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은 엄청난 양의 수면제를 먹었어! 그런데 어떻게……!”
“미안하지만, 나한테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뭐, 뭐라고?”
삼황제독공(三黃除毒功).
이것도 1갑자의 내공을 갖추게 되면서 비로소 사용할 수 있게 된 무공이다.
청열해독(淸熱解毒), 활혈거어(活血祛瘀)해주는 약재들로 탕약을 만들어 잔뜩 들이킨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며, 온갖 독을 없애고 피를 맑게 해준다.
“오늘 연회에서 술잔을 입에 댄 시점에서, 나한테는 통하지 않는 약이라는 걸 알 수 있었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런 게 있단다. 네가 모를 뿐이지.”
엄밀히 말하자면 이 세상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 있는 거지만 말이다.
“슬슬 아버지는 내려놓도록 해라. 목숨에 지장은 없을 거다.”
“큭……!”
페루스가 스칸센을 바닥에 눕히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영롱하게 빛나는 보검을 치켜들었다.
“페루스 유르고스, 감히……!”
그 모습을 보고 어윈이 다급히 검을 뽑아들었지만, 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어윈, 모르트를 데리고 물러서.”
“카이트 님!”
“명령이다.”
“아, 알겠습니다……!”
어윈이 급히 모르트를 안아들고 자리를 피하는 걸 확인한 뒤, 나도 검을 뽑았다.
“카이트 에인헤랴르…….”
페루스가 들고 있는 검에서 눈부신 오러가 전개되었다.
상당히 수준이 높다. 무림에 가서도 저 정도면 매우 훌륭하다고 칭찬을 받을 것이다.
상대방을 확실히 베어 버리겠다는, 뚜렷한 의지가 담긴 오러였다.
“괜히 시간 끌지 말고, 처음부터 이럴 걸 그랬군.”
“나도 마음만 같아서는 그러고 싶었지.”
시구르드가 그냥 다 죽여 버리고 오라고 명령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구르드는 명분을 원하는 듯했다.
유르고스 가문에서 먼저 칼을 뽑았다는 명분 말이다.
“북부대공은 나한테 너희들을 압박하라고 말했지. 하지만 내가 먼저 움직이기도 전에 너희가 먼저 판을 깔아 주더군.”
“……!”
“하지만, 너희들이 깔아 준 판 위에서 놀아 주는 것도 이걸로 끝이다.”
나는 손에 든 검에 기(氣)를 흐르게 만들었다.
단순히 칼날에 기운을 불어넣는 어기충검(御氣充劍)이 아니다.
유형화된 기운이 칼날 전체를 감싸, 기운이 닿는 것만으로도 상대를 해칠 수 있게 되는 검기상인(劍氣傷人)의 경지.
“어, 어떻게 1서클의 소드 노비스 주제에 그 정도 오러를……!”
“이건 오러가 아니다.”
본래 2갑자의 절정고수부터 쓸 수 있는 거지만… 나는 검의 이치를 깨달은 검마(劍魔)였다.
1갑자의 내공만으로도 이걸 펼칠 수 있었다.
“이건 검기(劍氣)라고 한다.”
검기를 두른 칼날이, 경악하는 페루스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