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59
▣ 159화. 거룡을 짓밟아라 (4)
콰콰콰쾅!
산사태와 같은 소리를 내면서, 요르문간드가 몸을 비틀었다.
요르문간드는 다른 드래곤들과는 달리 날개도 없고 다리도 없었다. 머리는 물고기하고도 비슷했지만, 어쨌든 뱀과 비슷한 형상이었고 움직임도 뱀에 가까웠다.
문제는 요르문간드의 몸집이 너무 커서, 뱀처럼 기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파괴를 불러일으켰다는 점이다.
“카이트 님!”
바로 그때, 와이번을 탄 디트리히가 나한테로 날아왔다.
방금 전까지 내가 타고 다니던 와이번을 데리고.
“이쪽입니다!”
나는 즉각 경공을 사용해 날아올라 와이번에 올라탔다.
요르문간드가 발생시킨 거대한 파괴에서 벗어나려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게 최선이었다.
“……!”
하지만, 날아오른다고 해서 완전히 안전해진 것은 아니었다.
충격파가 하늘까지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와이번이 목숨을 잃겠군.’
나는 검막을 만들어 와이번까지 보호했다.
디트리히도 오러의 방어막을 만들어 자기 와이번을 지켜 주고 있었다.
“어디 있느냐, 카이트 에인헤랴르.”
지상에서 요르문간드가 고개를 치켜들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물고기 같은 얼굴로 미소 지었다.
“뭐냐, 거기에 있었나. 너무 왜소해서 찾기가 어렵군.”
아까 내가 했던 말을 비꼬듯이, 요르문간드가 중얼거렸다.
“조금만 툭 건드려도 짓이겨지겠구나.”
“……!”
쿠쿠쿠쿵!
굉음과 함께 요르문간드가 꼬리를 치켜들었다.
마치 높은 산이 나를 향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피해야 합니다!”
“알고 있어!”
디트리히와 대화를 나누면서 더 높이 상승했다.
꼬리에 직격당하는 건 피할 수 있었지만, 역시 충격파가 우리를 덮쳤다.
“캬아!”
검막으로 방어했는데도 불구하고 와이번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만큼 충격이 강했던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강력한 충격파가 발생하고 있어. 뭔가 이상한데.’
아무리 거대한 질량이라고 해도, 동작 하나하나에 이런 충격파가 발생하는 건 이상하다.
그렇다고 움직일 때마다 일부러 충격파를 발생시키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디트리히를 향해 질문을 던졌다.
“디트리히, 요르문간드 정도면 에테르 소비가 격심하겠지?”
“그야… 그렇습니다. 몸집이 크면 클수록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에테르 입자에서 대량의 에너지를 끌어내야 하니까요.”
“움직일 때마다 에테르의 힘을 대량으로 사용해야 하겠군.”
“그럴 겁니다. 에테르 없이는 꼼짝도 하지 못하겠죠.”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내 추측에 확신을 가졌다.
요르문간드는 근육의 힘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에테르를 사용해 물리적 힘을 발생시켜 자신의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매번 발생하는 충격파는 그 여파에 불과해. 파프니르가 날아오를 때도 충격파가 발생했으니까.’
저렇게 커다란 몸집으로 계속 날뛴다면 에테르 소비가 격심할 것이다.
그리고 에테르에서 더 이상 힘을 끌어낼 수 없게 되면, 디트리히의 말대로 꼼짝도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시간을 끌 생각은 하지 마라, 카이트 에인헤랴르!”
아래쪽에서 요르문간드의 포효가 들려왔다.
“내 권속(眷屬)들에게서 뽑아낸 대체 에너지만으로도 너를 해치우기에는 충분하니까!”
“네 부하들을 희생시켜서 얻어낸 힘 말인가?”
“그렇다!”
삼림지대 및 영구동토에는 요르문간드의 부하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요르문간드 파벌의 용귀족과 드래곤들은 모조리 요르문간드에게 흡수당했다고 한다.
“결전을 수행할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서, 내 권속들은 나를 위해 희생한 것이다!”
“자진해서 희생한 건 아닐 텐데.”
아무리 충성심이 강해도, 자기 목숨을 바쳐서 주군의 영약 역할을 해주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네 부하들에게 선택권을 줬나?”
“선택권? 웃기는 소리!”
요르문간드의 웃음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놈들은 나의 권속이었다! 그렇다면 내 명령을 따르는 게 당연하지! 굳이 의사를 물을 필요도 없다!”
“역시 그랬군.”
예상했던 거지만… 불쾌한 얘기였다.
“요르문간드.”
나는 지상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원래 나는 드래곤들을 동경했었다.”
“뭐라고?”
“드높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드래곤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까 생각했지.”
멈칫하는 요르문간드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아니었어. 그들에게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지.”
“…….”
“너희 같은 놈들이 그들의 자유를 빼앗고 있었으니까.”
일반 드래곤들은 에인션트 드래곤의 명령에 복종할 뿐인 존재였다.
어째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른 채, 명령대로 인간을 공격할 뿐이었다.
하늘을 날 수 있다고 해서, 그들이 자유로운 존재였던 건 아니었다.
“요르문간드, 나는 하늘을 나는 용처럼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게 어떤 것인지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지.”
“무슨 소리를…….”
“그래도, 한 가지 확신을 갖고 있는 게 있다.”
나는 요르문간드를 내려다보며,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같은 놈들을 그냥 내버려 둔다면, 진정한 자유에서 점점 멀어질 거라고 말이다.”
“…….”
에인션트 드래곤들은 에테르를 대체할 힘을 확보하기 위해 부하들을 몰살시켰다.
그리고 인류 전체까지 희생시키는 거대한 음모를 진행하고 있다.
놈들이 인류를 전부 몰살시키려는 건지, 아니면 가축으로 삼으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것이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카이트 에인헤랴르…….”
요르문간드가 의문을 제기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냐. 우리들을 이 세상에서 남김없이 쓰러뜨리겠다고?”
“그래야겠지.”
“왜소한 인간 주제에 정말로 오만하군.”
코웃음을 치면서 요르문간드가 몸을 비틀었다.
“그래, 이러면 어떨까?”
“무슨 소리지?”
“날벌레처럼 날아다니는 너희를 잡는 것도 귀찮은 일이니…….”
요르문간드의 시선이 북쪽으로 향했다.
방금 전까지 바르타니아 공작으로서 공세를 펼치고 있었던… 성채도시 고틀란드 쪽으로.
“그냥 저 도시를 무너뜨리는 걸 우선하는 게 났겠군.”
“……!”
쿠쿠쿵!
굉음과 함께 요르문간드가 전진하기 시작했다.
고틀란드를 향해 진격을 개시한 것이다.
“카이트 님, 이건 위험한 게 아닌지…….”
디트리히도 우려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 거대한 드래곤이 고틀란드에 도착하면 도시 전체가 순식간에 폐허가 될 것이다.
“상황이 안 좋군.”
“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요르문간드는 내가 고틀란드를 지키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와 싸우는 걸 기대하고 있다.
내가 계속 공중을 날아다니고 있는 상태에서는 치명타를 입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속셈을 알고 있는 이상, 굳이 그것에 응해 줄 이유는 없다.
“디트리히.”
나는 디트리히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막아 줬으면 좋겠는데.”
“…….”
디트리히가 잠시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동맹의 일원으로서 나한테 도움을 줬으면 좋겠군.”
“…….”
황당하다는 듯이 디트리히가 내 얼굴을 쳐다봤다.
“진심이십니까.”
“어려운가?”
“그건…….”
“정말로 어렵다면 사실대로 말해 줬으면 좋겠군.”
나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니드호그 측이 나한테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싶으니까 말이다.”
“…….”
디트리히가 강력한 용귀족이라는 건 이미 확인했다.
하지만 니드호그 파벌 최강의 용공작으로서 한계까지 힘을 끌어내 싸우는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다.
“카이트 님.”
디트리히의 목소리가 진지해졌다.
“아까 적 본진을 초토화시킨 에너지 공격 말고도 다른 기술이 있다고 말씀하셨죠.”
“그랬지.”
“그걸로 요르문간드를 상대할 수 있는 겁니까?”
눈치가 빠른 녀석이다.
나는 입을 다문 채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시간을 벌도록 하지요.”
그렇게 말하며 디트리히는 와이번의 고삐를 잡아당겼다.
“제가 요르문간드를 막고 있는 사이, 준비를 마쳐 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도록 하지.”
디트리히는 곧장 질풍처럼 날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품 안에 손을 넣었다.
단단한 물질에 손끝이 닿은 순간,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그러면 슬슬 힘을 발휘해 볼까.’
내 품안에 넣어놨던 물건.
그것은… 파프니르를 쓰러뜨리고 얻어낸 에인션트 드래곤의 마석이었다.
* * *
녹색 오러가 눈앞에 쏟아지자, 요르문간드는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치켜들었다.
“디트리히, 왜 끼어드는 것이냐.”
“막아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요르문간드 폐하.”
와이번을 탄 디트리히가 요르문간드의 머리 위에서 선회했다.
“카이트 님도 곧 따라오실 겁니다. 그동안 저를 상대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디트리히…….”
언제 봐도 기분 나쁜 놈이다.
원래 용공작들은 일반 드래곤들과 동격이지만, 에인션트 드래곤보다는 격이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트리히는 니드호그를 제외한 에인션트 드래곤들 앞에서 오만불손한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요르문간드는 예전부터 디트리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미리 말해 두지. 네가 만들어 내는 오러 포그는 나한테 통하지 않는다.”
요르문간드는 냉정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나를 중독시키기에는 너무 양이 적으니까.”
“에인션트 드래곤을 중독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요르문간드 폐하.”
디트리히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요르문간드 폐하는 제가 왜 니드호그 폐하의 부하들 중에서 최강이라 불리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런 건 모른다.”
다른 에인션트 드래곤의 부하들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 일일이 기억하지는 않는다.
아주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다면 몰라도… 디트리히에게 그런 소문은 없었을 터였다.
“그렇다면, 알려드리겠습니다.”
디트리히가 검을 치켜들었다.
옛날에 거인이 갖고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 신화병장 ‘에케작스’였다.
그 찬란한 빛에 요르문간드가 잠시 시선을 빼앗긴 직후.
거대한 검이 요르문간드의 머리를 찍어 눌렀다.
“……?!”
쿠쿵!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디트리히가 들고 있던 검이 갑자기 거대해진 뒤, 엄청난 힘으로 요르문간드의 머리를 찍어 누른 것이다.
“에케작스는 크기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신화병장입니다. 거인이 사용했다는 전설을 생각하면 쉽게 유추할 수 있지요.”
“디트리히, 네놈……!”
“그리고.”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면서, 금발녹안의 미남자가 말했다.
“제가 최강으로 꼽히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누구보다 강한 괴력(怪力)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죠.”
“괴력, 이라고?!”
“네, 단지 그것뿐입니다.”
디트리히는 요르문간드의 거체를 잠시나마 짓누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발휘했다.
비록 요르문간드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놀라운 일이었다.
‘이런 파워를 지닌 용공작이 있었다니……!’
허를 찔린 요르문간드가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을 때.
디트리히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면, 요르문간드 폐하.”
에케작스를 다시 거둬들인 디트리히가, 이번에는 양손으로 칼자루를 쥐었다.
“잠시만 저를 상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크으윽… 좋다!”
요르문간드가 고개를 치켜들며 포효했다.
“나를 막을 수 있다면 막아 보거라, 디트리히……!”
* * *
멀리서 들려오는 요르문간드의 포효를 들으면서, 나는 손에 쥔 마석을 의식했다.
파프니르를 쓰러뜨리고 얻은 마석은 일반적인 드래곤 하트보다 훨씬 작았다.
하지만 그 내부에 담겨 있는 기운은… 드래곤 하트보다 훨씬 농밀하고 격렬했다.
‘섣불리 이 기운을 흡수하려고 하면 주화입마에 빠지겠지.’
나는 이 마석에 내포된 힘을 빨아들이지 못했다.
급하게 오느라 시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아직 결정을 못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내재되어 있는 건 순수한 에테르 입자야. 마력을 빨아들이는 것하고 똑같이 해서는 안 되겠지.’
하지만.
내 몸에 받아들이지는 않더라도, 이 마석에 내재된 에테르를 사용하는 건 가능하다.
이미 나는 신화병장의 에테르를 많이 사용해 왔으니까.
‘신화병장의 에테르는 특정 성질에 치우쳐서 발현되지만, 이 에테르는 아닐 거야.’
예를 들어, 발뭉에 내재된 에테르는 얼음 그리고 어둠의 속성으로만 발현된다.
시구르드의 설명에 의하면 추운 지하 세계의 난장이인 니벨룽족이 제작한 무기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마석에 저장된 에테르는 그런 제한 없이 본래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에테르는 무속성의 힘… 즉, 무극(無極).’
원초적인 힘.
그렇기에 가장 강력한 힘.
그 힘을 끌어내서 제어할 수 있다면…….
‘태산 같은 요르문간드까지 쓰러뜨리는 검을 만들 수 있을 터.’
나는 파프니르의 마석에 의식을 집중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막대한 힘을 끌어내어, 요르문간드를 벨 수 있는 검을 만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