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57
▣ 157화. 거룡을 짓밟아라 (2)
바르타니아 공작의 사병(私兵)은 황제파 귀족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를 자랑한다.
영지를 지킬 병력도 남기지 않고 전군을 이끌고 왔기 때문에, 중심 전력이 부재중인 에인헤랴르를 상대로 쉽게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에인헤랴르의 본거지인 고틀란드를 포위한 시점에서 승리는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저게 뭐지?”
“비룡(飛龍)?”
하늘을 날아온 와이번에게서 갑자기 검이 떨어져 내리더니, 동쪽 성벽을 공략하던 병사들을 몰살시켰다.
다른 병사들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전율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에인헤랴르가 용기사(龍騎士)를 운용하고 있었나?”
“말도 안 돼. 그런 건 전설 속에나 존재했던 거야.”
“아니, 드래곤을 섬기는 용귀족 중에는 와이번을 타고 다니는 용기병이 있다는 얘기가…….”
“용귀족이 왜 에인헤랴르를 도와 우리를 공격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너무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졌기 때문에 상황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늦어졌다.
그렇기에, 다음 공격에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지?”
“이상한 푸른빛이…….”
콰르릉!
갑자기 번개가 떨어져 내렸다.
지상을 향해 강하하기 시작한 와이번에게서 엄청난 뇌전이 발생한 것이다.
“마법인가?!”
“아니, 와이번을 타고 있는 남자가 검을 휘두르니까 번개가 떨어져 내렸어!”
“그럼 오러라는 건가? 오러로 이런 뇌전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뇌전의 위력은 절대적이었다.
와이번은 병사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며 계속해서 번개를 떨어뜨렸고, 전장에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살을 쏴라!”
“격추해라! 떨어뜨리는 거다!”
다급해진 지휘관들이 뒤늦게 명령을 내렸다.
저렇게 날아다니는 와이번을 향해 활을 쏘면 아군의 머리 위에도 화살이 떨어지게 되지만, 더 이상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
하지만.
단 하나의 화살도 와이번에 접근하지 못했다.
함께 비행하던 또 다른 와이번에서 뿜어져 나온 ‘녹색의 오러’가 모든 화살을 공중에서 집어 삼켰기 때문이다.
“화살이…….”
“녹고 있는 건가?!”
녹색의 오러에 휩쓸린 화살은 공중에서 녹아내렸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다들 경악하고 있을 때, 녹색의 오러가 더 넓게 퍼졌다.
마치 안개같이 흩어진 녹색 기운에 접촉한 순간, 병사들이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커헉!”
“도, 독이다!”
“녹색 안개에서 벗어나라!”
이제 진형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두 마리의 와이번에서 떨어져 내린 뇌전과 독무(毒霧)가 병사들을 공황에 빠뜨렸다.
“우왕좌왕하지 마라! 진형을 제대로 유지하면서 움직… 크악!”
고틀란드를 철저히 포위하고 있던 바르타니아 공작의 대군(大軍)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용기사 두 명이 완전히 전황을 바꿔 버린 것이다.
* * *
“칼라드볼그의 에테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계시군요, 카이트 님.”
디트리히가 내 뒤에서 비행하며 말을 걸어왔다.
“마법을 쓰지 않고도 이 정도의 광역 공격이 가능한 사람은 이 세상에 카이트 님뿐일 겁니다.”
“칭찬해 줘서 고맙군, 디트리히.”
디트리히에게 대꾸하면서, 나는 지상에 깔린 녹색의 안개를 살폈다.
니드호그 파벌의 용귀족들이 사용하는 ‘오러 포그’가 분명했다.
‘오러를 넓게 퍼뜨려, 독성을 지닌 안개로 전장을 뒤덮는 기술…….’
디트리히의 오러 포그는 매우 강력했다.
범위도 위력도 다른 용귀족들보다 훨씬 뛰어난 것으로 보였다.
‘대항할 수단이 없으면 전멸할 수밖에 없겠군.’
기사단 하나 정도는 쉽게 몰살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니드호그 파벌 최강의 용귀족다운 능력이었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일대일 능력도 뛰어날 터… 한번 겨뤄 보고 싶군.’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틀란드 상공을 한 바퀴 돌았다.
성벽을 공격하던 병사들은 거의 다 물러난 상태였다.
“카이트 님! 와주셨군요!”
“카이트 공자님이 오셨으니 이제 안심입니다!”
“와이번은 용귀족들에게서 빼앗으신 겁니까? 멋지십니다!”
성벽 위의 기사들이 두 손을 치켜들고 환호하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피투성이였지만 표정은 밝았다.
‘여기는 이제 괜찮겠군.’
고틀란드의 상태를 확인한 뒤, 나는 와이번의 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게 했다.
디트리히 덕분에 와이번 조종에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디트리히, 요르문간드의 기척을 느낄 수 있나?”
“아니요. 별다른 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내 뒤를 따르며 디트리히가 말했다.
“하지만 폴리모프를 사용하면 기척을 위장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아마 요르문간드는 평범한 인간 수준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약하게 만들었을 겁니다.”
폴리모프가 골치 아픈 점이 바로 이것이다.
단순히 겉모습만 바꿀 뿐이라면 내가 바로 간파할 수 있다. 무수절맥공 등을 사용해 마력이나 에테르를 탐지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런 걸 전부 위장할 수 있다면 놈들을 찾는 게 어려워진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있겠지.”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적군의 본진(本陣)으로 시선을 향했다.
성벽 쪽에서 도망친 병사들도 그곳으로 집결하는 중이었다.
“적의 본진을 궤멸시키고, 요르문간드를 끌어낸다.”
“알겠습니다.”
요르문간드는 본진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본진이 궤멸되는 상황이면 알아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카이트 님, 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디트리히 말대로 본진 전체를 반투명한 방어막이 감싸고 있었다.
우리가 번개와 독 안개로 병사들을 몰살시키는 걸 보고, 공격 자체를 차단하기 위해 방어 마법을 전개한 것 같았다.
“저 정도의 다중 방어막이면 오러 포그가 침투하기 어렵습니다. 카이트 님의 뇌전도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겁니다.”
“그럴 것 같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지상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나는 양손에 검을 들었다.
오른손에는 발뭉, 왼손에는 노퉁을.
“여기서 해치우도록 하지.”
“카이트 님, 설마…….”
디트리히에게 대꾸하지 않으면서, 두 신화병장의 에테르를 끌어올렸다.
극음(極陰)의 성질로 발현되는 발뭉의 힘.
극양(極陽)의 성질로 발현되는 노퉁의 힘.
두 가지 상반된 기운을 어우러지게 만들어, 태극(太極)을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더 원초적인 상태로 만든다.
‘무극(無極)으로 돌아가라.’
태초의 기운, 무극.
모든 것이 분화되기 전에 존재했던 정순한 기운.
도가(道家)의 가르침에 의하면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게 되면 무극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아직 나는 궁극적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였지만, 일시적으로 유사한 현상을 발생시킬 수 있다.
‘수라무극신공(修羅無極神功).’
파프니르를 쓰러뜨렸을 때 사용했던 힘.
극음과 극양을 합쳐 태극을 넘어 무극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무공.
그것을 펼치기 위해, 발뭉과 노퉁을 동시에 휘둘렀다.
* * *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바르타니아 공작의 측근인 알테라스 백작은 혼란에 빠져 있는 상태였다.
정체불명의 인물이 와이번을 타고 아군을 완전히 와해시킨 뒤, 바르타니아와 알테라스가 있는 본진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에인헤랴르를 도와준 걸 보면 에인헤랴르 측의 기사인가? 그런데 왜 와이번을 타고 있는 거지? 설마 용귀족인가? 용귀족이 왜 에인헤랴르를 돕지?’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게 하나 있긴 했다.
지금 아군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바르타니아 공작님!”
알테라스는 목소리를 높였다.
“자칫하면 우리 모두 죽게 됩니다! 일단 후퇴합시다!”
“…….”
“마법사들이 방어막으로 적을 막는 동안, 남쪽으로 후퇴하는 겁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 고틀란드를 함락시키는 건 불가능해진다.
에인헤랴르 측의 원군이 계속 도착할 테니까.
하지만 여기서 영문도 모른 채 개죽음을 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났다.
“제 부하 중에 8서클의 실력자가 있습니다! 그 녀석도 남아서 놈들을 막게 하고…….”
“소용없는 짓이다.”
침묵을 지키던 바르타니아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8서클? 그 정도 인간이 저걸 막을 수 있을 리 없다.”
“네? 그게 무슨…….”
“저건 에인헤랴르의 장남, 그리고 니드호그의 오른팔이다.”
“……?”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에인헤랴르의 장남이라면… 카, 카이트 에인헤랴르 말입니까?!”
“그렇다.”
“머, 멀리 북쪽으로 원정을 나갔다는 카이트가 왜 여기에 나타난 겁니까?! 심지어 와이번까지 타고!”
이번 기습은 카이트의 부재를 확인하고 진행한 것이었다.
이렇게 금방 카이트가 돌아올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게, 게다가, 니드호그라면, 에인션트 드래곤인 독룡 니드호그? 그 오른팔이라는 건 용귀족? 어째서 용귀족이 카이트 에인헤랴르와…….”
혼란에 빠진 채 떠듬거리는 알테라스 앞에서, 바르타니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니드호그는 배신한 것이다.”
“네? 배신이라니…….”
“우리들… 에인션트 드래곤을 말이다.”
“…….”
이 사람이 실성을 했나.
알테라스는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에인헤랴르와의 전쟁에서 전력을 많이 잃었다는 이유로 영구동토에 남는다고 했을 때, 다른 속셈이 있는지 의심해야 했다. 파프니르도 남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는데, 설마 이게 본심이었을 줄이야.”
“고, 공작님, 대체 무슨 소리를…….”
“처음부터 에인헤랴르와 손을 잡고 우리 에인션트 드래곤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던 건가?”
이상한 혼잣말을 하면서 바르타니아가 웃어 댔다.
어깨를 들썩이면서, 귀족답지 않게.
“인간과의 공존을 추구하다니, 어리석구나, 니드호그.”
“공작님…….”
그 모습을 보며 알테라스는 침을 삼켰다.
“바르타니아 공작님이 맞으십니까?”
“아니다, 알테라스 백작.”
그렇게 말하면서, 바르타니아 공작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가 크게 웃었다.
“나는 요르문간드… 에인션트 드래곤인 거룡(巨龍) 요르문간드다.”
그 말을 듣고.
알테라스는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사, 살려 주십시오.”
의문을 느끼지도 않았다.
정체를 밝힌 순간, 그에게서 압도적인 ‘존재감’이 느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에인션트 드래곤이 왜 인간의 모습을 한 채 여기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목숨부터 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도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 주십…….”
“그렇게 애원할 필요는 없다. 딱히 입막음을 할 생각도 없으니까.”
“아, 감사, 감사합…….”
알테라스가 안도하면서 감사를 표하려고 했을 때.
“저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여기서 나 하나뿐일 테니 말이다.”
“……!”
냉정한 목소리가 들린 직후.
압도적인 에너지가 본진 전체를 덮쳤다.
* * *
적진이 완전히 괴멸된 것을 확인하고, 나는 와이번을 착지시켰다.
마법사들이 전개한 다중 방어막도 수라무극신공 앞에서는 무력했다.
“엄청난 파괴력이군요.”
디트리히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파프니르를 쓰러뜨릴 때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만, 정말 놀라운 위력입니다.”
“자주 쓸 수 있는 힘은 아니야.”
발뭉과 노퉁의 에테르를 한계까지 끌어내야 하기 때문에, 연발은 불가능하다.
내가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하면 이런 것도 극복할 수 있겠지만… 아직 현경에 머무르고 있는 상태라, 발뭉과 노퉁의 에테르에 의존해야 한다.
“카이트 님, 그러면…….”
디트리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위험한 것 아닙니까? 요르문간드를 상대하려면…….”
디트리히는 내가 수라무극신공을 사용해서 파프니르를 쓰러뜨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제 요르문간드와 싸워야 하는데 수라무극신공을 쓸 수 없으면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이었다.
“걱정 안 해도 된다, 디트리히.”
하지만 나는 표정 변화 없이 대꾸했다.
“지금의 나는, 파프니르와 싸우고 있을 때의 내가 아니니까.”
“네……?”
수라무극신공을 쓸 수 없었다면, 나는 파프니르에게 패배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방금 전에 사용한 것 말고도, 에인션트 드래곤을 쓰러뜨릴 수 있는 기술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그건…….”
디트리히의 질문에 대답해 주려고 했을 때.
무수한 시체들 속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색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건장한 체구의 거한(巨漢)이었다.
수라무극신공의 한복판에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상처 하나 없었다.
그저 먼지를 조금 뒤집어썼을 뿐이다.
‘엄청난 존재감이군.’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별다른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남자에게서는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산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용케도 여기까지 왔구나, 카이트 에인헤랴르.”
그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지진 같은 진동이 발생했다.
“나는 거룡 요르문간드… 너의 도전을 환영한다.”
“그 발언.”
막대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상대 앞에서, 나는 냉정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곧 후회하게 될 거다.”
나는 분노검 그람을 뽑아 들었다.
용살검가 에인헤랴르의 장남으로서, 에인션트 드래곤 중 가장 큰 몸집을 지닌 거룡 요르문간드를 토벌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