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56
▣ 156화. 거룡을 짓밟아라 (1)
성채도시 고틀란드.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본거지로서, 몬스터 등을 토벌하고 얻은 전리품을 가공하여 유통하는 것으로 번성해 온 도시.
가끔 침입자들이 숨어들어오기는 했지만, 적군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함락된 적은 수백 년 동안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철벽의 성채도시는 함락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프리드레이프 님! 동쪽 성벽이 위험합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알비스 경은 계속 여기를 지켜 주십시오!”
에인헤랴르의 막내아들인 프리드레이프는 검을 들고 성벽 위를 달렸다.
현재 고틀란드는 적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태였다.
‘젠장, 이런 상황까지 몰리게 되다니……!’
지금으로부터 약 5일 전.
남부에서 바르타니아 공작이 갑자기 쳐들어왔다.
바르타니아 공작은 황제파 귀족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거물로, 옛 루스베르그 후작령과 가까운 곳에 영지를 갖고 있다. 상당한 숫자의 사병(私兵)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바르타니아 공작이 최근 갑자기 에인헤랴르를 벌주겠다며 북부로 쳐들어온 것이다.
‘루스베르그 후작을 부당하게 살해하고 그 영지를 빼앗은 죄를 묻겠다니…….’
몇 달 전에 있었던 루스베르그 후작과의 전쟁.
그것이 바르타니아가 내세운 명분이었다.
‘사실 카이트 형님도 황제파 귀족들이 공격해 오는 상황을 우려하고 계셨지만…….’
루스베르그 후작은 남부의 황제파 귀족들과 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카이트는 아스타스 상단(商團)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며 계속 남부를 경계했다.
황제파 귀족들이 어떤 식으로든 움직임을 보일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렇게 기습적으로 공격해 올 줄은 몰랐어.’
평소 같았으면 사전에 움직임을 감지하여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르타니아 공작은 아주 은밀히 기습 계획을 준비한 듯했다.
바르타니아 공작의 병사들이 루스베르그 후작령 근처에 도달할 때까지, 에인헤랴르 측은 어떤 움직임도 감지하지 못했다.
아스타스 상단에서 다급히 연락이 오긴 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황제파 귀족답지 않은 움직임이었어. 놈들은 그렇게 신속하게 움직이지 않는데.’
황제파 귀족들은 귀족의 예법을 중요시한다.
다른 귀족과 싸울 때도 선전포고를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또한 주위 귀족들에게 자신의 명분을 널리 알리는 것도 필수적이다.
이렇게 아무런 낌새 없이 다짜고짜 공격해 오는 건 황제파 귀족들답지 않은 일이었다.
‘하필이면 카이트 형님이 안 계실 때 쳐들어오다니…….’
평소 카이트는 남쪽의 감찰기사대 본부에 머무른다.
바르타니아 공작이 남쪽에서 쳐들어와도 카이트가 충분히 막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카이트는 원정을 나가 자리를 비운 상태다.
그동안 카이트가 육성해 놓은 병사들, 그리고 카이트에게 협력하는 중소 귀족들이 바르타니아 공작을 막으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적군은 루스베르그 후작령을 빠르게 제압한 뒤, 산맥을 넘어 고틀란드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고틀란드를 포위한 채 총공세를 펼치는 중이었다.
‘현재 에인헤랴르의 정예병들은 대부분 원정을 나가 있어. 아버지도 안 계시고… 지금 있는 병력만으로는 막아 내기 어려워!’
급보를 들은 아그나르와 헤스테인이 서쪽에서 달려오고 있기는 하다.
아그나르의 황룡기사단과 헤스테인의 적룡기사단이 합류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도착할 무렵에는 이미 고틀란드가 함락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최대한 버텨야 한다!’
프리드레이프는 이를 악물었다.
성벽 아래에서 계속 불화살이 날아들었지만, 검을 휘둘러 쳐냈다.
‘아버지와 카이트 형님이 나한테 고틀란드를 맡기셨으니까!’
프리드레이프가 고틀란드 방위의 총책임자인 것은 아니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일개 기사대 대장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프리드레이프는 누구보다 강한 책임감에 휩싸인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나는 프리드레이프 에인헤랴르… 북부대공 시구르드의 막내아들이다!”
목표 지점에 도착한 프리드레이프는 성벽 위로 올라오는 적병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덤벼라! 내가 있는 한, 너희들은 절대로 고틀란드를 함락시키지 못할 것이다!”
적들을 도발하면서 오러 블레이드를 펼쳤다.
지금 이곳에는 시구르드도 없고, 카이트를 비롯한 형들도 없다.
그러니 프리드레이프가 그들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대신해 줘야 한다.
“프리드레이프 님과 함께 싸우자!”
“고틀란드를 지켜야 한다!”
“에인헤랴르 만세……!”
프리드레이프의 분전을 보고 아군도 사기가 오른 듯했다.
“흔들리지 마라! 조만간 황룡기사단과 적룡기사단도 올 것이다!”
“우리가 버티면 된다!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고틀란드를 지켜 내라!”
“따뜻한 곳에서 살던 남부 놈들에게 북부의 혹독함을 맛보여 줘라!”
위태로웠던 동쪽 성벽의 방어 태세도 다시금 정비되어 가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안도하면서 프리드레이프는 쉴 새 없이 검을 휘둘렀다.
‘젠장, 하지만 마력이…….’
슬슬 마력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셋째 형인 헤스테인처럼 파워풀한 공격만 펼친 것도 아니고, 최대한 마력을 아끼면서 움직였는데… 쉬지도 않고 계속 검을 휘두르며 오러를 사용한 탓인 것 같다.
‘그래도 여기서 내가 빠지면 안 돼!’
에인헤랴르의 아들로서, 먼저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다.
성벽 위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해서 싸워야 했다.
‘죄송합니다, 어머니!’
대공비(大公妃) 프레데군다는 지금 대공궁에서 아들의 무사를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제발 무리하지 말라고 부탁하던 어머니의 말을 떠올리면서, 프리드레이프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쥐어짜서 싸워야 합니다!’
성벽 위로 올라온 병사의 목을 날리고, 그 병사가 사용한 공성용 사다리를 발로 차서 떨어뜨렸다.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발생해 성벽 아래로 추락할 뻔했지만, 가까스로 몸을 지탱했다.
“프리드레이프 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여러분은 걱정 말고 계속해서 응전을…….”
다시 검을 치켜들며 전투를 계속하려던 그때.
어디선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
푸욱!
성벽 아래에서 날아온 화살 하나가 갑옷을 뚫고 프리드레이프의 가슴에 꽂혔다.
* * *
“고, 공작님, 해치우신 겁니까?”
건장한 체격을 지닌 거한(巨漢)이 활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며, 알테라스 백작은 다급히 말을 걸었다.
“대, 대단하십니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에인헤랴르의 막내아들을 찾아내서 명중시키시다니…….”
“조금 부족했다.”
“네?”
“즉사시키지는 못했다. 아직 이 몸이 익숙하지 않은 탓이다.”
“……?”
알테라스는 잠시 눈을 깜박였다.
즉사시키지 못했다는 말은 이해했지만,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바르타니아 공작님은 요즘 들어서 가끔 이상한 말씀을 하신단 말이지?’
알테라스 앞에 서 있는 거한이야말로, 이번 전쟁을 주도한 바르타니아 공작이었다.
원래 바르타니아 공작은 비교적 온화한 성격의 남자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루스베르그 후작의 원수를 갚겠다며 북부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루스베르그 후작하고 가까운 사이이긴 했지만, 이런 행동을 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데…….’
그동안 귀족들 사이에서 카이트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가 종종 오가긴 했다.
하지만 북부의 패자(覇者)인 에인헤랴르를 상대로 싸움을 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행동에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동안 온건한 태도를 보였던 바르타니아 공작이 갑자기 예고도 없이 군사를 움직여 북부로 진격한 것이다.
‘다른 귀족들도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는 것 같던데… 뒷수습을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군.’
바르타니아 공작의 기습은 별로 귀족적인 행동이 아니었다.
전격적인 기습 덕분에 에인헤랴르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 귀족 사회에서 바르타니아 공작의 이미지는 폭락할 것이다.
‘이번 기회에 아예 에인헤랴르를 몰아내고 북부를 지배할 생각이신가? 그런 건 귀족들은 물론이고 황실에서도 용납해 주지 않을 텐데…….’
어쨌든, 머지않아 고틀란드는 함락될 것이다.
각지에서 원군이 달려오고 있겠지만 이미 늦었다.
“알테라스 백작.”
“앗, 네, 공작님.”
생각에 잠겨 있던 알테라스는 바르타니아의 목소리에 움찔했다.
“고틀란드를 완전히 초토화하려고 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듣고, 알테라스는 눈을 크게 떴다.
“초토화라니, 무슨 말씀을…….”
“에인헤랴르가 대규모 병력을 운용할 수 있는 건, 고틀란드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수익이 있기 때문이다.”
“……!”
“시구르드와 카이트가 귀환하더라도 놈들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아야 한다.”
에인헤랴르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은 고틀란드에서 가공되어 각지로 유통된다.
그 수익이 없으면 에인헤랴르는 당장 배를 채울 군량조차 마련하기 어려워진다.
“고, 공작님,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승리를 위한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혹시 에인헤랴르를 완전히 몰아내고 북부를 지배하시려는 건지…….”
“자세한 것까지 네가 알 필요는 없다, 알테라스 백작.”
“…….”
냉정한 목소리로 말하는 바르타니아를 보면서, 알테라스는 위화감이 점점 커져만 가는 걸 느꼈다.
‘그래, 방금 전에 성벽 위에 있던 에인헤랴르의 아들에게 화살을 명중시킨 것도…….’
바르타니아는 활을 잘 쏘는 걸로 유명했지만, 어디까지나 취미 수준이었다.
마력량도 5서클밖에 안 되고, 무력이 뛰어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떻게 성벽 위에 있는 인물을 정확히 저격할 수 있었던 걸까.
‘정말로 이 사람은… 바르타니아 공작이 맞는 걸까.’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분이 바르타니아 공작님이 아니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렇게 의구심을 품은 걸 알면 바르타니아가 화를 낼 것이다.
알테라스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지워 버리려 했다.
“음?”
“앗, 저, 저는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눈썹을 찌푸리는 바르타니아의 모습을 보고, 알테라스는 다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바르타니아가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 본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북쪽 하늘에서…….”
“네?”
알테라스는 다급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하지만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무언가가 접근하고 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만…….”
“설마… 아니, 그럴 리는 없다. 이렇게 빨리 대응할 수는…….”
혼잣말을 하던 바르타니아가 갑자기 흠칫했다.
“공작님?”
“그렇다면 이건…….”
바르타니아의 얼굴을 들여다본 순간, 알테라스는 몸을 떨었다.
예전에는 항상 평온하기만 했던 바르타니아의 얼굴이… 갑자기 악마처럼 일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니드호그… 이게 네 본심인가!”
바르타니아의 입에서 튀어나온 목소리는, 살기로 가득 차 있었다.
* * *
“프리드레이프 님! 괜찮으십니까?!”
“화살을 맞으셨습니다!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젠장, 갑옷 때문에 얼마나 깊게 박혔는지 알 수가……!”
주위의 기사들이 떠들어 대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프리드레이프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갑옷에 오러를 전개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슴 깊숙이 파고들지는 않았다. 조금만 더 깊게 파고들었다면 생명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벼운 부상은 아니었고, 마력도 거의 고갈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안 돼. 내가, 계속 싸우지 않으면…….’
지금은 아군이 너무 불리하다.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버텨야 되는 만큼, 프리드레이프의 역할이 중요했다.
‘나는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막내아들… 아버지와 형님들이 없는 고틀란드를, 내가 지켜야…….’
지금 당장 일어서서 검을 휘두르며 적들을 도륙하고 싶었다.
동경하는 아버지나 첫째 형처럼 말이다.
‘아버지, 형님들, 힘을 주세요…….’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주위 기사들이 뭐라고 소리쳤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으, 윽……!”
눈을 부릅뜨며 상반신을 일으키려 했을 때.
갑자기 머리 위로 비룡(飛龍) 한 마리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와이번?’
그 직후.
검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
쿵! 콰앙! 콰쾅! 쿠쿠쿵!!
네 자루의 검이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성벽에 접근하던 적들을 유린했다.
엄청난 에너지가 작렬하는 굉음에 귀가 멍멍해질 정도였다.
“아…….”
그리고, 프리드레이프는 보았다.
하늘에서 선회하는 와이번 위에서 지상을 노려보고 있는… 낯익은 얼굴을.
“오셨군요…….”
그 순간,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게 프리드레이프의 역할이었다.
그 역할을 완수했다고 생각하니,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 느껴졌다.
“뒷일을 부탁하겠습니다, 카이트 형님…….”
늦지 않고 도착해 준 첫째 형에게 감사하면서.
프리드레이프는 안도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 *
‘수고 많았다, 프리드레이프.’
와이번을 타고 고틀란드 상공을 선회하면서, 나는 성벽 위에 쓰러져 있는 프리드레이프를 내려다봤다.
정신을 잃은 것 같지만, 푹 쉬면 괜찮아질 것이다.
‘내가 없는 동안, 시간을 벌어 줘서 고맙다.’
막내동생에게 마음속으로 고마움을 표한 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디트리히.”
“네, 카이트 님.”
대답을 한 건 근처에서 날고 있던 디트리히였다.
와이번을 처음 타보는 내가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던 건 디트리히가 옆에서 도와줬기 때문이다.
“거룡 요르문간드를 끌어낸다.”
나는 지상을 향해 날렸던 검을 다시 불러들였다.
칼라드볼그, 발뭉, 노퉁, 그리고 그람까지… 네 자루의 신화병장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협조해라.”
“알겠습니다.”
순순히 대답하는 디트리히와 함께 지상을 향해 강하했다.
네 자루의 신화병장을 사용해 적들을 유린하여, 거룡 요르문간드를 끌어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