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agon Slayer Sword Demon RAW novel - Chapter 161
▣ 161화. 거룡을 짓밟아라 (6)
쿠쿠쿠쿵!
굉음과 함께 요르문간드가 쓰러졌다.
산이 뒤집히고 땅이 갈라지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그, 아아, 아아아……!”
뇌가 두 조각 났는데도 불구하고, 요르문간드는 목소리를 냈다.
“어떻게, 어떻게, 에인션트 드래곤인, 내가, 이렇게, 왜소한 인간에게……!”
“말했을 텐데, 요르문간드.”
냉정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내 눈에는 네가 더 왜소하게 보인다고.”
“그아, 아아아……!”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신음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는, 무한히, 거대해져서, 이 세상을, 모조리, 아아아……!”
요르문간드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왔다.
“세계, 버림받은, 다시는, 멸망, 아아, 아아아……!”
두뇌의 중추적인 부분이 파괴되었기 때문인지, 요르문간드는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내가 질문을 던져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용서 못 한다, 나는, 요르문간드, 세상을, 아아아…….”
결국 요르문간드의 목소리도 점점 희미해졌다.
그리고 파프니르처럼 몸 전체가 분해되기 시작했다.
“아아…….”
요르문간드는 산맥처럼 거체를 지니고 있었다.
그 거대한 몸이 황금색의 입자가 되어 바람에 흩어졌다.
마치 처음부터 모래로 만든 산이었던 것처럼.
‘시체를 치울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그 광경을 냉정한 눈빛으로 지켜보면서, 요르문간드의 시체가 사라지는 것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마석, 아니 드래곤 오브를 찾으려 했다.
“……?”
하지만 요르문간드의 드래곤 오브는 파프니르하고 다른 것 같았다.
거무튀튀한 색으로 변질된 덩어리를 보면서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저건…….”
내가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기도 전에, 요르문간드의 드래곤 오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산산조각 나더니, 완전히 녹아 버렸다.
‘순수한 에테르만 들어 있던 파프니르의 드래곤 오브와는 달리… 불순물이 들어 있어서 그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디트리히가 다가왔다.
“드래곤과 용귀족들을 몰살시켜 획득한 대체 에너지 탓일 겁니다. 에테르처럼 정순한 에너지가 아니니까요.”
요르문간드를 쓰러뜨리면 드래곤 오브를 하나 더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는 안 될 모양이다.
아직 파프니르의 드래곤 오브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니, 큰 욕심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카이트 님… 정말로 요르문간드를 쓰러뜨리셨군요.”
디트리히가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파프니르에 이어서 두 번째 에인션트 드래곤을 쓰러뜨리시다니… 인간의 한계를 초월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아니, 순전히 내 힘으로 한 일이 아니야.”
“겸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신화병장과 드래곤 오브의 힘을 빌렸다고 해도, 카이트 님 아니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입니다.”
디트리히가 나를 치켜세웠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평범하게 싸웠으면 내가 졌을 싸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요르문간드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놈이 자만심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야.’
요르문간드는 나를 얕봤다.
왜소한 인간 따위는 얼마든지 짓뭉갤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도발에 넘어가서 흥분한 상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디트리히가 시간을 끌어 준 덕분도 있었고.’
디트리히가 시간을 끌어 주는 동안, 나는 드래곤 오브의 힘을 끌어올려 그람에 압축시킬 수 있었다.
만약 요르문간드와 사투를 벌이는 도중이었다면 그런 준비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라무극신공도 발뭉과 노퉁에서 음양의 기운을 끌어올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준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에인션트 드래곤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없다.
‘파프니르와 싸웠을 때도 시구르드 등이 파프니르에게 상처를 입혀 준 덕을 봤지.’
결국… 내가 에인션트 드래곤보다 강하지는 않은 것이다.
현시점에서는 아직 상당한 차이가 있다.
에인션트 드래곤이 작정하고 나를 죽이기 위해 나선다면 당해 내기 어렵다.
‘더욱 강해져야만 한다.’
내가 갖고 있는 힘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에인션트 드래곤과 대등한 싸움이 가능할 것이다.
* * *
고틀란드로 귀환한 뒤.
나는 프리드레이프와 만나 사정을 설명했다.
“저, 정말 믿어지지 않는 얘기군요…….”
프리드레이프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우리를 공격한 바르타니아 공작이 에인션트 드래곤이었다니…….”
“바르타니아 공작만이 아니야. 더 많이 있어.”
“도저히 믿어지지 않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사태가…….”
“아까부터 계속 그 소리만 하는군.”
프리드레이프는 계속 믿어지지 않는다고 반복하고 있었다.
사실 심정은 이해가 된다.
그동안 북쪽에서 내려오는 드래곤 세력에 맞서 싸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놈들이 남쪽으로 침투해 엄청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하니까.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 겁니까?”
“일단 정보를 수집해야지.”
“정보를요?”
“산중교단에 연락을 해 볼 생각이야.”
“아……!”
내 얘기를 듣고 프리드레이프가 탄성을 질렀다.
“그, 그렇죠! 산중교단은 대륙 각지에 정보원이 있으니까요!”
“그래, 귀족 사회의 동향을 알 수 있겠지.”
산중교단은 설원지대에서 우리를 도왔지만, 영구동토에 진입하기 전에 일부 전력만 남기고 이탈했다.
교단의 원수인 하겐은 이미 쓰러졌고, 최고장로인 샤이흐도 부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지금쯤이면 담당 구역에 복귀했겠지. 협력을 요청하면 최대한 성실히 조사해 줄 거야.”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을까요?”
“글쎄, 수고비를 달라고 하면 줘야지.”
지난 원정에서 우리 사이는 꽤 돈독해졌다.
과도한 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대로 정보를 수집한 뒤, 놈들이 뭘 어쩌려는 건지 알아봐야겠어.”
놈들은 단순히 인류를 분열시키는 것만을 위해 귀족 사회에 침투한 것이 아니다.
뭔가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 * *
다음 날, 서쪽에서 아그나르과 헤스테인이 각각의 기사단을 이끌고 도착했다.
며칠 뒤에는 북쪽에서 내 직속 부하들도 일부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력을 다해 달려왔는데… 역시 다 끝난 상태였군요.”
니얼이 머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니얼, 북쪽 상황은 어떻지?”
“일단 니드호그 측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시구르드 전하를 프레이르 요새로 모시기 전까지는 최고 수준의 경계를 유지하겠다고 에리크 경께서 말씀하시더군요.”
“그쪽은 에리크 경에게 맡길 수밖에 없겠군.”
에리크는 현재 백룡기사단 뿐만 아니라 시구르드의 흑룡기사단까지 이끌고 있다.
니드호그가 직접 공격해 온다면 몰라도, 웬만한 상황은 알아서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한동안은 여기 있는 인원으로 대처해야겠군요.”
그렇게 말한 건 서쪽에서 황룡기사단을 이끌고 달려온 아그나르였다.
“제 황룡기사단과 헤스테인 님의 적룡기사단으로 북부를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아그나르 경, 북부를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남부로 진군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그나르와 함께 도착했던 헤스테인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남부로 침투했다면, 우리도 남쪽으로 쳐들어가야죠!”
“헤스테인 님,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니, 어째서요? 큰형님을 앞세워서 진격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헤스테인의 의문에, 옆에서 듣고 있던 이바르가 입을 열었다.
“헤스테인, 만약 우리가 남쪽으로 진군하면 남부 귀족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야.”
“작은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남부를 침략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으니까.”
“앗…….”
안 그래도 남부의 황제파 귀족들은 에인헤랴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하며 북쪽 변방에서 사실상 왕 노릇을 하고 있는 에인헤랴르가 눈엣가시인 것이다.
그런 에인헤랴르가 기사단을 이끌고 남하하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
“하, 하지만 에인션트 드래곤들이 침투한 상황 아닙니까. 그걸 잘 설명해서 협력을 요청하면…….”
“그들이 우리 얘기를 믿어 줄까?”
“네?”
“우리한테는 황제파 귀족들을 설득할 만한 증거가 없어. 그들 입장에서는 북부 촌놈들이 허황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그, 그게 말이 됩니까? 실제로 바르타니아 공작이 요르문간드로 변신해서 덤벼들었는데도요?”
“그걸 목격한 사람이 얼마나 있지?”
“앗…….”
“요르문간드가 나타났다는 건 전투의 흔적만으로도 충분히 증명 가능하지만, 바르타니아 공작이 요르문간드로 변신했다는 걸 증명할 방법이 없어.”
이바르의 말대로, 그 광경을 지켜본 건 나와 디트리히뿐이다.
고틀란드에서 농성 중인 병사들은 거리가 멀어서 보지 못했다.
바르타니아 측의 병사들은 전부 죽어 버렸고 말이다.
“그 누구냐, 디트리히라는 용공작이 증인으로 나서면 어떨까요?”
“오히려 역공만 당할 거야. 북부 촌놈들이 드래곤 세력과 손을 잡고 분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말이야. 배룡주의자로 몰릴 수도 있겠지.”
“그럴 수가……!”
다른 사람들도 이바르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바르 공자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에인헤랴르가 황제의 권위에 도전한다는 얘기가 나올 수도 있고… 자칫하면 북부와 남부 전체의 전쟁으로 발전할 수도 있겠죠.”
“그것만큼은 피해야 하죠. 물자가 풍부한 남쪽과 전면 전쟁을 하게 되면 우리 쪽이 불리하니…….”
“무엇보다 인간들끼리 싸우면 에인션트 드래곤들만 쾌재를 부를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니얼이 나를 쳐다봤다.
“카이트 공자님, 이런 작전은 어떻겠습니까?”
“어떤 거지?”
“대공비 전하의 인맥을 활용하는 겁니다.”
대공비라면… 시구르드의 아내인 프레데군다다.
“대공비 전하는 젊었을 때 제국 수도 메로베우스에서 공부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네, 메로베우스에서 몇 년 유학을 다녀오셨죠.”
프리드레이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인맥을 활용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걸 통해… 초대장을 입수하는 겁니다.”
“초대장이라면?”
“남부 귀족들은 사교 모임을 중요시하죠. 그런 모임에 참가할 수 있도록 카이트 님을 초대해 달라고 대공비 전하의 옛 지인들에게 요청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이바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은 계책이군요. 에인헤랴르의 장남이 별다른 명분도 없이 남부로 내려가면 공격을 당하겠지만, 초대를 받아 사교 모임에 참가하는 거라면 그럴 일이 없습니다. 다만 병력을 많이 데려가지는 못하겠군요.”
“카이트 공자님, 그리고 호위 명목의 소수 정예만 가야겠죠.”
이바르에게 대답한 뒤, 니얼이 나를 쳐다봤다.
“카이트 공자님, 어떻습니까?”
“확실히 그럴듯한 계책이야.”
내가 남부의 사교계에서 돌아다니면 나 자신이 놈들을 유인하는 미끼 역할도 할 수 있다.
프레데군다하고는 예전부터 서먹서먹한 관계지만… 그녀도 에인헤랴르의 안주인인 이상, 이런 일에는 협력해 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문제군.”
“네?”
“귀족들 사이의 교류니, 정식으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진행해야겠지. 우리한테 필요한 초대장을 얻으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어.”
“그건…….”
“시간 여유가 있으면 상관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단 말이지.”
니드호그의 말대로, 놈들의 계획이 인류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뿐이라면 그리 급하지는 않을 것이다.
놈들이 황제파 귀족들의 신분을 빼앗았다 해도, 물밑 작업을 하는 데 시간이 걸릴 테니까.
하지만 요르문간드의 발언을 생각하면… 놈들은 니드호그가 알고 있는 것하고는 다른 계획을 진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놈들은 내가 돌아와서 요르문간드를 쓰러뜨렸다는 걸 파악한 상태일 거야. 계획을 앞당길지도 몰라.”
“그렇다면…….”
“되도록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거지.”
차라리 나 혼자 남쪽으로 내려가서 살펴볼까.
나 혼자라면 얼마든지 남의 눈을 피하면서 은밀히 움직일 수 있다.
“음… 큰형님 말대로 최대한 빨리 남쪽으로 진군하는 방법은 없는 겁니까?”
“글쎄요, 아무래도 명분이…….”
“자칫하면 에인션트 드래곤이 아니라 남부 귀족들과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니…….”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회의실 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금 산중교단에서 급보가 전해졌습니다!”
“무슨 일이지?”
목소리가 상당히 다급했다.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
“그게…….”
잠시 뒤 이어진 말을 듣고, 회의실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숨을 삼켰다.
“제국 수도 메로베우스에서 반란이 발생! 황제 폐하가 시해당하셨다고 합니다……!”
인룡대전을 앞두고, 이 세계에 거대한 혼란이 시작되고 있었다.